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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새로운 차원의 국가가 된 게 메이지유신 때부터라는 것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박경민은 이를 ‘일본의 퀀텀점프’라고 하고 있다(올해가 양자역학 100주년이다!). 국가의 발전이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발전했다기보다 한 순간 차원을 달리하면서 발전했다는 측면에서 보았다는 얘기다.
메이지유신에 관한 책은 많다. 그렇다면 다시 메이지유신을 쓴다면 뭔가가 달라야할 한 터인데... 박경민은 ‘약간의 깊이를 갖춘 대중서’를 표방했고, 그러면서도 ‘메이지유신을 알려면 이 책만 읽으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책을 썼다고 했다. 동의한다! 연구자 수준이 아닌, 일반인의 수준에서 앎의 수준을 조금씩 높이는 수준의 책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 이 책이 기존의 메이지유신과 달리 여겨지는 부분을 조금 얘기해보겠다. 우선 사건보다는 구조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지유신이라는 것 자체가 사건이고, 그것을 전후로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일본인들 특유의 과한 정의가 있었다. 이것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런 게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경제를 위해서 어떤 조치들이 취해졌는지, 그래서 어떤 회사들이 만들어지고, 어떤 인물들이 그런 일을 했는지 등등은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거의 처음 자세히 읽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메이지유신과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메이지유신을 추진한 세력이 이른바 식산흥업(殖産興業)을 위해서 어떤 기관과 기업을 만들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기업(미쓰이, 스미토모, 미쓰비시)의 연원, 그리고 근대적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 시부사와 에이치, 고다이 도모아쓰 등에 대한 이야기도 각주처럼 쓰고 있지만 거의 처음 읽는 거였다.
이렇게 저자는 메이지유신이 일본의 수준을 퀀텀점프하게 한 계기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 군사 등의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경제와 사회 등의 측면에서도 고르게 보고 있다.
그런데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어떻게 일본을 그럴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저항은 있었지만, 어떻게 기어코 그런 변혁이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조선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박경민은 여기에 대해 한 가지 힌트를 남겼다. 일본의 막부 체제가 위선적인 체제였다는 것이다. 막부 체제는 쇼군이 대정을 위임받은 것일 뿐, 언젠가는 되돌려주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구조였다.
“그런 의미에서 구체제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근대화를 성취하기에는 막부 체제가 조선의 왕조 체제보다 훨씬 유리했다. 서양세력의 출현이라는 외부 충격에 단단한 조선의 왕조 체제는 땅속에 깊이 박혀 버리고, 눈에 보이는 구조적 실금이 있는 일본의 막부 체제는 같은 충격에도 깨져버렸다.”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막부 체제에서 살아가던 일본인들에게는 약간의 깨달음만 있으면 됐다는 얘기다.
거기에 부럽다면 부럽고, 신기하다면 신기한 것은 메이지유신 추진 세력이 자신들에 반대하며 막부 체제를 옹호하고, 전쟁까지 벌어며 끝까지 저항한 이들까지도 포용했다는 점이다. 그게 그들 개인의 포용력이었는지,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의 포용력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적 요소가 깊게 스민 것인지는 모르지만.
메이지유신에 대해 공부도 했고, 우리의 역사,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다. #연말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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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많이 들었던 단어. 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지만 제대로 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던 일본의 역사.
