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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애는 왜 안 돼요?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바우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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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는 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 집단이다.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 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다. 서민들에게는 제법 환영을 받았으나 상류층에는 배척을 받았는데 이것은 남사당패가 숫동모와 암동모로 이루어진 남색사회였기 때문이다. 대략 40~50명이 움
"계집애는 왜 안 돼요?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바우덕이'" 내용보기

남사당패는 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 집단이다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 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다. 서민들에게는 제법 환영을 받았으나 상류층에는 배척을 받았는데 이것은 남사당패가 숫동모와 암동모로 이루어진 남색사회였기 때문이다. 대략 40~50명이 움직이며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벌였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이 패거리는 특히 철저한 계급사회여서 맨 위에는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있고, 그를 보좌하는 ‘곰뱅이’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각 놀이 분야의 선임자를 뜻하는 ‘뜬쇠’가 있다. 뜬쇠 아래에는 ‘가열’이 있고, 가열 밑에는 초입자인 ‘삐리’들이 있다. 이 삐리들은 대부분 암동모 노릇을 하였는데 이들의 동성애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기에 함부로 마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잘 보이는 높은 언덕 같은 곳에 모여 갖은 재주를 부렸고, 꼭두쇠를 보좌하는 곰뱅이가 마을 사람들과 협상을 하여 성사가 되면 비로소 마을로 들어가 놀았던 것이다.

ㅡ네이버 지식백과

 

동화책을 읽으며 어렵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남사당패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실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으며 곰뱅이쇠, 꼭두쇠도 낯설었지만 어름, 버나, 벅구등도 익숙치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렇게도 우리 전래놀이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남사당패는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단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미안해졌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란 것이 남사당패의 구성과 그들의 세계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이런! 동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것인가? 아~머리 복잡하다. 

 

각설하고, '바우덕이'는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에 대한 이야기다. 남사당패는 태생적으로 여성의 진입을 허락할 수 없는 집단이다. 그런 곳에 여자 아이가 들어가 꼭두쇠가 되어 대원군으로부터 당상관 정3품의 옥관자를 하사받게 된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 아이는 어떤 아이기에 이런 일을 해냈을까? 지금도 여성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보이지 않는 장애물과 걸림돌들이 있는데, 19세기 말에 어린 여자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루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의문들을 내게 남겼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또 읽었다. 그건 아이의 보이지 않은 눈물과 가시밭길에 대한 내 예의였다.

 

바우덕이는 천애 고아다. 어미는 아비가 죽기 2년 전에 집을 나갔고 아비는 병이 들어 거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바우덕이의 나이는 예닐곱 살 정도였다. 아비의 몸은 등창으로 생살이 썩어들어가고 있어서 곁에 있는 사람이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어린 것이 그런 아비와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아비의 친구인 곰뱅이쇠 덕기는 남사당패의 일 년치 놀이판이 접힌 후 늘상 하던대로 청룡사 요사채에 짐을 풀었다. 그 곳의 공양주 보살이 덕기에게 친구가 다죽게 생겼다는 기별을 한다. 덕기는 친구를 찾아 나서고 친구는 자신의 딸을 부탁하고는 그 날 새벽 죽음을 맞는다. 그 아이가 바우덕이다.

 
남사당패는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런데다 금녀의 패거리에 어린 계집애를 데려오게 된 곰뱅이쇠는 앞이 캄캄하다.  그런 곰뱅이쇠의 마음을 아는 듯 바우덕이는 눈치껏 재빠르게 행동한다. 바우덕이는 기예가 없으면 이 곳에서 지낼 수 없음을 알고는 틈틈이 이것 저것을 어깨 넘어로 배운다. 계집아이의 암팡진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기예 중 가장 힘들다는 어름을 어느날 어름사니가 가르쳐준다. 눈을 감고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바우덕이는 몰랐다.

 

 

 

욕심을 내어 줄타기 연습을 하던 바우덕이 앞에 호택이가 나타난다. 호택이는 기예를 선보이다 인대를 크게 다친 오라비뻘의 사람이다. 남사당패에서는 자기 몸도 자기가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몸을 다치게 되면 남사당패는 다친 사람을 버려두고 갈 수 밖에 없다. 피붙이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은 아니었다. 호택이가 지게에 지워져 보내졌을 때 바우덕이는 대금을 부는 이경화 앞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버림받는 것이 무엇인지, 혼자 남겨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이였기에 그 울음은 통곡이었다. 호택이 또한 뻣뻣하게는 굴었지만 바우덕이가 여동생 같았기에 먹고 사는 일이 보장되는 포목점으로 데려가려 온 것이었다. 그러나 바우덕이는 자신이 어름사니가 될 거라며 매몰차게 거절한다.

 

열 살 짜리 계집아이가 줄을 탄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졌다. 이제 바우덕이는 사람들이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예인이 되었다. 더이상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된 꼭두쇠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바우덕이를 추천한다. 그 길만이 남사당패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호구를 해결하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다. 바우덕이는 열 다섯 나이에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담력이 있고 기예가 출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우덕이는 줄을 탈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환호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줄타기는 근심을 잊게 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줄 위에 섰다. 또한 줄 위에 서 있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아야 했다. 왕의 아버지조차도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올려다 보아야했다. 바우덕이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 볼 아비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동화의 결말은 이렇게 아름답지만 바우덕이는 스물 셋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병으로 죽은 그녀가 묻힌 곳은 개천가 어디라고 한다. 묻힌 장소를 몰라 오늘날 바우덕이의 묘는 가묘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바우덕이는 남들이 긴 시간을 살고도 해내지 못한 일을 마치고 갔기 때문이다. 천하다 무시하고 여자라 무시하던 그 시대, 그 환경 속에서 자신의 기예에 최선을 다했고, 나라가 인정하는 기량과 리더십을 바우덕이는 보였다. 짧고 슬프고 한 많은 인생이었지만 바우덕이는 남사당놀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백 년이 흐른 지금 이제 남사당놀이는 전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바우덕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푸른숲주니어 10월의 우수 서평

