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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갈등은 더 커져갔다. 생명을 잃을뻔한 낙뢰의 위협을 경험하고 사제가 된 그는 고귀한 성경을 곡해하고 호도하는 다른 사제들을 향한 의분이 일어났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생겼다. 고민하고 결단했다. 그의 결단은 행동을 가져왔고, 그 행동은 기독교 역사의 축을 틀어버리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성경해석의 권위를 사제만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누려야 한다는 그의 생각! 뷔텐 베르그 성당 문에 붙여진 마르틴 루터의 개혁의 의지로 성경은 특정 소수에게서 다수에게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확고했던 그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다시금 소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 개혁 이후에 생겨나기 시작한 설교자의 역할과 책임은 다시금 성경을 소수에게로 가져오는 결과를 맺었다. 다수는 여전히 소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자들은 설교자를 의지했고,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여과없이 수용하고 믿었다.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설교의 풍요로 인해 초대교회의 성도와 같이 개인이 성경을 읽고 씨름하는 일은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성경은 다시금 소수에게로 돌아갔다. 루터가 봤으면 땅을 치며 통탄할 안타까운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젠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가 개혁의 의지가 담긴 반박문을 들고 나왔다. "몇 사람을 위한 전문서적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돌려드립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지만, 아이들게서 더 많이 배운다는 권일한씨가 쓴 반박문의 제목이다. 긴 제목을 줄이면 "성경을 돌려드립니다."이다. 쉽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중요하지만 결코 심각하지 않게, 신자들로부터 성경을 빼앗은 사단의 7가지 전략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성경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서사적으로 열거한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공동체를 어떻게 만드시고 이끄셨는지, 공동체를 통해 이 땅을 심판하시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대해 풀어간다. 성경은 한권의 책이며 66권의 책이기도 하다. 숲을 보는 동시에 나무를 보는 것처럼 읽어야한다. 직접 읽고 묵상하며, 성경 자체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성경이 기록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자기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며 읽어야한다. 그렇게 말씀 자체의 권위를 인정하고 능력을 확신할때, 말씀은 역사한다! 저자가 인용한 존 블랜챠드의 말이다. "왜 사자를 보호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사자를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우리에서 풀어놓기만 하라. 성경은 사자와 같아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면, 스스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37) 저자는 개인에게 주어진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역사하는 성경에 대해 말한다. 성경을 서로 듣고 배울때, 그리고 성경 자체의 권위를 인정할때,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세우신 두 개의 거룩한 신적 기관인 가정과 교회는 올바르게 세워진다. 영국이 만든 책이 세익스피어라면, 영국을 만든 책이 바로 성경이라고 했던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성경이 공동체를 만든다. 다시 말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밭이 성경임과 동시에 공동체를 자라게 하는 양식 또한 성경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소수가 아닌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성경을 돌려받아야한고 한다. 연애를 하는 커플은 사랑의 표현을 담아 편지를 쓴다. 러브레터. 읽고 또 읽는다. 동일한 내용이어도, 똑같은 표현이어도, 그저 좋다. 읽는 시간이 행복하고 달콤하다. 달달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러브레터이다. 창조주(성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성자 하나님)과 함께 원저자(성령 하나님)를 통해 그의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책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이 성경을 달다고 했다. 꿀 같이 달다고 했다.(에스겔 3:3) 러브러터처럼 달달한 성경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되돌려진 성경. 어떻게 해야 할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씹어야한다. 먹어야한다. 언제까지? 단맛을 느낄 때까지, 내 안에서 향기로운 단내가 풍겨날때까지. |
| 성경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떤식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를 시원하게 안내해 주는 길잡이가 되는 책 입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일회성으로 생수를 사 먹기 보다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우물물을 어떻게 길러 먹을 수 있는 지, 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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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지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섬기라, 복종하라 하시는 하나님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그 ‘십자가’는 지고 싶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러면서 다른 책을 찾고 새로운 문화를 접해가면서 ‘기독교를 반박하는 논리에 무릎을 꿇’었고, ‘화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모래 위에 세운 믿음이 무너져버려’ 방황, 아니 반항을 했다. 고난주간에 만난 이 책은 그런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만나고 싶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통로인 ‘성경’을 나에게 돌려준다고 했다. 나는 성경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기에 돌려받았다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의 사랑하는 책’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읽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제는 그렇게 지켜보기만 하던 신앙인이 아닌 내가 직접 하나님의 꿀송이 같은 말씀을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온 신경세포 곳곳에 심길 때까지. 