여러가지 사례와 다양한 인물들 소개가 압권입니다. 덕분에 마치 역사소설 읽듯이 재미있게 읽었어요. 학교에서도 이렇게 재미있게 배운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책 중간마다 박스로 요약되어 있는 편집과 사진이 많아서 인물들 보는 것도 가독성을 좋게 해주네요. 가난한 섬나라를 퀀텀점프하게 해준 메이지유신. 지금 우리나라도 퀀텀점프하고 있는 중이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나 자신의 역사도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에 와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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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일본 에도 앞바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군함들이 나타났다. 당시 일본의 배는 대부분이 목선이었다. 일본 배들이 '풍력'에 의존하던 시기다. 바람이 멈추면 배도 함께 멈췄다. 반면 미국에서 온 군함은 달랐다. 검은 군함은 '증기선'이었다. 석탄을 태워 움직였고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댔다. 바람과 상관없이 전진했고, 연기를 내뿜었다. 선체는 검게 칠해져 있었고 대포가 노출되어 있었다. 이 배가 일본인들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익숙한 배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사회는 '쇄국정책'으로는 더이상 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개항을 둘러싸고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그 사이 내부 통제력도 약해졌고 막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1868년, 정치 권력은 막부에서 천황 중심의 정부로 다시 넘어갔다. 이 정권 교체가 '메이지 유신'이다. 같은 시기, 조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역시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도 서양 세력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양선이 해안에 나타나 통상요구와 무력 시위를 하곤 했다. 본질적으로 조선이 받은 충격은 일본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여기서 '일본'과 '조선'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조선은 체제를 바꾸기보다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외세의 접근은 '막아내야 할 위협'으로 인식했고 통상 거부로 이어졌다. 덕분에 내부 권력 구조는 유지됐다. 반대로 일본은 권력 구조부터 바뀌었다. 막부를 해체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 체계를 다시 짰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공급력 폭발이 일어났다.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기계가 물건을 생산하면서 공급이 늘었는데 그것을 소비할 수요처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는데 물건을 판매할 판매처, 값싼 원료를 사올 수입처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경제사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과잉 생산 단계'라고 본다. 조금더 크게 보자면 '제국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동아시아'의 입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꽤 다르다. 당시의 미국인구는 일본보다 적은 수준이었고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가 2500만에서 3500만 수준인 반면 청나라의 인구는 4억에 이르고 조선 인구도 2000만에 가까웠다. 당시 서구의 입장에서 동아시아는 '문명화 해야 할 지역'이전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거대 소비 집단인 편이다. 당시 '쇄국정책'에 대해서 지나친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동아시아 삼국이 쇄국을 유지하려던 이유는 지금의 무역 경제 논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생산설비가 불균형한 두 국가간의 자유무역은 곧바로 후진국가의 국내 경제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경우에는 농업 중심 경제다. 화폐보다 '곡물'이 실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생산성이 낮고 미곡반출은 인건비 상승과 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서양 공산품이 대량 유입될 경우, 값싸고 품질이 일정한 물품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 국내 수공업 전통 산업이 바로 붕괴하게 된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쇄국은 '시대착오'라기보다 '경제 방어 정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개방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다만 1853년 검은 군함의 등장으로 일본은 '개방' 여부가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제너럴 셔먼호'가 등장한다. 여기서 차이점이라면 일본 앞바다에 온 '검은 군함'은 미국의 '해군 군함'이었고 '조선'이 마주한 배는 '미국 민간 상인'이 운용하는 '무장상선'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군함'을 통해 '외교 요구'를 받은 상황이고, '조선'의 경우에는 '민간 상선'이 '무단 침입'한 사건에 가깝다. 이처럼 배의 차이가 인식의 차이를 만들었고 결국 일본은 '개항'을, 조선은 '쇄국'을 선택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가장 먼저 손댄 것은 '제도'였다. 제일먼저 '신분제'를 폐지했다. '사무라이'가 사라지고 '농민, 상인, 무사'는 법적으로 같은 신분이 됐다. 이는 프랑스나 미국에서 말하는 '사회적 평등'이라기 보다 '인력 동원'을 위한 정비에 가까웠으나 어쨌건 '일본사회'도 역시 근대의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했다. 1871년에는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했다. 지방 영주가 세금을 걷던 구조를 없애고 '국가'에서 직접 세금을 거뒀다. 이때부터 일본은 '국가' 단위 예산을 운용할 수 있게 됀다. 또한 '세금'을 걷는 방식 역시 변화했다. '지조개정'을 통해 세금을 쌀이 아니라 현금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조치 하나로 일본 경제의 기준이 '곡물'에서 '화폐'로 이동한다. '쌀'이 반출되면 '물가가 상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기반이 만들어지면서 자유 무역구조에서 버틸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만들어졌다. 근대화 초기에 일본의 산업정책은 더 직접적이었다. 초기에는 국가 주도적으로 공장을 세워 산업화를 시작했으나 이후 수익구조가 '민간'에게 넘어감녀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대규모 자본 집단이 만들어졌다. 유학생을 대규모로 서구로 보내고 동시에 외국 기술자를 일본으로 불러 들였다. 같은 시기 조선은 다른 선택을 했다. 조선은 '질서유지'를 위해 '개혁'을 뒤로 미루었다. '개항'을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로 인식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때, 조선인들은 안보적으로 나름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국가 주도로 인력을 재편하고 산업을 키우던 시기, 조선은 정치 불안과 민란을 위해 개혁을 '위험' 요소로 여기고 '체제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가 겪었던 것과 같은 단계에 진입한다.