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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의 비를 내리는군요
"당신은 피의 비를 내리는군요" 내용보기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추억편에서 여주인공 도모에는 비 내리는 밤 주인공인 칼잡이 켄신의 암살 현장(사실은 켄신이 다른 자객에게 습격을 받은 상황)을 목격하고 이와 같이 말했다. 이 후 켄신이 머무는 유신지사들의 여관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다 이케다야 사건 이후 시골로 칩거,부부로 위장하며 살다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만...이 걸작 애니에서 켄신의 윗사람으로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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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추억편에서 여주인공 도모에는 비 내리는 밤 주인공인 칼잡이 켄신의 암살 현장(사실은 켄신이 다른 자객에게 습격을 받은 상황)을 목격하고 이와 같이 말했다. 이 후 켄신이 머무는 유신지사들의 여관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다 이케다야 사건 이후 시골로 칩거,부부로 위장하며 살다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만...이 걸작 애니에서 켄신의 윗사람으로 나오는 인물이 가쓰라 코고로우인데 조슈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훗날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더불어 유신 삼걸 중 하나로 일컬어지며 근대 일본 수립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 애니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의 최측근 중 한명이 이토 히로부미다. 그렇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맞다.

1959년에 쓰여진 이 책은 메이지 유신 이후 막부 체제를 폐지한 일본이 이후 조선을 병합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일본 국내에서 어떤 사상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 사상들이 실제 일본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의 주된 사상 흐름을 위에서 언급한 세 인물이 정한론(조선을 정벌하자는 의견)을 두고 어떤 견해 차이를 보였는지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존의 계급 체제가 사라지며 사무라이들의 불만이 팽배한 현재 기존 사무라이들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사이고는 정한론을 찬성하는 반면 아직 일본 국내 질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은 무리라는 기도(가쓰라에서 개명)와 오쿠보는 정한론에 반대한다. 후자의 경우 현실주의적인 입장인데 반해 전자는 이후 자유주의로 흘러 가게 된다.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소수 귀족이 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민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대변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고 정부에 반대하는 사이고를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로 인지, 나아가 정한론까지 자유주의와 동일시하는 논리적 비약을 저지른다.) 

이후 정한론을 주장하던 사이고는 권력에 밀렸고 서남 전쟁 후 자살, 사무라이 세력은 완전히 무너지지만 이들이 후대에 미친 영향은 여전히 강했기에 현실주의 정치인들은 이들을 통제하는데 계속 어려움을 겪고 이 사상(현실주의, 자유주의, 반동주의)들은 계속 일본의 외교 정책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기도의 병사, 오쿠보의 암살 이후 이들의 뒤를 잇는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정치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현실주의 관점에서 조선 문제를 접근한다. 저자는 이토를 탁월한 외교관이자 현실주의 정치가로 보면서 그를 높게 평가하는데 조선을 둘러싼 정책에서 보여준 이토의 태도에 대한 서술은 한국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악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이런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할지도...?)

저자는 당시의 여러 문헌과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하며 과연 처음부터 합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일인지,어쩌다보니 그렇게 흘러 간 것인지,좋은 의도가 바뀌게 된건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조선 합병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합병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 중 일본 측과 조선 측 양자 모두 병치시키며 일방적인 분노가 아닌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물론 책에 언급된 견해 중에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한 입장도 있지만 당시 타 국가들은 어떻게 동북아 정세를 바라봤는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운요호 사건,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 정변,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 전쟁,헤이그 특사,을사조약 등 조선 말 주요 사건들을 둘러싼 상황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이 일련의 사건들에서 일본이 보여준 정책 변화는 위에서 언급한 세 사상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나아가 왜 현실주의가 자유주의를 통제했지만 반동주의를 다루는데는 실패했는지, 어떻게 통감부의 조선 정책이 바뀌었는지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다시피 한국인들이라면 일방적인 피해자로서의 분노가 앞서겠지만 특정 사건에서 왜 그런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그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 조선 말기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조선 강점 과정을 국제 관계 질서라는 큰 틀에서 여러 사상 흐름(현실주의,자유분의,반동주의)에 따라 달라지는 일본의 정책을 분석함으로써 최소한 왜 현실주의에 입각한 정책이 억압적이고 잔인하게 바뀌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이 1959년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탁월하고 밀도 높은 역사서라는 점은 분명하다.워낙 다양한 인물과 방대한 자료를 배경으로 서술된 책이라 학술서에 가까워 일반인이  읽기에는 수월하지 않지만 메이지 유신과 조선 후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시도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m*****6 2026.0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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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강점 - 힐러리 콘로이
"일본의 조선 강점 - 힐러리 콘로이" 내용보기
제목 :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저자 : 힐러리 콘로이출판사 : 테오리아국제관계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연구1919년생인 저자는 동아시아사를 전공한 학자이다. 저자가 1951-1990년까지 교수직을 역임하였고, 이 책이 1959년에 쓰여진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외부의 시선에서 쓰여진 근현대사 책이라고 할 수 있다.이 책을 읽을 때는 몇가지 점을 유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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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저자 : 힐러리 콘로이
출판사 : 테오리아

