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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따라 걸으며 엿본 티베트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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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에는 한계가 없다. 치안이 불안하고, 심지어 삶에 필수적이라 할 공기층이 희박하다 하여도 사람들은 그 또한 도전이라 여기며 다가선다. 그렇게 열심히 삶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직접 닿을 수 없는 곳이 부쩍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에겐 티베트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객관적인 조건이 허락하더라도 주저하다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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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에는 한계가 없다. 치안이 불안하고, 심지어 삶에 필수적이라 할 공기층이 희박하다 하여도 사람들은 그 또한 도전이라 여기며 다가선다. 그렇게 열심히 삶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직접 닿을 수 없는 곳이 부쩍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에겐 티베트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객관적인 조건이 허락하더라도 주저하다가 적당한 때를 놓치고야 말 것이다. 한때 번영했다고는 하나 사람은 현재를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한다. 지도 상에서 티베트는 중국일 뿐이다. 정치적 경제적 힘의 논리가 세상을 좌우하다보니 감당해야만 하는 시련이다. 각종 공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티베트는 정체성 또한 잃고 있다. 역사도 힘 있는 자가 쥐고 뒤흔들 수 있는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아직은 충분히 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상상 이상의 자원이 묻혀 있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많은 이들이 티베트를 꼽는다. 몇몇 곳은 이미 인간이 제 능력을 보이려는 욕망에 의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그 부가 원주민들에게 돌아가면 좋으련만 티베트는 한족 세상이다. 한족이 돈방석에 앉는 와중에도 티베트 인들의 삶에는 변함이 없다. 빈부의 격차 자체가 원래 씁쓸하지만 티베트 고원에서 만나는 현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래도 일단은 그곳이 궁금했다. 알지 못한다는 건 곁다리로 들은 어둔 현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하늘길을 따라 라싸, 카슈가르까지 이른 저자의 여행길을 따라나섰다. 책장만 넘기면 저자의 시선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날로 먹는’ 행위다.

생각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 있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티베트의 전형적인 풍경이었다. 어디에도 문명의 흔적이 묻지 않은 듯 대자연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부디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닌 자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비되게끔 사람들의 모습은 궁핍 그 자체였다. 옷은 몸에 걸쳤을 뿐, 어찌 보면 누더기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만치 낡아 있었다. 그것은 가난이 티베트 사람들에게 선사한 현실이었다. 그들의 세계관은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가난히 맞서는 게 상식이라 여겨온 나로서는 그들이 감당하는 오체투지 등이 상당히 의아하게 느껴졌다. 현실은 지난 생의 업보에 따른 것이다. 지금의 가난과 나라 잃은 설움이 지난 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티베트인들은 다분히 순종적이었다. 현실을 바꾸려고 들기보다는 다가올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게 그들에겐 더 중한 듯했다. 스스로를 불태움으로써 현실에 저항하는 이들도 최근 들어 급증했다. 저자 또한 여행 도중 뜻하지 않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만나 일정이 꼬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왠지 스스로를 바치는 행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저항은 아닐 것만 같았다. 세속적인 시선을 하고 평해서는 안 될 티베트인들의 내공이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엔 어쩌면 책의 기록이 잊혀진 과거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티베트는 아름다웠다.

앞으로 티베트가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 여행의 기록을 좇으며 내 머리는 생각하기 바빴다. 중국의 거센 물결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과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거는 정도까지는 허락이 된다 하여도 늘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국 공안의 시선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독립은 요원해보였다. 이미 많은 부분 한족의 삶이 스며들었고, 앞으론 그 정도에 더욱 가속도가 붙으리라는 게 자명하기에. 하지만 그들의 평온한 마음만큼은 부러웠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티베트 인들의 삶은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른다. 요즘 어렵잖게 들을 수 있는 단어인 ‘웰다잉(well-dying)’이 티베트 인들에겐 특별한 게 아니다. 그들은 이미 삶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것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수치로 표현되는 현실의 눈을 하고 티베트 인들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외려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게임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었다.

 

q*****2 2015.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