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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읽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http://blog.yes24.com/document/8289319>로 슬라보예 지젝을 처음 만났습니다. 열다섯명의 철학자들이 영화 <매트릭스>를 각자의 시각에서 시도한 철학적 분석이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지젝의 관점을 따로 메모해두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있어 이 책을 읽게 된 듯합니다. 결론은 역시 쉽지 않은 책읽기였다는 생각입니다.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은 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해석함에 있어 그다운 독특한 시각을 담았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한 사건으로 모두 열두 명이 숨졌습니다.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꾸준하게 게재해온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테러로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젝은 “우리는 더 사고해야 한다. (…) 이 사건을 감싸는 큰 흐름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14-16쪽)”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멀리는 프랑스대혁명, 스탈린, 나치에서 현대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부르카 착용의 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인용하여 주제를 설명합니다. 다양한 인용으로 주제가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젝은 제1장 ‘이슬람교도 생활방식이다’에서 서구가 추구하는 자유주의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분석합니다. “가장 나은 인간은 신념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가장 나쁜 인간은 열정이 넘친다.(17쪽)”라는 예이츠의 말이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성격을 이해하기에 안성맞춤한 비유라고 합니다. “빈혈에 걸린 사람처럼 창백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이 충만한 근본주의자의 대립을 탁월하게 기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예이츠의 진단이 부족한 점은 테러리스트의 열정은 오히려 어설픈 근본주의자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의 우월함보다는 열등감에서 나온 충동적인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티베트 불교도와 미국의 아미시 공동체처럼 진정한 근본주의자들은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이 자신을 할퀴건 꼬집건 일체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짓도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에 정도가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두어번 집적거렸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제2장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에서는 앞장에서 다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궁지의 원인이 되는 이슬람교의 역사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갈래를 쳐 나온 유대교의 뿌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경전과 유대교의 경전을 통하여 이슬람의 교리를 분석하려 들기에 ‘기록보관소’라는 비유를 한 것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유대인들과 이슬람의 아랍인들의 가계는 모두 아브라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권유에 따라 이집트 노예 하갈 사이에서 얻은 이스마엘의 자손이며, 유대인들은 뒤에 사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이삭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둘러싼 두 여자의 갈등과 하나님이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내놓은 가부장적인 기독교 방식의 해석에서는 이 사건을 대칭적 구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삭의 후손인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에게도 무함마드를 보내 ‘사랑’의 진정한 뜻을 알렸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종교는 시냇물과 바닷물처럼 결코 합쳐질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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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도 안 되는 책을 힘겹게 읽어냈다. 철학, 정신분석학의 세계적 석학이라는 슬라보예 지젝의 저서를 둘러싼 지식인들(장정일, 이택광 등)의 논쟁에 호기심이 생겨 겁 없이 손을 댔다. 밑줄도 치고 발췌문도 옮겨 적고, 이 정도면 이해가 좀 됐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아리송하다. 역자 후기를 두 번 읽으니 좀 낫다. 본문도 두 번 읽으면 이해가 좀 될 것도 같은데, 두 번 읽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진 않다는 게 함정.
