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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몰리나르 지음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몰리나르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작가는 쓰기 위해 산다. 바바라몰리나르(Barbara Molinard)는 썼지만, 동시에 파괴했다. 1960년 부터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 <Viens>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찢겨졌다. 몰리나르는 쓰고 또 썼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몰리나르 지음" 내용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작가는 쓰기 위해 산다. 바바라몰리나르(Barbara Molinard)는 썼지만, 동시에 파괴했다. 1960년 부터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오직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그 헌신의 결과물은 한 권의 책, <Viens>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녀 자신의 손으로 찢겨졌다. 몰리나르는 쓰고 또 썼지만, 쓴 즉시 파괴했다. 이 강박적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쓰기가 그녀에게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파괴 였던 것은 아닐까? <Viens>에 수록된 14편의 이야기는 뒤라스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스 몰리나르가 간신히 구해낸 파편들이다.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가져간 것도 뒤라스였다. 몰리나르 자신은 아마 이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얼마나 될까? 수천 ? 수만 ?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이 14편의 이야기 뒤에는, 영원히 사라진 무수한 이야기들의 유령이 떠돈다.

몰리나르의 이야기들은 기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경험한 삶 그 자체다. 그녀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뒤틀리고, 유령 같고, 광기 어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 광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았고, 그것을 증언했다. <행복(Happiness)>은 이러한 몰리나르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바닷가 집을 구입하고 황홀한 기쁨에 빠진다. "내 집!" 그녀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삶은 경이롭다." 하지만 우리는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한다. 같은 글씨체로 쓰인 수많은 편지들, 우표가 떼어진 봉투들, 빗속을 걷는 사람들이 바다로 걸어 들어가 사라지는 광경. 클라리스의 " 행복 " 은 처음부터 균열되어 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클라리스의 현실감각은 와해된다. 그녀는 캐비어와 샴페인을 사러 나갔다가 햄과 사이다를 사온다. 그녀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조차 혼동한다. Karadec인가, Desanges인가? 마침내 그녀는 창문에서 바다로 뛰어든다고 믿으며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녀가 있던 곳은 파리의 오페라 거리였고, 그녀는 60대의 여성으로 인도에 추락한 채 발견된다.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이야기 전체를 소급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클라리스는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집"은 파리의 어느 건물 꼭대기 방이었고, 그녀는 망상 속에서 바닷가에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몰리나르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클라리스에게 그 경험이 절대적으로 "실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느낀 행복도, 바다도, 친구들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황 홀한 기대감도 모두 그녀에게는 진짜였다.

"바바라몰리나르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을 썼다." 몰리나르의 글쓰기는 표현이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전략이었고, 동시에 불가능한 탈출 시도였다.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 했을까? 그녀가 경험한 세계의 광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아니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근원적인 공포로부터? 어떻게 보면 그녀는 모든 이들로부터, 심지어 자신의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여성이었다. 이 소외감은 존재론적 차원의 것이었을 것이다. 몰리나르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세계에 살지 않았다. 그녀가 본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녀가 느낀 것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썼다. 그리고 찢었다. 쓰기와 찢기의 반복은 그녀의 실존적 투쟁의 리듬이었다. 쓰는 행위는 그 공포를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시도였고, 찢는 행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그 공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쓴 즉시 파괴해야만 했던 것일까? 몰리나르가 글쓰기를 통해 탈출하려 했던 것을 완전히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글은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내면의 공포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행복>의 클라리스는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광기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그녀가 본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놀이, 녹아내리는 버터의 폭포, 이 모든 환영들은 그녀가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 어낸 것이다. 그녀의 "행복"은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자기파괴의 서곡이다. 몰리나르 자신도 클라리스처럼 자신 만의 바다를 보았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그 바다로 뛰어드는 시도였을까? 그리고 남편과 뒤라스 가 구해낸 이 14편의 이야기는, 그녀가 마침내 익사하지 않고 해변으로 밀려온 증거일까?

