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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년 6개월 동안 13명이 모여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눈 기록이다. 작품 하나를 두고도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떤 인물의 선택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답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인물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흥미로웠던 건, 이 과정에서 누구도 ‘맞는 해석’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품을 읽으며 각자의 삶이 자연스럽게 끼어든다는 점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인물 이야기가 어느 순간 자신의 관계, 선택, 후회로 이어지고, 그걸 숨기지 않고 그대로 꺼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 이야기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말하고, 공감되지 않는 감정은 억지로 끌어안지 않는다. 그 솔직함 덕분에 읽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었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을 문장들이, 다른 사람의 해석을 통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고, 독서는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읽고, 각자의 속도로 이해해도 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를 깊이 분석해주는 해설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한 작가를 매개로 어떻게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시선을 확장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독서 모임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 궁금했던 사람, 혹은 혼자 읽는 독서에 조금 지쳐 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YES24 서평단을 통해 좋은 방향의 자극을 주는 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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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어른이 되고, 나름 책을 열심히 읽는 아저씨가 되어 있다. 놀랍도록 많은 책을 읽고 쓰고 나눴지만, 일반 문학 소설과는 거리를 적당히 두었다고 해야 하나. 더더욱 고전 문학과는 머나먼 당신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음미하며 볼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봐야 할 책이 너무나 많았기에 버거웠다. 그런 독자가 어느새 독서 모임도 두 군데나 참여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저자가 이끄는 두 번째 독서 모임이다. 덕분에 문학 작품에도 더욱 시간을 쓰고 읽어나가고 이 책도 만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도스토옙스키’라니, 그것도 ‘저녁 식사’라니. 제목이 나에겐 너무나 강렬했다. 이 제목이 궁금해서 펼쳐보면 곧 만나게 되는 세계. 책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 자신을 감추기보다 책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 본명으로 말할 수 있지만 적당한 익명성이 도움이 되기에 닉네임으로 대화를 나누는 멤버들. 책에는 모임에 관한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 도스토옙스키가 담겨 있었다. 그의 작품 전체를 시대순으로 읽어나가면서 나누었던 풍성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저자는 러시아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순수한 독서가이다(전공은 전혀 다른 이과 계열의 박사님). 어렵다는 고전, 그것도 러시아문학, 심지어 도스토옙스키인데 일반인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읽었고, 식사도 나누었다. 분명히, 참여하는 어떤 분에게는 N차 도전의 도스토옙스키였을 테고, 어떤 분에게는 나처럼 처음 만나는 도스토옙스키였을 텐데. 그 어려운 걸 해냈다니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생각이 이어진다. 책을 읽으려면, 일독보다는 재독이 그리고 N독이 낫다고 하는데, 저자는 모임을 통해서 최소한 두 번째 맞이하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이었다고 한다. 아, 도스토옙스키에 진심인 사람이다. 진심이어도 혼자서 읽기에는 어려운 고비가 많은 작품을 소유한 도선생. 그를 읽어내기 위해서 함께 모여서 서로 “영차영차” 할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 독서 모임이 주는 장점이지 않을까. 책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알아가게 된다. 그 길 가운데 하나가 여기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와저녁식사를 #김영웅 #바틀비 #유쾌하고용감한고전전작읽기모임분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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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저녁식사를 #김영웅 #바틀비 #도스토옙스키 #독서에세이 #에세이 * 김영웅 작가님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읽었다. 이는 책제목이기도 하면서 독서 모임의 이름이기도 하다. 모임지기인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처음 읽기, 다시 읽기, 함께 읽기 과정을 통해 작가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모임 구성원들의 다양한 감상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스스로를 아마추어 문학도라 부르는 작가를 비롯하여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이는 이들의 감상문이 심상치가 않다. 전문가 뺨치는 솜씨로 해석하고 사유하는 언어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런 말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책이었다. 