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인 중에는 '무종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종교심에 대한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이 '종교심은 중요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표면적인 이율배반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우선 교조와 교전, 교단의 삼자로 성립하는 교단종교와 글자 그대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자연종교를 구별한다. 그리고 외국인이 보기에 혼란스러운 일본인의 종교를 둘러싼 오해와 혼란이 바로 교단종교와 자연종교가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은 대개 자연종교의 신자들이다. 교단종교처럼 교의나 의례, 포교사나 전교사는 없지만 연중 행사라는 강력한 교화수단을 지니고 있는 자연종교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부지간에 활력과 마음의 평안을 주고 있다. 일본인들이 교단종교를 선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도 우선 이에 기인한다. 일본인들이 쉽게 '무종교'라 주장하는 것은, 첫째는 교조나 교단을 상정한 교단종교만이 종교이며 풍속이나 습관이 되어버린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둘째로 자연종교를 기반으로 해서 생겨난 종교이지 자연종교 그 자체는 아닌 신도를 자연종교로 오해하는 것이 앞서 말한 상황들을 낳는다. 후자의 원인은 근대 일본 특유의 이데올로기 조작에 기인한 바 크다. 종교를 교단종교로 한정시킴으로써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있어 공기와 같은 자연종교를 종교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상황은 종교문화를 풍습과 교의로 나누는 기묘한 논리를 낳았다. 교단 종교에 대한 두려움도 '무종교'를 자칭하는 하나의 원인이다. 즉 기독교의 원죄와 같은 일상적 사고와는 다른 사고방식과, 보편종교에 일반적인 인생의 부조리에 대한 자각의 요구는 일본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종교집단이 지니는 독특한 배타성까지 더해져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종교기피로 이어진다.
무종교는 서양인들의 무신론과는 완전히 다른, 그저 교단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실질적인 자연종교의 신봉자가 되고 교단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은 것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남북조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의 무가 가훈 연구는 이러한 신불에 대한 신앙에 유교적 덕목들이 추가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동렬에서의 강조였지만, 점차로 그 양상은 변화하는데 신불이 사람들 앞에 현현하는 것은 인·의·예·지·신의 실천을 위함이며,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굳이 종교적 의식은 중요치 않다고 가르치게 된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의 삶이 현세중심적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유고가 전문적인 유학자의 손을 떠나 중간계급에로까지 퍼져 나가게 된 것이 '무종교', 즉 특정 종파에 대한 무관심의 역사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근대국민국가 건설에 있어서 일본은 프러시아 모델을 선택하여 이데올로기적 색채가 짙은 국가로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이 택한 이념의 중심은 천황제였는데, 그를 지탱하는 것은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에 기술되어있는 천황이 신의 자손이라는 신화였다. 합리주의의 시대라고 불리울만한 근대에 일본은 무리하게 신화를 국가 원리로서 채택한 것이었다.
무리하게 채택한 국가신화는 신민에 대한 철저한 세뇌를 필요로 하였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난관은 기독교에 대한 대처였다. 메이지 정부는 도쿠가와 막부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찬 금제정책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서양과 개항 초기에 맺은 불평등 조약의 개정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천황제를 지켜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에서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 내면적 신앙의 자유는 인정하되 그것을 외현하는 것은 금한다는 방침이었다. '종교란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한다'라는 현대 일본인의 종교관의 원형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를 내(內)와 외(外)로 분리하는 정책은 우선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그 대상은 엄연히 교단종교에 국한시킨다.
메이지 정부는 더 나아가 천황을 교조로 하는 새로운 국교를 만들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는 지배층 내부는 물론 모든 종파의 다양한 이유에 기인한 반대에 부딪힌다. 벽에 부딪힌 교부성의 국민교화 운동은 이러한 반대를 피하기 위해 교묘한 궤변을 만들어내는 데 그것이 '신도비종교론'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교화를 양보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천황을 절대시하는 이데올로기의 창출은 계속된다. 신도를 신앙의 자유란 이유로 국교로 할 수 없다면 신도를 종교로 간주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가 신도는 세상의 보편적인 교단종교를 초월한 대도(大道)임을 역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근세 일본에서의 천황중심 재편을 위한 종교 정책은 교단종교와 자연종교 양쪽 모두에 극도의 왜곡과 변질을 가져온다. 명확한 종교와 교리를 가지는 것만이 종교이며, 자연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풍조가 확산된다. 국가의 유지발전만이 유일한 기준이 된다.
평범에 대한 집착은 집단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지헤로서의 평형화를 말하는 데 이른다. 무라의 전통이 내포하는 바도 이러한 내용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일본의 자연 종교 혹은 신도는 모두 '세속화'의 과정을 거친다. '세속화'란 결국 종교가 일상주의에 굴복해가는 과정이며 '무종교'라는 정신도 이 세속화와 뗄 수 없는 거리에 있다.
이 책은 다양한 방법과 각도에서 현대 일본인들이 말하는 '무종교'의 실상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었다. 읽는 도중 내내 한국의 종교와 비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두 장을 통하여 보이는 희안한 결론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분명히 아마 도시마로는 일본 종교들이 어떠한 변형을 거쳐왔고, 그것이 특히 메이지 시대의 국가신도 강화를 통해 자연종교와 교단종교에 양측 모두에 대한 심각한 훼상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종교관의 빈곤이 인간에 대한 고민의 부재임을 인정하는 듯한 서술을 했다.
그런데 다시 전통에 대한 찬미와 '평범'과 '일상'의 미덕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논리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물론 필자가 이 책 전반을 통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종교라는 주제를 넘어선 일본인론의 성격이 강하며, 그렇기에 그 자신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많은 공부할 꺼리를 던져주었다. 우선 상당부분 수긍할 수 있는 부분만큼이나 저자가 일본 특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은 상당 부분 한국이나 중국 등의 인접국의 종교와 더 면밀한 비교가 필요할 듯 하다.
또 필자가 존중해야 할 전통으로 올리고 있는 [인상깊은구절]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일본인 스스로 자신의 정신적 존재 방식을 자체 반성한다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필자의 견지에서 보면 '무종교'를 아무렇지 않게 내세우는 정신은 과거의 역사에 무관심한 '무역사적' 의식에 빠지기 쉬움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이 책은 필자 나름의 일본인의 '자체 반성'을 적은 글이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이 책에는 우리 모두가 빠져들기 쉬운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음을 한국어판 간행에 즈음해 강조해 두고자 합니다. |
|
일본인의 무종교 현상을 근대사적, 심성적 맥락에서 분석한 저작으로 자연종교와 교단종교의 구분을 통해 일상적 신앙이 유지되면서도 교단 귀속을 꺼리는 문화적 원인을 조명하고 메이지 이후 국가와 신도의 결합, 유교적 현실주의, 평범 지향이 결합해 공개적 신앙 표출이 약화되었음을 주장하며 이 현상을 단순한 무관심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 재평가하도록 유도하는 관찰력 있는 연구서다. #연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