<Panics>(Viens의 영어 제목)은 작은 공포들이다. 이것은 거대한 재앙이나 명백한 공포가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미세한 균열들, 현실감각의 작은 미끄러짐들, 정상성에서의 미묘한 일탈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클라리스의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한 여성이 새 집을 샀고, 기쁘다. 하지만 곧 작은 이상 함들이 축적된다. 우표가 사라진 편지들. 빗속을 걷다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주문한 것과 다른 물건들. 이 작은 공포들은 서서히 증폭되어, 마침내 전체 현실을 잠식한다. 이것이 몰리나르가 경험한 세계였다. 그녀에게 광기는 갑작스러운 침입이 아니라 천천히 일상을 침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정상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클라리스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바다로 뛰어드는 황홀함을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작은 공포들과 함께 산다. 우리의 현실감각은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몰리나르는 그 취약함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소름끼치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답다.

나는 자꾸 생각한다. 몰리나르 그녀도 클라리스처럼 바다를 보았을까? 자신만의 황홀한 도약을 꿈꾸었을까? 그녀가 평생 찢어낸 페이지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바다로 뛰어드는 이야기. 계속해서 인도에 떨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또 쓰고, 또 찢고, 또 뛰어내리는 이야기. Viens는 그 무한한 반복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14개의 파편이다. 뒤라스와 남편이 없었다면 이것조차 사라졌을 것이다.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달의 사락 p****r 2025.12.30. 신고 공감 16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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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보다 먼저 바바라 몰리나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컸다.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긴 작가라니,,🤔💭 그녀는 글을 쓰는 족족 남김없이 파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녀의 글 조각들을 발굴해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서, 이 작품은 뒤늦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그녀가 자신의 글을 모두 파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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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보다 먼저 바바라 몰리나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컸다.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긴 작가라니,,

🤔💭 그녀는 글을 쓰는 족족 남김없이 파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그녀의 글 조각들을 발굴해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서, 이 작품은 뒤늦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글을 모두 파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자신의 글이 이렇게 세상에 나오는 것을 정말 원했을까?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는 고독과 불안, 존재의 어두운 면을 아주 깊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고어함,,,)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 편 한 편이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그만큼 글 속에 드러난 작가의 내면이 어떤 상태였을지, 조금은 짐작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밤이라는 시간 속에 놓인 인물들은 타인과 멀어질수록 오히려 자신에게 더 가까워지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진 채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와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제목들 덕분에, 어떤 묵직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읽었음! 혼자 있는 밤, 생각이 유난히 많아지고 고독해지는 순간에 어울릴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나는혼자고지금은밤이다 #바바라몰리나르 #하니포터 #하니포터11기
c******0 2026.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불안하고 불친절한데 되새겨 읽게 되는 소설
"불안하고 불친절한데 되새겨 읽게 되는 소설" 내용보기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의 작가 바바라 몰리나르는 평생 글을 쓰는 족족 파기했다는 책 소개를 읽고 흥미가 일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왜 자신의 글을 남기기 싫었을까? 궁금해 서평단에 신청했다. 서문을 읽어보니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글을 없애왔는데 뒤라스의 끈질긴 권유로 1969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가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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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의 작가 바바라 몰리나르는 평생 글을 쓰는 족족 파기했다는 책 소개를 읽고 흥미가 일었다왜 그랬을까그녀는 왜 자신의 글을 남기기 싫었을까궁금해 서평단에 신청했다서문을 읽어보니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글을 없애왔는데 뒤라스의 끈질긴 권유로 1969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가 출간되기에 이르렀다작가는 1986년 세상을 떠났다.


p.11


이 책에 실린 글은 지어낸 것도 꿈을 꾼 것도 아니다이 글은 살아낸 것에 대한 기록이다그리고 살아낸 것에는 글쓰기도 포함되어 있다글쓰기는 경험이다그것은 고통이라는 여정 속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다글쓰기가 없으면 부동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나는 확신한다. (……세상에 만연한 혼란 속에도 놀랍도록 일관된 게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다그 끔찍한 얼굴과 텅 빈 얼굴 사이에서 둘을 이어주는 것은 바바라의 고통이다.


이 책에 실린 14편의 소설들은 모두 낯설다위 인용한 뒤라스의 서문에서처럼 바바라 몰리나르의 고통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넘쳐흐른다각 소설 주인공들의 불안과 공포가 읽는 이에게 전염되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게 한다기존에 읽어온 소설들과 느낌도 결도 다르다몰리나르의 소설은 불친절하다주인공이 등장하고 사건도 일어나지만 왜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는지 명확하지 않다개연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어떤 소설은 얼른 끝났으면 싶었고어떤 소설에선 살짝 기대를 품게 했다가 여지없이 뜨악했다.