 

 

 

d*********2 2012.10.19. 신고 공감 5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바우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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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임정진 글 / 이윤희 그림    바우덕이책을 받아보고, 바우덕이가 뭐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남사당패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우두머리까지 올라간 여성이 있었다니 너무 흥미롭습니다.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인 "안성 남사당패 여성 우두머리"인 바우덕이를푸른숲주니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네요.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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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임정진 글 / 이윤희 그림

 

 바우덕이책을 받아보고, 바우덕이가 뭐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남사당패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우두머리까지 올라간 여성이 있었다니 너무 흥미롭습니다.
역사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인 "안성 남사당패 여성 우두머리"인 바우덕이를
푸른숲주니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네요.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역사책에 당당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 서민 문화의 꽃을 피운 당당한 여성!! 바우덕이~
당차고 힘찬 바우덕이를 만나볼까요?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어린 바우덕이는 홀로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요.
끼니도 거르고, 병든 아버지를 위해서 살고 있던 바우덕이는

아빠의 친구인 곰뱅이쇠 덕기 아저씨가 찾아와 아버지를 봐주시고, 바우덕이도 보살펴주게 됩니다.
덕기아저씨를 따라 남사당패의 청룡사 요사채에 와서 눈치보이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키워가요.
남사당패는 남성조직으로 금녀인 공간에 바우덕이가 들어오면서 말이 많았지만, 열심히 생활을 해낸답니다.
청룡사 공양 보살, 그리고 주지 스님은 바우덕이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남사당패가 꼭 남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는 할수 없는 일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어요.
바우덕이는 노래와 재주, 장구, 줄타기 등을 배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몸에 익혀요. 

열심히 노력하는 바우덕이를 알아보고 사람들은 바우덕이를 꼭두쇠로 인정하게 됩니다.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어 가고 있는 당당한 일원이라는 걸요. 


 

 

 

대원군은 바우덕이에게 당상관 정3품에게 내리는 옥관자를 하사품으로 내리기 까지 해요.
1848년에 태어나 1870년에 청룡리 어느 골짜기엔가 묻혔다고 하는 바우덕이!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23살이면 정말 어린 나이인데,

남성들이 지배하던 안성 남사당패에서 당당히 여성 우두머리로 우뚝 선 바우덕이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네요. 

남사당패 우두머리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까?
서민 중심의 문화였던 남사당놀이!!
방송에서만 많이 봤던 남사당패의 모습을 볼 기회가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꼭 보러가야겠어요.
줄타기 공연은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공연일 것 같아요.
공연을 보면 바우덕이를 생각하면서 바우덕이가 살아온 삶을 다시한번 되새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력하면 못할 일도 없다는 걸!! 아이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c*****o 2012.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여성최초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
"여성최초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 내용보기
남사당패에는 원래 여자가 낄 수 없었는데 안성 남사당패만 한때 유일하게 여성 바우덕이가 대장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솔깃하다. 시대적 신분제도를 넘어선다 해도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남사당패의 대장이 될 수 있었을까? 더우기 외줄을 타는 어름사니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었다니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20대 꽃다운 나이가 되어 병들어 일찍 죽어 어딘지도 모를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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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에는 원래 여자가 낄 수 없었는데 안성 남사당패만 한때 유일하게 여성 바우덕이가 대장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솔깃하다. 시대적 신분제도를 넘어선다 해도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남사당패의 대장이 될 수 있었을까? 더우기 외줄을 타는 어름사니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었다니 더욱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20대 꽃다운 나이가 되어 병들어 일찍 죽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묻혔다는 사실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병든 아버지와 함께 추운 골방에서 배를 골며 근근히 살아가던 바우덕이는 아버지의 죽음앞에 찾아온 곰뱅이쇠 덕기의 손에 이끌려 남사당패로 들어가게 된다. 죽을것 같던 집을 벗어난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에서 쫓겨나지 않으려 이쁨받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으며 자신을 버린 엄마를 만나기 위해 사당패 재주를 어깨 넘어 기를 쓰고 배운다. 자신을 버린 엄마라는 원망보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사실에 콧잔등이 찡해진다. 남다른 소리를 내는 바우덕이를 알아본 사당패무리들은 그런 바우덕이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처음엔 그저 부리는 종처럼 대한다.

 

아직 어려 가벼운 몸으로 사람위에 사람을 세우는 오무동을 하면서 바우덕이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더 높은 곳으로의 꿈을 꾸기도 하는데 그 또한 언젠가 엄마가 자신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탓이기도 하다. 사당패놀이중 무엇보다 가장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받는 어름사니의 재주를 본 이후 바우덕이는 어름사니의 줄타기를 배우려 하지만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동안 바우덕이는 장구장단을 배우고 대금을 불던 이경화로 부터 언문을 배우기도 하며 무엇이건 정말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어렵고 힘든 와중에도 서로 의지가 되어주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땅재주를 넘던 호택이 인대를 다쳐 더이상 재주를 넘지 못하자 버려지듯 두고 가는 모습을 보며 사당패에게는 몸이 전재산이라 몸이 망가지면 버려지는 비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슬퍼한다. 어름사니에게 줄타기를 배우기 위해 소리며 장단이며 벽구며 온갖 재주를 열심히 익히려 애쓰는 바우덕이를 보던 어름사니는 드디어 줄타기를 가르쳐주게 되고 드디어 바우덕이는 줄위에 서서 재주를 보이게 된다. 위험하고 어려운줄 알지만 하늘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꼭 잡아줄거라고 믿고 있는 바우덕이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바우덕이의 재주가 날로 늘어 인기를 누리게 되자 꼭두쇠는 바우덕이를 꼭두쇠에 앉히는 놀라운 결심을 하게 된다.

