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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한국의 현대사를 해방 이후로 규정하지만, 역사학자들은 1919년 3.1혁명을 기점으로 잡는다고 한다.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잡는가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기준이 필요하지만, 해방 이후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3.1혁명에서부터 해방 전까지는 그전부터 이어온 일제 강점기였으며, 해방 후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도 큰 굴곡을 겪었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와 모순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삼웅과 출판평론가 장동석이 대담을 통해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왜곡되고 거꾸로 흘러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한국 현대사를 담고 있다. 저자들은 패망한 일본이 어떻게 한국 현대사에 개입했는지, 그리고 친일파들이 지금까지도 어떻게 권력을 잡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보수라 일컫는 사람들의 실체는 보수가 아니라 극우라고 단언하는 저자들은, 해방공간으로 돌아가야만 그들의 실체와 뿌리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한다. 해방공간에서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 놓는데 큰 획을 그은 것은 신탁통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진영이 친탁과 반탁으로 갈리는 대목에서, 이 땅에 극우세력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3상 회의에서 조선의 신탁통치를 처음 제안한 것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이 반대한다는 오보를 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동아일보가 친일파인 사주일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미국의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때 그 오보가 없었다면 지금의 분단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동아일보가 왜 오보를 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조선에 대해 신탁통치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느닷없이 미국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제시한 것이다. 당시 임정에 있던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는데, 이승만은 아직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개탄했으며, 당연히 이승만은 임시정부에서 추방되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패망하면서까지 한국의 권력구도를 바꾸었다. 그들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에도 소련이 북한에 진주하기를 기다려 항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남북분단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에게 조선반도의 분할을 제의한 것이나, 러일전쟁 때 러시아에 분할을 제의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한반도의 분할을 원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총독부는 미군이 이남에 진주하기 전, 선발대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거짓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여운형과 같은 독립운동가는 친일파이며 사회주의자로, 장덕수나 김성수와 같은 친일파는 그 반대인 것처럼 정보를 조작하여 제공하는 바람에, 미군정은 조선백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남을 통치했다는 것이다. 패망하여 물러나면서까지 조선의 앞날을 순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수립된 이남의 단독정부는 이승만의 야욕으로 얼룩졌다. 제헌헌법 초안은 내각책임제였으나 이승만의 권력욕에 의해 하루아침에 대통령중심제로 바뀐 것은 비록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지만 애교에 가깝다.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특위가 개설되자 협박과 회유를 시작했고, 그래도 안되자 반민특위를 습격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친일파 처단은 물 건너가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날뛰는 세상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저자인 김삼웅은 이것을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사의 제1대사건이라 부르고 있다. 이후 당연하게도 친일파들에 의한 국권농락은 계속되었고, 결과적으로 일본군인 출신들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5.16 군사반란은 박정희와 그 추종세력들의 권력에 대한 탐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권력은 이런 자들에 의해 세습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들을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자고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을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세우자고 떠드는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그래서 한국현대사에서는 그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고 말하는 저자들은, 그때 친일파들이 일소되었다면 하는 가정을 수없이 해 본다고 한다.