국제관계의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연구
1919년생인 저자는 동아시아사를 전공한 학자이다. 저자가 1951-1990년까지 교수직을 역임하였고, 이 책이 1959년에 쓰여진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 몇 없는 외부의 시선에서 쓰여진 근현대사 책이라고 할 수 있다.이 책을 읽을 때는 몇가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선 책이 쓰여진 시기이다. 1959년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5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이다. 태평양 전쟁의 원인인 일본에 대한 반감이 남아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미국 제국주의를 옹호하던 시기이기도 하다는 말이다.두번째는 사료의 범위와 저자가 다루고 있는 글의 방향성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료를 일본의 사료를 가지고 왔다. 그마저도 통계 자료나 정식 외교 문서, 의회 회의 기록 등보다는 개인의 대화 내용, 편지 등 사담이 많이 담긴 글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일본의 근대 정치사의 흐름을 이야기하지만 정확히는 그 당시 주요 인물들의 순간순간 생각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등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시작한 1968년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난 1910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대부분 일본의 정치 상황을 그리는데 쓰이고 있다. 사실 그렇기에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국내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세히 다루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이 일어난 원인을 탐구하는데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의 글에 역사적 사실을 추가해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조선의 주요 사건

19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에 전함을 끌고 와 교역을 요구했다. 일본인들은 당시 처음 보는 크기의 거대한 전함이었다. 1940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사실도 일본 지식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져있었고, 실제 전함을 목도하고 나자 마냥 이대로 쇄국을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무리들이 서서히 생겨났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다.

그중 특히 조슈번은 존왕양이를 외치며 서양 기술은 배우지만 서양을 배척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실제 서양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외국 선박에 포격을 가한 일도 있었다. 물론 조슈번은 패배했고 이후 막부는 조슈 정벌에 나서 급진파를 제거하기도 한다.

조슈번의 반대 세력은 무참히 사라지는 듯 했지만 도사번의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사쓰마 번과 1866년 동맹을 맺게 된다. 막부는 조슈를 다시 토벌하기 위해 또 한번 병력을 보내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후 막부는 붕괴하고 1868년 덴노 하에 직접 내각을 구성하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 조선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 조선은 1800년 정조가 승하하며 이미 그 운명을 다했다. 이후 약 60년간 세도정치가 시행되면서 썩을 대로 썩어버렸기 때문이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였으나 만 11세의 어린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흥선대원군의 친정 하에 있던 조선은 이제부터 드디어 외국과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행복한 방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본과 연관된 사건만 간략히 알아보자. 1875년 일본이 해안 측량을 구실로 배 두 척을 동해부터 시작해 남해를 거쳐 강화도에 상륙한 사건이었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식수를 구하기 위해 온 것 뿐이고 조선군이 먼저 공격해 보복사격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조작이다. 결과적으로 이를 빌미로 1876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1882년 임오군란이 벌어진다.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의 차별이 계속되고 임금을 받지 못하자 벌어진 난이었다. 이 당시 청나라 군대가 흥선대원군을 납치해 톈진으로 끌고 가는 일이 벌어진다. 1884년 일본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옥균 등 급진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는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천하로 끝이 난다. 이 일이 있은 후 일본과 청나라는 톈진조약을 체결한다. 톈진 조약의 내용 중 핵심은 조선에 파병이 필요한 경우 상대국에 통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일본은 10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그럼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무능한 고종은 역시나 청나라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 결국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도 톈진 조약을 핑계로 군대를 파견한다. 동학군은 외세가 침입하자 이를 걱정하며 평화적으로 물러나게 되지만 일본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청나라와 전쟁을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청일전쟁이다. 이후 조선에 대한 주도권이 완전히 일본에게 넘어가게 된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이 이후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고 이를 뒤짚기 위한 일본의 거대 음모가 시작된다. 이로 인해 일어난 것이 1895년 을미사변이다. 이노우에 가오루 전 공사와 새로 부임한 미우라 공사가 꾸민 계획으로 친러파인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두려움에 떨던 고종은 기회를 틈타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치게 되고 이 사건이 1896년 일어난 아관파천이다. 고종은 개혁의 뜻을 펼치며 1897년 광무개혁을 실시한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기는 하나 최후의 발악이었다고 봐야 할까.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이 심해지며 러일전쟁이 일어난다. 러일전쟁은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이 즈음 중요한 사건이 많다. 일본이 1902년 영국과 동맹을 맺은 것이다. 게다가 러일전쟁 승리 이후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맺는다. 이 밀약은 조선은 일본이 점유하고, 필리핀은 미국이 점유하는 것을 서로 인정한다는 밀약이다. 청나라, 러시아는 전쟁으로 꺾었고 영국과 동맹, 미국과 밀약 이후 거칠 것이 없었다. 곧바로 1905년 을사늑약을 맺게 된다.