두 챕터로 이뤄진 이 책의 첫 장은 "이슬람교는 생활이다"로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둘러싼 저자의 해석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테러의 동기(반미, 사회 내 소수자로 받아온 차별, 종교적 정체성 등) 이면을 봐야 한다는 것, 오히려 테러리스트의 확신 없음(서구의 잣대에 비춰 스스로를 열등하다 판단한)이 폭력을 낳았다는 점, 자유주의가 옹호하는 가치와 무슬림이 옹호하는 종교적 가치는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슬람교도들이 우리가 만든 신성모독적 그림과 멍청한 농담을 "참을 수 없다면", 서구 자유주의자 역시 이슬람교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관행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종교 집단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생활 규칙을 공격할 때, 종교인이 그것을 신성모독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생활방식을 위협한다고 느낀다면 문제가 터진다.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에서 동성애자를 공격한 사건도 같은 논리를 따르며, 프랑스 남자와 프랑스 여자가 부르카를 입은 여자 이슬람교도를 보고 프랑스다움이 공격받았다고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34-35쪽)
이슬람교도가 "신성모독을 대면할 때 침묵하지 못할뿐더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지도 못한다면,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자를 봤을 때, 프랑스인도 종교인처럼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라는 게 본문 첫 장에서 내가 이해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젝은 지적한다. 부르카를 입은 여성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몸을 가리거나, 몸을 가리길 거부하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는데, 윤리적, 정치적 이유로도 몸을 가릴 수 있다고(가령, 성을 사고파는 풍조에 대항하고 영성을 북돋기 위해, 혹은 서구에 대항하려는 정치적 시위로서). 하지만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근본주의자"로 매도당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폭력과 같다고. (서구에서 말하는 다문화주의적 '관용'을 베푸는) "자유로이 선택하는 주체"가 등장하려면, 주체는 먼저 자기 뿌리와 전통에서 잘려나가고 특수한 생활세계에서 분리되는, 지극히 험한 폭력을 당해야 한다. (44쪽)
두 번째 장은 "이슬람교의 기록보관소에는 무엇이 있을까?"로, 유대교/기독교/이슬람 경전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헤겔의 골상학, 통속적 유물론, 사변철학, 라캉 등에 비춰 분석한다. 문제는 프로이트, 헤겔, 라캉의 주요 이론과 정의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는 건데, 지젝이 신에게 너무 불쾌한 나머지, 나 같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줄 여력이 없었다고 생각하련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슬람의 신은 '아버지' 기능이 없다는 점. 가부장적 계보가 없기 때문에 "진공 상태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기초는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적 우애"다. 그래서 젊은이가 가족이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때 이슬람교가 그에게 통한다. 이슬람에는 제도화의 원리가 없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이슬람교를 정치에 이용하기 쉬웠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동 지역에 가부장적 문화가 자리잡은 이유는 이슬람 때문이라기보다는 지역 특유의 유목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슬람 자체가 보수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했다기보다는 권력층이 정치적으로 이슬람이란 종교를 활용한 것이라 배웠기에 이 부분은 공감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힘겹게 내가 이해한 부분을 설명했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반쪽만 읽은듯한 떨떠름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내 언어로 정리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진정된다. 지적 겸손을 유발하는 지젝의 책을, 정신분석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과 이슬람에 관심 있는 분들, 어려운 이론을 일반인의 쉬운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데 재능이 있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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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나의 사건, '샤를리 에브도' 연쇄 살인 사건에서 출발한다.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 만화등을 그리면서 이슬람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다루는 프랑스 신문이다. 2015년 1월 7일, 샤를리 에브도의 본부에 복면을 쓴 이슬람의 두 테러리스트가 급습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들은 경찰 2명과 만평가 5명 등 12명을 총을 쏴 숨지게 했다.
주로 이런 식의 풍자 만화를 그린다. 위는 이슬람교. 아래는 유대교에 관한 풍자다.
지젝은 이슬람교와 서양과의 충돌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자는 선을 행하고 악한자는 악을 행합니다. 하지만 선한 자가 악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종교가 필요합니다. 근거없는 믿음이나 종교는 살상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파시즘이나 민족주의 사상들은 그런 살상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민주자유주의는 이것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지위를 유동적이게 만듭니다.(평등 등을 통해서)"
-<TV 책을 보다> 지젝 인터뷰 중에서-
이런 그들, 이슬람교 근본주의자와 서양의 민주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책에서 지젝의 대답은 명확히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지젝은 이 책을 통해 대답을 말해주기 보다는, 이러한 사실 자체를 문제삼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위해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뛰어들기도 하고, 이슬람 여자들이 쓰는 차도르를 문제삼기도 한다. 그가 좋아하는 라캉의 사상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프랑스 혁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빗대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슬람교도와 비이슬람교도 둘로 나눠볼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에겐, 너네는 여성을 차도르로 가림으로써 신체를 가리고 있다. 하지만 베일의 목적은 베일 뒤에 실제로 어떤 것이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비이슬람교도들에겐,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전통 자유 민주주의적 사고 방식 안에서 자유를 되찾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군대시절 문제아로 분류되어서 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며 헤겔 전집과 라캉을 읽었던 슬라보예 지젝. 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참여하는 철학을 표방하는 사람이다. 참고로 그의 둘째 아들은 한국광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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