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나타난 부끄럽고 욕된 부분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E.H.카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나, 프랑스 사상가인 헤켈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나타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라는 말을 떠 올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시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이라 할 수밖에 없다. 옛사람들은 역사를 감계(鑑戒)라 했다. 이는 지난 일을 거울에 비춰보고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우리 역시 지금이라도 한국의 현대사를 감계 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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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05 정치·사회·경제가 걸어온 발자국 ― 한국 현대사의 민낯 김상웅·장동석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3.1. ‘역사’라는 이름을 써서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핀 지 얼마 안 됩니다.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사람은 ‘역사’라는 낱말을 쓴 적이 없고, 쓸 일이 없으며, 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나 사회나 경제에서 권력을 거머쥐면서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은 ‘역사’를 만들어서 퍼뜨려야 한다고 여깁니다. 권력을 쥔 임금은 이녁 발자국을 돌에 새깁니다. 이 빗돌은 오늘날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됩니다. 권력을 쥔 임금 옆에서 고물을 받아서 챙기는 신하나 양반은 이녁 발자국을 족보에 남깁니다. 이러면서 이녁 무덤에 빗돌을 세웁니다. 이 빗돌은 문화재나 유적이나 유물이 되지 않으나, 두고두고 제삿상을 차려서 쳐다보도록 합니다. 권력을 쥐지 않을 뿐 아니라, 권력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느 사람들은 날마다 삶을 새로 짓습니다. ‘어제(지나간 일)’를 구태여 붙잡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흙을 갈고 보듬으면서 밥을 지으면 즐겁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밥을 먹을 텐데 어제 먹은 밥을 떠올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어 새밥을 먹는데 아침에 먹는 밥을 되새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흙과 함께 사는 사람은 역사도 족보도 빗돌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부질없는 줄 잘 압니다. .. 모든 사람이 진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식민지사관까지도 그런 식으로 정당화하는 게 이 땅의 보수 세력입니다. 엄격히 따지면 보수도 아니죠. 극우 세력입니다 …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데, 자세한 상황과 내용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 역사적 진실이 오롯이 전해지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다는 인식 같은 것 말입니다 … 우리 헌정사가 불안한 이유는 시작부터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야욕에 의해서 국가의 기본인 헌법이 애초부터 망가졌으니까요 .. (11, 27, 51쪽) ‘학문’을 하는 이들은 옛날에 남겨진 빗돌이나 책을 살피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 그런데, 옛날 빗돌이나 책은 오로지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입니다. 권력자 눈에는 권력자만 보이기 때문에 다른 발자국은 못 남깁니다. 이를테면, 임금 자리에 앉아서 흙 한 줌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낫도 모를 테고, 괭이도 모를 테며, 솥도 모를 테지요. 신하나 양반이 아궁이를 알까요? 부지깽이를 알까요? 솔가지를 알까요? 짚신을 알까요? 메주를 알까요? 콩꽃을 알까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이든 조선왕조실록이든, 이런 책에는 ‘삶을 지은 사람들이 날마다 기쁨으로 누린 이야기’가 한 줄도 없습니다. ‘정치·사회·경제 권력자 발자국’인 옛 역사책에는 그저 권력자 발자국만 적혔으니, 이를 학문으로 삼아서 살피는 사람은 언제나 권력자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한겨레에서 99.99%를 이루었다고 할 만한 시골사람 이야기를 밝히거나 다룰 수 있는 역사학자나 인문학자나 문화인류학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느 시골사람 이야기는 글 한 줄로도 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느 시골사람을 옆에서 구경한 뒤 적은 글은 몇 줄 있어요. 그나마 귀양살이를 하던 몇몇 지식인이나 학자가 이런 글을 남깁니다. 서울 한복판 궁궐 언저리에서 임금바라기를 하던 지식인이나 학자는 여느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안 씁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니 글로 쓸 수 없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벼꽃이 언제 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으면서, 밥이 되는 쌀은 어떻게 나오고, 쌀이 되는 벼는 어떻게 얻으며, 벼가 되는 나락은 언제 누가 어떻게 심어서 어느 만큼 돌보아서 자라는가를 제대로 아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없습니다. .. 