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각본 살인사건>은 의무감으로 읽었다면 <열녀문의 비밀>은 재밌어서 읽었다. 이야기는 '방각 살인' 사건 해결 이후 별일 없이 지내던 이명방이 경기도 적성에 현감으로 부임하게 된 이덕무를 도와 거짓 열녀를 색출하라는 어명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오랜만에 어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게 된 이명방은 기필코 이번에는 김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사건은 해결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더 꼬여간다. 사건은 이렇다. 적성 임 씨 가문의 장남이 병을 앓다 죽고 몇 년 후 그의 아내 김아영이 따라 죽었다. 임 씨 가문에선 남편을 따라 죽은 김아영을 열녀로 추대하며 마을에 열녀비를 세워달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열녀비를 세웠겠지만 이 건은 수상한 점이 적지 않다. 김아영이 남편이 죽은 후 바로 죽은 것도 아니고, 삼년상을 다 치른 후 집안 살림을 챙기다 갑자기 자진한 까닭을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명방과 김진은 김아영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점점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진주의 가난한 집에서 자란 김아영이 웬만한 남자들보다도 학식이 깊고 글도 잘 썼으며, 심지어 북학파 학자들이 쓴 책을 읽고 거기에 쓰인 농사 기술이나 농기구 제작법을 실제로 시도해 본 것이다. 거짓 열녀 의혹을 받던 김아영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된 이명방과 김진은 살해 위협을 받는 와중에도 철저히 수사에 임해 김아영의 누명을 벗긴다. 김아영은 실존 인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뛰어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옛사랑을 이유로 새로운 사랑을 거부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며,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안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자 몫까지 경제 활동을 해낸 능력자다. 공맹 운운하는 보수적인 남성들과 달리 새롭고 참신한 학문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배웠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부가 있으면 그 또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사람 사귐에도 남녀 구분이 없고 반상의 차별이 없었다. 김아영의 위대한 행적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임씨 가문의 추악한 면도 함께 드러나는데, 그 실체는 조선 왕조가 발 딛고 서 있던 유교식 가부장제 질서의 모순과 다르지 않다. 사람을 동등하게 보지 않고 양반과 상민,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 등으로 구분하고 크게는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부터 작게는 복식과 생활 방식까지 차이를 두고 차별을 합리화했던 조선 왕조와 가부장제 질서, 그리고 임 씨 가문의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집안의 이익을 해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면 혈육이라도 버리는 매정한 모습에서 몇 년 후 일어날 문체반정의 그림자를 미리 본 듯했다. |
|
1권에서의 밝혀진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2권에서는 하나 둘 해결이 되기 시작한다. 김진은 탐정답게 등장 인물들의 사소한 언행과 펼쳐지는 상황들에 의구심을 품으며 점차 사건의 해결책을 향해 가는데, 풀릴듯 풀릴듯한 이야기가 정말 마지막까지 가서야 종료되므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이 드러난다!
시문에 밝고, 실용적인 북학에 관심이 많으며, 하인들에게 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 그녀 김아영, 시대를 앞서간 천재직인 면모를 가진 김아영의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았을때 충분히 열녀문이 내려짐이 마땅하다. 그러나 곧바로 드러난 그녀의 비밀이 다시 사건의 중심으로 몰고간다. 그녀의 비밀이란, 남편의 죽음 후 2년이 지났는데 살해 당시 임신을 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임신 사실이 사건의 중요한 단서일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더 주변 인물들을 조심스레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김진과 이명방이 알게 된 직후 어쩌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지 모를 의원이 참혹하게 죽은채로 발견된다. 또한 상단으로부터 장세를 걷어 오던 이방과 나졸들의 죽음과 상단의 객주와 행수마저 독살 당하는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전에 이명방 또한 목숨을 위협받은적 있기에 연달은 살인사건은 김진과 이명방의 열녀문 사건의 수사를 위협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김진과 이명방은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로 추정되는 남재태를 만나며 그간 김아영이 겪은 지독한 시집살이에 대해 듣게된다. 병으로 인해 오래 살지 못할것임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져 남편과 결혼했던 김아영,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 슬픔에 잠겨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가 시댁식구들의 강요와 핍박속에서도 집안을 일으키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했음이 드러난다.
공맹의 도리가 무엇인지, 열녀가 다 무엇인지, 여자로 태어났기에 뜻을 누리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그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포기하려하지 않았던 그녀가, 오늘 날을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매순간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과, 살고자 하는 의지를 그녀로부터 배우며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