 

사실 그동안 어린 바우덕이가 사당패 무리들에게 잘 보이려 눈치 빠르게 행동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기예를 익히는 바우덕이를 보아오던 무리들은 지금 바우덕이 덕분에 인기를 누리고 살판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수 없어 바우덕이를 꼭두쇠로 인정하게 되는데 더우기 궁궐안까지 소문이 퍼져 초대되어 대원군 앞에서까지 재주를 부리게 되고 옥관자까지 하사 받게 되니 남사당패로서 그 이상의 영광은 없을듯, 바우덕이가 하늘을 날듯 외줄을 타며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게 된것은 모두 바우덕이의 노력이 가져다 준 결과다. 그런 그녀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바우덕이는 남자들밖에 없는 환경속에서도 자신이 설자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살아 남기 위해 온갖 재주를 익히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인물이다. 우리는 종종 힘든일이 닥치면 어려운 환경을 탓하곤 하는데 바우덕이의 이야기를 통해 환경을 탓할것이 아니라 스스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안성에 있다는 바우덕이를 기리는 사당과 묘를 찾아가게 되면 왠지 그녀의 소리가 들릴듯 하다.

 



k*******7 2012.10.22. 신고 공감 1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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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무대에서 당당히 우두머리가 된 여성,바우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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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산과 사찰 중에는 안성의 서운산에 있는 청룡사가 있다. 작은 사찰이지만 안정적이면서 뒤와 앞으로 펼쳐지는 아담한 서운산과 함께 청룡저수지가 참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는 곳이다. 이곳을 가는 길 입구에는 '바우덕이묘'로 가는 이정표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늘 마음만은 그곳을 들러 청룡사로 향한 기분이 든다.왜일까? 안성은 '바우덕이' 뿐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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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산과 사찰 중에는 안성의 서운산에 있는 청룡사가 있다. 작은 사찰이지만 안정적이면서 뒤와 앞으로 펼쳐지는 아담한 서운산과 함께 청룡저수지가 참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는 곳이다. 이곳을 가는 길 입구에는 '바우덕이묘'로 가는 이정표가 있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늘 마음만은 그곳을 들러 청룡사로 향한 기분이 든다.왜일까? 안성은 '바우덕이' 뿐만이 아니라 문화 아이콘이 참 많기도 하고 잘 활용되어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으로 거듭난 곳이라 볼거리로 많고 체험할 것도 많은 곳이다. 그중에서 어름사니가 펼치는 '줄타기'는 세계 어느 곳의 줄타기 보다도 더욱 돋보이며 '왕의 남자'로 인해 우리에게 더 각인된 문화 이기도 하다.

 

금녀의 무대인 '남사당패' 그곳에서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었던 인물인 '바우덕이','바우덕이가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바우덕이가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바우덕이가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그녀를 이르는 수식어에는 '돈' 이 함께 한다. 다른 남사당패와는 구별이 가기도 했지만 아릿따운 여자가 줄타기및 노래 장구 모든 것을 아우르며 잘했으니 놀음판에서 이보다 더 인기있는 남사당패가 있었을까? 거기에 안성 청룡사라는 곳은 위로는 경기와 아래로는 충청 전라를 향할 수 있는 교통의 중심과 같은 곳에 있었으니 어디로든 그들의 활로를 뻗어 나갈 수 있는 잇점이 있었으며 다른 남사당패와 다르게 '바우덕이'라는 '치마만 들춰도 돈 나온다'라는 인물이 꼭두쇠를 하고 있었으니 왜 안그렇겠는가. 그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면 좋으련만 개똥이 쇠똥이처럼 남들이 괄시하고 평범한 민초의 삶이었으니 기록이 아닌 구전에 의한 것에 의지하니 작가들의 창작열에 따라 그녀의 재주는 더 빛나게 보일듯도 한데 이 책에서는 그녀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하여 남사당패로 들어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사실감 있고 재밌게 표현해 놓았다. 거기에 난 '청룡사'라는 절을 잘 알고 있으니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읽을 수 있어 재밌게 읽었다.

 

 

바우덕이,그녀의 몸에 베인 재주를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아닌것인가 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집 나간 어머니가 그리 표현된 것은 아닐까? 어린 나이에 병든 아버지를 남겨 놓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그런 가운데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가고 그런 아버지의 친구였던 곰뱅이쇠 아저씨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돌봐 주시고 바우덕이까지 거두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곰뱅이쇠 아저씨를 따라 남사당패가 머무르고 있는 청룡사 요사채에 와서 눈치밥을 먹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보는 대로 자신의 재능으로 갈고 닦아 다부진 아이로 거듭나는 바우덕이,금녀의 공간인 남사당패에 바우덕이를 둔 다는 것은 화근이 될지 모른다고 모두들 한소리씩 했지만 그녀는 그녀나름의 뿌리를 그곳에 내리고 있었던 것,공양 보살마져 그녀에게 살갑게 대하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어머니처럼 혹은 할머니처럼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지만 인생이란 기다려주지 않는 것,그녀가 놀이판을 다녀 온 후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그녀를 위해 옷 한벌 이쁘게 갈무리 해 놓고 가실 정도로 정을 주게 만드는 아이였던 것.

