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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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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혼돈에서 제국을 세운 질서와 통치의 리더십』 먼저 이책과 관련해서 보면 좋을 책을 소개 하겠다. 바로 에이드리언 골즈워디가 2007년에 쓴 (펴낸곳:루비박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백석윤 옮김 이라는 책과같은 저자가 쓴 로마와 페르시아-700년의 대결(영어제목:THE EAGLE AND THE LION) 펴낸곳:책과함께-이종인 옮김과악티움 해전(로마 제국을 만든전쟁-The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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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혼돈에서 제국을 세운 질서와 통치의 리더십』

먼저 이책과 관련해서 보면 좋을 책을 소개 하겠다. 바로 에이드리언 골즈워디가 2007년에 쓴 (펴낸곳:루비박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백석윤 옮김 이라는 책과

같은 저자가 쓴 로마와 페르시아-700년의 대결(영어제목:THE EAGLE AND THE LION) 펴낸곳:책과함께-이종인 옮김과

악티움 해전(로마 제국을 만든전쟁-The War That Made the Roman Empire) 지은이: 배리 스트라우스 /옮긴이:이종인 , 펴낸곳 책과함께 라는 이러한 3가지의 도서를 연계 해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걸로 사료된다.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책인 아우구스투스에서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이 성경과 많이 연계되 있다는 거다. 저자는 서문에 이런 성경말씀을 발췌한걸로 글을 시작한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Quirinius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되었다.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루카복음 1세기 후반

그렇다. 성경은 역사적인 참말씀이다. 구약의 다니엘서에도 로마라는 나라의 부상과 전개과정이 예언 되어있고, 신약은 본격적으로 로마에 대해서 서술한다.

또한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는 로마인 이었고, 유대총독으로 10년동안 재직했으며(AD26~36) 예수님을 못박는데(사형집행) 공권력의 행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그때는 티베리우스황제가 군림할때였고, 로마는 BC63년 폼페이우스 장군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유대를 속국 곧 식민지로 편입시켰다.

하스모니안 왕조에서 로마의 피위임통치자 헤롯대왕이 등장했고, 헤롯은 가혹하고 악랄한 통치로 가족들도 죽였다. 오죽했으면 아우구스투스는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헤롯왕의 아들이 되느니 그의 돼지가 되는 게 낫겠군”

그리고 로마는 유대를 (그 결과 유대 왕국을 세 지역으로 나누어 헤롯왕의 세 아들이 각각 통치하도록 했다. 헤롯왕이 통치한 마지막 1년쯤에 예수가 태어났다.) 분봉왕이라는 제도로 통치하도록 하였고, 저자는 BC 6~4년에 예수님이 태어 나셨다고하는데 퀴리니우스가 인구조사를 했을때는 AD4~6년 즈음이라고 하며 성경과 역사적 고증에 대해 서로 다른점을 들기도 했다.

예수님이 직접 카이사르를 언급하고 성경에 나와있는 카이사르에 대한 구절은 이렇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거라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그렇다. 아우구스투스는 홍보활동을 해서 자신을 널리 알리는데 사용한 수단중 가장 쉬운방법으로 동전에 자기의 형상을 새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제국전체 국민들이 보고 가이사를 더욱 우러러 보게 하는 효과를 또한 연출하였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에 태어나 44년에 암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56세를 살다간 비운의 영웅이었다.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카이사르를 동경했음은 알려진 바이다.

카이사르는 죽고나서 자기양아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신으로 추앙받았고 그로인해 옥타비아누스의 호칭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디비 필리우스 imperator caesar augustus divi filius' 곧 ’신의 아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가 되었다.

젊은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 그리스계인 클레오파트라7세와 얽힌 이야기도 있었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로마와 연을 맺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로 갔고,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카이사리온이라는 아들도 낳았는데, 훗날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정치적인이유로 카이사리온을 죽였다.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 당하는날 로마에 있기도 하였다.

그렇게 독재관은 죽고 안토니우스가 2차로 클레오파트라와 연분이 났는데,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공식적인 부인 아우구스투스의 누이인 옥타비아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3명이나 낳았다. 그리고 악티움해전에서 젊은카이사르는 절친이자 심복인 아그리파의 맹활약에 힘입어 안토니우스를 물리쳤다.

