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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유와 상담자의 시선으로 요즘 이동우 작가의 『양자컴퓨터 시대의 양자교양』을 읽고 있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입자와 파동, 불확실성의 원리, 코펜하겐 학파, 아인슈타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그리고 ‘관찰’이라는 개념까지.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쉽지 않다. 한 문단을 읽고 다시 돌아가 읽게 되는 대목도 많고,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잠시 멈추게 되는 순간도 잦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이해되지 않아서 더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더욱 끝까지 붙들고 읽고 싶어진다.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는 고전역학의 세계다. 원인과 결과가 비교적 명확하고, 시간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며, 사물은 내가 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 그래서 우리는 삶에서도 늘 답을 찾으려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하지만 양자역학은 그 전제를 조용히 흔든다. 입자는 동시에 파동일 수 있고, 관찰하기 전에는 상태가 확정되지 않으며, 관찰 행위 자체가 결과에 개입한다는 발상은 과학적 설명을 넘어 세계관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중년 이후의 사유’를 떠올리게 된다.
젊을 때는 세상이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있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며, 선택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중년을 지나오며 많은 사람들은 깨닫는다.
성실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고, 선의가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하며, 어떤 선택도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양자역학이 말하는 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중년 이후 삶에서 체감하게 되는 세계와 닮아 있다.
확정되지 않은 상태, 모순처럼 보이는 양면성, 그리고 관찰자?즉 내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현실.
책 속에서 다루어지는 아인슈타인과 코펜하겐 학파의 논쟁, 그리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존재란 무엇인가”, “실재는 언제 확정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양이는 상자 안에서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관찰하기 전까지는 그 상태를 확정할 수 없다는 이 이야기는 처음엔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의 내면과도 닮아 있다.
상담 현장에서 나는 자주 이런 순간을 만난다.
내담자는 스스로를 이미 ‘실패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온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다른 시선으로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드러난다.
어떤 삶은 관찰되지 않았을 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은 단순히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다. 현상을 결정짓는 개입이다. 이 개념은 상담자의 시선과도 깊이 닿아 있다.
어떤 언어로 묻느냐,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담자의 삶은 전혀 다른 의미로 구성된다.
문제만 보느냐, 선택과 가능성을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세계는 달라진다.
나는 지금 이 책을 절반쯤 읽었다. 완독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내 사고의 오래된 습관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답, 명쾌한 결론, 단정적인 설명에 익숙했던 사고가 이 미시세계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리고 그 멈춤이 불편하기보다, 오히려 사유를 깊게 만든다.
지혜의 숲 7기 첫 모임 특강 강사로서 나는 이 책을 ‘양자 지식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사유의 근육을 다시 쓰게 만드는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지점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관은 정말 유일한가?” “나는 삶을 너무 고전역학적으로만 해석해온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 책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과학을 넘어 인간, 관계, 선택, 관찰, 그리고 삶의 태도로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지식이 아니라 교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 책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미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렵다. 그러나 지금, 중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사람의 마음과 선택을 다루는 상담자에게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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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양자 시대를 위한 최소한의 교양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같은 문장을 되돌아왔다. 책을 읽었지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양자컴퓨터 시대의 양자 교양' 은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내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핵심을 말하는 안내서로 매우 좋은 책이다. 책은 두 개의 파트로 되어 있는데 양자 역학과 양자 컴퓨터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 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차이가 0과 1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세계와 0이면서 동시에 1일 수 있는 세계를 가지고 구분한다. 저자는 0이면서 동시에 1일 수 있는 것을 ‘중첩’이라 부르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가 연결되는 현상을 ‘얽힘’이라 하면서 양자 세계는 결과보다 가능성으로, 확정보다 확률로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해는 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감각은 과포자, 수포자였던 내게 이 책을 전부 읽는 것은 좌절로 이어졌다. 특히 슈뢰딩거 고양이, 보어의 상보성,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등은 일반인으로 이해는 어려웠다. 그러나 책 속에서 주역 「계사전」의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의식의 방향이 전환되었고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하나는 음이 되고, 하나는 양이 되며 그 끊임없는 변화 자체가 도(道)라는 것을 말하는데, 주역에서 세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흐름, 변화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양자역학이 말하는 세계 역시 낯설지 않았다. 양자 미시 세계는 거시 세계에서 관측되기 전까지 하나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이다. 그것은 음과 양이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공존하는 우주 세계, 삼라만상의 세계와 닮아 있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양자역학은 완전히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다른 언어로 사유해 온 우주 원리의 현대적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이 책이 어려운 이유는 수식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늘 하나의 답으로 정리해 왔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느끼려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중첩 상태인 것 같다. 늘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확신과 의심, 선택과 망설임은 늘 동시에 존재했다. 일상생활이 이미 양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게 하는 책이었다. 주역에서 말하는 길은 이미 정해진 답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도표와 수식, 여러 실험 결과들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독서 또한 하나의 교양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책을 제대로 이해는 못 한 상태이지만 저자가 친절하게 알려주려는 양자 세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는 책이다. 미래 과학 기술 혁신을 초 가속화할 양자 역학 원리는 양자 컴퓨터와 양자 과학으로 양자 중첩과 얽힘 상태를 장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다. 양자 계산은 단일한 연산이 아니기 때문에 양자 제어 기술과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다시 창조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은 미래 변화를 대비할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컴퓨터시대의양자교양 #주역 #미래 # 과학기술 #양자컴퓨터 #양자역학 #이동우 #초가속화 #도구 #양자교양 #도(道) #AI시대 #실험 #독서 #양자중첩 #얽힘상태 #미래 #양자세계 #초가속화 #인류 #변화 #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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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대로 공부해볼 엄두를 못냈었습니다. 왜이리 어려운지? 그런데 문과생이 썼다고 하니 도전해볼 용기가 생기고, 읽어보니 과학책인데 철학적 사유와 세계 정세까지. 교양 종합 선물 세트같았어요. 양자물리학은 필수교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