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고 생산량은 늘었다. 공급이 늘어나 국내 시장만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역시 '넓은 판매처'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내부 수요를 키우려고 했으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공급이 과잉되면 '상품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온다. 고로 '시장확대'는 필연적이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서구 국가가 문을 두드렸으나 끝까지 버텨낸 두 시장인 '청'과 '조선'이 남아 있었다. 청과 조선은 여전히 완전히 열리지 않은 시장이었다. 조선과 청은 서구에게는 꽤 거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시장이었으나 일본에게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가가웠고 군사적 접근도 용이했다. 또한 이미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고로 일본 역시 서구가 했던 판단을 그대로 하게 된다. 1876년 일본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선의 문을 연다. 강화도 조약은 통상조약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은 시장 개방에 가까웠다. 일본 상품이 들어오고 조선의 쌀과 자원이 빠져나갔다.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을 더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근대화는 '제국주의'로 이어졌다. 역사를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만 정리하면 그 시대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19세기 동아시아의 선택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이미 공급 과잉을 전제로 돌아가는 체제로 넘어가 있었고, 그 질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는 의지와 무관하게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그 구조에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한 편이고, 조선은 그 구조에서 '체제 안정'을 더 중요하게 봤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 보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질문을 하는 쪽이 좋은 것 같다. 조선이 무능하고 일본이 단순히 '앞서 나가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기 보다 무수한 우연과 흐름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민 작가의 '메이저 유신'을 읽으면서 단순히 '일본'이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했다'라는 인식이 많이 사라졌다. 일본 역시 조선처럼 많은 갈등과 선택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사실을 보게 되니, 흥미로웠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준 '박경민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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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신 박경민님은, 한일 근대사 작가로 다양한저서와 역사분야에 관심을 기울이신 분인것같았다. 일본의 헤이안시대중반, 고위귀족의 보디가드로 처음 교토에 나타난 사무라이들을 세월이 흐르면서 정계로 이끈이들이 천황과 상황등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이었다고한다. 그리고 이어서 가마쿠라막부 시대, 무로마치막부 시대에 관한 내용들이 이어졌고, 그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창설된 세 번째 막부가 에도막부이다. 앞의 혼란스러운 두 차례의 막부에 비해 매우 안정되게 오랜시간번영을 누렸는데 그 이유는 나또한 무척 궁금했던 것 같다. 막부 창설 후 2년만에 쇼군직을 아들에 물려주고 일선에서ㅈ은퇴하는형식으로 생활하며, 외교 국방업무등에는 전념을 하였다고한다. 1660년 에도막부의 지도와 현재 일본지도를 보니 확실히 비교가 잘 되었고 에도막부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등장으로 사무라이,일본인들은 신문물과 흑선의 모습을보고 놀랐다. 2개월이 넘는 협상 끝에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맺었으며 서양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그리고 책의 중간쯤에 나오는 요시다 쇼인과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의 제자가 92명이었고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등 후일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정부의 고위직들이 여기서 배출이되었다고한다. 그리고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알게되었던 것 같다. 뒤이어 메이지유신에 관한 내용이 이어졌는데, 정치 이념의 요점은 일군만민 사상을 바탕으로 천황중심의 근대국가를 세우는 것이다고한다. 그리고, 퇴행적 조치인 제정일치와 국가신도화에 대한 이야기와, 근대적 자본주의의도입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시부사와 에이치와 고다이 도모아쓰의 일생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 관련된 내용도 조금씩 있어서 더욱 이해하기 쉽게 읽혀졌던 것 같다. 솔직히 전부 이해할수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만큼 역사에대해서는 언제나 어렵다고생각되지만 이번 도서를 읽고 다시한번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많았고 역사에 대해 궁금점을 자아내는 부분이 많이 들었던 도서였던 것 같다. 도서는 해당 출판사 '밥북'에서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일본의퀀텀점프이야기메이지유신#박경민작가#밥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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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현대까지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고자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하며 <한일 근대인물 기행> 등 다수의 저서를 펴낸 한일 근대사 전문가 박경민 저자의 신작 『메이지 유신』.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에도만(현 도쿄만)에 출현한 순간부터 약 40년간 일본을 휘몰아친 전 분야에 걸친 대변혁, 즉 메이지 유신의 전모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해부한 역작입니다. 메이지 유신을 둘러싼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교육,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입체적이고 시각적으로 조명합니다. 메이지유신을 알려면 이 책만 읽으면 된다는 평가를 목표로 쓴 책이라고 고백합니다. 