소설을 읽으며 주제를의미를어떤 은유가 있는지 따지기보다 나는 작가가 궁금했다어떤 삶을 살았을까사진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남편의 스튜디오에서 15년간 일했다는데 몹시 힘들었을까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하기에 이런 글들을 썼을까허구 같지만 실재하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너무나 초현실적이라 SF적이기도 했다주인공들은 불안하고 고통 안에 있고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닿지 못한다.


머리 없는 남자의 주인공 여자는 사랑하는 머리 없는 남자에게 머리가 생기자 도망친다죽은 그녀를 발견한 남편은 사랑했다고 속삭인다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였다. “만날 약속의 주인공 X는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어딘가에서 헤매는데매일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형벌 같은 행위를 해야만 한다왜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고 벌거벗은 채로읽다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X는 그 사람을 만날 수나 있는 걸까마지막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짐승 우리중반까지 나는 희망적이었다여자 주인공에게 행운은 일요일에 쉬는 것이었으나 즐기는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그녀는 동물원 철창 안의 동물들이 슬프고 외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수치심을 느꼈다사랑이야기를 읽으며 고독을 생생하게 깨닫고 밤새 울었다외로웠던 그녀 베르트가 피에르와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불안불안하더라니 둘이 동물원에서 봤던 보아뱀을 발단으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다결국 피에르가 사고로 죽고 베르트는 미쳐갔다마지막에 그녀에게 떠오른 생각 하나로 행복해졌다고 하기에 가슴을 쓸어내렸는데마지막 두 문장에 반전이 있었다.


그들에게 보아뱀은 무엇이었을까다른 독자들은 보아뱀을 어떻게 생각할까보아뱀은 부부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트리거라고 생각했다물론 부부마다 트리거는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어슷비슷할 것이다나는 소설의 마지막 줄을 읽으며 결국 그녀는 고독했던 모습으로 되돌아 간 거라고 생각했다혼자였던 그녀가 남자를 만나 행복했다가 결국 혼자가 되어 행복해졌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어찌보면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게 아닌가 싶다그렇다면 짐승 우리는 결혼 제도인가?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l******g 202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기묘하게 아련한 소설집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기묘하게 아련한 소설집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내용보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발굴해 엮고 백수린 소설가가 우리말로 옮긴바바라 몰리나르 단 한 권의 책 국내 초역워낙 생소한 작가여서 일단 책의 시작인 (이 책을 발굴했다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서문'을 읽고, 그 서문부터 기이한 느낌적인 느낌이라 소설들을 읽기전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소설의 문장들을 시작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이 정도의 배경지식은 필요할 것 같았다.바바라
"기묘하게 아련한 소설집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내용보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발굴해 엮고 백수린 소설가가 우리말로 옮긴

바바라 몰리나르 단 한 권의 책 국내 초역

워낙 생소한 작가여서 일단 책의 시작인 (이 책을 발굴했다는) 마그리트 뒤라스의 '서문'을 읽고, 그 서문부터 기이한 느낌적인 느낌이라 소설들을 읽기전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소설의 문장들을 시작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이 정도의 배경지식은 필요할 것 같았다.

바바라는 글을 쓴다. 그리고 찢는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사람, 그녀가 (몇 달 전부터) '적'이라고 부르는 이가 그녀가 쓴 것을 찢는다. (p. 8)

지난 8년 동안 그녀의 남편과 나는 삶의 평범함을 내세워 바바라의 '적'에 맞서왔다. 우리는 글과 '거리를 두고' 그것을 적의 손이 닿지 않는 곳, 이를테면 출판사에 맡기라고 그녀에게 거듭해서 요구한 것이 폭력이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저항하면서도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었다. (p. 10)

몇몇 순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계를 떠돈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채. (p. 12)

-서문 中-

사실 나는 마그리트 뒤라스 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검색해보니 프랑스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고 혁명의 세대이자 전쟁의 생존자였기에 그런 사람이 이런 서문을 쓴 작품은 어떤 걸까 궁금했다.