그후 이책은 악티움해전의 승리후 한 시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자, 이제 술잔을 들자! 이제 자유로운 발놀림으로 땅을 울리며 춤을 추자! 친구들이여, 이제 신들의 침상을 살리이salii 축제의 향연으로 가득 채우자!”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쫒기를 ‘카이사르는 이탈리아에서 달아나는 그녀를 온순한 비둘기를 쫓는 매처럼, 토끼를 쫓는 날렵한 사냥꾼처럼 추격했다.’ 라고 말한다.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해전 전부터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대중들이 싫어하게끔 프로파간다를 적절히 펼친것도 한몫한다고 할수있겠다.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중에 하나는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고 평소에 카이사르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 실수로부터 기꺼이 배우려 했다.

아우구스투스의 로마제국은 많은 팽창을 거듭하며, 속국을 다스렸고, 피위임통치와 총독을 두었다. 사실 이 힘의 원천은 군사력에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를 지배적 위치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군사력이었고, 그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군사력이므로, 군단은 그에게 필수적인 존재인 동시에 잠재적인 위협이었다.

맞다. 군단들은 폭동이나 소요를 일으켜 카이사르를 위태롭게 할수도 있는 존재들 이었으니 카이사르에게는 양날의검 같은 존재였다.

점령당하고 복속 당한 자들의 절규를 들어보자 “로마인들은 폐허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 로마는 ’힘을 통한 평화‘ 로써 결국은 영원한 평화는 얻을수없는, 힘이더 세면 종속당하는 그러한 아이러니컬한 위치에서 제국을 다스렸다 하겠다.

또한번은 로마가 기원후 9년 뼈저린 실수로 인해서 고배를 마셨으니 바로 바루스의 군단이 토이토부르크숲에서 참패를 당한것이었다. 그로인해 아우구스투스는 혼자 있을 때면 바루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자기 집 문에 머리를 부딪치며 “퀸틸리우스 바루스, 내 군단을 돌려다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힘을 위시한 평화는 더큰 힘앞에 무너진다는 역사의 원리를 보여주는 예라 할수 있겠다. 로마군은 속국을 핍박도 했었는데 로마군의 주특기인 이러한 작전을 로마인들은 바스타티오vastatio, 즉 ’초토화‘라 불렀다.

또 우리가 평소에 쓰는 달력에도 로마의 영향이 있으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때 이집트의 태양력을 빌려 우리가쓰는 달력인 그레고리우스 달력전의 율리우스력의 기원을 만들었고, July-7월달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생일을 기념하여 카이사르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고, August-8월달은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름을 집어 넣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도 마침내 한 달의 명칭이 자신의 이름으로 바뀌는 영예를 얻었다. 일부는 그의 탄생 월인 9월을 개명하려 했지만, 그가 자신이 처음 집정관이 되고 여러 승리를 거둔 그 전달인 8월을 선택했다. 로마의 옛 달려 기준으로는 여섯 번째 달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입한 달력으로는 여덟 번째 달인 섹스틸리스sextilis는 그렇게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비록 물리적인 형태만이 아닐지 모르지만 이렇게 말했다.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던 로마를 자신이 대리석으로 새로 만들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어떤 시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런 인용문을 인용했다. 제 역할을 잘 연기한 제게 박수를 쳐 주시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저를 갈채로 보내 주시길. 그렇게 아우구스투스는 제역할에 충실하였고 제국을 튼튼하게 정비하고 다스렸다.

훗날 로마인들은 황제가 즉위 할때 이런말을 했으니,“트라야누스보다 더 훌륭하고melior, 아우구스투스보다 더 행운이 있기를felicior” 트라야누스는 제국을 가장 광대하게 넓혀서 로마의 영광을 세상에 드날린 황제라 할수있고,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손자라는 카이사르라는 이름하나로 초대황제의 반열에 올랐으니 맞는말인 것도 같다.

로마제국의 역사를 약 pp.700 분량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알려주는 이책은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다 가격이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이되니 아우구스투스 이책을 정말 강력추천한다.

f*******9 2026.05.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