초등학교 교사인 저자는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지도하고, 성경 공부 모임과 큐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나의 모습처럼 그저 ‘어린 시절부터 무덤덤하게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성경말씀을 읽던 중 하나님을 만나면서 책벌레가 되었고, 이제는 어떤 책보다도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삶을 통해 신앙을 교육하려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책은 4장의 챕터와 장 표시가 없는 한 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 - 우리는 왜 성경을 빼앗겼는가? 2장 - 성경, 하나님이 들려주신 언약 이야기, 3장 - 성경, 이렇게 읽어라, 4장 - 공동체에 서로 말씀을 나누라’와 ‘책벌레 선생님과 함께 성경 읽기’이다. 챕터만 놓고 보았을 때는 그냥 단순하게 성경 말씀을 읽게 도와주는 책이구나, 빠르게 읽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고 서문을 읽고 첫 장을 보면서, 이 책이 ‘쉽지만 쉽지 않은, 정독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성경과 멀어지게 만드는 사탄의 전략을 소개하는 1장에서 내가 사탄에게 당하며 하나님을 잃어가고 있었음을, 그리고 이것이 나의 죄였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공동체에 마음을 쏟지 못했던 건 나 자신이었는데, 환경을 탓하며 성경을 읽지 않았고,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었다. ‘언약’을 기준으로 구약과 신약을 함께 소개하는 2장도 정독하며 읽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시작을 알려주는 모세오경과 복음 공동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복음서를 묶어 ‘언약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야기’로 소개했다. 언약이 이어지는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서와 사도행전'도 좋았다. ‘언약 공동체에 들려주신 이야기’인 시가서와 서신서는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던 시가서와 서신서가 우리 삶의 이야기이자 공동체가 함께 읽어나가야 할 책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언약 공동체에 대한 심판과 회복’이라는 주제로 묶음 선지서와 예언, 요한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멀리한 공동체에게 내리시는 심판과 그러나 언제나 회복케 하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다. 성경을 읽는 법을 알려주는 다음 장을 읽으며 ‘세포 하나하나를 전율케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기 원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내게 성경을 통해 만나주시겠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군신지 더 잘 알게 되’어, ‘기쁘게 그분을 섬기게 되’기를 소망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르게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나에게도 다가와 그 음성 들려주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성경을 읽을 때 필요한 지침들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더 깊이 있게 성경을 읽어야 함도 깨달았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고, 성경이 기록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고, 나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질문하며 읽고, 내용에 맞게 끊어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가며 길러질 깊이와 넓이를 소망하게 되었고, 알고 닮아갈 하나님의 성품을 기대하며, 그렇게 내게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이미 함께 하시는 것 같다. 성경은 그냥 내가 읽기만 하면 역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알고 겸손해져야함도 깨달았다.
4장은 ‘공동체에서 서로 말씀을 나누라’는 제목의 4장은 내게는 가장 어려울 것 같다. 많이 읽고 접하려 하지만 혼자 할 때가 많고, 나눌 이는 없다고 여겨졌는데, 스스로 모임에 참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자랄 수 없는 포도나무에 붙어 함께 자라가는 그리스도인이므로 공동체 안에 속해 열매를 맺어가고 싶어졌다. 이 챕터를 읽으며 불편했던 내 마음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큐티를 나눠주는 자매를 통해 편안해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공동체 나눔이 오늘 이 아침에도 일어나고 있었구나 싶어져서 기뻤다. 5장이 아닌 ‘책벌레 선생님과 성경 함께 읽기’라는 이름의 챕터는 짧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서신서, 이야기, 시 등 다양한 형식을 가진 성경을 형식에 맞게 읽도록 소개하고 있다. 형식에 따라 중요한 말씀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따로 장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이 부분이 또 다른 한 권의 책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다윗의 이야기나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 같은 말씀은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내용을 분석하며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 한권을 준비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니시더라도 그런 책을 만들어 주시면 나처럼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 어려운 평신도들에게 너무 좋은 길잡이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성경을 잃어버린 시대, 잃어버린 보화를 찾을 수 있는 지도가 여기 있다!’라고 쓰여 있다. 나는 지도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여행지에 가면 그 곳의 지도를 꼭 사오고 그 지도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가보지 못한 곳을 ‘언젠가는 꼭 가보리’ 하기도 했다. 지도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 지역에 직접 가서 지도를 펼치지 않으면 지도가 소용이 없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지도 삼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너무 좋은 지도이지만, 하나님이 숨겨주신 보화를 찾으려면 성경을 읽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전도서 기자는 인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자끄 엘룰은 이렇게 말했다.