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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은 끝에서부터 시작된 책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난 뒤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9)'를 담아냈다고 한다. 영화 [양양]이 외면했던 상처를 찾아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것이었다면, 책 '양양'은 붕대를 풀어낸 자리에 딱지를 떼어내고 그 상흔을 되새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극적으로 풀어낸 서사를 예상했는데, 풀이는 건조했고 삶은 언제나 그렇듯 극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내 사주는 어땠냐는 질문에 아빠는 기억이 안 난다고 짧게 답했다. 서운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 그날의 인터뷰를 마쳤지만, 속으로는 터져 나오는 여러 감정으로 혼란스러웠다. 77" 결코 진심으로 혼자이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외동이 아니어서 어떤 순간들은 맺혀있다. 크레파스가 12개인지 24개(104)인지 같은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온전히 내게로 주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내 욕심이 사나운 탓에 감당할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어떤 것들은 부러웠다. 어떤 것들은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는 가끔씩 꺼내보게 된다. 잊고 있다가도 접어둔 책장을 한번 펼쳐 눈짓으로 훑어보는 것처럼. 내가 접어두고서도 접힌 곳이 생기게 만들었다는 탓을 하는 걸, 또 우연히 마주친다. 두 명의 양씨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누구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사진 몇 장으로 남은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은 괴로웠다. 이제는 없는 사람, 남은 이들의 기억에서 점점 추억도 흐릿해지는 사람을 꺼내고 덧칠해 선명하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내가 잊어가고 있는 사람도 같이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라, 가족 안에서의 여성 서사는 세대의 흐름 안에서 비슷한 면면을 보이는 탓에, '고모라는 렌즈(107)'를 통해 양양의 시선을 함께 따르며, 그저 멀리서 거리를 두고 고모의 지워짐만을 집중해 관찰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생각이 자꾸만 나에 대해 옮아가는 것이 불편했다. "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156" 무슨 이유에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고모의 존재가 지워져야 했을까 짧아진 인내심에 답부터 찾고 싶어지는 조급함을 누르며 책을 읽어야 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모(100), 숨겨진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137), 평등하지 않았던 남자친구와의 관계. 고모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었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수 없었다. 여성의 선택이 꺾여나가는 데에 스스로가 아닌 타의에 무게가 실리는 일이 그때도 지금도 여전함을 목격한다. 처음 책 안에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들이 잦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19)'는 말이 전해지는 의미가 갈수록 달라졌다. 같은 핏줄을 타고 닮은 모습을 찾았다가, 잊히고 숨겨진 쓸쓸함을, 짧아서 서글픈 생애를 가늠하다가,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살라는 경고같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고 싸우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첫번째 기록인 영화를 직접 봤다면 이 울림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아 [양양]이 너무나 짧게 스크린에 올랐다 내린 일이 새삼 아쉬웠다. 존재했으나 더는 없고, 지워졌으나 간직되어온 사람,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여성으로 대표되는 서사를 가진 사람을 한 마디의 회한으로 시작해 세상으로 되찾아오는 낯선 발견이었다. 독특한 뿌리찾기를 책과 영화로 만나보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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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My Missing Aunt)-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광주항쟁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억을 다룬 <옥상자국>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던 감독 겸 저자는 어느날, 술취한 아버지로부터 “사실은 누나가 있었어.”(p.18)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으니까.”(p.19) 라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존재 조차 몰랐던 고모가 대학 졸업식 전에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제목이자 책 제목인 <양양>은 고모 양지영과 감독이자 저자인 양주연, 두 이름을 겹쳐 부르는 말이자 나아가 이 집안의 여성들을 일컫는다. 그렇게 저자는 장편 다큐멘터리 <양양>을 만들었고, 이 영화는 제 11회 부산여성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이후 여러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다. “이 책은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p.9) 고모인 ‘주인공을 촬영할 수 없는 영화’였기에 동생인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친할머니댁에 가서 가족앨범과 고모의 책들을 살핀다. 고모가 다니던 전남여자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찾아간다. 고모의 동창들과 친구들을 만나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간다. 그러면서 어린 아버지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알게 된다. 고모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와 이별을 고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당시의 신문을 찾아 고모처럼 또 다른 교제살인으로 목숨을 잃은 익명의 여성들을 발견한다. 즉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가부장제라는 과거 속에 잊혀진 또 다른 양양들의 존재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담겼다. 주말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모이는 양씨네 가족들은 다른 집과 다를바 없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영혜네를 떠올렸다. 양씨네 가족들도, 영혜네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우리나라의 흔한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고모와 영혜처럼 숨기려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저자가 고모의 서사를 되찾아줄수록 저자와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새롭게 재정의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랑이 뭔지 정의할 수 없지만, 카메라 앞에 있는 게 잔뜩 긴장되고 불편하지만, 그런데도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고모와 할아버지와는 나눌 수 없었던 말을, 나는 아빠와 함께 영화 안에서 나누고 싶었구나.”(p.175) 2024년 10월, 용용이라는 태명의 아들을 낳은 저자의 이야기 역시, 남자와 여자로 이분화된 장벽이 더 이상 높지만은 않게 느껴져 더 반가웠다. 