 

그녀를 품어 준 것은 남사당패 뿐만이 아니라 청룡사 공양 보살 뿐만이 아니라 주지 스님 또한 그녀의 인생에 큰 힘이 되어 준다. 자연목을 이용하여 그대로 청룡사 대웅전 기둥이 된 나무를 보며 주지 스님은 그녀에게 교훈과 같은 말씀을 해 주신다. '아가, 이 기둥들은 울퉁불퉁해도 부처님을 든든히 모시는 집을 세우고 있지 않니? 매끈해야만 기둥 노릇을 하는 건 아니란다.말을 거칠게 한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듯이 말이다.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이 기둥을 세울 때 말이다. 이 나무가 따에서 살 적에 뿌리 쪽이었던 부분을 반드시 아래로 해서 세운단다.' 그녀의 인생 또한 매끄러운 나무가 아니듯이 울퉁불퉁하다. 그렇다고 부처님을 모시는 기둥이 되지 못할 것도 없는 대웅전의 기둥들처럼 그녀 인생 또한 잘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꼭 대단한 부모님과 배경을 타고 나야 잘 되는 법은 없다.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재주를 갈고 닦는다면 그녀 또한 훌륭한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꼭 그것이 남자만 된다는 보장도 없는 법이고 여자가 안된다면 그녀가 한번 해보는 것이다,청룡사 대웅전의 울퉁불퉁한 기둥처럼 말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듯 그녀가 습득해간 노래나 재주들은 어쩌면 그녀가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 이었는지 모른다. 누구보다 더 몸으로 가난과 부모의 품을 그리워 하고 없이 살아 보았기 때문에 배 곯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재주를 배워서 놀이판에서 그녀의 몫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다면 다시 엄마가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도 익히도 장구도 익히고 줄타기도 하지 않았을까. 피 나는 노력없이 '바우덕이 치마만 들춰도 돈 나온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녀를 냉대하던 사람들도 그녀가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를 꼭두쇠로 인정해주는가 하면 그녀의 그늘에서 등 따시고 배 곯지 않는 그런 시간들을 보냈으리라.

 

그런가하면 궁궐에서도 기별이 왔다. '경복궁에 와서 연희판을 펼치어라.' 라는 감치 광대가 궁궐을 출입한다 것,그것도 대원군이 그녀에게 '참으로 귀한 재주로다. 저 어름사니에게 옥관자를 내려 그 공을 모두가 높이 여기게 하여라.' 라고 하여 당상관 정3품에게 내리는 옥관자를 내렸다니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폭풍에 휩쓸리게 만들어 젊은 나이게 어느 골에 묻혔는지도 모르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청룡리 어딘가에서 그녀의 혼백은 지금도 노래를 부르고 줄타기를 하며 놀이판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고관대작이 나라의 큰 일을 위해 제 목숨을 걸고 줄 위에 올라 저리 뛰겠느냐.' 바우덕이 한 많은 인생은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고 대원군이 내리는 옥관자까지 받게 된 어름사니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삶은 어미에게 버려지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남겨진 어린 바우덕이의 가난하고 불행한 삶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녀 스스로 개척해 나가듯 금녀의 무대인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거듭나기까지 고난의 삶이었으리라.

 

 

청룡사 일주문을 드나들며 놀이판을 떠나고 보살들과 함게 어울려 놀이판이 없는 기간에는 눈치밥을 먹지 않기 위하여 어린 고사리손으로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했을 바우덕이,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나 또한 그녀의 시간과 만나본다. 돌계단을 오르고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며 그녀는 무슨 다짐을 하며 청룡사 대웅전과 마주했을까? 집 나간 어미를 찾게 해달라고 했을까? 자신의 미천한 재주로 모두가 신명나는 삶을 다시 재충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까?  청룡사 일주문을 다시 들어서면 이젠 그녀의 장구소리가 '덩기덕 쿵더러러러' 하고 맞이할 듯 하기도 하고 서운산을 울리는 쟁쟁쟁 노래소리가 울릴것만 같다. '육칠 월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 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찍 들고/ 수수땅잎 뚝 제쳐 머리를 질끈 동이고/ 검은 암소 고삐를 툭 제쳐/ 이랴 어디야 낄낄 소 몰아 가는/ 노랑 대가리 더벅머리 아희 놈/ 게 좀 섰거라 말 물어보자/' 바우덕이 그녀는 조선시대 그녀 스스로 '유리천정' 을 깨고 그 위에 올라서지 않았을까.그녀를 오늘날까지 있게 한 것은 모두 그녀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노력없이 얻는 것은 없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흔들린다.조심해라.'

 

 



y******2 2012.10.1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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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편견을 깨고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로 우뚝 서다!!
"바우덕이- 편견을 깨고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로 우뚝 서다!!" 내용보기
언제 였던가 한 십년전에 집에서 가까운 용인민속촌에 놀러 가서 보게 된 줄타기..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궁금해서 가서 보니 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 앞에서 아슬 아슬하게 줄 타는 모습을 보니 왜 내가 그리도 떨리고 긴장감이 드는지.. 거기에 익살맞은 말까지 정말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줄타기 인데 이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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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였던가 한 십년전에 집에서 가까운 용인민속촌에 놀러 가서 보게 된 줄타기.. 아이들과 함께 놀러갔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궁금해서 가서 보니 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눈 앞에서 아슬 아슬하게 줄 타는 모습을 보니 왜 내가 그리도 떨리고 긴장감이 드는지.. 거기에 익살맞은 말까지 정말 신기하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줄타기 인데 이 줄타기를 조선 시대에 금녀의 구역이었던 남사당패에 여자가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그 이름은 바우덕이.. 바우덕이 이름은 들어본것 같은데 누구지? 솔직히 잘 몰랐다..

나 역시나 몰라서 고개가 갸웃 거리는데 우리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런면에서 본다면 푸른숲주니어에서 나온 <바우덕이>는 바우덕이를 소개하면서도 우리의 놀이문화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에겐 생소한 고유의 놀이 문화였던 남사당패를 소개하면서 그 안에서 서민들의 고단했던 삶도 이해할수 있어 반가움이 앞섰다..

 

 

"아버지...... 아버지이......, 가지 마, 가지 마." - p.20

집 나간 엄마와는 소식이 끊겨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만 믿고 살던 바우덕이.. 그러나 아버지 마저 병으로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친구였던 남사당패의 곰뱅이쇠에게 맡겨진다.

"아버지 동무가 널 데리러 올 게다. 아무 걱정 말고 따라가거라.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아저씨니, 따라다니다 보면 네 엄마를 만날지도 모른다. 우리 바우덕이는 어디 가도 귀애받고 살 거다. 스님이 넌 만인이 우러러볼 팔자라 했다." -p.21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한채 아버지의 친구를 따라 남사당패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 당시만해도 남사당패는 금녀의 구역..

