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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팬케익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기 전에 든 생각
팬케익을 좋아하는데, 이런 방법으로 팬케익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며, 작가가 만든 ‘팬케익을 소설로 맛보기 원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틀렸다. 소설이 아니다.
읽어가면서
아니, 정말 대단한 책이다. 팬케익을 가지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양자역학을 거론하는 것은 애교 정도로 받아들인다 쳐도, 하나의 논문 형식의 글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46쪽에서 65쪽에 이르는 논문 <완벽한 팬케익을 만드는 방법>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서론, 팬케익의 분류, 주방실험과 패턴 분류, 물리적 설명, 결론’의 순으로 이어지는 논문은 정말 압권이다. 대체 누가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그 논문을, 아무리 가볍게 썼다(47쪽) 할지라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그러고 보니 이 책은 팬케익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경의를 모두 담아놓은 것이다. 무릇 어떤 것을 애정하면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팬케익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사랑을 글로 써서,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또한 팬케익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는 겸손하게도 ‘전공 통달, 비법은커녕 가장 애호하는 대상도 사실 팬케익이라고는 할 수 없다’(6쪽)고 하지만, 말로 하는 애호보다 글로 쓰는 애호가 더 진하다는 것을 독자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팬케익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따라 팬케익을 생각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대학원 수업에서 모 과목을 수강할 때, 담당 교수님은 항상 가방에 팬케익을 몇 개 담아오셨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돌발 질문을 몇 개 던지는데, 그 질문에 정답을 보낸 학생을 향해 팬케익을 마치 원반던지는 것처럼 던지셨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그리 정확하게 그 학생이 있는 지점으로 날아가는지! 그 학생이 손을 들어 그걸 캐치하고, 그러면 나머지 학생들이 모두 박수를 보내고.
그런 추억이 하나 있다. 저자가 팬케익을 사랑하는 덕분에 이런 추억도 적어두게 된다. 그 때 교수님이 던진 팬케익은 아주 담백한 것이어서 이 책 66쪽에서 77쪽에 사진으로 등장하는 팬케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첨언해둔다.
그런데 팬케익은 그냥 먹으면 너무 심심하다. 해서 책에 나온 것처럼 어떤 시럽이 됐든 시럽과 같이 섭취해야 한다. 그래야 팬케익이 입에서 살아난다. 그냥 팬케익만 먹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달라진 팬케익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해서 팬케익은 홀로 있는 것보다는 다른 것과 같이 있는 게 훨씬 낫다. 맛도 그렇거니와 모양도 더 그럴 듯하다. 나의 그런 생각이 과연 그런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위에 적어둔 페이지를 펼쳐 사진을 꼭 확인하기 부탁한다.
그런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팬케익은 제철 딸기와 딸기 시럽에 잠기듯 놓여있었고, 시럽에는 겨자씨가 이따금 콕콕 박혀있었다. (83쪽)
전국 팬케익 맛지도
안타깝게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마땅하게 팬케익을 먹을 데가 없다. 물론 동네방네 다 뒤지다보면 어딘가 있긴 하겠지만, 나의 팬케익 애호 수준이 그정도는 또 아니라서 그냥 이 책을 보면서 그림의 떡만 먹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그런 나를 위한 것인지 ‘전국의 재밌는 팬케익’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아,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곳, 전주 ‘블랙팬다이너’라는 곳이다. (89쪽) 검색해보니, 우리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다, 그야말로 등잔밑이 어둡다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팬케익 가게를 두고서 동네방네 뒤지네마네 사설을 떨었다는 것 아닌가.