개인적으로는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에빙하우스의 망각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잊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책임을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인 누군가는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길임에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지 않던 연대와 사랑이라는 선물을 발견한다는 이 해피엔딩이 당분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양양#양주연#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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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주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1기 #하니포터 #서평단 양주연의 <양양>은 어느 겨울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에서 시작된 기억의 탐색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는 40년 전 자살로 기록된 고모의 존재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 선생님 인터뷰와 가족 앨범을 통해 추적하며 고모의 생애를 드러낸다. 저자는 단지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누구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여성들의 ‘잊힌 생’을 보고자 한다. 이는 기록되지 않은 삶에 붙여진 낙인과 침묵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결국 ‘고모’라는 렌즈 뒤에 비춰진 것은 가족과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착한 딸’ ‘좋은 여동생’이라는 역할이었으며,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아야 했던 한 여성의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교제살인'이나 ‘페미사이드'라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존재로 남았을 뿐이다." p.153 "기록되지 못한 그날은 기억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 죽음은 낙인으로 남았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p.156 저자는 화목한 가족에 가려진 죽음과 차별을 직시하며 가족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불편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은근히 남동생과 차별받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과거를 추적하는 일이 결국 지금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또한 고모의 죽음을 추적하며 알게 된 끔찍한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고, 모든 흔적을 없애고 이름 조차도 언급되지 않았던 고모의 이름 '지영'을 가족묘비에 새겨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 이 책은 여성 혐오 역사의 단면을 그린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답게 고모의 삶과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은 큰 호기심을 유발시키며 독자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게 만들 만큼 빼어났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불편하며 아렸지만 값진 희망과 작은 용기를 얻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삶을 보면서, 말해지지 않았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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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가 어느 날 아빠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술에 취한 아빠는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누나가 있었음을 고백하며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는 말을 남긴다. 그때까지 저자는 자신에게 고모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 통화는 가족의 서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져 있던 이름을 불러낸다. 고모를 기억하기 위한 여정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저자는 고모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기억의 잔해를 뒤쫓는다. 『양양』은 단순히 한 개인의 생애를 쫓는 내용이 아니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침묵의 구조를 해체하는 기록이다. 저자가 마주하는 것은 고모의 부재뿐 아니라, 그 부재를 통해 유지되어 온 화목하고 온전한 가족이라는 환상, 여성의 자리를 둘러싼 사회적 침묵이다. 『양양』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모가, 익명에 머물러 있는 수 많은 여자들이 그 동안 왜 기억될 수 없었는지를 묻는다. 고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작된 아빠와의 인터뷰가 점차 저자 자신의 서사로 흘러간다. 인터뷰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가족 간의 권력과 침묵을 드러내는 대화의 장이 된다. 저자는 고모의 이름을 되찾는 일을 통해, 익명 속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함께 불러낸다. 저자의 서사는 개인의 탐색으로 시작해 공동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자신과 고모, 그리고 사라졌던 여성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 가족 안에서부터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강요받을 이유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이유도 없다. 단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헤어지자고 먼저 말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지 않는다. 너무나 자명한 이 말을 여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상상해야하만 하는 현실이 무엇보다도 서글프고 분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전히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앞에 놓여진 문턱을 넘을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릴 것인가?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혹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애써 묻어둔 비밀 하나쯤은 존재한다. 그것이 수치심 때문이든, 아픔 때문이든, 혹은 그저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든, 종종 침묵을 선택한다. 저자 양주연은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빠에게서 존재조차 몰랐던 '고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수십 년간 가족 전체를 짓누를 금기였다. 왜 하필 '고모'나 '이모'일까. 책의 물음처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쉽게 지워지곤한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경고이자 그 시대가 여성에게 가했던 억압의 증거였다.
저자는 고모에 대해 알기 위해 탐정이 된다. 오래된 앨범을 뒤지고, 호적 등본을 살피며, 고모가 다녔던 학교를 찾아간다. 고모의 친구들을 만나고, 아빠를 인터뷰하며 수십 년간 잠겨 있던 기억의 조각을 맞춘다. 이 과정은 '양지영'이라는 한 개인의 삶, 꿈, 좌절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맏딸로서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그 꿈이 좌절당한 공대생 양지영. 개명을 하고 세례를 받으며 스스로 거듭나고자 했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가족 묘비에서조차 그녀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자살'이라는 낙인, '결혼하지 않은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가족의 역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자살'이라는 가족의 공식적인 기억과 달리, 고모의 친구들은 다른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충격이었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젊은 여성,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 죽음을 수치스러운 일로 규정하고 서둘러 덮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여전히 뉴스의 한편에서는 데이트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없어지고 가해자의 서사만 남는다. 