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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가장 완벽한 짧은 소설”, “단 한 페이지도 낭비되지 않은 한 시대의 영혼을 압축한 걸작!”, “헤밍웨이 이후 가장 시적인 글을 쓰는 미국 단편 소설가” 한 시대를 상징하고, 시절을 위로하는 소중한 것을 한순간에 잃었을 때 인간은 어떻게 살아 갈 수 있는가? 상실의 슬픔 뒤 홀로 남겨진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는 철도의 꿈에 대한 주옥 같은 평가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고 지난 책들의 다소 난해함에 지쳐가던 중 “짧은! 명작! 슬픔! 상실! 이겨냄!” 이러한 키워드는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에게 흥미로운 주제이면서 가볍게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에 구매한 책은 결과적으로 왠만한 인문학 보다 더 높은 사유와 문장의 해석을 요구하는 어려운 소설을 선택한 결과를 가져왔다. 만약 이 책을 구매하기 전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아마도 인터 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속 주인공 조셉 쿠퍼가 테서랙트(Tesseract)의 5차원 공간에서 과거의 자신에게 “STAY!”를 외치듯 필사적으로 “Absolutely not!”라 소리쳤을 것이다. 기차의 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책은 매우 불친절 하다.’ 한 개인의 인생을 이야기하지만 마치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 중간중간 끊기는 것과 같이 전체 이야기의 맥락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드문드문 끊어져 글의 전체 이야기에 집중하기에 지나치게 파편화 된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가볍게 개인이 지켜낸 상실의 슬픔에 대한 공감을 원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추천할 내용을 독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불친절함 또한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빗댄다면 너무나 치밀하고 자연스러운 효과적 장치이다. 철도의 꿈은 1917년,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서른다섯 살이던 시절부터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1969년까지 약 52년 정도의 시간을 116페이지(한국어판 기준)에 담아 낼 정도로 시간 흐름 압축율이 대단하기 때문에 서사의 흐름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 이러한 불편함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지만 개인의 인생을 이야기함에 있어 너무나 자연스러운 장치로 사용된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읽어왔던 소설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이질감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스스로 자신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고 하더라도 막상 생각해 보면 삶이 선형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삶이란 군데 군데 지워어진 흔적들이 아슬아슬 연결 되어있기 때문에 철도의 꿈에서의 그 공백의 표현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훌륭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모든 설명은 극단적으로 압축된 시간만큼이나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된다. 무채색의 무미건조함은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심상 속 메마른 겨울 나뭇가지같이 생동감이 결여 되어있다. 문장의 온도 차이는 상실을 얻기 전 글래디스와 케이트와 함께한 짧은 봄날 같은 생동감 넘치는 문장과 표현에 비하면 잃어버린 것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이후의 문장의 대비는 더 이상 세상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는 회색 풍경이자 시대의 변화가 폭풍처럼 놀랍고 빠르게 변화하더라도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린 개인이 당장 삶을 끝내지도 않은 채 그 ‘지워진 흔적들’ 사이를 묵묵히 걸어가는 관성적인 표현으로 다가오고 이 책이 왜 수많은 평론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거대한 문명의 흐름에 속한 아주 작은 인간의 상실과 무의미함에 대한 메시지 마지막에 인간이 이제 거대한 자연마저 지배하는 오만함을 경계하는 늑대 소년의 외침과 짐승을 조련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장치적 설정은 개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사유속에서 거대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전체 개인의 사유에 혼란을 제공한다. 이는 잔잔한 호수속에 하나의 물방울이 정기적으로 파장을 만들어 가는 중 몰입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전혀 다른 위치에 새로운 물방울이 떨어져 전체 파장을 혼탁하게 만들어 내는 마무리가 다소 아쉽다. 비록 그것이 거대한 문명 속에서 무가치한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의 끝으로 문명 또한 자연이라는 거대한 흐름속에 무가치함을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나친 메시지의 절제와 개인의 시각에서 벗어난 배경의 전환은 마지막 소설의 몰입을 방해하기에 더욱 아쉽다. 기차의 꿈은 지나치게 소설 속 전체 시간의 압축만큼이나 절제 되어있다. 이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마른 감성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가장 강력한 장치이자 개인의 상실과 거대한 문화와 자연 속에서 가치 없는 개인의 무미건조함과 공백에 대한 표현의 위해 쳐낸 잔가지는 작가가 표현의 절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세심하게 기울였는지 느껴질 때면 자신의 문학적 표현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집작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소름이 돋는다.