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20세기 초 아일랜드 더블린 시민들의 정신적 마비 상태를 냉정하게 표현한 단편소설이다. 단편이라 아쉬웠지만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희망없는 일상, 종교와 정치의 부패, 좌절된 개인의 욕망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표현했다. |
| 펭귄 마카롱 시리즈입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데 정작 그의 작품은 제대로 읽은 것이 없어서 이번에 도전합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 그리고 더블린 사람들이 더블린 삼부작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아일랜드는 정서가 우리나라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지루하고 어려운 내용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더블린 사람들의 생활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두 작품도 도전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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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라는 유명한 작가를..처음 접하게 된 책. 단편 소설로 되어있고 이해하기 난해한 작가라고 악명높은 것처럼 뒤에 같이있는 덧붙임 말이 없다면 마치 기본 지식없이 뛰어드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어렵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율리시스라는 책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 페이지가 상상을 넘어가도록 많지만, 도전해볼 작품들..읽다 머리 터질것 같은건 지뢰아닌 지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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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영문학을 전공해 놓고서도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읽은 적이 없었다. 몇 번 눈팅만 하다가, 다이제스트판으로 내용만 훑거나 그런 식이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제대로 한 권 정도는 읽어야겠어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만만한, <더블린 사람들>을 택했다. 허세를 부리고 싶다면야 단연 <율리시스>겠으나 그건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사실 <더블린 사람들>을 고른 이유는 또 있다. 오래 전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칼럼이 여지껏 인상 깊게 남아 있기 때문. 그는 그 칼럼에서 이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 "죽은 이들"을 언급하며 노숙자들은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치심은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면서. "죽은 이들"을 읽고서야 알았다. 강 선생이 얼마나 논리적 비약이 심했는지. 조이스가 살아서 한국어를 알아 읽었다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 칼럼이기도 하거니와 당시에도 그 글로 남부럽지 않은 욕을 들었으니 이제와 새삼 그걸 들출 필요는 없지만, 한 마디만 보태자면 내가 알기로 조이스 자신도 사실 수치심을 딱히 느끼진 않은 것 같다.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 약화와 정신분열증 등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탓도 있었겠으나 그는 당최 이해하기 힘든 언행들을 심하게 보였었고 "부끄러운 줄 알라"는 말까지 주변에서 듣기도 자주 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수치심 따위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그건 그렇고 더블린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아일랜드의 수도다. 조이스의 고향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사실 <더블린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조이스의 작품들은 '영문학'이라기에는 '아일랜드 문학'이라고 해야지 않을까? 이런 사례들을 하나씩 각 잡고 보자면 의외로 많을지도. 여러모로 흥미로운 화두를 던진, 가볍지만 묵직한 작품이다. |
|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James Aloysius Joyce) 저eBook [대여] 더블린 사람들 (마카롱 에디션) 을 읽어보았습니다.20세기 초반 더블린의 모습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