일본인들의 이름을 최소화하여 스토리 전개의 가독성을 높여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전문서 같은 깊이와 대중서의 가독성을 겸비한 이 책은 270년간 평화롭게 유지되던 에도 막부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고, 일본이 단기간에 신흥 패권국으로 퀀텀점프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추적합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전 시대인 에도 막부의 통치 체제와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서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1603~1867)가 앞선 두 번의 막부(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와 달리 어떻게 260여 년간 안정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 완벽하게 설계되었던 봉건 체제는 오히려 현실에 맞지 않는 불합리성과 모순을 노출하게 됩니다. 저자는 에도 막부의 통치 체제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합니다. 수백 년간 지속된 평화는 역설적으로 서양 세력이라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고, 이 허점을 메이지 유신 주도 세력이 파고들게 됩니다. 결국 구체제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근대화를 성취하는 데는 서양 세력의 충격에도 땅속 깊이 뿌리내린 조선의 왕조 체제보다 쇼군이 천황에게 권력을 잠시 맡겨두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막부 체제가 훨씬 유리했다는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1853년 페리 함대의 내항과 개항은 270년 평화 체제의 방파제를 무너뜨린 파국적 사건이었습니다. 책 초반에는 소용돌이 속의 막부와 웅번들의 서구 따라잡기 경쟁에 대해 짚어줍니다. 막부와 반막부 세력 모두가 서구 문물과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컸고, 경쟁적으로 사절단과 유학생을 파견하며 근대화 시간을 단축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서구 사절단에 참여해 충격을 받은 후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로 우뚝 선 후쿠자와 유키치와 그의 저서 <서양사정(西洋事情)>을 다룹니다. 1866년에 발간한 이 책에서 유럽과 미국의 정치, 조세, 국채, 회사, 외교, 군사, 교육, 신문 등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소개하여 지식층에게 폭발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이 나아가야 할 근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신을 주도한 삿초도히(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 네 웅번들의 경쟁과 연합 과정은 역동적입니다. 조슈번이 고난을 겪다가 기사회생하는 극적인 이야기와, 사카모토 료마 등의 활약으로 삿초동맹이 성사되고 마침내 막부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전개됩니다. 복잡한 과정이 저자의 설명 덕분에 흐름이 또렷해집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봉건 체제의 해체와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완수한 위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왕정복고 쿠데타를 통해 신정부를 수립한 유신 주도 세력은 근대국가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5개조 서문을 대내외에 천명합니다. 이 5개조 서문을 바탕으로 신정부는 정치 체제의 대변혁을 시작했고, 수백 년간 이어진 다이묘의 세습 직위와 영지 통치권을 천황에게 귀속시킴으로써 봉건제를 최종적으로 해체했습니다. 이는 중앙 정부에 직속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번(藩)들을 해체하는 매우 위험하고도 혁명적인 결단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과 그들이 귀국 후 각 분야에서 일본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례를 통해 일본의 학습 능력을 보여줍니다. 사절단 파견은 서구 문물 견학을 넘어, 학제·징병제와 태양력 실시를 비롯해 핵심 근대화 정책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1871년 단발령과 양복의 보급, 천황이 직접 육식을 권장하여 식생활을 바꾼 사례, 서양식 건물로 조성된 도쿄 긴자 거리, 그리고 1877년 전화 개통 등 구체적인 예시들은 일본 사회가 얼마나 급진적으로 서구화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정한론(征韓論)에 대한 분석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통찰을 안겨줍니다. 정한론 논쟁이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불리는 정치사의 대변혁으로 귀결되어 강경파가 실각하게 된 과정을 다루며, 메이지 신정부의 외교가 단순한 정복욕을 넘어 근대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맥락을 짚어줍니다. 메이지 유신은 피를 보지 않은 명예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사족들의 반란과 저항이 격렬했던 시기를 거쳤다고 합니다. 보신전쟁(戊辰戦争),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등 신정부에 대한 반동과 저항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자가 짚어주는 핵심은 유신 주도 세력의 포용성입니다. 신정부는 보신전쟁에서 패배한 막부 측 인재들을 숙청하는 대신,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에게는 중요 직책을 맡겨 신정부 건설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메이지 정부 발전의 결정적인 동력이었습니다. 포용성을 바탕으로 메이지 정부가 근대국가로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유민권운동의 발전이 헌법 준비와 내각제 창설이라는 결실을 맺고, 마침내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과 국회 개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서구 근대국가의 틀을 단기간에 구축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메이지 정부의 숙원이었던 불평등조약 개정과 교육제도 및 징병제의 정착은 일본이 서구 열강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완성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을 다룬 기존의 역사서가 정치·행정적인 제도 개혁을 나열하는 데 그쳤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박경민 저자는 유신 정책을 추진하는 주도 세력의 입장은 물론, 이에 반발하고 동참하는 국민(사무라이 포함)의 시각에서 이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은 변화에 실패한 체제의 조건과 변화에 성공한 사회의 내부 논리를 대비합니다. 특히 한일 근대사를 비교하는 통찰과 인재에 대한 유신 정부의 과감한 포용성을 부각한 관점은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특정 집단의 영웅 놀이가 아닌 국가 시스템의 혁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봉건에서 근대로 40년, 일본의 모든 혁신 DNA가 이 한 권에 담겼습니다. #메이지유신 #일본의퀀텀점프이야기 #박경민 #밥북 #근대사 #일본역사 #역사책추천 #인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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