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인간 상실에 대한 고뇌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일대기를 기대했다면 앞서 과거의 나에게 말한 것과 같이 구매 결정을 멈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수많은 개인 중 불특정한 한 명의 인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듯 읽어 내려가고 절제된 문장 속에서 뛰어난 편린들을 찾아 읽어내는 것을 즐긴다면 앞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소설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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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레이니어는 혼자 아이다호까지 가야 했다. 출발지가 정확히 어딘지는 몰랐다. 가장 나이 많은 사촌과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사촌의 말이 달랐고, 그레이니어 본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사촌은 또한 자기가 그레이니어의 사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장 나이 많은 사촌은 사촌이 맞다고 말했다. 그레이니어가 어머니처럼 생각한 사촌들의 어머니는 그의 고모였다. 그레이니어가 기차를 타고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촌 세 명이 모두 동의했다. 그가 어쩌다 친부모를 잃었는지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p.32) 영화 〈기차의 꿈〉을 본 것이 지난해 십일 월이다. 원작에 꿈과 환영이 난무한다는 정보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듣고 책 읽기를 미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와 비교하여 오히려 현실에 안착해 있는 것이 책인 듯하였다. 영화가 아주 좋았는데 책도 못지 않게 좋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중인공(의 눈앞에 그려진 이미지)에 의해 도발되던(?) 감정이 없으니 마음이 좀더 차분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여기저기서 일을 하며 20대를 보냈다.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떤 것에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청년이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서른한 살에도 그는 여전히 장작 패는 일, 트럭에 짐 싣는 일을 하거나, 그보다 더 진취적인 사람들이 형성한 다양한 무리 속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잠깐씩 했다. 그러다가 글래디스 올딩을 만났다...” (p.43) 그레이니어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기차를 타고 친척의 집에 갔다. 거기서 기거하며 자랐고 일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감정을 쉬이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그레이니어는 조금 늦은 나이에 글래디스 올딩을 만난다. 그레이니어는 자신이 사 놓은 숲 속의 작은 땅에 글래디스를 데리고 갔고 결혼을 했으며 딸 케이트가 생겼다. “결혼한 지 4년도 되지 않아 홀아비가 된 그레이니어는 옛날 집이 있던 자리 아래쪽의 강가 움막에서 살았다. 밤이 깊은 뒤에도 최대한 모닥불을 살려놓았고, 동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는 꿈이 무서웠다. 처음에는 글래디스와 케이트가 꿈에 나왔지만, 나중에는 글래디스만 나왔다. 그렇게 혼자 침묵 속에서 두어 달을 보낸 뒤에는 꿈에 모닥불만 나왔다...” (p.85) 하지만 그를 향한 운명의 가혹함은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한다. 커다란 불이 숲을 휩쓸었고, 숲 속 그의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게 되었다. 글래디스와 케이트 또한 사라졌다. 죽었다, 라고 말하기 위해 필요한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레이니어는 자신의 집이 있던 근처에서 많은 걸 버텨냈다. 그는 다시 집을 지었고 이제 일을 하기 위해 멀리 나가지 않았다. 말과 수레를 가지고 근처에서 일을 했다. “... 비행기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가파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레이니어의 장기들이 척추에 달라붙었다. 여름밤에 오두막에서 아내와 딸이 후두의 사르사를 마시던 순간이 보였다. 그다음에는 기억 속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다른 오두막이 나타났고, 그의 숨겨진 유년 시절에 갔던 장소들, 광대한 황금빛 밀밭, 길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는 열기, 그를 감싼 두 팔,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이번 생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p.95) 영화에서는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소설에서도 아주 좋다. 나는 그레이니어가 느끼는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그레이니어는 평생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살았으니 그가 수수께끼가 풀렸다고 한다면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그레이니어는 급강하의 순간, 자신의 시작부터 바로 지금까지를 주마등 아래에서 훤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았다. 살아 있는 동안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도 있지만,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동쪽으로 가장 멀리 간 것은 몬태나주 경계선 안쪽으로 40마일 거리인 리비였다. 