지난 몇 해 동안 소설을 쓰는 틈틈이 나는 이 책을 번역했다. 드문드문 작업하면서 어떤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고, 그때마다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늘 똑같이 대답했다. "바바라 몰리나르라는 프랑스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하지만 기이하고 고통스러운데 무척 슬프고 묘하게 아름다운 소설들이에요" (p. 229)

뒤라스의 서문에 의하면 이 소설집에 실린 악몽처럼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상상도 꿈도 아닌, 작가가 '실제로 살아낸 것'들이기 때문이다. (...) 이 소설들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겪은 고통과 광기에 언어로 맞서 싸운 자전적인 기록이다. (p. 232)

여러 단편에 걸쳐 반복적으로 주인공에게 "와줘"라고 속삭이는 이는 대체 누구인가? (p. 233)

-옮긴이의 말 中-

이 책의 원제 Viens 는 한국어로 '오라' 또는 '와' '와줘'로 번역되는 단어라고 한다. 지금껏 프랑스어권 작가들의 작품을 몇 편 한국어로 번역한 백수린 작가의 문체는 그래서인지 왠지 프랑스적이었다. 그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읽었었는데 그때 내 감상평을 한줄로 하자면 '한번도 가난해 본 적 없는 관찰자의 독백' 이었다. 고급스러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하는데 진실되게 느껴지지는 않는 이질감... 

사람의 호기심이라는 것이 때로는 참 기이해서 나와 맞지 않는 취향의 작가인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작가가 극찬하는 작품은 대체 어떤 걸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차례대로 읽지 않았다. 서문과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나서도 왠지 순서대로 그냥 다른 소설집처럼 읽으면 제대로 이해를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래서 [지하 납골당]이라는 가장 마지막 작품을 가장 먼저 읽었다. 사실 이 글을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부제로 '마그리트 뒤라스가 기록한 작가와의 대화' 라는 표현처럼 이 글은 지하 납골당에서 작가가 느꼈던 경험에 대해 뒤라스와 대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과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소설이 아니라면 왜 '작가와의 인터뷰'가 아닌 '지하 납골당'이라는 소설명을 지어붙였는가?

D 죽음은 당신의 모든 이야기 속에 있죠.

M 네, 죽음은 이제 남은 유일한 놀라움이에요. 왜냐하면 삶에는 더 이상 놀랄 만한 것이 없거든요. 그래서 죽음이 매혹적이죠. 저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저는 죽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믿어요. 흥미로울 것 같은 일이요. 신앙심은 전혀 없어요. 그래도 어쨌든 죽음은 삶보다 더 나아야만 해요.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  (p. 223)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p. 224)

-지하 납골당 中-

소설의 모습을 한 작가와의 인터뷰까지 읽었음에도 감이 잡히지 않아 그다음으로 표제작을 읽었다. 표제를 삼을 만큼 이 소설집의 대표작으로 삼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그들은 방으로 와서 내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간호사인 것 같은 두 사람이 내 몸을 가죽끈으로 침대에 묶어 침대와 하나가 되도록 한 것은. 팔은 묶여 있지 않아서 두 팔을 공중에 뻗어 본다. 이따금. 그게 조금이나마 기분 전환이 된다. (p. 202)

이렇게 많은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이 가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나는 아무것도 요청한 적이 없고, 다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어떤 호의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자기들 판단에 따른 것이고, 나는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가끔 나는 그들이 모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p. 203)

여기서는 그들이 모든 것을 준다. 그런 이유에서 (잘 생각해보면) 내가 불평하는 건 잘못인지도 모른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내 방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p. 205)

만약 물었다면 나는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묻는 게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다. 내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 고통은 끔찍하다. (p. 209)

내 상태를 고려했을 때 나를 내쫓기에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 210)

"나가십시오!" 주인이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나를 밖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p. 211)

이 책의 제목이자 '작가와의 대화'를 소설로 치지 않는다면 가장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곧 제목이 된 셈이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그런데 이 상태가 되기까지의 이 짧은 몇 페이지의 장면 묘사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분위기는 대동소이하다.

자,

그러니,

이 책을 창작 소설로 읽을지 자전적 일기로 읽을지

환상 소설로 읽을지 조현병환자의 기록으로 읽을지

이야기와 분위기에 매력을 느낄지 왠지 거북함을 느낄지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고 똑같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자에게 판단의 몫이 큰 책이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이 곧 '생'이라는 작가의 환상몽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슬픔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왠지 슬퍼졌다...