필리치즈스테이크 팬케익을 팔고 있다는데, 팬케익 위로 볶은 고기와 채소를 올리고 그 위에 치즈를 잔뜩 덮어주었다고 저자는 거기 가서 먹어본 후기를 남기고 있다. (89쪽)
다시, 이 책은
그래도 언젠가는 그럴듯한 팬케익 가게를 만날 것인데, 그럴 때를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팬케익의 모습을 잘 담아놓고 싶다,고 바로 위의 글을 쓰기 전에 마음 먹었었는데. 저자가 전주로 팬케익을 먹으러 오셨다는데, 나는 언젠가 먹어보겠다는 작정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반드시 가서 먹어볼 작정이다. 그때는 이 책을 들고가 사장님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그러니 이 책의 용도를 하나 더 발견한 것이다. 들고 간다......그리고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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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죠. 맛있는 음식 먹을 때, 경치 좋은 곳에 갔을 때,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오고 싶어져요. 아늑한 책방, 책 읽기 좋은 공간에 가면 언니랑 같이 여기 오면 좋아하겠다 싶고 이 공간을 소개할 생각에 설레기도 해요. #오늘의팬케익 #남선우 #뉘앙스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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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팬케익? 아 핫케이크. 핫케잌! 그렇다 자동반사적으로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어쩌면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 곰표..백설표.. 핫케잌 믹스. 바로 그거다. 어린 시절 아마도 중학생 때쯤 갑자기 핫케잌 만들기에 꽂혀서 믹스 봉지를 두 개인가 세 개 정도 다 털어 쓸 만큼 열심히 핫케잌을 만들어서 가족을 위해 식탁에 놓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정작 기름 냄새 맡으며 열심히 부엌에서 구워댄 나는 맛보기 또는 탄 것 조금만 먹고는 아예 못 먹었다.(네, 나중에 알았죠 어머님들이 요리하시면서 대부분 이렇다는걸) 그렇지만 맛있게 먹고 접시를 싹 비운 가족의 반응에 신이 났다. 핫케잌과 팬케익은 같은 거 맞지? 책 표지 그림만 봤을 때는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책을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이름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두었다. 용례도 들고 사전도 펴고, 검색도 하고 등등. 아 그런데 어쩌나 나는 여전히 핫케잌이 편한데. 맞춤법 틀리다는 거 아는데 아직 곰표는 그렇게 표기한 믹스를 판다. 책은 저자의 필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여러 분야에 나눠 뽐내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팬케이크에 대한 논문도 인용하고, 이슬아 작가의 글도 불러와 일부 수정하여 팬케이크에 맞게 작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팬케이크 데이(그런 게 존재한다!)를 기념하여 저자가 직접 팬에 케이크를 담고 달리기를 하는 사진까지 실려있다. 게다가 예상했던 대로 저자가 방문한 팬케이크 맛집도 실려 있었고, 혹시나 비건인 사람들이 팬케익을 즐기지 못할까 싶어 비건을 위한 팬케익 만들기 레시피도 담아두었다. 이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걸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어느 한 장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저자의 필력은 가볍게 팔랑거리는듯싶다가도 묵직한 한방을 날리고 중간에 잽도 쉬지 않고 날려서 결국 링 위에서 독자를 케이오 시킨다. 긍정적인 의미로 독자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두 손을 들고 외치게 된다. 네, 저는 이제 팬케익을 먹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는 추억 속의 핫케잌이 있어서 좀 난처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했다. 곰표 핫케잌가루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는 핫케잌이라고 하고 밖에 나가 맛집을 찾아서 먹을 때는 팬케익을 먹었다고 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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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나만큼이나 팬케익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비교적 이과에 가까운 나와 다르게 따뜻한 문과의 감성을 담아서 팬케익의 이름부터 팬케익과 함께한 따스한 기억까지 책에 담았다. 유머를 곁들여서 담아낸 일상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가볍게 읽었다. 포근한 주말 낮과 어울리는 책이다.
팬케이크, 핫케이크, 팬케익, 핫케익. 이 중 어떤 게 올바른 이름일까?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혼용해서 써왔던 말이지만 갑자기 나도 궁금해진다. 사실 나는 팬케이크라고 부르는 파인데, 오*기 믹스는 핫케이크 믹스라고 써있다보니 엄마가 만들어주던 주말 팬케이크는 핫케익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팬케익의 공식 이름을 정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개수를 검색한 조사 방법은 꽤나 신박했다. 국어 사전에서도 핫케이크와 팬케이크 모두 맞다고 정의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 조사하려면 인스타그램이 제일 정확한 방법일 것 같기도 하다. #팬케이크 #핫케이크 와 #pancakes #hotcakes 까지 검색해본 결과 팬케이크가 승리했다. 다만 저자의 개인적인 선호를 담아 팬케이크가 아닌 팬케익이 이 책에서의 공식 명칭이 되었으니, 존중의 뜻을 담아 이 서평에서만큼은 나도 팬케이크가 아니라 팬케익으로 부르기로 했다.