을사늑약 이후 각국들이 대사관까지 철수하자 대한제국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외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스스로 발전을 꾀할수도 없다. 그러자 1907년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지만 미리 알아챈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같은 해 정미7조약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경술국치가 일어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한국 근현대사의 시작이다. 저자는 이 시기 동안 일본 상황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일본의 정치 역학 구도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곧바로 있었던 중요한 사건은 이와쿠라 사절단이다. 이는 이와쿠라 도모미를 대표로 수십명이 1971-73년까지 약 2년간 미국과 유럽을 돈 활동이다. 활동의 주요 목적은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재협상이었다. 아직 힘이 없던 일본이라 재협상을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근대 사회를 견학하며 유럽, 미국의 제도를 보고 익혔다. 이후 의무교육과 군제 개혁 등을 실시하며 근대 국가로의 발전에 기틀을 쌓을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일본 내부에서는 정한론을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 정한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무력으로 조선을 개항시키고 필요하다면 식민지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정한론은 이미 과거 요시다 쇼인이 막부 말기부터 주장하던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급진적으로 주장했던 인물은 사쓰마 출신의 사이고 다카모리가 대표적이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 안의 정치 철학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가 책을 집필할 당시(1959년) 서구권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조선 병합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의견은 일본 정부가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임오군란의 개입,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 을사조약까지 계획적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주장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근거를 설명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당시 일본의 지배 계층은 크게 세 부류가 존재했다. 우선 메이지 유신 당시 유신을 성공한 정권이 분열하는 사태가 1870년대에 벌어진다. 막부를 폐지하고 유신을 성공한 후 지배계층은 정한론에 대한 의견으로 둘로 나뉜다. 정한론 찬성파와 반대파이다. 물론 반대파라고 하여 조선을 식민 지배하는 것을 아예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이 조선을 식민 지배하기에 '시기상조'라 생각했던 것 뿐이다.

정한론 찬성론자는 대표적으로 사이고 다카모리, 소에지마 다네오미 등이 있었다. 정한론 반대론자는 오쿠보 도시미치, 오쿠마 시게노부, 기도 다카요시, 이와쿠라 도모미 등이었다. 이 당시 산조 사네토미가 태정대신으로 서로 다른 진영을 조율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후 이와쿠라가 태정대신에 오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한론은 좌절되었고 사이고, 소에지마 등을 비롯해 참의의 절반 이상이 사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저자는 여기서 정한론 찬성론자를 자유주의자, 반대론자를 현실주의자라 칭한다. 그의 주장은 찬성론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은 일본이 조선의 초기 진보 운동에 관여함으로써 일본의 자유주의를 이루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순수하게 조선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함께 개혁하는 일본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반면 현실주의자들은 그보다는 실용적이고 진보적이지만 무엇보다 일본의 국익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들이다.

