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울 정도로 우경화된 한국 사회에서 그 현실을 바로 인식하게끔 해주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씩 강도를 높여서 글을 쓰는 진중권을 보면, '아니, 이 사람, 이러다 잡혀 가는 거 아냐?' 하고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사실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며 차분히 논증하는 여타의 좌파들과는 달리 그는 기득권층에게 대놓고 '막말'을 하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독자로서는 통쾌하고 좋기만 하니. 하하.)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 <시칠리아의 암소="">는 가장 읽기 편하고 쉬운 글로 구성되어있다. 주제도 꽤나 다양해서 골라 읽는 재미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이 아니 좋을쏘냐. 나는 가끔씩 보이는 관심없는 주제의 글들을 읽으며 뇌의 주름을 팍팍 잡았지만 그러기 귀찮으신 분들은 관심있는 글만 읽으셔도 무방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읽으며 저자에게 가장 감동한 부분은 바로 그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부분이다. 페미니스트를 가장한 마초를 하도 겪어서 그런지 저자의 이러한 솔직한 고백은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그래, 페미니스트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진중권만큼만 되어라!시칠리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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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뒤집기와 비틀기의 대가다. 물론 이러한 수사법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서 나온다. 가령, 저서들의 제목부터가 비틀기의 일색이다.<시칠리아의 암소:한줌의="" 부도덕="">은 푸코와 김현 이외에도 아도르노의 <한줌의 도덕:상처입은="" 삶에서="" 나온="" 성찰="">을 뒤집어 놓았다. 아도르노 역시 다양한 문화적 소재의 단편속에서 파시즘의 허위를 폭로했다. 진중권의 다른 저서<폭력과 상스러움="">도 마찬가지다. 진중권의 매력은 첫째, 독일 프랑크프루트 학파를 비롯하여, 푸코니 데리다니 소위 요즘 학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구 철학의 자기식 수용과 자기식의 실천에 있다. 따라서 그의 논증은 치밀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두번째 매력은 모국어를 부리는 그의 실력에 있다. 그의 문장은 정확하면서도 세련되다. 그래서 또한 잘 읽힌다. 세째,그의 매력은 윤리적이라는 거다. 그는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자율적 개인이 되기 위한 도덕적 책임을 안다. 그러므로 그의 독설은 분노의 방만한 감정적 폭발이 아니다. 그의 독설은 충분한 근거와 합리성을 견지한다. 모처럼 정말 재이나는 글을 만났다. 그래서 나도 그의 팬이 된다. 다들 비슷한 의견이겠지만, 진중권의 저서 중에서도 <폭력과 상스러움="">과 <시칠리아의 암소="">는 겹치는 논의가 많다. 이왕이면 <시칠리아의 암소="">를 권한다. 왜냐하면 진중권의 보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작업의 정당성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진중권을 읽는다. 고로 나는 짜릿하다". [인상깊은구절] 선포에서 논증으로, 그게 진보다.시칠리아의>시칠리아의>폭력과>폭력과>한줌의>시칠리아의> |
| 진중권은 한국사회에서 별종이다. 확실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또한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처럼 텔레비젼에 나와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에 열변을 토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펜을 휘두를 뿐이다. 이 책은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자를 알린 기념비적인 책이다. 내용이 새로워서가 아니다. 이른바 잡글을 쓰며 살겠다고 작심하고 쓴 글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은 진중권을 본받아야 한다. 겉으로는 그럴 듯한 말을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자리에 연연하는 지식인이 좀 많냐? 그러나 진중권의 말처럼 매일 밤 10시까지 연구실을 지키는 교수도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런 사람이 너무 적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의 결심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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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논객, 진중권이 전하는 사회 부조리 비판의 총집합
그의 눈에는 이상하고 우스운 일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참 많이 일어난다.
정치하는 자, 글 쓰는 자, 언론하는 자. 빨갱이가 좋은 자, 빨갱이가 싫은 자, 페미니스트인 자, 페미니스타가 아닌 자...... 이런 '자'들이 한데 엉켜 싸우고 질척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과 이들이 자신을 위해 내세우는 논리들. 진중권의 눈에는 참 기이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진중권은 이 광경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탄탄한 철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 낸다. 이 자들의 심리는 어떤 상태인지, 그 안의 욕망은 무엇인지, 어떤 사상과 사상이 충돌하여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는 누구 편인지.