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이지 그를 경배하라, 그를 섬기라, 그에게 복종하라가 아니다. ‘기억하다’이다.…하나님은 노발대발하여 우리를 찾아와 자신을 강요하거나 억지로 복종케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숨어 계시며 안내하신다. 그분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그 이상으로 행하지 않으신다. 기억하라.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방황하고 반항했던 내게 하나님은 이렇게 또 조용히 찾아오셨다. 이제 그분을 더 깊이 만날 때다. 잠잠하게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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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자가 쓴 <책벌레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아이들과 글쓰기 모임을 계획하면서 참고할만한 자료를 찾던 중 발견한 책인데, 그 이상의 것을 알려준 책이었다. 스스로 ‘책벌레’이기를 자처하는 저자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다. 책 읽기를 무엇보다 좋아하고, 아이들이 어설프게 쓴 글을 통해서도 그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릴 줄 아는 참 좋은 선생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더욱이 글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통해, 그가 나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는 성경을 들고 말한다. 신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하지만, 전문성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을 듯 하다. 그 동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터득한 방법들을 평신도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풀어놓는다. ‘전문가입네’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밀함이 책의 구석구석에 배어있다. 학창 시절,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문제풀이를 도와줄 때면, 배우는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기에 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었던 바로 그 느낌이다. 원래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책이다. 그런데 어렵다는 이유로 목사의 설교에만 의존하고, 성경 읽기를 다른 신앙 활동으로 치환하며, 절대 기준이 되어야 할 성경을 상대적 가치로 전락시켜 버렸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전략이라고 명토 박아 말한다. 더 이상 사단에게 속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직접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고 초대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거나, “성경이 기록된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라”와 같은 성경독법은 성경이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성도라면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하다. “내용에 맞게 끊어서 읽으라”나 “성경을 보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라”는 대목은 독서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오랜 묵상에서 터득된 나름의 노하우로 읽힌다. 무엇보다 성경은 개인이 아닌 교회 공동체를 위한 책이기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읽고 묵상하도록 초대한다. 가정을 말씀 공동체로 회복해야 한다. 말씀을 서로 나누는 교회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개인주의적 성경독법에 익숙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고, 성경은 듣고 읽고 암송하고 공부하고 묵상해야 참 능력이 된다. 은혜 받는 방식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성경을 직접 펼쳐, 읽고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그 정수를 맛보는 비결이다. 복되어라. 다시 성경을 펼쳐 읽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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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 성경은 영혼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날카로운 칼이기도 하고, 달콤하게 속삭이며 다가오는 연인과도 같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시작해서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가르침을 받는다. 세대차이가 수월하게 말씀 안에서 극복된다. 조부모, 부모, 자녀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주야로 묵상하고 교제하다가 죽음이후 주님 앞에서 그 말씀을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듣는다.
저자 권일한 선생님은 평신도로서 성경을 가까이하며 성경에 관한 책까지 내었다. 그가 평신도로서 성경을 얼마나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지 느껴진다. 목회자가 묵상하고 준비한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서 주로 성경을 접하는 교회의 영적흐름을 그는 도전한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신 성경을 소중히 꼼꼼히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가 말씀의 권위와 성도의 믿음위에 세워진다. 사단은 이를 알기에 성경에 관련된 사람, 공동체, 땅을 공격한다고 저자는 사단의 의도를 정곡으로 꼬집는다.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때로는 매서운 상황으로 몰아가 성경을 빼앗아간다. 오늘날 교회는 전자의 보이지 않는 공격으로 성도에게 성경은 늘 곁에 있지만 친숙하지 않다. 성경이 넘쳐나고 말씀이 넘쳐난다. 감사하고 할렐루야를 외칠 일인데 한 사람 성도에게 임한 말씀은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경이 안전하게 우리 손과 가정에 있으나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 않는 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제안한다. 직접 성도가 성경을 읽고 질문하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라고 한다. 신학적 배경과 지식이 부족해도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 우리에게 답을 준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말씀을 읽고 말씀을 찾는 곳에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목회자들과 말씀공동체를 통해 성경의 진리에서 더 나아가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준다. 이 책은 또한 모세오경과 복음서, 역사서와 사도행전, 시가서와 서신서, 선지서와 예언서로 성경을 구분하여 굵직하게 성경의 그림을 잡아준다.