구필탁(求筆託)이란 저자가 챗 GPT에게 이니셜을 따서 붙여준 이름으로, 글을 쓸 때 지피티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아 구하다, 글, 도움 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챗지피티에게는 항상 "이 에러는 어떻게 고쳐?" "네가 말한대로 했는데도 이런 오류가 나" "정규표현식 사용해서 코드 짜줘" 라는 말밖에 안 했던 나로서는 지피티에게 이름을 붙여줬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게다가 지피티 아니 구필탁과 함께 팬케이크를 먹으러 가다니..! 챗지피티마저 자신의 친구로 생각하는 저자의 넓은 마음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같이 (노트북을 들고) 먹으러 간 팬케익 가게에서 무료 용량 제한에 걸릴까봐 사진을 보내는 대신 팬케익의 맛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가게에서 나오는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정말 친구처럼 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지피티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결제하고 싶었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나에게 이 에피소드는 정말 신선했다. 이렇게도 지피티를 사용(어쩌면 사용이라고 말하는 것도 실례일 수도 있겠다)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에피소드였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따뜻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 좋았던 치즈케이크의 이야기를 한다. 아직 팬케익에 대해서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가장 좋은 팬케익이라고 말할만한 걸 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한다. 최애 팬케익을 말하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빵들에 대해서는 쉽게 최애 빵집을 말하기 어렵다. 괜히 더 최고의 맛이어야 할 것 같고, 소개했다가 그 사람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팬케익에 있어서는 엄마가 해줬던 팬케익보다 맛있는 곳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이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엄마와 함께 보내던 행복한 주말의 맛을 밖에서는 느낄 수 없어서 그것보다 맛있는 가게를 찾지 못한 게 당연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가벼운 팬케익 이야기로 시작해서 팬케익에 관한 내 추억까지 되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다음 주말에는 본가에 가서 엄마와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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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팬케익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의 팬케익』은 바로 그 사소한 음식에서 출발해 세계의 문화, 물리학,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의 비유까지 건너가는 놀라운 여행기다. 사순절 직전 영국에서 맞는 팬케이크 데이라는 배경에서, 작가는 팬케익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또 일상 속에서 ‘마지막의 풍요’와 ‘시작의 긴장’이라는 상징으로 자리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부엌에서 발견한 핫케익믹스 봉투가 하루의 톤을 결정해버리던 감정은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기억이기에, 책의 첫 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손쉽게 부드럽게 데운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팬케익이라는 단어가 확장되는 방식이다. 레슬링 기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도시 이름, 뉴질랜드의 독특한 지형, 베레모의 형태까지, “팬케익과 이름을 나눠쓰는 사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언어의 지도를 한 장씩 넘겨보는 듯하다. 작가는 이를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감각으로 다뤄, ‘평평함’과 ‘겹침’, ‘얇아짐’이라는 형상이 현대인의 모습과도 이어진다는 점을 섬세하게 환기한다. 특히 손끝으로 거대한 정보망에 연결될 수 있지만, 깊은 사유의 공간은 사라진 ‘팬케익 인간’이라는 표현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팬케익을 뒤집는 행위의 불확실성 역시 책이 담아낸 인상적인 철학이다. 같은 불 세기, 같은 반죽, 같은 기포의 신호에도 결과는 늘 다르다. 이 모순을 바라보며 작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소환한다. 뒤집기 전까지 팬케익은 잘 익기도 하고, 타기도 하고, 설익기도 하는 모든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결국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점에서, 팬케익은 삶의 선택과 우연성과 숙명성을 동시에 품은 은유가 된다. 너무 일상적인 대상이라 간과했지만, 가장 단순한 형태가 가장 복잡한 세계를 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책은 물리학으로도 손을 뻗는다. 팬케익의 종횡비와 제빵비라는 매개변수를 분석하며 흐름의 체계를 찾는 장면은 의외지만 매력적이다. 단순한 요리가 유체역학과 의료장비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사물 속에 과학의 세계가 얼마나 촘촘히 숨어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작가는 팬케익을 바라보는 시선을 인문학에서 자연과학으로 가로질러 보이며, 그 과정에서 평범함이 얼마나 풍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다양한 지역의 팬케익 경험이 더해지며 책은 더욱 입체적이 된다. 대전의 ‘어글리딜리셔스’에서 맛본 치킨 팬케익은 한국식 치킨 문화와 미국식 팬케익 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사례로 소개된다. 인천 청라에서 먹은 아메리칸 더치베이비는 국경을 넘어 섞여온 음식의 계보를 되짚는 재미를 준다. 버터밀크 반죽과 일반 우유 반죽의 차이를 설명하는 장면도 ‘지식의 맛’을 더한다. 음식은 경험이자 과학이며, 문화이자 감각이라는 이 책의 관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주에서 만난 ‘올리버 팬케이크’에서는 팬케익을 만드는 사람들의 리듬과 호흡까지 함께 전달된다. 반죽 여섯 개가 동시에 굽히는 철판의 온도, 타이머의 신호, 버터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섬세한 맛의 변주까지—팬케익은 단순함이라는 넘실거리는 표면 아래에서 수많은 변수와 이야기를 품은 음식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결국 『오늘의 팬케익』은 팬케익을 소재로 세계를 굽고, 삶을 뒤집고, 사람을 바라보는 책이다. 