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수년간 온갖 드라마를 섭렵한 덕에 이제는 웬만한 드라마는 딱 보면 스토리를 대충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간의 갈등은 늘 누군가가 정보를 숨기는데서 비롯된다는걸 알았다 좋은 쪽에서는 그 정보의 교환이 매우 느리고 나쁜 쪽에서는 정보교환이 번개같다 이 시간차 때문에 사건이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 나쁜쪽에서 정보를 숨기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이익 때문이고 좋은 쪽에서 정보를 숨기는 이유는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 혹은 미래의 자신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미리 걱정하기 때문이다 약간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을 거라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 왕자의 신분에서 버려졌지만 운명은 피할 수 없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트로이를 멸망시킬거라는 예언을 피하고자 산속에서 목동으로 키워졌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는 선택을 할 처지에 놓인다 운명이든 진실이든 사람이 임의로 그것을 왜곡하고자 해도 결국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지고 알아야 할 진실은 알려진다 모든 갈등과 그로 인한 이야기들은 그 간극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뜻하는 빅슬립 앞에서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진실은 은폐되고 사건들은 복잡하게 얽힌다 그러나 그게 옳을까.. 주인공인 탐정 필립 말로는 말할 것도 없이 멋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은 e북을 제외하면 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 책도 정말 조악한 조판에 머리말도 꼬리말도 서평은 커녕 작가 소개조차 없었다 어이도 없었다... 좋은 번역본이 나오기를...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