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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by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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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읽을지 고민했다. 반인반수가 등장하고 현실에서 한 발 벗어난 듯한 환상적 요소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한 번 장강명이라는 이름 앞에서 감탄하게 되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세계를 구축하는가.<뤼미에르 피플>은 뤼미에르 빌딩 8층, 801호부터 810호까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로 이루어
"뤼미에르 피플 by 장강명" 내용보기

처음엔 읽을지 고민했다. 반인반수가 등장하고 현실에서 한 발 벗어난 듯한 환상적 요소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한 번 장강명이라는 이름 앞에서 감탄하게 되었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세계를 구축하는가.

<뤼미에르 피플>은 뤼미에르 빌딩 8층, 801호부터 810호까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표백』, 『댓글부대』, 그리고 앞으로 출간될 『아무튼, 현수동』—과 세계관을 공유하며, 각기 다른 인물들이 이 작품 안에서 교차한다. 장강명 작가 특유의 구조적 정밀함과 현실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소설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2년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자꾸만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떠오른다. 서사적 장치와 장면의 유사성이 적지 않다. 혹시 황동혁 감독이 오래전 『뤼미에르 피플』을 읽고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싶어 관련 인터뷰를 찾아봤지만,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어린 시절의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공유하는 감각—빛과 욕망, 생존과 게임의 역설—은 흥미롭다.

책 뒷편에 실린 문학평론가 정은경님의 글 중에 등장한 유하의 시 「오징어」의 한 구절,

“눈 앞의 저 빛! / 찬란한 저 빛! 그러나 / 저건 죽음이다 // 의심하라 / 모오든 광명을!”

이 시는 <뤼미에르 피플>과 <오징어 게임>의 근저에 흐르는 상징을 압축한다.
찬란한 빛에 이끌려 몰려드는 인간 군상들, 그러나 그 빛이 곧 죽음임을 깨닫는 순간조차 멈추지 못하는 욕망.

‘뤼미에르(Lumière)’는 ‘빛’을 뜻하지만, 이 작품에서 빛은 더 이상 따스하거나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다.

‘빛의 건물’이라 불리는 뤼미에르 빌딩에 들어온 사람들은 오히려 어둠과 폭력, 자본의 잔혹한 논리 속으로 침잠한다. 책의 표지는 핑크와 초록의 보색 대비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전하지만, 그 속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801호부터 810호까지의 인물들, 혹은 반인반수들은 ‘뤼미에르 피플’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혼돈과 절망 속을 헤맨다.

이 작품은 두 세계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열 편의 모든 소설들이 마치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뿌리내린 후 서로 다른 세계의 부딪힘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균형을 맞추며 버티고 있는 맹그로브 나무 같다.

인간이 짐승이 되고, 짐승이 인간을 동경한다.
돈다발로 인간을 후려치며 유희와 허무를 동시에 느끼는 재벌,
그리고 그런 모멸을 견디며 돈을 버는 서민.
세상의 어둠이 아닌 인간의 슬픔을 먹고 사는 박쥐 인간,
존재의 의미를 잃고 쥐처럼 살아가는 인간들.
작가는 비상식이 일상이 된 세계를 그려내며, 그 안에서 인간의 윤리적 경계가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응시한다.

『뤼미에르 피플』은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의 세계에는 “우린 잘할 수 있다”거나 “희망을 보자”는 가볍고 달콤한 위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냉철한 태도로 현실의 잔혹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선함의 피난처로 도망가고 싶어하는 독자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희망을 말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아마도 그 고통과 절망을 직시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지도.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삶을 정돈해 나가는 올바른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YES마니아 : 로얄 y********5 2025.1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