성경을 빼앗겼는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라. 단순하지만 여운이 있는 호소이다. 말씀공동체가 여기저기 살아 움직이길 간절히 고대한다. 힘들고 어렵다 하여도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는 살아있고 공동체는 소망이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시작된 말씀공동체를 통한 성경과의 만남은 내게 소중한 기쁨이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내 인생의 자산이요 내 자녀에게 물려 줄 영적 유산이다. 지금까지 성경과 함께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보며 앞으로 살아갈 그만큼의 시간을 가늠해본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진리를 향한 순례자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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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돌려드립니다』를 읽고 성경을 잃어버리는 것은 신앙의 토대와 뿌리를 상실하는 일이다. 성경을 소홀히 여기는 마음과 태도는 믿음의 근본에 대해 가볍게 여김이다. 저자는 성경을 소홀히 여기도록 하는 일이 사탄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신명기 6:4-5절에서 항상 말씀과 함께 살아가라는 명령과 달리, 성경을 특정한 전문가들에게만 넘겨 버린 현실을 비판한다. 연말 행사에 진행되는 축복내용이 담긴 성경구절 뽑기와 같은 외피적인 행사는 토정비결처럼 되어버린 성경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도 성경을 읽지 않는 성도들이 70%에 달하는 현실은 근본뿌리에 대해 얼마나 부실한 상태에 있는 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저자는 2장에서 성경의 각권들과 시대별로 배열하여 정돈하고 있다. 또한 장르별 배열을 통해서 구약과 신약을 분리함 없이 통일성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성경이 개인에게 주어진 메시지가 아니라 언약백성 즉, 공동체요 교회를 향한 메시지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하나님이 들려주신 언약이야기”로 요약하고, 언약의 핵심내용을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고 말한다. 언약공동체를 형성한 이야기로 모세오경과 사복음서를, 언약이 이어지는 역사로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와 사도행전을, 언약공동체에 들려주신 이야기로 구약의 시가서와 신약의 서신서로, 언약공동체의 심판과 회복으로 구약의 선지서와 신약의 요한계시록으로 정리하고 있다. 3장에서 성경을 읽어가는 좋은 방법들을 제시한다. 인상 깊게 동의가 되는 것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이다. 성경을 실용적인 방식으로 읽어내고, 내가 필요한 것을 추출하는 실용적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성역이 우리를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딴 곳으로 가지 않고 말씀에 천착하는 일을 강조한다. 성령의 이끄심과 조명을 기대하고 겸손한 자세로 부지런히 성경을 배워가는 노력도 간과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성경을 파악하고 알아가는 지침들도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다. 깊고 넓게 읽어감으로 성경의 풍성함을 누려갈 것을 도전한다. 저자는 4장에서 “공동체에서 말씀을 서로 나누라.”고 권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존하고 살아가는 교회는 공동체다. 지체로써 삶을 나누고 살아간다. 같은 하나님, 같은 신앙 안에서 말씀을 공유하고 교통하고 누린다. 모든 것을 나누되 말씀의 나눔은 하나님의 소유됨과 그리스도의 지체되었음에 대한 강력한 그림이다. 서로 듣고 배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강조는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성경을 포기하는 일은 빛을 포기하고 암흑으로 기어들어가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성경은 언약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한 신앙생활은 불가능하다. 공동체 인식에 있어 두 세 사람에 대한 이해나, 방언과 같은 은사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평자와 견해차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주변과 이웃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뿐 아니라 성경을 알아가는 좋은 지침들을 전달해주는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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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성경을 돌려 받을 때가 되었다 “성경을 돌려드립니다”를 읽고 로고스 연구원 김철휘
몇 달 전에 고등학교 친구와 연락이 되어 가끔 통화를 하곤 한다. 그 친구는 고교시절에 같은 교회에서 2년 정도 신앙생활 한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서로 연락을 거의 안했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이 된 것이다. 지금은 집사 직분을 받아 교회에서 중등부를 가르치는 교사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고민을 털어 놓았는데 성경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단편적인 지식만 전해줄 뿐이지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평신도 입장에서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좀 소개해달라는 것이다. 막상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성경입문 책들은 성경보다 더 두껍기도 하고 그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읽다 지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그 친구에게 솔직히 이야기 하고 내가 좀 더 찾아보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책 한권을 발견했다. 바로 권일한 선생님의 “성경을 돌려드립니다”이다.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앞에서 주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여졌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그런데 그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특별한 선물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일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을 보다 못해 저자는 잃어버린 성경을 되찾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성경입문서를 쓰게 된다. 