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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의뭉스러운 점은 이것이다. 나에게 있어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이라 볼 수 있을까? 니체의 글은 반기독적이고, 딱히 내가 아는 불교적인 사상도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초인 차라투스트라이서 발견한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존재가 가진 불안감과 고통, 그리고 결핍에서 오는 방황이었다. 광야에서 소리치는 자 인간의 쇄신을 외치지만 그것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기 보단 짧은 지식의 내가 보가인 자신을 향한 끊임없는 채찍질과 본질적인 불안에서 오느 고통, 그리고 비극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고쳐져라.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듣는 이도, 그를 사랑하는 인간도 없다. 그는 도망치고 외친다. 그냥 내가 그렇게 본 거다. 염세적이지만 글에 불안함이 지속된다. 과도함 석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정신적 고됨이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진리의 빛을 찾았는가? 신을 사랑해서 그의 신이 자기를 무신론자로 만들었다 한다. 그는 신을 죽였다한다. 그래도 불안한 것 처럼 보인다. 그는 완성된 신이 아닌, 초인, 구도자와 비슷했다. 마음에 산을 싣고, 산을 걷는다. 짐승들은 그를 좋아한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는 본인을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치 내면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외치는 것 같았다. 본인을 섬으로 삼아, 남을 가르치지 말고 자신을 의지하며 차라리 자신을 초인이라 하지 말고 자신은 저 돌들과 같으며 나아가지 않을 자라 한다면 그의 글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고독은 외로운 자의 것이겠지만 사람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옆을 보면 바로 앞에 세상이 있고, 나와 대화하는 바로 나의 생각, 생각을 쓸 수 있는 펜과 종이, 자신의 상상들.. 고독보다 우리는 항상 옆에 세상을 곁에 둔다. 차라투스트라는 고독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와 함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마음 속에서 신을 찾을 수도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본인 내면에 있는 신도 죽인 걸까?) 내면을 돌아보면 신을 발견할텐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초인이 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사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자신이라는 의지처가 있고, 언제나 자기와 있으니까. |
|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출간된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카롱 에디션)을 읽고 나서 쓰는 리뷰입니다. 번역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지만 마카롱 에디션 디자인이 좋아서 모으기 시작했는데 책들이 절판이 됐어요. 그게 아쉽고 책 자체는 이북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
| 뭐라는지 즈어언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뭔소리인가 이걸 읽을 가치가 있는가 하고 생각까지 했다 그림이건 영화건 글이건 뭐 각자 이해하는 방식엔 차이가 있더라도 한 글자라도 한 점이라도 알아듣게는 해야지 도대체 뭐라는겨 무지건 무식이건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못 알아듣겠고 내가 못 느끼겠으면 나한텐 아닌거지 이걸 쓰고 읽는 게 제정신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근데 걍 끝까지 읽을 거다 못 알아듣겠는 소리에 화나면서 이상하게 스며든다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