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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사람의 길 구중서 창비/2025.12.5. sanbaram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의 시각으로 한국의 문화와 문학의 흐름을 기록한 것이 <문화의 힘, 바람의 길>이라고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조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한국 문화와 문학, 그리고 역사 속 현장들을 찾아가 발로 디디고 손으로 만지며 다닌 기록이다.(p.10)”라고 하면서 나당연합군의 역사의 현장 기벌포, 한민족의 각축장이었던 임진강, 4.3사건의 제주도 이덕구의 막사 자리를 다녀왔다. 뿐만아니라 <삼국지>의 장강 삼협과 서양문학의 역사 현장 독일에도 다녀왔으며, 심지어는 평양 땅을 밟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너무 다양한 문화와 문학의 소개를 하는 바람에 독자들은 정신 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그의 안내에 따라 우리의 문화와 문학의 흐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저자 구중서는 1963년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문학평론가, 화가, 시조시인으로 활동했으며 수원대 국문학과 교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문학사론>, <분단시대의 문학>, <한국문학과 역사의식>, <자연과 리얼리즘>, <문학과 현대사상> 등이 있다. 요산문학상, 구상문학상 특별상, 유심작품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역사의 어제와 오늘이 어떠하든 또 미래가 어떻게 예측되든, 나는 ‘지금 여기’에서 내면의 진실을 감당해보는 몸짓이 되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p.22)”는 저자는 지금 내가 선 자리의 삶은 무엇인가 현실과 역사 안에서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곱씹으며, 조선시대의 문화를 되새겨본다. ‘시기와 현실’을 중시한 율곡의 <만언봉사>,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성호전집>,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 반계 유형원, 다산 정약용의 <아방강역>, <경세유포>, <목민심서>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달한다. 바로 오늘의 당면 문제와 실현이 가능한 현실적 방도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 때문에 조선조 실학사상의 개척자인 성호 이익은 반계 유형원뿐 아니라 더 앞선 단계의 율곡을 실학의 가장 깊은 뿌리로 생각했다. “2010년대에 나온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가 광주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역사 안에 충실히 기록했다.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는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 전초지의 인간사를 독자들이 숙연한 자세로 읽게 했다.(p.174)”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가려져 있던 민족사 한 부분을 비로소 절실히 체험케 하는 역작이라고 평한다. 다양성 안의 일치, 일치 안의 다양성으로 근원적 보편성이 가능해야 한다. 이러한 존재의 자기완성, 이 일을 할 수 있으면 문학은 스스로 완결된 세계라는 것이다. 중국의 5언 7언 절구와 일본의 하이쿠가 있듯이, 한국 민족문학의 형식으로 저자는 시조 창작을 병행한다. 시조가 우리말 문자 기록으로 정착한 것은 물론 세종의 한글 창제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한글 이전 시대의 작품들이라 해도 구비전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문학사에 수렴되고 정착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탁의 시조가 바쇼의 하이쿠보다 400년을 앞서 있다고 한다. “문학은 그 시대 인간의 가슴에 박힌 옹이처럼 정리되어 후세에 남긴다.(p.212)” 전인적 인간성과 시민 정신의 건강이 문학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전방위적으로 세계사의 파란 위협이 있는 속에서, 그래도 문학은 구원의 전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의 한국문학은 그래도 능력과 업적을 보인다. 역사 창조의 전망이 견지될 것이다. 한편, 우리민족의 비극인 남북분단을 몸으로 겪어낸 구상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구상 시인은 북조선 정권 차원의 응징을 감당할 수 없어 월남을 결행했다. 월남을 결행해 서울에 도착한 구상 시인은 자연히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950년에 비극적 6.25전쟁이 일어나니 남한 사회의 문총이 전선에 파견하는 데 따라 구상 시인은 종군작가단 부단장이 되어 실제로 전선의 진퇴 현장에 참여했다는 것을 말한다. “유신으로부터 신군부의 광주 시민 희생을 거쳐 박근혜 정권까지 이어진 맥락을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고 부른다.(p.247)” 영국에서는 상식을 지키는 것을 보수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 200년 동안 대학가에서 무오류의 교과서로 채택되어온 도덕적 전통에 의한 지칭이라는 것이다. 시대를 대변하는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들의 사상은 시류에 의해 흔들렸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한쪽으로 치우친 현실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진리로 보였다. 사상이 정치를 흔들고 민생을 이끌어갈 때 문학은 그들의 행태를 진리의 편에 서서 보고자 했다.하찮은 불씨 하나가 요원의 불길로 번져 나아갈 수도 있다는 환영, 한 인간의 불패의 자기긍정 저력이 역사의 지평을 완강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문학은 이러한 것이다. 이성과 보편성 안에서 항구히 인간다운 본성을 말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역사의 내일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다.(p.301)” 그러면 20세기 말엽의 이 시대에 있어서 큰 테두리로서의 자본주의 그 자체는 무엇인가. “오늘의 세계 현실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면 시대적 특성이 자본주의에 있다기보다 ‘사회주의 와해’에 있다. 이 사실을 배제하고 후기자본주의만을 논하는 것은 문화 인식의 논리로서 실질성이 없다.(p.304)”고 말하면서 제주 4.3사태와 광주 5.18을 다룬 소설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한국의 현대사에 영향을 미친 사람 중에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대통령, 조오현 스님에 대해 간략히 고찰한다. 이들은 저자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사람들로 그들과 관련된 우리 문화를 살펴본다. 현대 가톨릭교회는 ‘문화’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문화는 광의에 있어서 인간다운 삶을 발전시키는 상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동시에 문화는 모든 생명 있는 것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다.(p.371)” 심지어는 ‘복음’도 문화의 한 ‘누룩’이라고 한 교황이 말씀했다. 정치도 경제도 그것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그 국민의 문화적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라면 순식간에 헛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 한편을 소개한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