나의 독서도 더 깊이를 더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도 한다. p.13 저는 각자가 읽어 온 고유한 감상을 조금은 구체적이고 밀도 있게 나누는 게 이 쉽지 않은 모임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p.14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이 나 자신만을 앞서가게 만드는 거라면 그건 책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절반만 알고 누리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학창시절 고전문학들을 읽으며 그의 작품도 여러 편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내는 일에만 급급해 깊이 통찰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백야'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등을 감히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들의 여정을 따라 다시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엔 도스토옙스키를, 라스꼴리꼬프를, 표도르와 이반을 제대로 알 수 있기를 바라며. p.25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너무나 입체적이고, 너무나 날것 그대로여서 너무나 깊숙이 폐부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p.132 마침내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의 끝에서 인간 본성의 민낯을 낱낱이 발라 내보입니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를 읽기 위해서는 예리한 검에 깊게 찔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308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건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해 나가는 여정에 동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의 글도 글이지만 수록된 모임원들의 글을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이들의 독서가 그냥 단순히 '좋았어요'로 끝나는 평이 아니라 삶과 연계지어 때론 분노하고 때론 연민을 가지며 등장 인물을 낱낱히 파헤치는 깊이 있는 독서였음을 알게 해 주었다. 더불어 독서 모임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독서가로서 '성공적인 독서 모임 꿀팁'이 중간중간 실려 있어 참고가 되기도 했다. p.134 책은 자아를 발전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타자와의 소통이 거세되면 자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withbartleby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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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용감한 고전 전작 읽기 모임 분투기 저자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썼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문학이라는 활동 자체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텐데, 도스토옙스키는 특히 날것 그대로의 인간 모습을 드러내서 읽는 이가 스스로 관찰하고 성찰하게 만들며 통찰을 준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그런대로 먹고살 만한, 이를테면 남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고 투덜댄다거나,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지 못해 불평을 한다거나, 명품 옷이나 신발을 사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사는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 아주 찌들 대로 찌든 가난이 자주 묘사됩니다. 마까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이를테면 어쩌다 돈이 생겼을 땐 기뻐하고 감사하다가도, 돈이 탕진되고 익숙한 가난에 처하면 다시 운명 같은 비굴함과 처참함의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길들고 마는 모습, 나아가 물리적인 궁핍이 정신적인 궁핍까지 자연스레 이어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가난에 대한 관찰과 통찰도 놀랍지만, 역시 이 작품의 꽃은 가난 자체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통찰입니다. 불행하게도, 도스토옙스키가 선사하는 당혹감의 근원은 장괄설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인간의 이율배반성, 그것을 날것 그대로, 때론 기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의 독백, 대화, 행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위대한 망치의 철학자 니체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 도스토옙스키를 꼽을 만큼, 도스토옙스키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는 말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인데, 이는 인간 심리의 입체성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체성이란 곧 인간의 분열된 의식과 이율배반성에 기반을 둡니다. 가장 나답게 사는 삶이란, 날마다 만나는 낯선 나를 끌어안는 삶이라고. 그런 낯선 나를 조금은 너그러이 대하는 삶이라고. 오늘 처음 만나는 내 안의 낯선 나도, 바로 나 자신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모두를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일반화하는 건 위험하고 무례한 일입니다.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일련의 스펙트럼이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겠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각자의 '인간다움'이 회복되고 지켜지고 존중받는 곳이 천국과 같은 장소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이란 어쩌면 '인간스러움' 으로부터 '인간다움'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해설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의 공감 능력에도 역치가 있어서 그 이상을 자극을 받으면 더 이상 공감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급기야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리며 그 상황을 피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열등감, 자기 비하, 자존감 결여, 과장된 허세 등 일련의 자기 파괴 과정의 끝에서 그 쾌락을 발견합니다.