해방공간에서 역량이 있던 〈동아일보〉에서 이렇게 보도가 되다 보니 김구·이승만·박헌영 등 좌우익 인사들이 모두 반탁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신문 기사 하나가 한민족 역사의 물꼬를 돌려놓고 민족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동아일보〉에서 왜 이런 보도를 했는지, 혹시 미국의 힘이 작용한 건지, 아니면 열악한 통신 사정에 의한 오보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파 청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찬탁이냐 반탁이냐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 경찰, 정치깡패, 반공청년단, 군대, 그리고 주한미군까지 있었는데, 거기에 민주적으로 맞서 싸워 승리한 것이 바로 4·19혁명입니다.. (41, 78쪽) 김상웅·장동석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은 《한국 현대사의 민낯》(철수와영희,2015)을 읽습니다. 김삼웅 님은 수많은 자료와 책을 살피면서 ‘한국 현대사’ 발자국을 좇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거머쥔 권력자가 거짓스레 뒤바꾸거나 감추려는 역사가 아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온 발자국을 드러내려는 역사를 밝히려고 합니다. 오늘날은 지난날과 달리, 시골사람도 글을 읽을 수 있고, 시골사람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며, 지식인이나 학자가 된 사람 가운데에는 시골살이를 오래 누리고 나서 도시로 온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지난날과 조금 다릅니다. 다만, 이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에도 지식이나 학문을 다루려면 죄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만 사는데, ‘한국 현대사’를 읽으려는 이들은 틈틈이 시골을 찾아다니면서 ‘시골사람 목소리’를 곧바로 귀여겨들으려 합니다. 이를테면 ‘증언’을 듣지요. .. 백범 선생 암살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까 안두희는 테러 집단인 서북청년단 핵심 요원이었어요 … 그때 88구락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친일파 출신으로 이승만의 핵심 측근들이었죠. 이 사람들이 비밀회의를 거듭해서 암살 적임자를 선발했는데, 그게 바로 안두희입니다. 안두희는 우리 육군에 입대하기 전에 미국방첩대(CIC)의 정보원이자 요원으로 활동했어요. 이런 복잡한 인맥을 가진 안두희를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두희의 아버지가 북한 출신인데, 아주 악질적인 친일파로 못된 짓을 많이 해서 재산을 크게 불렸어요 .. (46∼47쪽) 김구와 여운형이라는 분이 죽은 앞뒤를 살던 할매와 할배는 아직 이 땅에 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독재정권을 움켜쥐다가 사월혁명을 맞아서 부랴부랴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은 언저리에 살던 할매와 할배는 꽤 많이 이 땅에 있습니다. 군사쿠테타로 정치권력을 가로채서 그악스러운 독재를 일삼던 박정희라는 사람이 춤추던 무렵을 살던 아재와 아지매는 이 땅에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에는 새마을운동 부스러기가 짙게 남았으며, 오늘날 도시에도 새마을운동 찌끄러기가 곳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이들이 거짓말로 역사책을 꾸미려 하면, 이제 이런 거짓말은 아주 쉽게 들통납니다. 이제는 ‘책’과 ‘자료’로도 참과 거짓이 환하게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시골지기)’과 ‘학자(지식인·신하·관료)’와 ‘임금(권력자)’이 따로 놀았다면, 오늘날에는 사람 사이에 학자가 있고 학자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 있는 학자나, 학자 사이에 있는 사람은, 임금(권력자)이 저지르는 짓을 꼼꼼히 알아채서 낱낱이 밝힐 수 있습니다. .. 이승만으로서는 기반이 없으니 그들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죠. 친일파들은 일제가 항복하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젊은 층은 대부분이 군대나 경찰에 입대해서 자기 전과를 숨겼어요. 이승만에게 줄을 선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정권을 잡기 전부터 돈과 정보를 갖다주고, 라이벌을 죽여 주기까지 했죠. 이승만 주변에는 일제 치하에서 관리나 법관, 경찰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승만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친일파들은 자기 구명을 할 수 있으니 절묘하게 궁합이 맞은 거죠 …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진 것이 1949년 5월 초였고, 6월에는 반민특위가 해체됩니다. 6월 26일에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죠. 이승만 정권 핵심부는 절묘한 공안 시스템을 가동해서 국회를 무력화한 것입니다 .. (55, 59쪽)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라는 조그마한 책에서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큰 실마리를 짚어 줍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는 우리를 둘러싼 숨겨진 그림자를 우리가 스스로 캐내어 밝힐 수 있는 실마리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스스로 눈을 뜨지 않기에 그동안 못 보거나 안 보던 그늘이 무엇인가 하는 실마리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참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참을 봅니다. 