"계집애는 왜 안 돼요?

"남사당패에 계집애가 있다는 게 말이 되냐?" - 본문 중

감히 엄두도 못 내던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붙어 있으려면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것을 5살이었던 그 어린 바우덕이는 깨닫는다.

 

 

바우덕이가 남사당패에 들어오게 된 나이는 5살.. 그러나 바우덕이는 너무나 조숙했다.. 자신이 이 남사당패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치껏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한다는 것은을 누가 말을 해 주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며 곰살맞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고 가르쳐 주지 않은 기예를 배우기 위해서는 남들의 눈을 피해 보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전국을 떠 돌아 다니며 연희판을 벌이던 남사당패는 겨울이 되면 안성의 청룡사에서 겨울을 날때도 바우덕이는 절 공양보살에게도 살뜰히 일손을 도우며 청룡사를 제 집처럼 의지하게 된다.

사당 무리패들의 눈에 들려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 재주들을 어깨 넘어 몰래 몰래 배우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죽을 힘을 다 하는 그 어린 바우덕이를 떠 올리니 어찌나 안쓰러운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 어린 바우덕이는 자신의 미래를 직감적으로 알았던 걸까..

자신이 의지하고 살아나갈 길은 이 남사당패 뿐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다..

 

 

 

그러나 남사당패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나라 살림까지 좋지 않아 연희판을 벌이는 곳이 드물어져 더욱 힘들지만 그렇다고 여자인 바우덕이를 내쫓지는 못한다.

남다른 소리와 스펀지처럼 빨아 들이는 바우덕이의 재능을 보며 꼭두쇠는 언젠가는 바우덕이가 이 남사당패에 큰 힘이 되어 줄것을 예감하며 눈여겨 본다.

그 중에서 바우덕이의 마음을 제일 끄는 재주는 바로 어름사니.. 줄타기였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면서도 높은 줄 위에 올라가면 왠지 자신을 버리고 나간 엄마를  찾을수 있을것만 같은 줄타기다.

어름사니가 꼭 되고 싶어하는 바우덕이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자신을 버리고 나간 엄마지만 원망 뒤엔 그리움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더 어름사니가 되고 싶어 했던 바우덕이.

"오늘부터 줄 타기를 배워라."

차갑기만 하던 어름사니가 드디어 바우덕이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꿈에 그리던 어름사니가 된 바우덕이는 점점 입 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로 이름을 날린다.

남자들은 구경도 못 하던 남사당패인데 그 중에서도 제일로 치는 줄타기를 아릿따운 여자 아이가 탄 다니 당연한 일..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여러 가지 재주와 기예를 배웠던 바우덕이는 열 다섯에 최초로

여자가 꼭두쇠가 되는 영광을 얻는다. 바우덕이로 인해  남사당패 무리들 스스로가 편해지고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알기에 만장일치로 꼭두쇠로 추대한 것이다.. 

그 후로 남사당패는 전국 각지로 불려 다니며 입지를 굳히는데 궁에서 까지 연락이 오게 된다.

경복궁을 지으면서 사기가 떨어져 있는 일꾼들을 위해 연희판을 벌인다는 것..

높으신 분들을 위한 연희판이 아니라 고생하는 일꾼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바우덕이는 최선을 다해 연희판을 벌려 일꾼들의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는데... 그런 바우덕이의 마음을 알았던지 흥선 대원군은 당상관 정 3품의 옥관자를 내려 바우덕이를 비롯한 남사당패를 인정해 준다..

 

그러나  뜻밖에도 바우덕이는 너무 일찍 죽었다고 한다.

그 재주와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게 더 안타까운 것은 사실 이 바우덕이에 관한 기록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양반이 아닌 천민 중에 천민 이었던 남사당패라 변변한 기록이 있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남사당패에 관한 자료들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남는다..

남자들 무리 속에서 꼭두쇠라는 중책을 맡아 고생했을 바우덕이..그러나 힘들어도 행복하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녀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청룡사에 가면 바우덕이를 만날수 있다니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

 

이 책을 보며 우리 아이들도 바우덕이 처럼 힘들고 무서워도 현실에서 달아나려고 하지만 말고 용감하게 싸워보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사랑 마저도 사치였던 바우덕이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인정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지 않을까...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개척하는 사실.. 인생은 정해진 길을 걷는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개척해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것 같다..

 

 

 

 

 

<사진 본문에서 발췌>

 

 

 

 

b********2 2012.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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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줄 위에선 누구보다 행복한
"[바우덕이]줄 위에선 누구보다 행복한" 내용보기
남사당패의 놀이 중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줄타기가 아닐까한다. 직접 본적이 있는데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은 긴장감을 늦출수 없다. 떨어질듯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묘한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왕의 남자>에 나온 장면이 아닐까한다. 그 모습이 남사당패의 모든 걸 다 말하는 것이 아닐테지만 영화 속 그들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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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의 놀이 중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줄타기가 아닐까한다. 직접 본적이 있는데 줄타기하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은 긴장감을 늦출수 없다. 떨어질듯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묘한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왕의 남자>에 나온 장면이 아닐까한다. 그 모습이 남사당패의 모든 걸 다 말하는 것이 아닐테지만 영화 속 그들의 감정들이 우리들에게 전해지면서 참으로 애환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다른이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전해주지만 자신들은 늘 떠돌아다니며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나게 된 바우덕이. 참으로 다부진 꼬마 소녀가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꼭두쇠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해준 이야기를 보려한다.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버린 바우덕이. 아빠는 친구 곰뱅이쇠에게 바우덕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 길로 곰뱅이쇠와 함께 남사당패에 들어가게 된다. 어린나이에 남자들만 있는 곳에 가게 되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제 귀여움을 받는 눈치 빠른 아이였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귀동냥으로 들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를 내고 장단또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여자이지만 줄타기를 하는 호택이를 보면서 언젠가 자신도 줄을 타겠다는 다부진 꿈을 가지기도 한다. 남사당패의 꽃이라 할수 있는 줄타기의 명수 호택이는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남사당패를 떠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자신도 떠나야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슬픔을 느끼는 바우덕이.