일본의 자유주의자들은 조선에 진보적 영향을 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조선인들과 연락했고 그들이 김옥균, 박영효 등과 접촉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에도 1885년 오사카에 모여 쿠데타를 모의했다. 조선, 일본 양국에서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자유 민주주의를 확립하겠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우선 한반도로 가 쿠데타를 일으켜 실각한 김옥균의 재집권을 계획했다 내부 밀고로 무산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별 다른 사건이 없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빌미로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한국으로 들어와 청일전쟁이 일어난다. 청일전쟁 후로 자유주의자들이 활개하기 힘들었고 일본은 현실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정권을 잡는다. 현실주의자들은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꿈꾸지 않았다. 소수의 몇명이 정국을 이끌며 일본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계속된 실패로 도태되거나 현실주의자 무리에 휩쓸려 없어졌다. 이때 새로 등장한 무리가 반동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의 유산들이다. 기존의 전통을 중요시하고 '양이', 즉 서양을 배척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확장주의적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다. 결과적으로 현실주의자들도 이들의 의견에 동조해 을사조약, 경술국치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정국을 잘 읽고 외국과의 관계를 잘 따질 줄 아는 현실주의자들은 조선과의 병합을 원하지 않았다.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이상주의를 상상하며 일본 뿐 아니라 조선까지 자유주의 국가로 만드는데 힘을 쏟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이 힘이 세지고 지속적으로 팽창함에 따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더욱 더 팽창 정책에 힘쓰고 조선을 병합해야 한다는 반동주의자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대한 비판

우선 저자는 당시 일본 정치 지도를 다시 그려보며 일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가 너무 협소하다. 우선 조선의 사료는 (매우 부족하기도 하겠지만)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공식 발표 문서나 개인 간 주고 받은 편지를 주로 인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을미사변을 일으킨 미우라 공사와 정부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정부의 공식 입장을 얘기한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미우라 공사는 자신이 받은 지시를 완전히 어기는 행동을 했습니다.
본문 중, 을미사변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
이 글을 인용하며 일본 정부의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의무대신 대행의 사후 항변이긴 하지만 그 진정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중략... 따라서 미우라가 비밀리에 그런 폭력적인 조치를 하도록 지시한 고위 정책 차원의 음모는 없었다고 상당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본문 중, 저자의 의견
어느 정부가 한 국가의 왕비를 시해한 사건을 공식적으로 정부의 의견이라고 할까? 실제 정부가 개입했고 안하고를 떠나 너무 편협하고 좁은 식견의 자료 조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미우라 공사 등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판결되었다. 과연 연관이 없는지 알고도 눈감아준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는 또한 일본의 현실주의자들이 조선과 일본의 병합을 반대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1905-1910년 조선 계획을 조직한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문서를 살펴보면, 그들은 다른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도 자국의 안보 요건을 충족하되 조선인이 수용하고 조선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조,일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애썼던 것을 알 수 있다.
본문 중
많은 증거는 군부와 외무성의 압력으로부터 최대한 자유롭고 싶었던 그(이토 히로부미)의 열망이 실제로 일본 안보의 요구 사항 안에서 조선인에게 되도록 온화하고 호의적이며 도움이 되는 통감부를 만들려는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가리킨다.
본문 중, 이토히로부미가 언론사 대표들에게 전한 말에 대한 저자의 입장
이토 히로부미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조선인에게 온화하고 도움이 되는 통감부를 만들려 노력했다는 결심이 어디서 보이는지 궁금하다.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언론사 대표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한 이토의 발언 뿐이다.

