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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소이가 고향인 성춘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고향말과 고향 사람들로 시작하여 그가 살피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밤새 이고 온 별들을 내려놓고 부추꽃 피는 뒤안 장꽝 옆 굴뚝 모퉁이 가난한 친정집 입 하나 덜어 주라고 소 키우는 집으로 시집 보냈어 근데 시집도 별 수가 없더라고, 하필 버리깔갱이 죽도 먹기 힘든 보릿골로 시집 보냉 켜. 굴뚝과 굴뚝 사이 복궁딩이 하루에도 몇 번씩 털푸디기 앉아 퍼질러서 울고 앉은 그 자리 풀이 안 나고 빤질빤질했지. 숨어 우는 날, 소맷자락 마를 날 없고 옛날에 부역 나가 타다 놓은 밀가루에 쑥을 훌훌 뿌려 쪄서 덮어 놓으면 밥보재기에서도 배부른 향기가 났어. 버리쌀 삶아 덮어 놔도 콩비지 두부를 덮어놔도 앨여듧에 엄마 생각나면 밥보재기 안고 울기도 많이 혔어. 시어머이가 만만한 꼴을 봤나 골타구리 하면 보름씩 말 안 하고 짠찌쪽같이 부려먹어 그 덕에 못 하는 것 없이 잘 써 먹능 겨
밥 냄새처럼 배부른 향기, 어디 또 있남?
<밥보재기 향기>
가난한 삶이야 어찌 다 말할까만은, 사투리 또한 그렇게 보아 넘기면 되기야 하겠지만 시를 완성하고 있는 그곳, 그 시절만은 밥보재기 향기는 성춘희 시인만의 서사이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이다. 장꽝 옆 붝구팅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사투리에는 그곳에서만 있는, 강물과 산줄기에 따라 달라지는 살림과 말의 비밀은 안고 있다. 간을 맞추는데 간장과 된장을 넣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부할 수 없는 싸움까지 서려있기에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여 시인은 <미타사 광자>를 만나 그 시절을 다시 공유한다.
가난 뒤엎는 일에 청춘을 다 보냈어도 억울하거나 후회는 읎어. 그땐 다 그러는 줄 알었으니까. 조금 늦어서 그렇지 야간 학교도 댕기면서 고등학교 졸업장까정 다 땄어. 부모 탓하거나 팔자 탓하지 않었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절값으로 건강을 주셨나벼. 맘만 먹으면 다 잘 살아지더라구.
광자는 어릴 적 애기동생을 들쳐 업고 학교에 오던 친구다. 어쩔 수 없는 가난에 아기를 들쳐업고 당산나무에 절 해가면서 오던 친구를 만난 이야기인데, 왜 이들의 이야기는 파란만장하고 세월을 얼굴로 다 받은 듯해도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았고 끝내 잘 되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월은 중간생략하고 잘 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시로 써가면서 고향과 말과 음식으로 함께한 이야기를 맞추고 있다.
하루도 삠할날 없었어 고구마 통가리 야곰야곰 있는 것만 파 먹는데 당해 낼 재간이 읎지 구랑당 같은 놈들 너이나 있어도 빈둥대기만 하지 어떤 놈 하나 나가서 부역질해 오질 않능 겨 을메나 부아가 나 그랴도 낭구해서 여다 팔고 씨부랄 여서 충주까지 갈래 봐 기차가 자주 있나 지금마냥 동네까정 버스가 들어오길 하나 걸어 걸어 삼방이길 넘어 가다 보면 한나절여 가다가 비라도 만나봐 지랄나는 겨 그랴도 어쩌 하룻길 가다 보면 말도 보고 소도 보고 토깽이 새끼도 본다 혔어 약빨르고 야물렀으면 뭐햐 아새끼들은 있는 힘껏 까질러 놓고 저승이 뭐 그리 달갑다고 마흔도 안 돼 가 번졌어 간이 퉁퉁 붜서 을메나 깝깝햐 제비새끼들마냥 아가리 딱딱 벌리고 있는 거 보면 어쩌겄어 된장 덩어리를 고기라 하고 멕였어 지금이야 돈으로 사는 시상 먹장구름 이고 댕기메 가슴에 장대비 쏟아져도 구랑당 같은 놈들 철나고 한여름 비 그친 산 무지개 뜨잖어 사는 게 그려
<섭들 아지마>
왜 아니겠는가. 온몸으로 정신 없이 살았던 고향 사람들은 얼음을 깨물어 먹으며 참는 시인의 어머니(<얼음의 울음을 듣는다>)처럼 홧병에 사나워질 수밖에 없지만 또 참고 살았던 이야기를 장쾌한 소내기처럼 퍼붓는다. 그걸 듣는 시인은 그것이 더도 말고 덜도 마는 시라고 여기고 쓰는 것인데, 시인이란 그런 것만 잘 해도 되는 것임을, 천칭만칭 구만칭한 세상 이야기의 한쪼가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돈 좀 찾었으면 햐 자꾸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을 절을 햐 고마워서 돈을 좀 줘야겄어 맨날 절 하는 통에 미안해 죽겄어
도적놈 새끼가 바까티 와서 잡으러 왔댜 늙은이 깔봐서 그려 경찰에 신고하면, 그럼 더 지랄나
딸만 시 개여 점 하나도 못 찍었어 즈아부지가 아들 본다고 작은댁을 아래채에다 들여 놓고는 매일 문주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더니 배가 쪼매 들러 오데 에고 난 이제 죽었고나 했는디 스시로 아가 흘러 내렸어 그질로 내뺏지 시째네서 양자 하나 줬는디 갈켜서 내놓으니까 안 끄대와
아고 도적놈들이 꼬이 갖고 천하의 나쁜 넘들 당할 재간이 읎지 재랄을 떨고 유두갑질 혀도 선한 끝은 있다고 명이 질어 오래 살어 늦복만 탔나벼 구십이면 구신이지 사는 게 천칭만칭 구만 칭여
<천칭만칭 구만 칭>
시집 제목으로 쓴 시에도 입에 칼 대신 옷자락을 물고 삭히는 먹구름 몇 장 떠 있다. 이러고 살았다고? 이러니까 말도 산 깊고 물 설어서 틀어지고 자기 생긴 대로 바뀌는 것이다 싶다. "바다에 들 때는 한 빛깔이지만, 나올 때는 천칭 만칭 구만칭"이라는 해녀들의 말처럼 사는 구렁텅이가 그러하여 연대하여 만든 속이 터지는 말이다. 뇌신으로 가라앉힐 수밖에 없던 이야기여서 시인은 받아 적고 또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받아 적는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어서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야 할 길이 이것임을 고향을 떠나와서도 환청처럼 듣는 것이다.