 

남사당패는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처럼 한솥밥을  먹고 늘 붙어 다니지만, 가족이 아니어서 다치면 곧바로 버리고 가야했다. 바우덕이는 또다시 버림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 본문 119쪽

 

 

다른사람의 눈을 보며 그 사람의 감정을 알고 거기에 맞는 소리를 내는 바우덕이는 타고난 것이 아닐까? 앞에 선 사람의 눈을 보며 어떤 소리를 듣고 싶은지 알아내어 그 사람에게 맞는 소리를 들려준다.

 

슬픈 눈이 있고요. 무서워하는 눈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소리를 듣고 싶을까 생각해 봐요. - 본문 126쪽

 

지금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더 그러지 않았을까? 남자들만 있는 남사당패에 들어가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바우덕이를 보면서 오랫동안 그 행복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슬프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어느 골짜기에 묻힌 슬픈 삶을 살았지만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는 작은 행복을 알게해준 소중한 사람이다.

n******e 2012.10.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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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름사니 바우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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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의 세계인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가 되었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대원군에게 정3품의 당상관에게만 주어지던 옥관자를 받았던 인물이다. 여자가 남사당패가 된다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데, 어름사니가 되고 꼭두쇠가 된 것은 여자의 몸으로 임금의 주치의가 되었던 대장금에 견줄만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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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들의 세계인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가 되었고, 그 무리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대원군에게 정3품의 당상관에게만 주어지던 옥관자를 받았던 인물이다.

여자가 남사당패가 된다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데, 어름사니가 되고 꼭두쇠가 된 것은 여자의 몸으로 임금의 주치의가 되었던 대장금에 견줄만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우덕이가 아버지의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남사당패의 곰뱅이쇠를 따라 남사당패에 오게 된다.

사실 남사당패는 여자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친구의 딸을 어쩌지 못해 남사당패까지 데려오게 된 것이었다.

비구니들이 있는 절에라도 맡겨버릴까하는 말들이 오갔지만 바우덕이는 머리 깎기 싫다며 도투락댕기 하하고 싶다는 맹랑한 말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남실남실 어깨춤까지 추면서 내뱉는 노래에 사람들의 귀가 쫑긋해졌다.

바우덕이는 어렸지만 제대로 소리를 낼 줄 아는 그런 아이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바우덕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분간 데리고 있자고 한다.

그 후로 바우덕이는 무동을 하고, 장구도 배우고, 어깨넘으로 줄타기도 배운다.

 

바우덕이가 남사당패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타고난 실력이 있고, 배우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뛰어난 실력을 타고났지만 그 실력을 갈고 닦지 않으면 그 실력은 어느 지점에서 정체되고 마는데, 바우덕이는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남자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바우덕이가 성공한 또 하나의 이유는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고 송장 썩는 냄새를 뿜어내는 아버지와 추위와 배고픔을 절절하게 겪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남사당패에 와서는 잘 먹지 못할때도 있었지만 거의 굶는 일은 없어졌기 때문에, 바우덕이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무동을 하면서도 겁내지 않고, 장구 치는 소리만으로 장단으로 맞추고 사람의 눈을 보면서 감정을 읽고 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를 불러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꼭두쇠가 그런 바우덕이를 제대로 본 것이었다.  몇 년 안에 바우덕이가 자신들의 남사당패를 먹여살릴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선녀가 줄을 탄다는 소문을 바람을 타고 날아갔고, 바우덕이의 남사당패는 전국팔도에 이름 난 남사당패가 되어 경복궁의 일꾼들을 위한 연희판에도  초대받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남사당놀이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은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많이 사라졌고 직업에 대한 편견도 없어진 편이지만 남자여서 여자여서 하지 못한다는 그런 생각을 이 바우덕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인 남사당놀이가 앞으로도 맥이 끊어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서 뛰어난 여자 어름사니를 다시 만나 보고 싶다.

 

 

n*****1 2012.10.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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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깬 바우덕이
"편견을 깬 바우덕이" 내용보기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된 바우덕이 푸른숲주니어5기!! / 일상... 2012/10/24 19:38 수정 삭제 http://blog.naver.com/wlssi/50153156119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바우덕이 작가 임정진 출판 푸른숲주니어 발매 2012.10.05 리뷰보기    이번 푸른숲주니어의 책은 "바우덕이"이다. 우선 기초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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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된 바우덕이 푸른숲주니어5기!! /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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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작가
임정진
출판
푸른숲주니어
발매
201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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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푸른숲주니어의 책은 "바우덕이"이다.

우선 기초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다음 찾아보니 아~~ 하며 이해할수 있었다.

 

 

바우덕이는..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中-

 


남사당패는..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집단.

조선후기에는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유리걸식하거나 화적떼에 동참했고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랑연예인집단에는 남사당패, 사당패, 걸립패가 있다.

이중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어름산이(줄꾼)나, 그밖에 한두 사람의 여자가 낀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대집단은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논 패거리이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네이버 지식검색

 

바우덕이의 나이 예일곱살... 어미는 집나가고 아비는 병을 얻고 거동이 힘들어 등창에 살이 썩어져 나가다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보살이 아비의 친구를 찾아 딸을 부탁하고 그날 새벽에 죽음을 맞는다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아무리 어려도 어린계집애를 데려가는발걸음이 좀처럼 떼어지지않고

그 마음을 아는지 바우덕이는 눈치빠르게 행동을 하니 바우덕이의 모습에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사당패는 자기몸도 알아서 관리해야함을 알게 된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됨을 알게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듯이 그녀가 배워간 노래나 재주는 남사당패에서 살아남기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바우덕이를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지않을까

 

그 노력이 10살짜리 계집이 줄을 탄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예인이 되었고

궁궐에서 곡예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되고 그 곡예를 본 대원군은 당산관 정 3품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받게된다

 

아비를 일찍여의고 어미에게 버림받았지만 예인으로써 최고에 자리에 오를수 있었고

인정받기위한 그 노력은 우리가 꼭 배워야할 자세이다.