Viens(오라)는 말이 결국 오지말라는 말 같아서... 혹은 제발 빨리 좀 와달라는 말 같아서...




k*****8 202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혼자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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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엮고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이라고 쓰지만 그 두 작가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프랑스 여성작가, 바바라 몰리나르의 책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편이 그녀를 설득해 이 책에 수록된 단편만을 남길 수 있었고 1969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녀가
"혼자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내용보기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엮고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이라고 쓰지만 그 두 작가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프랑스 여성작가, 바바라 몰리나르의 책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편이 그녀를 설득해 이 책에 수록된 단편만을 남길 수 있었고 1969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책이다. 열세 개의 단편과 뒤라스와 몰리나르의 대담 한 개를 모아 총 열 네 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인물들은 혼자라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머리 없는 남자, 와줘). 약사와 함께 등장하는 엑토르의 경우(잘린 손) 둥근 손을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잘라내기도 하고, 침대에 묶여 주인이라는 사람의 지시로 입에 바늘을 꽂아두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타인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직접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겪기도 하고 사다리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만 설득, 강요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에는 비극이 기다리기도 한다.(아버지의 집)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렁주렁 단 채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매는 인물들이다. 또 어딘가에 올라가기 보다는 주로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로 내려간다(잘린 손, 와줘). 자신이 왜 이 곳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택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종종 등장하는 구멍들 뒤에는 누군가 숨어서 주인공 또는 무엇인가를 엿본다(침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p.205) 이 점이 이 책 속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맨다. 친어머니 조차(잘린 손) 주인공을 박대한다. 주인공 역시 다섯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야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만 모른 척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와줘) 나타나지 않거나 손가락 만이 열쇠를 빼내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와줘>라는 단편도 그렇지만 <만날 약속>에서는 “와야 해요”,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 와줘요.”(p.97)라며 계속해서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은 마지막 편, 뒤라스와 바바라 몰리나르의 대담으로 기록된 <지하납골당>에서야 “받아들여진 느낌”(p.217)을 받는다.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납골당에서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p.223)라며 그 곳에서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p.224)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고 이 페이지는 단 두 줄을 빼고는 텅 비어있는데 그 만큼 시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이 실려있다. 하얀 종이 위에 피를 흘렸는지 그 피를 흘린 누군가가 고통스러워 한 자국이 보인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통이 담겨있다. 그 고통이 그녀에게 삶이란 흔적이었고 그것은 글쓰기로, 그리고 그것을 찢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고통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나 자신이 되어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그의 ‘혼자’라는 고통에 저항할 수 있는 독립과 길겠지만 끝이 있는 ‘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의 차례임이 느껴진다.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용기가 있는가?
f****j 202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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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파기하지 못한 단 하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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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혼자고지금은밤이다 #바바라물리나르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1기 #서평단<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는 극도로 불안한 화자들과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환상여행 같은 작품이다. 13편의 단편 모두 모호하고 강렬한 매력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 문장도 놓칠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안개 속을 걸어가지만 답답하기보다 새로운 느낌을 만끽하며 다음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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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혼자고지금은밤이다 #바바라물리나르 #한겨레출판 #하니포터11기 #서평단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는 극도로 불안한 화자들과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환상여행 같은 작품이다. 13편의 단편 모두 모호하고 강렬한 매력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 문장도 놓칠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안개 속을 걸어가지만 답답하기보다 새로운 느낌을 만끽하며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게 만든다.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잘린 손' '머리 없는 남자' '와줘' '만날 약속' 등 제목도 남다르다. 


무엇보다 작가인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는 즉시 찢어버리는 작가라는 사실. 8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곧바로 세심하게 폐기한다고 한다. 놀랍다. "다시 말해 고통의 극한까지, 의미가 그 근원의 완전한 어둠 속으로 고통의 모태 속으로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p.9)라는 이유가 언급되어 있다. 그녀에게 작품의 완성은 찢어버리는 행위까지 포함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절망감을 드러내는 것인가. 


작품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통제하기 어려운 불안과 공포에 빠진다.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거나 몸이 훼손되는 등 자신을 잃어버리고 방황한다. 오히려 죽음이 경이로운 사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깝게 존재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것이 내 안에서 차오는 것을 느낀다. 천천히 다가오고, 그것을 멈추려는 모든 노력이 헛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나의 마음, 나의 영혼, 나의 머릿속 전체를 잠식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이성이 길을 잃게 될 심연을 팔 것이다. 내 절망에 허무는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리라. 나 자신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p.80)