저자는 과거의 판결문들을 뒤지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고모의 죽음이 사적인 비극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여성 억압의 구조적 문제임을 밝혀낸다.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지내야 했던 할머니. 부부 교사였지만 퇴근 후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했던 엄마. 그리고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자신의 이름을 뺏어갈까 두려워하는 저자 '양주연'. 이 모습은 정확히 나의 고민과 겹쳐보였다.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은 사실 평범한 여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사회의 무언의 압력이었을 수도 있다. 고모의 존재를 발견하는 여정은 결국 저자가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고리를 깨닫고, 외면했던 가족의 시간을 직시하며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과정이었다. 고모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아이에게는 시끄러운 가족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다짐한다. 아직 다큐멘터리 양양을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책으로 만난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보고 나의 이름도 잃지 않도록 붙잡아봐야 겠다. #양양 #양주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1기 #가족의비밀 #여성서사 #다큐멘터리 #에세이추천 #양지영 #기억 #가부장제 #페미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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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말을 그의 삶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겠으나, 이는 곧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자신으로서의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그의 이름이 마치 끊겨버린 길처럼, 도려내진 자리처럼 그저 흔적,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면. 포기 앞에는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는다. 나로 미루어 당신의 얼굴을 비추어보기. 지워지고 침묵된 흔적에서, 부재의 자리에서 존재의 기억을 더듬어나가기. 목소리를 불러내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를, 이름을 부르는 일. 나에게서 당신을, 당신에게서 나를 그려보이는 일. p.32 외할머니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조상이 된 영혼에게도, 원귀가 된 영혼에게도 삶의 과정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개의 언어만으로 압축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p.56 그녀들은 늘 자신들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 앞에서 문득 궁금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 결론은, 결국 내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설정된 특별함의 기준을 묻고 그 기준을 뒤흔드는 이야기에 언제나 더 관심이 갔다. 다큐멘터리 감독,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딸, 한국 여자. '남동생이 하나 있다' 한 마디면 아, 하고 누군가는 말 없이도 다 이해할 그런, 딸자식으로 자란 사람. 누이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누이로 살아온 사람. 양주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사람. '평범하라'는 압박 속에 자라온 저자의 고백은 지극히 익숙한 동시에 평범하다. '양 씨 집안 여자들은 불행하다'는데, 불행을 안고 태어나 불행하게 살았을 그 여자들의 이름은, 얼굴은, 삶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을 불행의 자리에 주저앉혔나. p.31 나는 그 말을 '정상성'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정상적으로 살아야 해, 정상적으로.'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사는 삶은 뭐고, 정상적이지 않은 삶은 또 뭘까. (...) "평범해야 해, 평범" 이라는 말은 각종 통과의례를 별 탈 없이 거치고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80년 5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 어떤 이들을 떠올렸다. p.156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오래동안 침묵으로 가려져온 또다른 양 씨 여자, 고모의 삶을 죽음에서부터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과도 같다. 관습의 이름으로 내쳐지는 것들, 사랑하지만 다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는.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독자는, 관객은, 필연히 묻게 된다. 그 많던 '평범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드세고, 조용하고, 욕심 많은 꿈을 꾸던 '여자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여성들은. 그 많던 여자애들은. 누이, 딸, 아내가 아니었던, 계집애도 딸년도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사람들은, 그 이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그들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는가. 분명 있었는데, 그 때 그렇게 살아있었는데, 꼭, 없는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p.163 애도될 수 있는 죽음과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이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과 삶이 그만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 삶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도 결코 똑같은 모양은 아니다. p.184 지금까지의 가족의 시간 속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이름, 흔적 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이름, 지영이었다. 그 이름을 지우는 데에는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사라진 이름이 다시 새겨지고 드러나는 데에는 몇 배 이상의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 이했다는 이유로, 질문조차 박탈당했던 이름의 귀환이었다. 양주연의 기록은 기어코 양양의 말에 도달한다. 현실에 후련한 결말 따위는 없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은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불편하게 맴돌 것이다. 떠나진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끊겨버린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과 주연의 기억에 이어진 우리들은 함께 상상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밀려 나거나 잊히지 않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누군가의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쉽게 가려지거나 비밀이 되지 않는" 미래를. 나의 삶에서 당신과 우리의 기억이 손을 맞잡는, 그런 미래를. p.10 두려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꽤 강력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거기에 다가가 뭉쳐진 시간과 감정을 풀어 나가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를 깊숙이 이해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진 슬픔과 만나게 하기도 한다. 과거를 헤매는 일은, 고모라는 존재를 알아 가고 내 안의 두려움을 응시하면서 여러 감정과 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p.201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새로운 세상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그 세상과 함께 나는 매일 매일 새롭고 익숙한 용기를 이어 갈 것이다. 용기는 지나온 시간과 함께 생겨나고, 다가올 시간을 향해서 걸어간다. 