먼저 저자는 우리가 왜 성경을 빼앗겼는지 7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이러한 이유들은 성경을 잃어버린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원인과 이유 없는 결과들은 없다. 위의 7가지 이유들을 하나하나씩 끄집어서 생각해보라.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러한 생각과 태도들이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와 언약의 관점에서 성경 66권을 비교적 쉽게 개괄하였다. 아이들을 위한 몇 권의 책을 쓴 경력 때문인지 성경의 각 권을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너무나 잘 정리하였다. 크게 4가지 언약이라는 키워드를 잡아서 언약공동체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의 성경개관 지식만 있어도 성경의 큰 맥을 잡을 수 있다. 3장에서는 저자가 9가지 성경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비밀이 쓰여 진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턱대고 읽는다고 해서 깨달을 수 없다. 방법과 전략이 필요하다. 저자는 9가지 방법론을 통하여서 성경의 묵상론, 해석론, 통독론, 적용론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당장 이렇게 읽어 보라! 4장은 공동체에서 말씀을 나눌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말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모든 가정의 문제는 함께 먹고, 놀며, 쉬는 말씀을 나누는 가정 공동체를 통하여 해결 할 수 있다. 또한 말씀을 나누는 공동체, 그리고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공동체가 온전히 형성될 때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를 이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저자가 직접 여러 가지 형식의 성경읽기를 앞에서 제시한 성경 읽기 방법론으로 예를 들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숨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정도면 그 친구에게 당당하게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해줬다. 오랜만에 정말 괜찮은 성경입문서를 찾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해와 적용이 없는 성경 읽기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렇게 성경을 읽어보라.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읽어보라. 그렇다면 그 성경이 어느새 점점 나에게 다가 오고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젠 성경을 돌려 받을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저 멀리의 성경을 보며 구경만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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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은 맛있다!
성경에 대해 흥미를 가져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맛을 보았을 때는 그 깊이가 너무 깊어서 풍덩 빠져들지 않았던가! 하지만 또한 얕게 첨벙거려도 괜찮지 않은가! 저자는 성경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일러준다. "성경은 '어린 양이 발목을 적시며 건널 수 있는 시냇물이며, 고래가 평생 헤엄쳐 다닐 수 있는 큰 바다다'"(24쪽) 하지만 이내 사그라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뭘 이렇게 열심히 하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닌가! 그렇게 성경에 대해서 열심을 내다가도 우리는 수그러들기 일쑤이다. 이 책은 우리가 왜 성경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는지부터 다룬다. 그것은 우리가 사탄의 전략대로 성경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1장에 그 이유를 7가지 들어서 하나하나 이 세대가 왜 성경과 멀어지게 되었는지를 말씀 속에서 유심히 살핀다. 그 이유는 성경은 우리에게 순종과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변증이 아니라 순종하는 제자를 요구한다"(37쪽), 또한 "기독교의 절대 진리는 말씀을 읽고 행하는 제자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51쪽) 이를 통해 신앙의 정의를 분명하게 해준다. "복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복음이다. 믿음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깨달음, 예수님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고백이다. 영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고백을 일상에서 살아 내는 것이다."(40쪽)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잘 소화해야한다. "씹어 삼켜 소화하는 과정을 묵상이라고 한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죄악의 뿌리가 건드려진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 민감해질 것이다."(41쪽) 그렇다. 이 책은 성경을 맛본 사람의 영광스러운(!) 기쁨을 전달해준다. #2. 이 책은 팁을 주는 책이다.
우리가 성경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팁을 제시해준다. 그것은 큰 흐름을 읽는 것이다. 그 흐름을 한마디로 하면 '언약'임을 두번째 장에서 일러준다. 두번째 장이 하나님이 들려주신 언약이야기이다. 모세오경과 복음서, 역사서와 사도행전, 시가서와 서신서, 선지서와 예언 및 요한계시록 이렇게 네 묶음으로 신약과 구약을 묶어서 풀어낸다. 이 부분이 새롭다. 구약 따로 다 훑고, 신약 따로 훑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는 이야기로, 역사는 역사로 그렇게 엮어낸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교차해가면서 풀어낸다. 이를 통해서 성경 전체를 조망하게 해준다. 너무 성경공부하듯이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사변적인 이야기만 있지 않은 짧지만 굵다. #3. 성경을 잘 읽는 비법이 있을까?