고통과 슬픔, 불안과 강박 속에서 삶은 존재한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흔들리며 무너져도 그런 상태로 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인생의 긴 여정 속에 더 많이 겪게 되는 우리의 어둠을 무조건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l****j 202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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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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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바바라 몰리나르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바바라 몰리나르는 평생 글을 썼으면서도 쓰는 족족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렸다는 작가, 죽음만이 인생의 유일한 경이라고 말했던 삶을 살았던 작가라고 합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이 소설책은 사라지고 싶지만 동시에 기억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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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한겨레출판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바바라 몰리나르는 평생 글을 썼으면서도 쓰는 족족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렸다는 작가, 죽음만이 인생의 유일한 경이라고 말했던 삶을 살았던 작가라고 합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이 소설책은 사라지고 싶지만 동시에 기억되고 싶은 내면의 모순된 욕망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초현실적 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정말 현실적이었습니다. 



이따금 거대한 어둠 속 회랑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지점에 도착했고, 그는 또 다른 구멍과 사다리를 발견할 때까지 걸었다. 그러면 희망이 되살아났고, 다시 허공 속으로 몸을 던졌다. 

본문 중에서

<머리 없는 남자>의 주인공은 사람들 틈에서 머리 없는 남자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고 시골로 떠납니다. 그런데 남자의 머리가 생기자 갑자기 절망하면서 도망을 칩니다. 여자의 모습에서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완벽해 보이는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비틀린 심리를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 놓인 현대 사회의 악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드러낼 때, 독자들은 그 안에서 나만 홀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는 기이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과 대지를 덮고 있던 장막은 오늘 아침 벗겨졌다. 주변의 모든 것이 감탄스럽다. 내눈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다. 

본문중에서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르크리트의 헌신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글을 끊임없이 파괴하려는 바바라와 그 조각들을 주워 모아 기어이 책으로 엮어낸 뒤라스의 우정은 꼭 한편의 드라마 같았습니다. 


책의 말미에 실린 뒤라스와의 대담을 읽다보면 두 여성이 나눈 대화가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한 백수린 작가의 섬세한 번역 덕분에 그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적어서, 너무 적어서 이렇게 신발을 버리는 일조차 그를 꽤 슬프게 만들었다. 마치 집을 느닷없이 빼앗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집은 밝고 희망찬 이야기를 건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고독하고, 병적으로 불안하며, 죽음과 가까운 이야기들입니다. 억지로 '힘내'라고 강요하는 긍정의 말들보다 '나도 이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 있어'라고 말해주는 이 책의 솔직함이 더 깊은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올 때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합니다. 




#바바라몰리나르 #나는혼자고지금은밤이다 #마르그리트뒤라스 #백수린 #프랑스소설 #서평 #직장인독서 #실존적불안 #소설추천 #밤의독서

이달의 사락 m*********s 2025.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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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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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고통스럽고 헤매이는 이야기들이다. 고어를 잘 보지 못하는 편이라 실눈을 뜨고 읽었다. 다치고 피가 난무하는 거 제일 무서워...  특히 몇몇 이야기들은 너무 가혹해서 읽는 내내 마른 세수를 계속하며 책장을 넘겼다. 제목을 보고 내가 상상했던 건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불편한 장면들,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맴돈다.바바라 몰리나르는 왜 이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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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고통스럽고 헤매이는 이야기들이다. 고어를 잘 보지 못하는 편이라 실눈을 뜨고 읽었다. 다치고 피가 난무하는 거 제일 무서워...  특히 몇몇 이야기들은 너무 가혹해서 읽는 내내 마른 세수를 계속하며 책장을 넘겼다. 제목을 보고 내가 상상했던 건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불편한 장면들,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바바라 몰리나르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그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져 있었던걸까. 알 수 없는 공간을 헤매고, 상처 입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글들을 읽으며, 바바라 몰리나르의 글쓰기에서 나의 읽기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책 읽는 거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가끔은 내가 왜 사서 고통을 받는걸까, 싶은 순간이 많기도 하니까. 바바라 몰리나르가 '쓰기'로 삶을 살아냈다면 나는 '읽기'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거라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지만 나는 더 가열차게 읽을테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읽는 내내 프란츠 카프카 생각이 많이 났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 이유 없이 주어진 상황, 그리고 그것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견뎌야 하는 인물들. 바바라 몰리나르의 이야기 속 인물들 역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상처 입고, 헤매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는,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을 품은 채 다음 페이지로 나아간다.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몸으로 견디며 읽는 일. 바바라 몰리나르의 글은 그런 읽기를 요구한다. 해석이 아닌 감각.