그는 '중용'이라는 비겁한 단어에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각각의 글 속에서 언제나 어떤 한 쪽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힘이 있고, 그래서 공격도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사위를 던지면 1에서 6사이의 숫자가 나온다"고 하나마나한 예측을 내놓는 것이 아니다. 우연을 포함한 판 속에 뛰어들어 게임을 하는 것이다. 왜 ? 현실은 필연과 우연이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사는 자는 자기가 쌓은 모든 지식을 동우너해 과감하게 배팅을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상아탑의 글쓰기와는 다른 잡글의 원칙이다. 어떤 의미에서 잡글은 현실에 대해 학(學)보다 더 구체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스스로의 글을 '잡글'이라 칭하며, 최선을 다해 현실을 논증하려는 진중권. 100% 논증할 수 없는 현실을 논증하려 노력하기에 그의 글은 언제나 2%의 약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냉소적인 문투뒤에 감추어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순수한 애정은 그런 약점까지도 수용할 수 있게 우리를 설득한다. 그래서 진중권의 '잡글' 모음집, <시칠리아의 암소>는 그의 어떤 저서보다도 잡글스럽지 않고, 진중권스러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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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란드 러셀의 환생인가? 처음 진중권의 글을 접한 나의 느낌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연구소에서 추상적인 말들을 기품있게 발언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때, 러셀은 80노구를 이끌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진중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최근 일년간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오가며 무명인 네티즌들과게시판에서 몸소 토론하는 모습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명저라 손 꼽히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와 경향신문,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등에 실리고 있는 그의 현실 참여적인 글쓰기는 많은 이들의 반향을 얻고 있다. 패러디, 조소, 풍자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한국 사회의 극우 기득권 세력과 그 안티 세력이 지니는 유사 파시즘적 경향을 철학적으로 규명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이전 그의 저작에 비해, 비트겐슈타인식의 철학적 논증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 올렸던 글들을 모아 만든 단행본이니 만큼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보였던 통일된 주제의식은 추상적인 "진보"라는 단어 외에는 피부에 쉽게 와닿지 않는다. 저자는 짤막 짤막한 글들의 묶음인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 이곳 저곳의 몰상식을 폭로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있다. 진중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 그의 호흡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일독을 권유하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지극히 주관적인 스타일이 포착한 내용도 보편적이며 사회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말하자면 세계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 동시에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주관성과 보편성의 이 모순적 결합이 바로 미적 판단의 고유한 특징이다. 거기에 또한 미적 판단의 인식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스타일은 곧 사람이다. 스타일의 독재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만들어버린다. 보편에 대한 이 개별의 기여를 막아버린다. 미셸 푸코는 자기를 배려할 줄 알았던 고대인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가운데 그들이 글쓰기를 존재미학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글쓰기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미적, 윤리적으로 조직하는 존재미학의 수단이다. 나 역시 내 글쓰기를 그렇게 이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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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다, 읽고 싶다 생각만 한 채 흐른 시간이 두 달, 책 한 권 끝까지 읽기가 힘겨우리만치 바쁘고 정신 없는 하루 하루를 보냈다. 작년 11월 말에 한꺼번에 구입해둔 책을 겨울방학 끝자락에 이제야 읽었다. 진중권의 글은 개인적으로 나와 잘 맞아서 읽기 좋아한다. 이 책은 그가 욕 먹을 각오로 여기 저기에 게재했던 신랄한 비판글들을 모은 책이다.
다른 책들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진중권의 책 제목은 책 내용을 함축한다. "춤추는 죽음"은 고대에 나타난 '죽음의 춤'이라는 소재 이후에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들에 대해 다루고 있고 "성의 미학"은 그림에 나타난 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의 "시칠리아의 암소"의 상징적 의미를 알려면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 개념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시칠리아의 암소는 아테네의 명장 페릴로가 만든 사형기구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형기구에 의해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페릴로 자신이었고 그가 그 기구 안에 갇혀 내는 신음소리는 마치 암소의 울음소리 같았다고 한다. 저자가 시칠리아의 암소를 끌어와 제목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창조주까지도 부정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우리 사회를 비판하겠다는 결심 내지는 선전포고 같은 것이다.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비판에 대한 비판, 부정에 대한 부정의 태도는 어쩌면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다시 복제하는 현대 미학의 방법론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제 '한줌의 부도덕'도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부도덕한자로 '찍히는' 한이 있어도 해야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가 엿보인다.