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에서 그는 쾌락을 느낍니다. 결핍을 느낄 때 인간은 우선 그것을 채우려고 노력합니다. 그 거듭된 노력이 실패로 이어지면 그다음 반응으로 포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 포기도 거듭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불신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얼굴엔 절망이 아닌 미소가 이어지는데, 이때의 미소에는 광기가 어리게 됩니다. 인간은 각기 다른 행동을 하지만 똑같은 인간입니다. 휴머니즘은 바로 이 존재의 평등함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죽이는 행위가 죄라면 그 죽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벌입니다. 이런 이유로 구원은 관계 속에 임합니다. 막히고 끊어지고 파괴되었던 관계의 회복이 구원입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문장은 무신론자에게나 유신론자에게나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에게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힘을 부여하는 열쇠 역할을 하게 될 테고, 유신론자에게는 혹시나 가지고 있을 의심의 싹이 풍선처럼 금세 부풀어 올라 신앙과 믿음을 위협하는 작두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바틀비>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withbartleby #도스토옙스키와저녁식사를 #김영웅 #바틀비 #가난 #돈 #궁핍 #통찰 #장광설 #이율배반성 #심리 #인간다움 #도스토옙스키 #관계 #휴머니즘 #책 #도서 #독서 #철부지아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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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실제 모임에 참여한 듯 생생한 서술 덕분에 도스토옙스키라는 거대한 산맥을 함께 오르는 모임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도스토옙스키나 고전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독서 모임을 고민하는 독자에게 명쾌한 가이드가 되어 줄 책이다. 호기심만 가지고 있었을 뿐,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주 잘 쓴 서평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조금이라도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를 살핀 뒤 책을 다시 펼쳤다. 이전과는 다르게 몰입감이 휘몰아쳤다. 나처럼 도스토옙스키에 무지한 독자라면 잠깐이라도 그에 대해 검색한 뒤 이 책을 읽어보길 강권한다.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재독, 삼독을 한 저자의 깊은 해석과 여러 멤버들과의 다채로운 나눔 속에서 도스토옙스키를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이토록이나 흥미롭게 읽어낸 원작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열망이 피어났다. 이 책을 통해 만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답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 덩어리이자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비춰줄 거울이었다. 니체와 사르트르를 매료시킨 그의 셰익스피어급 천재성은 현대의 불안과 도덕적 딜레마를 꿰뚫는다. 동시에 감정과 사유를 자극해 문학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할 것 같아 여러모로 무척 기대된다. 고전이 주는 고통은 확실한 보상을 담보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이 책은 도스토옙스키를 대신 읽어주지 않고 도스토옙스키를 반드시 읽게 하거나 다시 읽고 싶게 만든다. 도스토옙스키라는 거인을 마주할 용기를 선물받았다. 저자와 멤버들이 보여준 치열한 기록은 고전이 박제된 유물이 아닌, 현재의 삶을 요동치게 하는 살아있는 질문임을 증명한다. 이제 그들이 정성껏 차려놓은 식탁을 나서며, 나만의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러 갈 차례다. 막연한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뀐 지금, 그의 문장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리뷰어클럽리뷰 #서평단 #도스토옙스키와저녁식사를 #김영웅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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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위대한 문학가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철학을 마치 곁에서 대화하듯 친근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도스토옙스키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그의 걸작 속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흥미롭게 전달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 존엄의 가치를 찾아냈던 도스토옙스키의 치열한 정신이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의 소설들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불안과 고뇌에 대한 따뜻한 위로이자 해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서 숨 쉬는 철학으로 다가오는 경험이 무척 신선했다. 이 책을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그 이유는 방대하고 난해한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를 한 끼 식사처럼 편안하고 맛있게 맛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고전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삶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얻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거장과 나누는 지적인 대화에 꼭 참여해보길 바란다. 