결국 이 책을 읽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견딤이었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마주한 채 책장을 넘기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답이었다. 바바라 몰리나의 글 앞에서 나는 해답을 찾지 않는다. 다만 상처 입은 채로 계속 나아가는 인물들처럼, 나 역시 읽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읽기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감내하는 무한한 헤맴이다.


새로운 법이 통과된 이후 엑토르는 동생이 붙잡히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타고난 친절함이 이미 그를 유죄로 만들었다. 미덕과 선행은 이제 공공 모독죄로 처벌받았다. 모든 사람은 고귀하고 기사도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이들을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소수가 모범을 보이려 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p. 40_잘린 손

그녀는 커피를 좋아했지만 거의 마시지 않았다. 밤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설쳤고 공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형편없는 맛이었으며, 아침에는 너무 졸려서 커피 한 잔을 내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커피 한 잔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그녀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일어나서 신문 가판대에 책을 사러 나갔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오직 서로를 위해, 서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그토록 깊이 빠져드는 일-그것은 사랑 이야기였다-은 자신의 고독을 너무도 생생하게 깨닫게 했고, 끝내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덮어버리고 밤새도록 울었다. 이제 그녀는 일요일 오후 같은 이런 때가 아니면 커피를 마시는 일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p. 132_짐승 우리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피에르는 동물원을 걸으면서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을 이번에는 느끼지 못하는게 의아했다. 감금된 동물들을 보며 새롭게 느낀 슬픔이 그의 즐거움을 망쳐버렸다. 전에 그는 감옥에 갇힌 동물들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깨닫지 못했다. 이제는 그 처지가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p. 137_짐승 우리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에는 총 13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글은 '잘린 손'과 '짐승 우리'.




*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k*****5 2025.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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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고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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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은, 책을 고르는 취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낯익은 작가의 책을 고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에 마음이 간다. 이 책 역시 온전히 내 취향만으로는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린 작가에 대한 애정이, 그가 번역하는 작품은 어떤 느낌일까로 이어졌기에 읽기 시작한 책,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이 엉망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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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은, 책을 고르는 취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낯익은 작가의 책을 고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에 마음이 간다. 이 책 역시 온전히 내 취향만으로는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린 작가에 대한 애정이, 그가 번역하는 작품은 어떤 느낌일까로 이어졌기에 읽기 시작한 책,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이 엉망진창이고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어찌 보면 이런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 법도 한데, 조금도 그렇지 않은 건 이것들이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가 아닐까? 작가가 “실제로 살아낸 것”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여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나는 이전보다 덜 쓸쓸해졌다. 매일 ‘이게 맞나?’ 고민하고 방황하며 헤매고, 좌절하면서도 어찌저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최애 단편을 하나 고르는 게 어려웠지만 결국 첫 수록작인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첫 만남의 강렬함이 컸고, 마지막 문단까지 다 읽고 나서는 그녀에게 나를 투영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쌓이면 사는 게 더 쉬워지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순진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매일 삶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다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를 불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하루를 그리고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뒤돌아보게 되었다.

 책 속 주인공들은 ‘그렇게까지 한다고?’싶을 정도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저 정도면 포기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도 다시 일어나 시도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참담하다. 손에서 힘이 빠져 허공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폭소를 들어야 했던 「아버지의 집」의 ‘나’. 이유도 모른 채 온갖 고통스러운 행동을 견뎌왔는데, 그게 최선을 다한 준비였다는 말과 함께 갑작스럽게 밖으로 밀쳐져 자유를 강요당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의 ‘나’. 이렇게 하나씩 나열할 필요가 있나 싶다. 책에 담긴 13편 모두 같은 이야기인 걸.

 솔직히 얼마나 열심히 사는게 맞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노력 끝에 만나게 되는 것들이 이렇게 참담한 현실이라면 뭐하러 최선을 다하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 속 주인공들만큼은 아니겠으나 나 역시 또 한 번 힘을 내서 하루를 살아가겠지.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서 울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벌떡 일어나 세상 속으로 걸어가겠지. 그건 아마도 이것들이 내 인생이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은 그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나, 어쨌건 내가 만들고 있는 삶이란 자각이 있으니까.
 