심지어는 너무나 편파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글을 쓴 학자의 의견을 참고했다.
(을사조약 당시) '일본인들과 함께 있던 경호원은 몇 명뿐이었고, 칼을 뽑거나 끌고 다니는 일도 없었으며...중략... "환희에 넘쳐" 조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조건에서 체결된 모든 조약이 부정될 수 있다면... 세계 평화는 아무리 많은 조약으로도 보장되거나 증진될 수 없다.'
본문 중, 트럼불 래드
저자가 왜 이런 식의 의견 개진을 했는지는 결론에서 명확하게 보여준다.
미국이 일본의 팽창을 장기적인 범죄의 설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 점점 더 깨닫게 됐다...중량...미국은 자신의 적지 않은 대외 활동이 상당히 사악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중략...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듀이를 마닐라만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은 미국이 필리필을 점령하기 위해 35년 동안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 그렇지 않으며...후략
본문 중
그들이 비슷한 모습을 보였기에 일본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필리핀을 비슷한 방식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빼았아 식민지로 삼았다. 비슷한 시기 하와이의 여왕을 미우라 공사와 비슷한 방식으로(살해하지는 않았지만) 끌어내리고 이후 서서히 장악력을 높여 현재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했다.
일본이 청과 전쟁을 벌인 것은 현실적 외교였을 뿐 아니라 가장 성공적인 현실적 외교라고 할만하다. 그것은 비인도주의적이지 않았고 분노하지 않았으며, 적어도 국내의 열정을 억제하고 국제적 균형을 신중하게 존중하면서 싸워 승리한 전쟁이었다.
본문 중, 청일전쟁에 대한 평가
앞서 여러번 얘기했지만 조선에 대한 이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은...중략... 진보적인 이유보다는 반동적인 이유로 정부에 대항해 일어난 봉기였다...중략 ... 대원군은 동학 지도자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 중,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평가
앞서 일본의 경우는 사료에 쓰여져있지 않은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언급했지만 동학농민운동은 대원군과의 접촉 가능성을 의심하며 정쟁 수단인 것처럼 쓰여져있다.

우선 이 글에서 저자의 인용과 의견이 다소 거친 점을 차치하더라도 말의 어패가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책에서 줄기차게 세 부류의 차이와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상적으로 자유주의를 정립시키려는 자유주의자, 국제 여론을 의식하며 일을 신중하게 진행하지만 일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현실주의자, 그리고 제국적 통치를 바라는 반동주의자이다. 심지어 그 현실주의자 중 이노우에, 이토 등은 조선의 진정한 발전을 원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조선의 자유를 위해 일한 무리는 없었다. 조선의 진정한 발전을 원했다면, 이권을 빼앗아가는 일도 없어야 하며 아무리 무능하다 하더라도 일개 신하가 다른 나라의 국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를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그려놓았다. 사이고 다카모리도 그렇고 그의 유지를 잇는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정한론의 완성 방법으로 논쟁이 있었던 것 뿐이다. 저자는 이토가 마지막까지 조선과의 병합을 반대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말뿐이다. 이토는 정한론을 창시한 요시다 쇼인의 직계 제자이다. 을사조약, 고종 퇴위, 정미7조약까지 이토의 역할이 얼마나 컸고 조선 조정을 얼마나 무시했나. 그런 사람이 조선을 위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선 마치 다른 부류인 것처럼 구분해놓았지만 결국 자유주의자, 현실주의자는 같은 무리에서 조선 정벌의 시기와 구체적 방법만이 달라진 정한론자들이었다. 반동주의자는 비주류로 존재하다 일본 내 여론이 강경해지자 지지를 받은 급진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정권을 쥐고 있던 현실주의자들(로 분류 되는 이들)은 조선과 협력해 갑신정변을 일으키는 자유주의자와 조선과 병합을 강력히 주장하는 급진적인 반동주의자를 교묘히 이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정권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 인사권이나 사법적 제제, 언론 제제 등 자신들이 쓸 수 있는 요소들이 충분하기에 굳이 스스로 칼을 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자서전이다

이 책의 교훈

위 문단은 참 분노가 느껴지는 문단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잘못된 일을 하면 후대에 역사적 심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일 없이 지나간다.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는 이렇듯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면 그들의 기록만 남게 되고 자신들만이 정당한 것으로 기록되는게 당연하다. 우리 나라가 지금은 아무리 국력이 올라갔어도 일본 정부는 절대 우리가 바라는 만큼의 사과를 하지 않는다. 앞에서는 반성한다고 하지만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정치인이 없지 않은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이유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굳이 자신의 조상들이 잘못했다고 따로 빌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부국강병의 길을 찾아야 한다. 옛날처럼 제국주의적 확장을 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무역, 인터넷 상으로 충분히 커질 수 있는 세상이다. 게다가 AI 기술을 활용한다면 영토 뿐 아니라 인구의 단점마저도 상쇄할 수 있다. 한때 똑같은 제국주의 노선을 걸었고 지금도 자신의 이득에 따라 우리를 우군으로 대하고, 찬밥취급하는 미국도 믿으면 안된다. 우리를 지켜주는 영원한 아군은 우리 스스로 뿐이다.