이렇게 저자가 성경을 언약이라는 큰 물줄기로 읽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저자는 3장을 통해서 일러준다. 성경은 이렇게 읽어라는 저자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직접 읽고 묵상하라,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라, 자기 관점으로 읽지 마라, 질문하며 읽어라, ... , 하나님의 성품으로 적용하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등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한다. "창세기는 내용에 따라 끊어 읽는 것이 좋지만, 서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이 좋다."(135쪽)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의 삶 전체(창12-25장)를 보아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141쪽) 그 뿐 아니라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성경에 대한 적용에서도 빛을 발한다. "성호 이익은 "자신을 새롭게 하려면 모름지기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을 만나려면 모름지기 묻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은 성령님이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계속 성령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말씀을 들려주신다."(129쪽) "교육 선진국에서는 하나씩 가르친다. '신발 앞코가 보이게 놓기'를 1년 내내 훈련한다. 그 다음 해에는 '줄 바르게 서기'를 훈련한다. ... 나는 10년간 다른 사람을 비판하려는 마음과 싸웠다. ...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게 되자, 나를 자랑하려는 마음이 덮쳐 왔다. ... 지금도 날마다 눈앞의 적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다"(143-144쪽). 저자의 솔직한 나눔에 은혜가 깃든다. #4. 성경은 공동체적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적용으로 그치지 않고 저자는 공동체적인 나눔의 귀함 또한 도전한다. 그의 시각이 균형 잡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개인이 깨달은 말씀은 반드시 공동체에서 나누고 검증받아야 한다."(153쪽) 그리고 그는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으로서 말씀의 공동체를 짚고 넘어간다. "가정에서 하는 부모의 신앙교육이 중요하다.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라. 자녀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기도하며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라.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힘쓰라."(165-166쪽)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말씀을 서로 나눠야 건강해진다."(168쪽) , "진정한 권위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흘러나온다."(170쪽), "하나님의 자녀는 홀로 말씀 앞에 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172쪽) 저자의 속이 꽉 찬 말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그런 이후에 부록처럼 서선서 형식, 이야기 형식, 시 형식의 성경 읽기의 방법을 찬찬히 가르쳐준다. 옆집 아저씨 같이, 한편으로 과외 선생님처럼~! 그 애정이 고맙고 감사하다. #5. 찰지다.
성경에 대한 묵상이야기이지만 맛이 있다. 잘 묵혀두었고, 잘 요리해두었다. 제목 <성경을 돌려드립니다> 또한 재미있다. 원래 위치로 바로잡다는 의중이, 성경의 주인이 우리 모두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식상하지 않으며 지루하지 않다. 번뜩이는 재치와 속깊은 묵상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성경의 본래 맛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맛을 돌려주겠다고 한다. 평신도이지만 성경에 대한 맛을 본 깊이를, 또한 어떻게 지속적으로 내것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도전하고 알려준다. 내공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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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에 의해서 쓰여진 성경관련 책이다. 평신도가 성경에 대해 썼다고?. 어떤이는 전문가의 시대에 적절성을 잃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일고 있노라면 전문가연 하는 이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도대체 누가 전문가란 말인가? 한권의 책을 낼 만큼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고 읽었다고 한다면 전문가라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저자는 라이센스가 없을 뿐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는 전문가임에 분명하다.