 
*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n********e 2025.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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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나쁜 꿈을 꿀 것 같다고. 그곳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해요. 나쁜 꿈을 꿀 것 같다고. 그곳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내용보기
해가 저물도록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적이 있나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추방된 악몽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낯선 태양, 영원처럼 늘어지는 순간들. 착란과 공허, 문과 벽을 반복하는 미로는 마치 자가포식의 광경처럼 느껴진다. 주저없이 도래하는 물음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몹시도 적대적이고 혼란스럽다. 불안과 침해의 공포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인물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말해요. 나쁜 꿈을 꿀 것 같다고. 그곳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내용보기

 해가 저물도록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 적이 있나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추방된 악몽을 그리워한 적이 있나요. 낯선 태양, 영원처럼 늘어지는 순간들. 착란과 공허, 문과 벽을 반복하는 미로는 마치 자가포식의 광경처럼 느껴진다. 주저없이 도래하는 물음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는 몹시도 적대적이고 혼란스럽다. 불안과 침해의 공포가 도처에 널려있으며 인물들은 시작도 끝도 없이 헤매고 부딪히다 모든 것을,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초월-무아에 갇혀 박제된다. 충격과 비명, 전율, 환희의 비약.


 p.58 남자는 이제 머리를, 진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여자는 공포로 얼어붙은 채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연인, 자신이 연인이라고 믿었던 그가, 바로 그 연인이 다른 이들의 세계, 적대적이고 기묘하며 자신이 속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졌다. 어두운 절망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눈물을 삼키며 여자는 비틀비틀 헛간 밖으로 나왔다.


 p.81 남자는 작은 열쇠를 막 꺼낸 참이다. 여자에게 밝게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남자는 돌아서서 여자가 앉아 있는 바로 앞 인도 가장자리에 세워진 커다란 자동차 문에 열쇠를 꽂았다. 남자는 차에 올라타 시가에 불을 붙이고 시동을 걸더니 그곳을 떠난다. 여자는 차를 몰고 도망치는 남자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야기가 그려내는, 아니, 그 자체인 실존적 공포는 거울상이 되어 독자를 덮쳐온다. 곳곳에 도사린 어떤 근원, 아니, 차라리 시원에 가까운 두려움이 끊임없이 일렁인다.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헤매고 헤매도 절대 도착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는 독자를, 나는 너를 질서에 편입하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어떻게 이 모든 이야기를 스스로 없애려 했을까. 이 이 풍요로운 절망에서 내쳐지는 순간, 그래, 마지막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바로 그 순간. 비명을 지르세요. 아, 안돼! 여기서 끝이랍니다. 문이 닫힌다. 안돼, 안돼!


 p.204 놀라운 것은 모두 내게 아무 말도 아무 설명도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여기에 있나요? 얼마나 오래 있었을까요? 영원히 여기 머물러야 하나요? 여기 오기 전에는 살아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질문을 해도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p.210 "우리는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든 걸 준비해드렸습니다.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제 가도 됩니다. 일어나세요. 출구까지 동행하겠습니다." (...) 주인이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나를 밖으로 밀쳐내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환상과 현실을 과감하고 천연덕스럽게 뒤섞는 서술은 일면 열기에 들뜬 광인 내지는 트랜스 상태와 비슷한 환희와 장광설을 닮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광기의 표출로만 읽을 수는 없다. 뒤라스의 말처럼 그의 글은 상상도, 꿈도 아니다. 모든 악몽과 불안은 무엇보다도 첨예한 살아냄, 그 기록 자체다.


 이 잔인하고 신경질적인 세계는 어째서 이다지도 아름다운가. 속절없이 벌거벗겨지고 나동그라지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소외, 충동, 파괴, 불가해의 무아지경. 처음 읽은 날 밤, 의식의 문턱에서 떠올린 말을 다시 적는다. 나쁜 꿈을 꿀 것 같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지.


 p.12 인류는 결함투성이다. 도시도 결함투성이다. 교통수단은 형편없다. 우리가 그것을 놓치거나 그것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몇 순진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이 세계를 떠돈다.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채.


 p.64 드디어 오늘, 내게 벌어질 일들을 일기에 적어두겠다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하면 훗날 그 일들을 정확하게 되짚어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이러한 시도는 내 생각을 약간이나마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 이 될 것이다.

오늘은 8월 15일이다. 나는 대합실에 앉아 가본 적은 없지만 직감이 맞다면 아주 아름다울 것이 분명한 어느 나라로 데려가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s*****7 2025.12.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