그가 사랑한 사람은 단 한 명, 아내 글래디스였으며, 재산은 땅 1에이커, 말 두 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기차를 자주 탔지만 자동차도 많이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이 있었다. 말년의 10년 동안 그는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며, 자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pp.128~129) 그레이니어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는 최저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삶을 살았나? 아니면 생의 순간순간의 많은 것을 빨아들인 다음 뒤섞어 평준화시킬 수 있는 평탄한 삶을 살았나? 하지만 삶이 어떤 것이든, 해석하기 힘든 운명의 순간들이 모두 지난 다음,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다만 여기 그 후회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게 말끔한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이 있다. 데니스 존슨 Denis Johnson / 김승욱 역 / 기차의 꿈 (Train Dreams) / 다산책방 / 139쪽 / 2025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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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읽을 때 초반에 몰입감이 정말 중요한 세미 도파민 중독자인데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해요! 잔잔해도 재밌는건 재밌는데 이건 어려웠고 이상하게 안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던데 그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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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의 꿈은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 역시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이라는 걸 보여주는 책입니다. 잃는 것에 극적인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흘러가는 삶에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공감가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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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건설 노동자인 주인공은 아내와 갓난 딸과 함께 산속 오두막에서 평온한 삶을 꿈꾸고 있었어요. 어느날 일어난 산불로 아내와 딸을 잃고 주인공의 삶은 달라집니다. 대화재 10년 후, 환영인지 진실인지 모를.. 늑대소녀가 된 딸을 만난 후로 로버트는 자연 속에서 딸을 기다리며 조용히 살아갑니다. 주변인들의 사망사건이 일어나지만, 별도의 설명이나 애도 없이 삶은 담담하게 흘러갑니다. 한 인간의 고독함과 시간의 무게가 조용히 가슴에 쌓이는 <기차의 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마흔이 넘으니 독서 취향이 바뀌었어요. 책을 정리할 때 책장에 남기는 책은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 위주인데 요즘 재독하고 싶은 책들이 주로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 책이더라구요. 제가 지금보다 어렸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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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 나가는 중편소설. 직설적인 내용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을 기술해나기는 이야기. 안타까운 느낌이 드네요. 잘읽어서 넷플도 봤는데. 책 내용 보다 많이못해 실망입니다. 주변사람에게 추천하고픈소설책. 두께에비해가격이 좀 나가는건단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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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일까, 문화의 차이일까… 140쪽밖에 되지 않는 짧고 절제된 책이지만, 그 때문인지… 혹은 영미권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번역 때문인지 영화만큼의 여운을 당최 느낄 수가 없었다. 영화는, 한 남자의 인생, 아름다운 화면 속 외롭게 왔다 홀로 떠나는 이 남자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우며 동시에 그렇게 애잔할 수 없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영화는 참으로 우수했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고 난 뒤에도 시 같은 이 영화의 여운이 꽤 오래 남아, 설령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게는 수상 이상의 찬사를 주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데 원작은 어떻게 된 걸까… 많은 곳에서 찬사를 보냈다는 글을 보았지만, 내게는 글쎄요다. 문화의 차이인지, 내가 잘못 읽은 것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영화의 여운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쉽다. 한 번 더 읽어봐야 할까. #기차의꿈 |
|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 기본 줄거리는 비슷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상미가 돋보인 영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아내와 딸을 불의의 재난으로 잃게 된 한 남자의 삶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얼핏 『스토너』 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