아마 여러 군데에 오랫동안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서 주제별로 정리한듯 책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한줌의 부도덕'은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모습들(특히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에 대하여, 2장 '너희 안의 파시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정치계의 파시즘적 요소들에 대하여, 3장 '네게 거짓말을 해봐?'는 정언유착에 찌든 조선일보를 위시한 언론계의 횡포에 대하여, 4장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는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5장 '아름다운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 사회가 잊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6장 '정신, 유희, 구원'은 글쓰기와 관련하여 저자가 견지하고 있는 태도나 사고방식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1, 2, 3, 4, 5장은 우리 사회에 대입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와있어 비교적 쉽게 읽히는 반면, 6장은 진중권 자신의 글 세계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면이 있어서 '근대적인, 너무나 근대적인'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
진중권에게는 읽기 쉽지만 심오하게, 무거운 소재를 가볍게, 사소한 소재지만 있어보이게 글을 쓰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의 글 속에는 촌철살인할만한 위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가히 최고의 독설이라 할만 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공감한다면 속 시원해 피식 웃으며 읽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2000년에 초판이 나온 시사적인 이 책이 과연 소장가치까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진중권의 논리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독설을 듣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학생들은 열심히 읽는다면 논술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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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사람들이 누구를 보면서 살아가는가에 따라 몇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사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늘 살피며 사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리하며 사는 사람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으나 큰 맥락으로 보아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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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를 처음 본건 당대비평에서였다. 그는 거기서 NL과 PD의 텍스트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논리 있고 정확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해체해주었다. 그 뒤로 난 그의 팬이 되었고 그의 책을 몇 권 사게 된다. (아직 미학 오딧세이는 못 봤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그가 단독으로 쓴 책 중에 가장 최근의 책이 바로 이 ‘시칠리아의 암소 : 한줌의 부도덕’일텐데 여기저기 써 두었던 글을 잘 모았다고 생각된다. 똑똑한 사람이 쓴 글이니 배울 것도 많고 (그 논거라던가 인용구) 문체도 쉬운 편이다. (어려운 책은 싫다) 그렇지만 절대 가벼운 책만은 아니다. 그것은 숱한 독자들이 증명하는 바다. 가볍게 웃고 씹고 비꼬고 있지만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그 핵심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애정을 가지고 풀어내고 있다. 그의 글을 자주 읽으면서 나는 서서히 ‘조국’과 ‘민족’의 대한 애정의 물도 빠지고 약간 개인주의자가 되는 기분도 들지만 어떠랴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개성과 권리와 인권이고 그 이상의 것은 모두 허울인 것을.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그 한줌씩의 부도덕이 우리 모두를 부도덕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바라지도 않는데 말이다. 한줌씩 들어내고 청소하자. 그런 잔재를 쓸어내야 우리는 비로서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지금은 탈근대라고 하는가? 아직 우리는 근대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인상깊은구절]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인 결사체. 그것은 별자리를 닮았다. 난 거기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시민들이여, 세속의 어둠을 배경으로 외로이 빛나다가도 다른 별들과 합쳐져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가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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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은 최신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논쟁하며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본인은 그러한 행동과 함께 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의 모습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방송과 기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진중권의 모습은 싸움닭 바로 그 자체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미학에 대하여 글을 쓰는 진중권의 모습이 그의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생각과 실천들이 진중권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보다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고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문제제기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그의 존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그동안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발표를 했던 글들을 모은 ‘시칠리아의 암소’는 그가 발표한 미학에 관한 책들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미학에 관한 책에서의 그의 글은 되도록 차분하며 학문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느끼게 되지만(현실과 어떤 연결점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를 해서 설명하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미학과는 거리가 있는 사회 / 정치적인 글들에서는(그의 표현으로는 ‘잡글’의 경우에는) 그의 글을 통해서 진중권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게 만든다. 냉소적이고, 유쾌하며, 신날하고, 공격적이며, 위선에 대한 조롱을 느끼게 만들며, 때로는 감상적이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를 비평하고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김규항, 박노자, 홍세화 등등) 아마도 글을 통해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글쓰기에서 하나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면 진중권은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자기에의 배려’인 것일까? 조금은 기억에서 멀어진 사건과 이슈들에 대한 글들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근본적인 질문과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미 잊혀지고 있던 일들과 문제들을 새롭게 환기시키며 글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롱기가 가득하지만 유쾌함도 함께 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글도 써보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글들이 어디에 실렸던 글들인지 출처가 불명확해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
| 대통령탄핵과 총선을 거치면서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각종 토론프로에 등장하는 진보와 보수(라고 자칭하는) 세력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던 최근이다. 이 이야기는 진중권씨가 시사문제에 대해 짤막하게 논평한 것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본인 자신도 이야기 자체가 중구난방일수도 있겠다라고 서문에서 밝혔지만 그것은 겸손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 이 책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수와 진보중 어느것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저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인 쪽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책에서는 수구세력과, 안일한 지식인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는바 내가 이런종류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자의 생각에 많이 동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개인의 학연 지연에 얽메이지 않고 그와는 별도로 본인의 성향에 대해 표현하고 다양한 개인의 의견들을 펼쳐나갈수 있는 성숙한 사회는 언제쯤 이루어 질는지. 언론을 쫓아다니지 않고 , 여론과 언론을 선도할수 있는 지식인 사회는 언제쯤 만들어질는지 말이다. 보수계열의 책을 읽는다면, 그에 또 수긍할 나일런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확실한 논점을 가지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것은 통쾌하다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