나약해지지 말자. 그리고 역사를, 정치를 낭만적으로 바라보지도 말자. 그들은 무조건 자신들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아쉬워하지 마라. 분노할 필요도 없다. 다만 다음엔 억을하지 않게 힘을 키우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다음에는 이런 역사가 절대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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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r*********9 2026.01.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절이 그렇다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절이 그렇다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보기
우리 역사에서 외국에게 침략 당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우리 국권이 완전히 외국에 넘어가서 수 십 년에 걸쳐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일본의 조선 침략이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근대에 일어났고 그것이 현대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인 이 침략은 수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여러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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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외국에게 침략 당해서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우리 국권이 완전히 외국에 넘어가서 수 십 년에 걸쳐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일본의 조선 침략이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인 근대에 일어났고 그것이 현대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인 이 침략은 수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여러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다시는 이런 치욕을 겪지 않기 위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당시 상황과 더불어 침략한 일본의 당시 상황도 알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게 되었는지 아는 것은 또 비슷하게 일어날 지도 모르는 사태를 미리 방지한다는 뜻에서 나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입장이 아닌,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을 살피고 있는 책이다. 제국주의 물결에 있었던 당시의 국제적 ,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일본이 조선을 합병 한 것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는 어떻게 보면 일제의 선택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주장이 들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 책을 지은 지은이는 일제를 변호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일제가 그런 짓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다만 당시의 상황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일 양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봤을 때의 분석이긴 하지만 지은이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전적으로 일본 자료를 바탕으로 나온 주장이기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책은 우선 '정한론' 부터 이야기 한다. 정한론은 말 그대로 한을 정벌한다 즉 조선을 정벌한다 그런 뜻이다. 아니 뜬금없이 왜 정한론일까.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해체된 무사 계급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유신을 단행했지만 정정은 불안했다. 이럴 때는 외부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임진왜란처럼 말이다. 그리고 300년 전 조선의 침략에서 거의 성공할 뻔한 기억으로 만만해진 조선이 눈에 보인다. 마침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음을 알리는 일본의 외교 문서가 전례에 따르지 않았다고 조선에 의해 거부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정한론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책에서는 이 정한론이 일어나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는 과격파와 온건파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온건파도 나중에 하자는 것이지 정한론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닌 것이다. 이 과정이 잘 설명되고 있지만 그 정한론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사고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 논쟁 속에서 내재된 함의가 중요한데 책은 일단 있었던 일을 서술하는 데 그친다.


이후 정한론은 결국 강화도 조약으로 이어진다. 책은 강화도 조약 이후 여러 사건들 속에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변화해 가는 가를 시대 순으로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지은이는 처음부터 병합을 목적으로 조선에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비록 불평등하게 조약을 맺기는 했지만 조선을 개화 시키는데 나름의 목적이 있었고 그래서 조선의 개화파들을 적극 후원했고 조선이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주국이 되도록 노력했다는 점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국제 정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청일 전쟁이나 러일 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주의적 침략을 하게 되고 끝내 조선을 병합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요지이다. 그 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보고 있는데 당시 일본의 입장이 어땠는지 아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한편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그가 조선을 끝내 합병하기 보다는 좀 더 온화한 방식으로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했다고 여긴다. 조선 황실을 존속하도록 하고 나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 이토의 정책은 당시 일본의 대략적인 대 조선 정책이었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적이고 이상주의 적으로 조선을 개화 시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토가 암살되고 시대 상황이 변화하면서 조선 병합은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토와 같은 온건론자도 있는데 끝내 강제 합병의 길로 가게 되었는가. 그것은 일본의 안보 불안에 있다고 여긴다. 서구 세력의 침략에 어느 정도 방어를 해낸 일본이지만 청과 러시아를 제압하지 않으면 결국 조선이 서구 세력에게 먹히게 되고 그렇다면 그 위협은 일본을 향하게 된다는 그런 논리다. 힌반도를 '일본을 겨누고 있는 단검' 이라는 인식을 가졌기에 내키지 않지만 결국 식민 지배를 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는 일제를 옹호하고 그 시대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려고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분명히 비판적이지만 어쨌든 그 시대에 일본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국제 정세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한쪽 면 만을 보고 쓴 한계가 드러나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59년~1960년 사이니까 60년 전의 내용이다. 당시 한국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 난지도 얼마 안되었지만 무엇보다 한국 전쟁을 치르고 정신이 없을 때다. 지은이가 일본 배경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와서 그쪽의 자료만 가지고 글을 썼기에 그 자료의 이면에 보이는 진실을 잡아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만일 균형 잡힌 자료가 있었다면 이런 식의 주장이 나왔을까 싶기도 하다.