용기를 낸 만큼 새로운 세상이 올까? 지금 확실한 한 가지는 내 앞에 놓인 세상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고모는 금기의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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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주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술 취한 아빠가 하는 말, “아빠한테 사실은 … 누나가 있었어.” “자살했어……. 대학 졸업식 전에.” 주연은 충격과 동시에 고모라는 인물에 궁금증을 느끼고 이름이 지워진, 흔적조차 없는 고모의 존재를 밝히고자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한다. 고모의 흔적을 찾아나가던 주연은 자꾸만 고모에게 마음이 간다. 얼굴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무엇이 고모에게로 마음이 향하게 했을까?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가부장제 속 장녀라는 것. 집안의 관심과 기대는 남동생의 차지고 딸인 지영(고모)과 주연은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심지어 지영은 성적이 뛰어남에도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장녀도 아니고 남동생도 없는 사람이지만, 둘의 마음은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모른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27쪽 당연하게 불행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고모의 서사는 달라질 것이다. 66쪽 나는 기사가 여성들의 죽음을 서사화하는 방식에 반론을 제기하고, 그녀들의 죽음과 삶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매체에서 여자들을 다루는 방식이 참~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았기에 저절로 공감이 되었던 문장이다. 교제폭력, 사회적 살인 등... 세상이 변하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양양> 같은 여성 서사 다큐멘터리, 책이 계속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이자 감독에게 고마웠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여자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다. 꼭 기억할 거라는 다짐을 책 읽는 내내 이어갔다. 모르는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왠지 아는 사람 같고,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지는 이야기가 바로 <양양>에펼쳐진다. 꼭꼭 씹어 읽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책 소개를 읽으며 기대한 보람이 있었다. 읽었던 책은 다시 읽지 않는 편인데, 적어도 한번은 더 읽게 될 거 같다. 분명 생각나는 날이 올 것... 궁금하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야 하니까. 조만간 다큐멘터리도 꼭 보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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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다큐멘터리 <양양>에서 못다 한 마음, 그리고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내용뿐만 아니라 비하인드,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모두 실어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모와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촘촘하게 다룬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밤, 저자 양주연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자살한 누나가 있음을 알렸다. 뒤이은 말이 주연의 마음을 흔들었다.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으니까. 그녀는 방황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죽음을 결심할 만큼 힘들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후 보지도 못했던 고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막연한 호기심일까. 두려움일까. 당연하게 불행한 존재는 없다.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제목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물론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기도 했고, 양지영과 양주영을 합친 말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이 이름을 듣고 물이 흐르는 느낌, 익명의 여성 같다고도 했지만, 각자의 느낌을 열어줄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촬영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은 항상 자기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가 담고 싶었던 건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고모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모를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으나 질문하는 영화로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고모의 삶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 집안의 비밀을 들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를 들여다보기 전에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할머니는 평소 정상성과 평범한 삶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 생각이 설명될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고모의 시간을 되찾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고모에 관해서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첩을 펼쳐보게 되었다고 한다. 고모를 닮지 말아야 할 존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설득해 인터뷰하며 가족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으나 특별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고모의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모의 삶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남았던 어린 시절 고모의 이야기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고모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양지영'이라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고모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과거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고모의 죽음의 이유를 추적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의 목소리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고모가 이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날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고모의 시선과 목소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카메라 뒤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양양>이라는 영화의 진정한 연출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군가는 망자의 잊힐 권리를 부정하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불편해할 수 있을 지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잊힌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름을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다시 새겨놓음으로써 그 존재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그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가 다른 새로운 길목에 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