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의 숫자는 책의 쪽수임. 인물과사상사의 시사인물사전 10권이다. 왜 제목이 무덤 속의 한국문학인가. "하루에 56면을 발행하는 신문이 문학을 가십으로 만들고 작가를 대중스타로 만들고, 문학기사와 기고문을 출판상업주의의 난장판으로 만들 수는 있으면서 진지한 문학 담론을 형성해 확산시키고, 가난한 문제작가들을 발굴 소개하며, 이를 통해 동시대에 대한 문학적 진단을 내리고 전망을 모색하는 일에는 오불관언하는 신문이, 수천만원짜리 문학상을 내걸고 의기양양하는 것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문학의 소외이다. 문학은 그저 출판사와 신문사의 장사밑천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느낌, 여기에도 역시 문학의 무덤이 있다(6. 김명인)." 김정란은 문언유착에 도전했다가 소위 '왕따'가 되고 있다. 다른 지식인들보다 다른 것은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비판했다는 것이 죄(?)라면 죄다. 패거리에 대한 비판은 그 패거리의 이익을 침해하니까. 점잖은 척하면서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하긴 조선일보만 보면 재미있는 현상도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보적인 지식인도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문제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왜 그 신문에 기고하는 것이 문제냐고 한다. 이런 지식인도 지식인인지? 자신의 성찰을 한다는 사람들의 소리가 그 정도인지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정과리 : 조선일보를 위한 변명"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리고 재빠르게 줄을 서는 양귀자를 저자는 비판한다. 누가 줄서라고 했냐 말이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다에서 정운현은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드골이 나치 지배 하에서 15일 이상 발행된 신문은 전부 반역신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 신문들은 모두 강제 폐간시키고 관계했던 언론인들을 다 처벌했죠. 프랑스 예를 비춰본다면, 일제 때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는 문을 닫는 것이 마땅하고 거기에 관여했던 경영자, 기자, 책임있는 편집자들이 모두 저벌되었어야 합니다. 프랑스나 중국이 그 점에 대해서는 타산지석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가혹하게 처벌을 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시켜서 했다고 하는 기자, 아나운서들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프랑스는 아나운서까지도 처벌했습니다. 거부하지 않은 것을 죄로 삼은 거죠. 경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책임있는 편집, 일선 기자뜰까지도 다 처단 대상으로 삼은 거죠. 그런 점들을 우리는 해방 후 단죄를 하지 못해서 오늘날 동아일보,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이 과거사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을 못느끼고 오히려 그것을 오랜 역사라고 자랑하는 것을 볼 때 웃지 못할 세상이 되었다고 봐야죠(62-63)." 이외에도 80년대의 리어리즘 소설의 총아 방현석, 에로영화계 마술사의 꿈과 현실의 이강림 감독, 행동하려면 지식인보다는 장관이 낫다는 앙드레 말로, 정치적 작가 그 분열의 초상의 오에 겐자부로, 뜨거운 상징으로서의 문학, 그리고 공감의 비평의 김현, 테네시라는 이름의 전차의 테네시 윌리암스, 충무로를 엄습하는 게릴라 혹은 소나가?의 김기덕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시대 청산은 우리의 과제이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 새 역사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니,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잘못된 역사는 바로 쓰고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한다.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일본의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흥분할 자격이 없다(65). 정말 공감한다. 우리 역사도 왜곡시켜 놓고 일본의 역사 왜곡만 문제 삼고 있는 우리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공인회계사 이재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