예스24 리뷰러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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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낭독으로 텍스트를 함께 호흡하는 작은 모임을 1년 넘게 이끌어오고 있는 내게, 『도스토옙스키와 저녁 식사를』은 “아, 이렇게나 뜨겁게 읽어내는 모임장과 멤버들이라니!”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평소 선망하던 도스토옙스키와 독서모임이라는 주제에 이끌려 생애 첫 서평단을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이 책과 만날 수 있었다. 내게 도스토옙스키는 십 대 시절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도 허무와 고독이라는 우울한 문장에 푹 빠져들게 했던 강렬한 기억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문학은 언젠가 반드시 제대로 다시 읽어야 할, 그러나 차마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동경의 ‘이세계異世界’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책 속 김영웅 작가의 진심 어린 문장들을 읽는 내내 부러움과 조바심이 교차했다. 특히 한 작가의 전작 완독이라는 분명한 궤도를 설정하고, 끈기 있게 발제와 토론을 이어간 그들의 여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책을 읽지 않고 참석하는 것에 의의를 두거나 짧은 감상 위주로 흩어지는 여타의 독서 모임들과 달리, 확고한 리더십과 형식을 갖춘 이들의 모습은 '독서모임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했다. 현재 내가 참여하는 낭독 모임은 별도의 과제 없이 주 1회 2시간 동안 오롯이 함께 읽어 내려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등 벽돌 같은 인문학 서적을 완독하기엔 최적의 효율을 자랑하지만, 기록과 토론의 부재라는 아쉬움은 늘 숙제였다. 며칠 전 모임에서 이 책에 나온 독서 모임 방식을 제안해보았으나, 다들 완독과 발제의 무게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지금의 낭독 모임이 주는 편안함도 소중하지만, 이 책을 덮으며 새로운 소망 하나를 품어본다. 한 달에 한 번, 치열하게 발제하고 깊게 토론하는, 또 다른 결의 독서 공동체를 하나 더 만나고 싶다는 소망 말이다. - 『상처받은 사람들』의 알료샤와 나따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함께 ‘지난한’ 삶을 살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감되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불행하게만 느껴졌었다. 나도 알료샤였고, 나따샤였던 적이 있었다. “둘은 서로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처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들이 고백하는 사랑은 동경에 가깝습니다. 서로에게 자신에게 없는 여집합을 발견하고 추앙하는 마음이 들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부부가 되기에는 함께 지난한 일상을 헤쳐 나갈 동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알료샤는 나따샤와 함께 있을 때면 지루함을 느끼며, 나따샤 역시 알료샤와 함께 있을 땐 알료샤의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 결핍을 자기가 채워 줄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 아파합니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마지막 페이지에 나따샤가 언급하듯 “한바탕의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98쪽)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김영웅 #바틀비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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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도스토옙스키? 보자... 내가 읽어본 책이..."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도스토옙스키 책들을 한쪽에 쌓아두었더니 남편 님이 책등을 유심히 보더라고요.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냐길래 제가 읽고 있던 책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보여줬어요. 이 책을 지으신 저자께서는 직접 러시아와 유럽을 탐방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살아간 흔적을 따라가 보셨더라고요. 그리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런 작품을 썼는지도 상세하게 알려주시는데다 진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을 사신 대문호의 일대기를 잘 엮어놓으셔서 넘 재밌게 읽고 대학생 딸냄에게도 강추해 주었는데요. 근데 이 책을 알게 해 준 책이 또 따로 있어요. 바로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 독서모임을 한 내용을 기록한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인데요.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 풀어갈 책이랍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에서는 무려 1년 반동안 전국에서 모인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12편의 중장편과 4편 이상의 도스토옙스키 책들을 읽으셨다고 해요. 흥미로운 사실은 도스토옙스키를 모르는 분들과 도스토옙스키 독서를 수차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분들이 함께였다는 거에요. 만약 제가 이 모임에 참석했다면 후자긴 했겠지만 그나마 읽었다는 책도 과연 확실히 이해하고 봤다고 떳떳하게 말하진 못할 것 같네요. (등장인물들 이름 적응하는 것부터가 난이도 상이 아닐까 합니다만ㅡ.ㅡ) 예비모임에서는 <매핑 도스토옙스키>를, 그 뒤 열 다섯번의 만남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시작으로 3부에 걸쳐서 모임 후기를 적어두었어요. 작품들을 출간순서로 읽은 터라 1부는 초기작, 2부는 중기작, 3부는 후기작품들입니다. 모임 때마다 현장스케치와 작품 들어가며, 처음 읽기, 다시 읽기, 함께 읽기 파트별 기록들이 적혀 있어서 생생한 후기들을 볼 수 있고요. 저는 이 책에서 했던 것처럼 책을 읽고 만남들을 하나씩 따라가볼 생각입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을 우연히 읽게 됐지만 그래서 알게 된 <매핑 도스토옙스키> 책도 넘 좋았고, 앞으로의 모임도 기대가 되네요. 저만의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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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음독, 묵독, 숙독, 정독, 통독, 발췌독 등등. 