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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2일 발달장애인 이균도 씨는 아버지 이진섭 씨와 함께 발달장애인의 현실과 ‘발달장애인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도보 시위를 시작했다. 교통편을 이용하면 몇 시간 걸리지 않는 부산에서부텉 서울까지의 600km를 오로지 두 다리를 이용해 걸었다. 걸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3,000km 가량을 다시 한 번 걸었고, 여전히 그들은 걷고 있다. 꼭 장애인이 아닐지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환경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 등이 있는 곳이면 그들의 모습도 어김없이 보인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아니 한 세상에 맞서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었다. 대부분이 장애인이라고 하면 안 됐다, 불쌍하단 반응을 보인다. 나의 문제가 아닌 당신의 문제로만 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장애’라는 울타리 안에 다양한 문제들을 가둬버리고는 거들떠보질 않다보니 장애라는 문제는 내 것 아닌 그들의 것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해결책을 논하는 자리에서조차도 피상적인 이야기만이 오갈 때가 많다. 처음 균도 부자가 길 위에 섰을 때, 그들이 목표한 바를 완주했을 때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 환호가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건 이와 같은 시선들 때문이었다. 당시 이진섭 씨는 아팠다. 몸이 아픈 아버지가 장애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들과 함께 나섰다는 이야기는 일종의 신파극과도 같았다. 현실을 알리는데 그들의 시도가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영웅이 되어가기도 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이 했다는 식의 찬사. 아마도 듣는 입장에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애초에 바라던 게 자신을 향한 주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한 인격체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장애는 반짝 나타났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게 아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 자기 자식이 장애인이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 기간 동안 장애인 등록을 미뤄가며 ‘정상’의 범주에 머물 수 있길 갈망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자폐성 장애를 지닌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강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법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균도의 경우 비교적 사람들과 눈을 잘 맞춘다. 게다가 한 번 들은 것에 대해서는 잊질 않아서 어떤 부분에서는 천재가 아닐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장애 진단이 늦어졌고, 이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길어졌다. 일반인들과의 어울림이 조금은 나은 삶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일반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게 어렸을 땐 가능했다. 물론 조금은 독특하고 보살핌을 필요로 한는 아이라는 걸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지만. 문제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오로지 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는 사실이었다. 장애 유무를 떠나 각기 다른 아이들에게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릴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싶지만, 이미 견고하게 형성돼 있는 흐름을 거스르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다. 특수학교라 하여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어서 균도의 경우 그 곳에서 오히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규 교육 과정이 종료된 이후의 삶은 순탄치가 못했다. 중증 장애인에게는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각종 혜택 또한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끊어졌다. 누구에게나 힘든 게 취업이라지만 균도의 경우 그에 관한 고민을 하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여겨졌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아이. 그때부턴 오롯이 가족이 그의 울타리가 되고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장애’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드는 세상과 달리 장애인에게도 생각이 있고 삶이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하며 보낸다 하여 하고 싶은 게 없고 싫어하는 게 없으리라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균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짐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누지 못하고 끌어안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상상해보았다. 균도의 동생 균정 씨의 경우,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가족의 모든 것이 균도에게 맞추어져 있는 환경에 놓였다. 이제는 부모가 자신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음을 인정할 정도로 자랐지만, 성장의 과정 속에서 경험한 일종의 소외감은 그리 쉽게 털어낼 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삶은 더욱 막막하게 느껴진다. 이후에도 세상이 지금과 같다면 형을 감당하는 건 그의 몫이 될 것이다. 교사나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지만 형을 부양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테니 경제학을 전공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그의 말이 씁쓸했다. 이들의 쓰라린 마음을 보듬어 주는 역할을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긴 할까. 오래 전 몇 개월 짧게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함께 했었다. 5~6살 아이들이었고 마냥 귀여웠지만, 한 편으론 대화 한 번을 할 수 없어 갑갑했다. 그들의 세상에 결코 속할 수 없는 나. 아마 그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 갇혀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15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로부터 그리 멀리 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