그리고 안성에서 하는 바우덕이 축제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해봐야겠다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된 바우덕이 푸른숲주니어5기!! / 일상...

2012/10/24 19:38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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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덕이

작가
임정진
출판
푸른숲주니어
발매
201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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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푸른숲주니어의 책은 "바우덕이"이다.

우선 기초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다음 찾아보니 아~~ 하며 이해할수 있었다.

 

 

바우덕이는..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中-

 


남사당패는..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집단.

조선후기에는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유리걸식하거나 화적떼에 동참했고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랑연예인집단에는 남사당패, 사당패, 걸립패가 있다.

이중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어름산이(줄꾼)나, 그밖에 한두 사람의 여자가 낀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대집단은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논 패거리이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네이버 지식검색

 

바우덕이의 나이 예일곱살... 어미는 집나가고 아비는 병을 얻고 거동이 힘들어 등창에 살이 썩어져 나가다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보살이 아비의 친구를 찾아 딸을 부탁하고 그날 새벽에 죽음을 맞는다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아무리 어려도 어린계집애를 데려가는발걸음이 좀처럼 떼어지지않고

그 마음을 아는지 바우덕이는 눈치빠르게 행동을 하니 바우덕이의 모습에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사당패는 자기몸도 알아서 관리해야함을 알게 된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됨을 알게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듯이 그녀가 배워간 노래나 재주는 남사당패에서 살아남기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바우덕이를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지않을까

 

그 노력이 10살짜리 계집이 줄을 탄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예인이 되었고

궁궐에서 곡예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되고 그 곡예를 본 대원군은 당산관 정 3품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받게된다

 

아비를 일찍여의고 어미에게 버림받았지만 예인으로써 최고에 자리에 오를수 있었고

인정받기위한 그 노력은 우리가 꼭 배워야할 자세이다.

그리고 안성에서 하는 바우덕이 축제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해봐야겠다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된 바우덕이 푸른숲주니어5기!! / 일상...

2012/10/24 19:38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wlssi/5015315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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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낸곳 (1)

바우덕이

작가
임정진
출판
푸른숲주니어
발매
2012.10.05

리뷰보기

 

 

이번 푸른숲주니어의 책은 "바우덕이"이다.

우선 기초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다음 찾아보니 아~~ 하며 이해할수 있었다.

 

 

바우덕이는..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中-

 


남사당패는..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집단.

조선후기에는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유리걸식하거나 화적떼에 동참했고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랑연예인집단에는 남사당패, 사당패, 걸립패가 있다.

이중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어름산이(줄꾼)나, 그밖에 한두 사람의 여자가 낀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대집단은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논 패거리이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네이버 지식검색

 

바우덕이의 나이 예일곱살... 어미는 집나가고 아비는 병을 얻고 거동이 힘들어 등창에 살이 썩어져 나가다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보살이 아비의 친구를 찾아 딸을 부탁하고 그날 새벽에 죽음을 맞는다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아무리 어려도 어린계집애를 데려가는발걸음이 좀처럼 떼어지지않고

그 마음을 아는지 바우덕이는 눈치빠르게 행동을 하니 바우덕이의 모습에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사당패는 자기몸도 알아서 관리해야함을 알게 된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됨을 알게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듯이 그녀가 배워간 노래나 재주는 남사당패에서 살아남기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바우덕이를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지않을까

 

그 노력이 10살짜리 계집이 줄을 탄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예인이 되었고

궁궐에서 곡예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되고 그 곡예를 본 대원군은 당산관 정 3품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받게된다

 

아비를 일찍여의고 어미에게 버림받았지만 예인으로써 최고에 자리에 오를수 있었고

인정받기위한 그 노력은 우리가 꼭 배워야할 자세이다.

그리고 안성에서 하는 바우덕이 축제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해봐야겠다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된 바우덕이 푸른숲주니어5기!! / 일상...

2012/10/24 19:38 수정 삭제

복사 http://blog.naver.com/wlssi/50153156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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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정진
출판
푸른숲주니어
발매
201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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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푸른숲주니어의 책은 "바우덕이"이다.

우선 기초지식이 있어야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다음 찾아보니 아~~ 하며 이해할수 있었다.

 

 

바우덕이는..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中-

 


남사당패는..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집단.

조선후기에는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유리걸식하거나 화적떼에 동참했고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랑연예인집단에는 남사당패, 사당패, 걸립패가 있다.

이중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어름산이(줄꾼)나, 그밖에 한두 사람의 여자가 낀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대집단은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논 패거리이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네이버 지식검색

 

바우덕이의 나이 예일곱살... 어미는 집나가고 아비는 병을 얻고 거동이 힘들어 등창에 살이 썩어져 나가다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보살이 아비의 친구를 찾아 딸을 부탁하고 그날 새벽에 죽음을 맞는다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아무리 어려도 어린계집애를 데려가는발걸음이 좀처럼 떼어지지않고

그 마음을 아는지 바우덕이는 눈치빠르게 행동을 하니 바우덕이의 모습에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사당패는 자기몸도 알아서 관리해야함을 알게 된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됨을 알게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듯이 그녀가 배워간 노래나 재주는 남사당패에서 살아남기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바우덕이를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지않을까

 

그 노력이 10살짜리 계집이 줄을 탄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예인이 되었고

궁궐에서 곡예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되고 그 곡예를 본 대원군은 당산관 정 3품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받게된다

 

아비를 일찍여의고 어미에게 버림받았지만 예인으로써 최고에 자리에 오를수 있었고

인정받기위한 그 노력은 우리가 꼭 배워야할 자세이다.