저자를 소개하는 말에서 조금 알 수 있듯이 성경에 대한 생각, 태도의 전환을 가져온 경험에서 성경을 왜 읽지 않는지 반추하고, 성경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으며 어떻게 읽으면 좋은지를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읽은 성경에서 깨닫고 알게 된 바를 나누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의 강조점은 마지막 장에 있지 싶다. 성경을 읽고 누구나가 나눌 수 있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기실 성경을 읽고 나눌 수 있는 자격자(?)들이 들으면 심기가 불편할 이야기지만 이 또한 해괴한 생각임에 분명하다. 모두가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모두가 성경을 읽어야 하며 읽은 바 내용을 파악하고서 나누는 것은 읽은 자의 자유며 특권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 저자가 수 천권을 읽었다는 말이 선전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성경 본문을 잘 읽었다고 말하는게 무슨 의미인지 다양한 배경과 자료들을 잘 소개해 놓았다. 마치 봄날에 입맛을 살리는 봄나물 처럼 말이다. 거기다가 성경을 읽는 요령을 소개할 때는 너무도 적절하게 안내하고 있음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장과 절로 구별하고 이제는 각 권의 성경에 출판사의 임의에 따라 붙여 놓은 제목이 오히려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어버렸는데 저자는 그런 것들을 잘 넘어서서 성경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그래, 맞다.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특히 신약에 들어와서 서신서를 읽을때는 편지글이라서 단박에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너무도 오랫동안 교회가 잘못 길들여(?) 놓은 책읽기의 습관을 뜯어 고칠 수 있는 좋은 충고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회람용 서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조금만 더 설명을 해 줬더라면 ..... 한 수 배웠다. 한 권의 책을 간략하게 그러면서도 중심 줄거리를 놓지치 않는 실력을 말이다. '그 책'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리라. 신/구약을 넘나들면서 내용을 갈파하는 수준은 이미 전문가 딱지만으로 명맥을 유지하려는 자를 부끄럽게 한다. 특히 계시록을 이야기할때 구약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도전받아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하게 만든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이책은 성도들이 쉽게 손에 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손에 드는 모든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을 거침없이 말했기 때문이고 그 말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경 관련책들이 넘쳐나는 때에,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게 현란한 어휘로 두께만 두껍게 만든 책들과는 분명 다르고 또 성경을 어떻게 다루며 사용해야 하는지 성경을 읽고자 하는 마음들을 헤아리며 성경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속삭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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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삶이다. 신앙에서 삶은 ‘만두속’과 같다. 너무 맛있어 보이는 만두를 한 입 베었는데 속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보라. 제대로 속은 느낌일거다. 괘씸하다. 남이 만든 만두가 그렇다면 그나마 낫다. “왜 그러냐!?”고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만든 만두가 그렇다면 어쩔 텐가. 어느 시인이 내 만두를 먹었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껍떼기는 가라!” 좀 더 솔직해보자. 왜 껍떼기만 남았는가? 아니 왜 껍떼기만 남겼는가? 만두속을 채워야하는 부담감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삶으로 신앙을 채우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어느 정도 괜찮아도 ‘생활’신앙은 뭔가 불편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을 돌려준다는 말이 모두에게 환영할 만한 말로 안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과 파란약을 먹는 선택과도 같다. 빨간약을 먹으면 가상현실을 벗어나 현실을 보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가상현실에서 계속 산다. 빨간약은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면 파란약을 먹으면 된다. 성경은 빨간 약일까, 파란 약일까. 적어도 저자는 파란약을 돌려준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빨간 약을 먹었다면 불편한 진실과 싸워야 한다. 성경이 보여주는 진실을 내 삶에 채워야한다. 채우기 위해 먼저 읽어야 한다. 저자는 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황과 문맥으로 읽기, 시간과 공간으로 읽기, 질문하며 읽기, 낯선 이야기로 읽기 등. 다양한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방법의 목적은 하나다. “스스로 읽기 위해서!”다. 읽어야 생각이 나고 생각이 행동으로 연결된다. 로고스 서원의 김기현 스승님은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 당한다.” 끌려 다닐 텐가, 끌고 갈텐가. 스스로 읽었다면 나눠라. 나눔을 통해 내 생각을 검증받아야 한다. 나눔은 말보다 듣기가 먼저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말하지 마라. 어떤 이야기든 존중하고 수용할 마음이 없다면 나눔이 아니라 일방적인 가르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나눔은 밥과 함께 나누면 좋다. 밥과 함께 사소한 수다가 깊이 있는 나눔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나눔을 통해 서로의 것을 내 것으로 채운다면 훨씬 풍성한 읽기가 된다. 저자는 왜 성경을 돌려주는 가. 내가 읽고, 우리가 읽고 싶어서다. 남이 말해주는 것보다 내가 깨달은 것으로 살아내는 힘이 큰 법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나눔을 통해 살이 붙게 되고 더 큰 힘을 가지게 된다. 이 힘으로 당신의 삶을 살아내라. 누구만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였다면, 이 책이 당신에게 “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