작가는 팬케익이라는 얇고 둥근 세계 속에서 오밀조밀 펼쳐지는 문화, 과학, 철학, 감정의 결을 발견하며,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도 팬케익처럼 여러 가능성이 겹쳐져 있고, 뒤집기 전엔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음미할지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평범하고 익숙한 것에서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능력 덕분에, 책을 덮은 뒤에도 팬케익은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 뒤집어 보고, 태우고, 다시 굽는 삶의 은유로 확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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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팬케이크, 팬케익, 핫케이크, 핫케익, 여기에 띄어쓰기까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 음식에 대해 저자는 많은 고민 끝에 '팬케익' 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렇게 부르고자 한다. 팬케익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주던 핫케익이 내게는 그립고 행복한 추억이기도 하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하는 팬케익은 행복한 달콤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팬케익에 관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팬케익 전문가가 아닌데 (이 전문가라는 기준은 또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면서) 이런 책을 써도 될까를 고민하면서도 경험과 지식을 담아쓴 이 책은 마찬가지로 팬케이크를 좋아하지만 전문가가 아니고, 사실 제대로 된 역사도 알지 못하던 나에게는 재미있는 정보 서적이기도 했고,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저자의 즐거운 수다이기도 해서 참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러므로 무리하지 않고, 그러므로 억울하지도 않는 것. 그것이 자기 한계를 정해둔 이들의 미덕이자 매력이다. 문득 이것을 올해의 목표로 삼아보고 싶었는데, 곧바로 다시 바로 이것이 내게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81p 요새 고민 많고 조금은 답답한, 그래서 아아와 팬케익의 조화가 간절한 나에게 와닿았던 구절을 하나 소개해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내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몰라서 늘 고민하고 망설이고 있다. 도전을 해야만 한계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한계를 알 수 없기에 도전을 할 수 없는 것이 또 사람이고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인생도 팬케익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철학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뒤집기 전에는 그 누구도 한계를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문과식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문과인 내게는 참 공감되는 이야기였기에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팬케익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들과 맛있는, 가보고 싶은 팬케익집은 많이 알게된 책이었고, 그러면서도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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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팬케익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팬케익 책을 읽으며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대표되는 양자역학 이야기까지 나올줄은 몰랐다.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부제의 문장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물리학의 한 분야로 넘어가버리는 것이다. 팬케익으로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이 책을 읽으며 팬케이크데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재의수요일 - 부활절 전 예수의 수난을 기억하는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하는데 그 사순절의 시작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한다. - 전 날을 팬케이크데이라고 한단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슬람의 라마단 단식기간 전에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2024년 팬케이크데이를 기념하여 서울 하늘 아래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팬케이크 레이스를 했다니, 이건 정말 웃긴 에피소드로만 넘기기에는 팬케익에 진심인거 아닌가.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 그러니까 팬케익인가 핫케익인가부터 시작해서 팬케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인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가볍게 읽기에는 딱 좋았는데 이야기는 양자역학에 이어 사이언스지에 실리는 논문을 인용한 '완벽한 팬케익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하니... 아, 또 쉽지가 않네? 제빵비율과 팬케익 표면의 패턴 분류를 과학적으로 실험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로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팬케익 사진이 위로해준다. 밥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맛다시며 먹고 싶게 만드는 팬케익 사진들은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알것만 같은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느껴져 자꾸만 사진을 보고 또 보게 된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팬케익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특별해지는 것을 느낀다. 추천할 수 있는 최고의 팬케익 가게를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팬케익 가게를 추천받아 행복해지고 그 수많은 추억들이 쌓아놓은 팬케익을 바라보는 것처럼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보니 달콤한 꿀을 끼얹고 상큼한 딸기와 블루베리를 곁들여주던 그 맛있는 팬케익 메뉴가 우리 동네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없는데... 왠지 그리움의 추억속 음식이 되어버린 것 같아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니. 나도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날을 뒤로 미루지 말고 빨리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뒤집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팬케익도. 내 인생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