그리고 안성에서 하는 바우덕이 축제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해봐야겠다

바우덕이는..1848년(헌종 14)∼1870년(고종 7). 조선후기의 예능인.

열 다섯 살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써 남사당패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천재 예인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에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남사당패에 맡겨져 줄타기, 살판 등의 남사당 놀이를 익히게 된다. 바우덕이가 15세 되던해에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할 때 바우덕이가 어린 나이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지친 노역자를 위로하기 위해 남사당패를 불러서 공연을 펼쳤는데 그 때 뛰어난 공연으로 고종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바우덕이는 이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남사당을 대중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시스템 中-

 


남사당패는..조선후기 장터와 마을을 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공연했던 유랑연예인집단.

조선후기에는 광작현상의 발생으로 설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유리걸식하거나 화적떼에 동참했고 유리 걸식하는 사람들이 몇 가지 재주를 익혀 유랑연예인집단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유랑연예인집단에는 남사당패, 사당패, 걸립패가 있다.

이중 남사당패는 꼭두쇠(우두머리) 밑으로 4,5명의 연희자를 갖는 연희집단으로 일정한 거소(居所)가 없는 독신 남자들만의 남색사회이다. 간혹 어름산이(줄꾼)나, 그밖에 한두 사람의 여자가 낀적도 있으나 이것은 남사당패 말기에 들어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꼭두쇠를 정점으로 한 대집단은 그들의 여섯 가지 놀이를 가지고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받으면 마을의 큰 마당에서 밤새워 서민들만의 놀이를 논 패거리이다.

남사당패는 전국을 돌며 공연해 왔으며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베기(탈놀이), 덜미(꼭두각시놀음)이다.

                                                                                                                                       -네이버 지식검색

 

바우덕이의 나이 예일곱살... 어미는 집나가고 아비는 병을 얻고 거동이 힘들어 등창에 살이 썩어져 나가다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보살이 아비의 친구를 찾아 딸을 부탁하고 그날 새벽에 죽음을 맞는다

금녀의 구역인 남사당패에 아무리 어려도 어린계집애를 데려가는발걸음이 좀처럼 떼어지지않고

그 마음을 아는지 바우덕이는 눈치빠르게 행동을 하니 바우덕이의 모습에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사당패는 자기몸도 알아서 관리해야함을 알게 된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됨을 알게되고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듯이 그녀가 배워간 노래나 재주는 남사당패에서 살아남기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가 바우덕이를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더 열심히 했지않을까

 

그 노력이 10살짜리 계집이 줄을 탄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사람들이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예인이 되었고

궁궐에서 곡예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오게되고 그 곡예를 본 대원군은 당산관 정 3품에 해당되는 옥관자를 받게된다

 

아비를 일찍여의고 어미에게 버림받았지만 예인으로써 최고에 자리에 오를수 있었고

인정받기위한 그 노력은 우리가 꼭 배워야할 자세이다.

그리고 안성에서 하는 바우덕이 축제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해봐야겠다

k***y 2012.10.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우덕이
"바우덕이" 내용보기
바우덕이 푸른숲 어린이문학 028 임정진 지음 푸른숲주니어   <인물 간단 소개와 줄거리, 내 생각이 담긴 서평>  이름 : 김바우덕이(김암덕) 성격 : 눈치가 빠르고 열정적임. 가정 환경 : 어머니 가출 뒤 아버지 사망. 나이 : 열다섯 살에 꼭두쇠가 되고, 이십삼 살에 사망. 특징 : 최초의 여성 남사당패로써 정 3품의 옥관자를 하사받았다고 추정. 어린 나이에 남사당
"바우덕이" 내용보기

바우덕이

푸른숲 어린이문학 028

임정진 지음

푸른숲주니어

 

<인물 간단 소개와 줄거리, 내 생각이 담긴 서평>

 이름 : 김바우덕이(김암덕)

성격 : 눈치가 빠르고 열정적임.

가정 환경 : 어머니 가출 뒤 아버지 사망.

나이 : 열다섯 살에 꼭두쇠가 되고, 이십삼 살에 사망.

특징 : 최초의 여성 남사당패로써 정 3품의 옥관자를 하사받았다고 추정.

어린 나이에 남사당패 우두머리가 됨.

그 외의 등장인물 : 곰뱅이쇠 덕기, 공양주 보살, 칠성이, 호택이, 꼭두쇠, 주지스님, 이경화 등.

줄거리는 아버지와 함께 집 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살아가던 바우덕이.

아버지가 병에 걸려 위독해지자 그의 친구 곰뱅이쇠(남사당패 조직의 일원)가 찾아옵니다. 아버지는 결국 죽고, 곰뱅이쇄는 바우덕이를 데리고 떠납니다. '계집애' 라며 나쁘게 보던 남사당패 사람들은 그녀의 배짱있는 소리를 듣자 놀라워합니다. 결국 꼬마 오무동이 된 바우덕이.

남사당패 일을 척척 해내더니, 다른 일도 곧잘 합니다. 어름사니(남사당패에서 줄 타는 역할) 연습을 하면서 줄타기 뿐 만 아니라 춤, 노래, 재담까지 잘 해내던 바우덕이는 어름사니가 앓아서 쉬게 되자 연회에 나가게 됩니다.

남성 조직인 남사당패에 뛰어난 실력의 여성 어름사니가 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많이 몰려오고, 바우덕이는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됩니다. 또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대원군에게 정 3품의 옥관자를 하사받습니다. 그러나 스물세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죽게 됩니다.

내 생각은 여자라는 이유로 남사당패 활동에 방해를 받거나 편견에 부딪히던 바우덕이. 비록 천한 신분이였지만, 누구보다 더 귀중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그녀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2012.10.19.(토) 이은우(초등5)



i***2 2012.10.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