뒤꼍에서 정구지 한 줌 베어 들고 이거라도 안 하면 당체 심이 없어 왜 이러나 모르겄어
말기 암 정순 어머니 핏기 없는 얼굴 그늘이 들고
그럼에도 처음 만난 나에게
밥~ 먹고~ 가~~~ 밥 먹고 가~~~
극구 아니라고 거절하고 일어서는 밥도 한 번 얻어먹지 못한 사람처럼 그렁그렁 뒤돌아보게 하는 맘
흔히 밥 한번 먹자와는 결이 다른 말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사이 지극하고도 간곡하게 밥을 건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의 말
<밥 먹고 가>
시인은 고향을 떠나와 어르신들을 살피는 일을 하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환청 아닌 위로의 말을 듣는다. "밥 먹고 가~~~"라고 붙드는 손 앞에서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자신으로 시로 쓰고 있다.
이 붝 저 붝 드나들기 싷어 한자리서 꽃무더기 피고 지듯 그리 살아야 하는 줄 알었어 내 속으로 난 자석들 내가 책임지야 하고 고것들 지대로 올바로 키냉기야 할 일 하는 기고
꽃모종 삽목할 때 새로 나온 손애기를 모든 옆에 싱구고 물 주며 에미 옆에서 튼튼하게 뿌랭이 내려 자리 잡으면 옮겨 줄게 혼잣말 잘하던 경순 씨
울퉁불퉁 튀어나온 손가락 마디꽃
<뚱딴지 꽃>
고향을 떠나와도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은 다 고향 잃고 자석 갈치느라 고생한 사람들이어서 구죽죽하다고 이런 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밀치는 사람들 봐서 개깔나게 시 써서 유명해지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슴어슴 일 다닐 때마다 '올미묵' 같은 것만 어룽대는 것이다.
보자기로 쩜맨 찬합 들고 진외갓집 심부름 가던 논두렁 길
고쿠락 불 당번 할머니 엄마 주걱으로 눌지 않게 젓다가 치자 맨드라미로 물들인 야들야들 탱글탱글
에어멈 젖 부족할 때 배곯을 때 쑤어 들기름 쳐 먹으면 꼬숩기가 깨소곰 저리 가라여 잡초로 만든 쫄깃한 올미묵
<올미묵>
별날 것 없이 가난살이를 넘기기 위해 맛날 것도 없는 것을 쑤어 먹던 것이 떠올라서 다른 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물괴기 한 마리에 풀뙈기만 잔뜩 넣어 열 사람을 먹이던 그때의 곤궁하고 흐유꾸름한 말이 목숨처럼 소중한 이력임을 아는 것이어서 이번 두 번째 시집마저 <장꽝 옆 붝 구팅이>(첫 시집 <봄볕 거래서> 대신 이 제목으로 했으면 했지만)를 넘어서는 것이 되고 말았다. 중간 중간 베개밤처럼 '꽃'과 '서정 어린 시'들도 있지만 '달롱대가리' 같은 시들로 끝나는 시집의 맛을 오근자근 느낄 수 있어 좋다.
달롱대가리는 어쩌고 머리만 베어 왔냐고 지청구 한 보따리 듣는 개분 이게 무슨 달래냐고 달롱달롱 옥신각신 이걸 먹으라고 가져왔냐 양심은 오시래에 처박아 두고 왔냐 달래는 달롱대가리를 캐 와야지 개분이 내년에 또 키워서 베 먹어야지 부추나 베서 먹지 누가 달래를 베어먹냐 달롱대가리서 향이 나는 거지 야마리까질 옛다 너나 먹어라
승깔난 순분이 달롱대가리 두고 온 개분이 옥신각신 엎치락 뒤치락 달롱대가리 놓고 두재비 한바탕
<달롱대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