손바닥을 봐도 한쪽 면만 보면 전체를 알 수 없다. 지은이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이 일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고 자연 재해 같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기에 일본은 잘못이 없다는 주장에 이용 당할 수 있다. 미국 학자가 본 객관적인 주장이라고 할 것이 뻔하지 않는가. 지은이는 조선을 개화 시키려는 목적으로 일본이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침략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제국 주의 시절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자체가 악인데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시절이 그랬기에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행동에 대한 해석은 결과를 보면 명확해진다. 일제가 조선을 멸망 시키고 식민 지배를 하면서 한민족에게 어떠한 짓을 했는지 보면 그들이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행동을 했는지 시절에 휩쓸려서 어쩔 수 없이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일제의 악독한 탄압으로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는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느낌이 든다. 감정보다는 냉정한 시선에서 여러 문서들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한 점이 돋보인다. 어쨌든 실제 있었던 여러 외교 문서나 자료가 있고 그것이 허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일본 정책이 사안에 따라서 어떻게 바뀌고 또 담당하는 인물들의 생각이나 말, 행동을 알아가는데도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당시 일본의 복잡한 정책 결정 과정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중간 중간 잘 안 읽히는 부분도 있는데 원저가 어렵게 쓰인 건지 번역이 어렵게 된 것인지 술술 넘어가는 편은 아니다. 학술서에 가까운 내용이라서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일본 입장에서 조선 강점의 과정을 여러 문서를 통해 알 수 있기도 하고 그런 많은 자료를 통해서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알아가는 면도 있는 책이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 https://cafe.naver.com/booheong/236108 )에 응해서 

작성되었습니다.



s******0 2026.03.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본의 조선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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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강점 만큼이나 한국사에서 논쟁적인 주제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일방에 의해 한반도의 국체가 완전히 소멸된 이 미증유의 어마무시한 사건은, 강점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국이 모두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21세기, 이 일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도 높아지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필자는 일본의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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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강점 만큼이나 한국사에서 논쟁적인 주제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일방에 의해 한반도의 국체가 완전히 소멸된 이 미증유의 어마무시한 사건은, 강점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국이 모두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21세기, 이 일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도 높아지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필자는 일본의 강점 전야에 대해서 교과서 수준의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그 구체적인 전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일본이 메이지 유신의 초기부터 한국을 병합하려는 의도를 지녔고(정한론), 그러한 담론의 실천이 수십년에 걸쳐 진행된 결과가 바로 일본의 강점이라고 막연히 여겨왔을 뿐이다. 물론 필자 역시 스스로의 과문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주제에 대해 강한 탐구심을 느껴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 테오리아 출판사에서 해당 주제에 천착한 미국인 저자의 책을 번역했으며 그에 대한 서평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주저 없이 신청했고, 책을 지급받았다.



책은 총 10장 구성의 700페이지 분량으로 방대하지만, 저자의 명확한 관점이 서술 내내 이어지기 때문에 읽기 어려운 구성은 아니다. 큰 틀에서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조선 강점은 일본의 현실주의자 •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자 • 반동주의적 이상주의자라는 세 갈래의 흐름이 조선 강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자를 대표하는 세력은 오쿠보 도시미치와 그의 후계자 이토 히로부미 • 이노우에 가오루 등의 번벌정치가(본문에서는 "과두정치가"라는 표현을 사용)들이다. 이들의 목적은 대체로 일본이 구습을 타파하고 서구 열강과 동등하게 서려는데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정한론은 국력을 손실하는 무용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계몽된" 관습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조선의 직접적인 강점이 대체로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910년의 강점 직전까지 일본의 정계를 주도한 것은 대체로 이들이었다.