거짓을 보면서 거짓인 줄 알아채려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이 마치 참인 줄 잘못 받아들입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온 지식이라고 해서 이 ‘교과서 지식’이 다 옳을까요? 교과서 지식은 그저 ‘교과서에 적힌 지식’일 뿐입니다. 교과서를 엮는 사람이 어떤 정치권력 입맛에 맞게 춤추느냐에 따라서 교과서 지식이 달라집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엉터리 역사 교과서’가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한국에서도 얼마 앞서까지 ‘엉터리 역사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런 지식으로 대입시험을 치르게 했고, 대입시험을 누구나 치러야 하는 지옥으로 굴레를 만들어서. ‘교과서 지식이 옳든 그르든 맞든 틀리든 따지지 말고 외우도’록 길들였어요. 요즈음은 한국에서 엉터리 교과서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엉터리 교과서는 아니어도 ‘참으로 담을 이야기’는 담지 못합니다. 아니, 안 담는다고 해야 맞겠지요. 엉터리는 아니어도 참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교과서도 참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해요. .. 미국 국무성 등이 파악한 박정희는 대단히 권력지향적인 인물입니다. 교사 생활을 하다가 일본 군인들이 칼 차고 다니는 게 매력적으로 보여서 일본군에 지원했을 정도니까요. 그때 나이가 스물네 살이었고 기혼인 상태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만주군관학교 결격사유인데 혈서까지 써 가며 일본에 충성하기로 맹세합니다. 하지만 일본 패망 후 재빨리 변신해서 광복군에 이어 국군에 입대하고, 군부 내 남로당 세력의 핵심 책임자가 됩니다. 북에서 온 형의 친구 황태성을 처형하는 매정함도 보입니다 … 박정희는 미국에 자신의 반공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를 처형해 버리지요 … 세계적인 개발 붐과 저유가 정책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발전한 건데, 이것을 모두 박정희 정권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는 거죠. 박정희가 한일 굴욕 회담 결과 일본으로부터 받은 건 고작 5억 달러입니다 … 독도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탈해 간 문화재 환수 문제, 사할린 동포 문제, 재일교포 법적 지위 문제 등은 거론조차 안 했어요. 오히려 굴욕 회담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정항을 계엄령을 내려 진압했습니다 .. (80∼81, 83∼84쪽) 권력바라기 정치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권력을 바라면 그저 권력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권력바라기 정치꾼은 권력을 손에 쥐면 으레 바보짓을 일삼습니다. 아니, 바보짓이라기보다 멍청한 짓을 일삼아요. 한 줌조차 안 될 그런 권력으로 마치 ‘모든 것을 다 거머쥐었다’는듯이 여기면서 독재를 일삼으려 합니다. 가만히 보면, 권력바라기는 어쩔 수 없는지 모릅니다. 내가 거머쥔 권력을 다른 사람도 바라기 마련일 테니, 권력을 쥔 정치꾼은 다른 사람을 모두 맞수(적)로 삼아서 무찔러야 한다고 느낄 만해요. 독재가 될밖에 없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경제권력이나 문화권력이나 교육권력이나 종교권력 모두, 혼자 무시무시한 힘을 휘둘러서 모든 사람이 이녁 앞에서 무릎을 꿇도록 짓누르려 합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씨앗 한 톨을 손수 흙에 심는 사람은 권력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총칼을 들이밀면서 시골지기더러 ‘너 말야, 내가 시키는 일만 해. 왜 씨앗을 심으려고 해? 씨앗 심지 말고 군복 입고 총 들어!’ 하고 윽박지른들, 시골지기는 이런 권력자 말을 안 듣습니다. 그저 한 마디 해 줄 테지요. ‘얌마, 네가 대통령놈이고 임금년이고 뭐고 말이야, 내가 이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거두지 않으면 굶어죽을 텐데, 나더러 총을 들라고? 총 들고 싶으면 너 혼자 들어!’ 하고요. 권력이나 독재나 군대나 전쟁무기가 생기는 까닭은 ‘손수 씨앗을 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나 독재자나 군인은 씨앗을 안 심습니다. 씨앗을 안 심기도 하고, 씨앗을 돌보지 않기도 합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도 않고, 아이를 돌보지도 않으며, 아이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권력자가 아이를 낳은들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까요? 권력자는 독재 짓거리를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가르칠 뿐일 테지요. 역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를 더 깊이 파헤쳐서 더 많은 역사 지식을 알아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역사를 읽어서 스스로 깨달았다면, 이제 책은 그만 내려놓고, 씨앗을 심으러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면,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내 보금자리가 달라지고, 내 마을과 고장이 달라지며, 내 나라가 달라집니다. 참민주를 이루려면, 뛰어나거나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나오기보다는, 우리가 다 함께 흙을 가꾸면서 씨앗을 심을 노릇입니다. 4348.3.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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