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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그린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고요를 그린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내용보기
1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그래서 읽었다.《1913년 세기의 여름》. 단 한 편으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50189736373).《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을 읽고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551803750).여러 인물과 사건을 종으로 횡으로 연결해가면서, 짧게, 혹은 조금 길게 쓰는 방식에 옴살거리며 읽는다. 《침묵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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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그래서 읽었다.

《1913년 세기의 여름》. 단 한 편으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50189736373).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을 읽고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551803750).

여러 인물과 사건을 종으로 횡으로 연결해가면서, 짧게, 혹은 조금 길게 쓰는 방식에 옴살거리며 읽는다. 《침묵의 마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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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그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으면 대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라고 쓴다). 그를 소개하는 가장 간단한 문구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활약한 낭만주의 독일 화가‘다.

그래도 생전에 꽤 인정받기도 했던 화가는 말년에 접어들면서 잊히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는 위의 간단한 소개 문구만으로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20세기 초반 재발견되었다. 지금은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의 그림은 봤을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적어도 그의 그림은 지금 매우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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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플로리안 일리스는 줄기차기 그의 full name을 쓰고 있다. 이례적이다. 프리드리히라고만 적는 경우는 드물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풍경화가였다. 그는 사람을 잘 그리지 못했다. 그가 그린 사람은 전체 그림에 비해 작고, 또 뒷모습이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그래서 이례적인 그림이다. 여전히 뒷모습이지만 사람이 압도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고, 또 감동하는 이 그림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책을 통해 알았다) 역시 아이러니다.


나는 이 독후감의 제목을 ”고요를 그린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라고 붙일 작정이다. 제목 《침묵의 마법》은 바로 그 ’고요‘에서 온 것인데, 시끌벅적하지 않은 적막한 풍경이야말로 프리드리히의 것이다.


그러나 정작은, ”뒷모습의 화가“가 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를 더 잘 알려주는 제목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닷가의 수도사>도, <석양 앞의 여인>도 모두 뒷모습을 그렸다. <뤼겐의 백악절벽>도 그렇다. 뒷모습을 그렸음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케 하는 묘함이 있다. 그림은 종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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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을 그리지 않은 풍경만 그린 그림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빙해>다. 이 쨍!한 그림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렇다. 날카로운 모서리의 얼음 조각들은 처절한 좌절과 함께 강렬한 의지를 보여준다. (플로리안 일리스의 책을 통해서 보면)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에게 강렬한 의지라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림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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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시대에 따라 나름대로 해석되어 왔다. 20세기 초반 낭만주의 화가로 각광받기 시작한 이후, 나치 시대에는 독일 정신을 구현한 화가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동독에서(그는 드레스덴을 벗어나지 않았다. 드레스덴은 옛 동독 지역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선구자로 찬미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완고한 기독교도로 신을 생각하며 그렸다 한다. 아마 단 한 차례도 종교화는 그리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압도적 풍경 너머에 신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림은 해석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렸든. 지금 우리가 보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역시 우리 시대에 다시 해석된 그림이다. 그는 발언권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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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일리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26.02.09.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