메이지 정부의 이상주의자 세력은 1873년의 정한론 정변에서 실각하여 재야로 내려간 이후 자유주의 • 반동주의의 두 분파로 갈라졌다고 여겨진다.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자들은 또 몇 가지의 분파로 나뉜다. 정한론에 찬성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은 본래 번벌정치가의 일원이었으나, 정변으로 실각한 이후 자신의 기반을 민의 지지에서 찾아, 후의 "자유 민권 운동"을 이끌게 되는 세력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 및 그의 제자인 이노우에 가쿠고로 등은 메이지 정부의 일원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오히려 (후쿠자와 본인을 제외하고) 번벌정부의 구 일원들보다도 조선의 "자유와 독립"에 열성적이었다. 특히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갑신정변에 직접 참가하였으며, 이들 중의 일부는 조선을 계몽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오사카에서 소요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게 본 것은 반동주의적 이상주의자 세력이었다. 이들은 이타가키 다이스케와 마찬가지로 정한론에 찬성했다가 정변에서 실각한 번벌정치가 사이고 다카모리를 자신들의 시조로 여겼다. 그러나 민권운동으로 대두한 이타가키와 달리, 사이고는 서남 전쟁이라는 무력 반란으로 자신과 구 사무라이 계층의 박탈감을 호소하였다. 이는 자유주의와 반동주의의 간극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후의 현양사와 흑룡회로 이어지며, 책의 후반부에 흑룡회의 우두머리격인 우치다 료헤이가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이들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얼핏 보기엔 가장 국수주의적인 이들이지만, 의외로 해외의 "반동주의자"들과 곧잘 의기투합했다는 점이다. 


우치다 료헤이는 구 동학계 세력인 일진회에 들어가 한일합방(양국의 모호한 협력관계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병합과 차이가 있다)을 추구하였으며, 또한 중국의 혁명 세력과도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이 단지 국수주의적 면모만을 지닌것이 아닌, "동아시아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한다고 자부한 점에서 타국의 "반동주의자"들과 공통점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일본의 정치는 대체로 현실주의자 세력이 강점 직전까지 주도권을 차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점이라는 파국적인 결과가 초래된 까닭이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서 현실주의의 한계를 피력하고 있다.

어떤 현실주의이든, 그것이 근본적으로 국익을 위하는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손해를 보는 것보다는 미안한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의 현실주의자들이 맞이한 청과 러시아의 위협은, 결국 정책 실현 과정에서 이상주의자들의 진입을 점차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시해했고, 이토가 암살당한 이후에는 끝내 병합이라는 폭력적 결과를 도출해냈다(물론 이토 역시 생전에는 병합에 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우치다 료헤이와 이용구의 결별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저자는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이들이 결국 "본질적으로 조선에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당시 조선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은 미국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물론 저자 본인도 지적하였듯 지나치게 이상적인 감이 있으나, 그럼에도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가 극찬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방종"이 아니라, 국가를 도구 삼아 진정한 이상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책은 일본의 조선 강점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감정의 개입 없이 사료만을 바탕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로, 당시 일본의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를 물 가르듯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앞서 말했듯 이상주의자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본래 번벌 정치가 출신이었으며, 현실주의의 대부로 일컬어진 오쿠보 도시미치 역시 정한론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시기상조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또한 한계에 부딪히자 끝내 병합이라는 선택지에 동의하였다.


두 번째로, 저자는 계속해서 일본과 미국을 비교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교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이다. 저자는 미국이 일본을 1854년에 무력으로 개항시켰지만, 그것이 1945년의 점령을 의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조선에 대한 초기 접근 역시 병합을 기대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전에 일본을 대거 침공한 적이 없다(임진왜란). 또한 19세기 중반의 일본 내각과 20세기 초의 일본 내각의 구성원이 거의 비슷한 것과는 달리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비유는 역사적인 환경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과 같은 의문이 유효하다고 한다면, 일본의 조선 강점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지언정, 그것을 "음모론"으로까지 치부하는 것에 분명한 어려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다만 이러한 문제점은 원저가 1960년대에 나왔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참작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책의 뛰어난 가치가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에 의해 왜곡되어 퍼질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본서의 원서가 출간된 지 이미 60년이 넘었다. 일본의 조선 강점에 대해서는 양질의 연구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축적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최신의 서적을 번역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에 들인 역자 김범 선생님의 엄청난 공력을 생각하였을 때 더욱 그렇다고 느낀다.


YES마니아 : 로얄 a********0 2026.0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