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저 물빛 아이 - 신대철
"저 물빛 아이 - 신대철" 내용보기
저 물빛 아이                                 신대철 한여름, 개울 건너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왕매미 울음 그치자 따가운 햇살 속에 서늘한 그늘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었는지도 모르지요, 굽은 팔 감춘 한 아낙이 검은 치마를 길게 늘어뜨리고 땅만 보고 황급히 스쳐갔습니다, 스쳐가다 얼핏 돌아서서 '혹시' 하고 말을 꺼내려다 서로 그냥 지나쳐갔습니다, 징검다리
"저 물빛 아이 - 신대철" 내용보기

 저 물빛 아이 
                              
신대철

 한여름,
개울 건너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왕매미 울음 그치자 따가운 햇살 속에 서늘한 그늘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었는지도 모르지요, 굽은 팔 감춘 한 아낙이 검은 치마를 길게 늘어뜨리고 땅만 보고 황급히 스쳐갔습니다, 스쳐가다 얼핏 돌아서서 '혹시' 하고 말을 꺼내려다 서로 그냥 지나쳐갔습니다, 징검다리 몇 개 밟고 개울 지나 다락논 논배미 지나 꾀꼬리봉 슬쩍 보고 아낙 하나 스쳤는데 지나온 길이 까마득했습니다, 그때 좌우 방향 감각만 살아 있었던가요, 텅 빈 마을이 아낙 하나로 가득 차, 아니 검은 치마가 길게 휘장을 쳐 길을 잃었던가요,
 잠시 서서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마당 앞에까지 산이 내려온 나지막한 골집 방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 어둑한 곳에 한 아이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창호지에 배어든 햇빛이 아이의 얼굴에 문살 무늬를 씌우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을 내고 기다려보았으나 그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책장만 넘겼습니다, '너, 순자지, 금방 나가신 분 네 엄마시니?' 가까이 다가가며 물으니 그 아이는 보지도 않고 어둡게 '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해 여름 내내 그 아이를 만났고 가르쳤고 무수히 질문을 했지만 그 아이는 어둡게, 간혹 해맑게 '네'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마을 한가운데 살아도 마을과 떨어져 살아와서 그럴까요, 생의 골이 너무 깊어서 골을 빠져나오는 동안 그 많은 말들이 줄줄이 다 끝나버리고 내겐 다만 '네' 소리만 들렸던 걸까요,

  칠갑산에서 가장 깊은 골은 음달뜸이었습니다, 순자 때문이지요, 누구든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그 어두운 눈 속으로 한없이 끌려들어가 나오는 길 찾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어둑해졌다 갑자기 해맑아지는 목소리 한 줄기에 매달려 나오게 되지요, 그 아이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음달뜸으로 들어갔다 양달뜸으로 나와 다른 땅에 이르게 됩니다,

  천장호수 안고 주들*돌아
  개울 한 번 건너서
  마음 짙푸르러지며 깊어지는 곳,

  저길 보세요, 그대 앞에 저 물, 저 빛, 저 깊은 물빛 아이,  
                                  
       * 칠갑산에 있는 마을 이름. 원명은 구을(九乙).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신대철 문학과지성사.)

시인은 여기이기는 하되 여기에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그곳의 의미를 시로 그려냈다.
오지의 세계.
시인의 유년이 바로 옆에 있으며,
인간도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