이런 독서의 방법에 얽힌 일화 중 재미있는 것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고백록』에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당시에는 소리를 내어 읽는 음독(낭독)이 당연한 독서법이었는데, 암브로시우스는 입을 다문 채 묵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가 책을 읽을 때, 그의 눈은 페이지를 훑고 마음은 의미를 찾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침묵했고 혀는 움직이지 않았다. … 우리는 그가 말없이 읽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결코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 『고백록』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 초기까지 독서는 주로 '듣는 행위'이거나 '중얼거리는 행위'였다. 글자가 띄어쓰기 없이 쭉 이어져 있는 '연속 기법'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 소리를 내지 않으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브로시우스의 묵독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하는 행위이자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보고 "아마도 목을 아끼기 위해서일 것"이라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추측하기도 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 순간을 지식이 '청각적 공유'에서 '개인의 내면적 사유'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묵독이 보편적인 독서 방법으로 정착된 이후로 독서는 "혼자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요새는 친한 지인들끼리 하는 '교환독서'라는 새로운 방법도 있다. 한 권의 책을 내가 먼저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에 표시를 하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여백에 적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친구에게 주면, 그 친구가 그 책을 읽어나가면서 친구가 적어놓은 생각에 자신의 의견을 다는 행위다. 일종의 댓글놀이의 오프라인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책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을』은 독서의 함께하는 행위라는 쪽에 살며시 한 손을 보탠다. '텍스트힙' 열풍이 책읽기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면, 독서모임은 그 관심을 지속시키는 추가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책은 난해하기 그지없는 도스토옙스키 작품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하는 독서모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일에는 여러가지 난제가 있다. 우선 주최자의 입장에서 살펴볼까. 독서모임에서 다양한 의견이 백가쟁명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인원을 모으는 것도 어렵거니와, 장소를 대관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나아가 주최자인 만큼 매주 참석해야 한다. 인생은 늘 뜻대로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는 법이라 이 간단한 원칙이 사실 가장 어렵다. 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매주 책을 읽는 것은 어렵고, 참여자 역시 마음만큼은 매주 참석하고 싶겠으나 계획이 어긋나서 잘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인생에서 좋은 독서 모임을 만나는 건 반갑고 드문 행운이다. 모든 난관을 헤치고 모임을 유지시켜주는 좋은 리더를 만나야 하며, 그 모임을 결속시키는 좋은 구성원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웅 작가가 이끈 '도스토옙스키 독서모임'은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모임 사람들이 참 부럽다." 이 책은 결국 리더와 9명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도스토옙스키 원정대가 1년이 넘는 탐험 기간을 거쳐 마침내 도스토옙스키 장편 15편을 모두 주파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각 챕터 앞에 해당 모임의 참석현황을 살펴보는 일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대전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분들 중 부산, 익산, 일산 사람들이 있다는 게 가장 신기했다. 또한 모임이 진행될 수록 누군가는 안타깝게도 불참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가 게스트로 참여하는 점은 역시 좋은 책을 통해 진행하는 좋은 독서 모임에는 강력한 매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모임에 비공식적인 게스트로 초대받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자, 어쩐지 나도 아끼는 모임이 끝나는 것만 같은 아쉬운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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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요약 : 나만 숙제를 하지 않고 독서 모임에 참여한 이 기분, 아실까요? 깊이 있는 대화들이 오고 가는데 그걸 전부 주워 담을 수도, 신나게 같이 나눌 수도 없는 이 안타까움. “집에 가서 오늘 당장 읽어야지.” -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하는 목적의 책이 아니다. 단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출간 순으로 읽으며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모임원들의 감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기 전 안내서로써 충분한 역할을 한다. 작품의 흐름과 연계성을 파악할 수 있어 그의 작품을 읽기 전에도, 읽은 후 가볍게 정리하기 위해서도 추천하는 책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작품마다 처음 읽고 난 후의 감상문, 다시 읽은 후의 감상문, 함께 나눈 감상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독할 때 보이는 것은 또 다르다. 재독 후 감상문을 보는 순간 ‘이 작가님은 도스토옙스키에 진심이시구나.’를 느낄 수 있다. 📖 책을 나누다가 삶을 나누게 되었지요. (p.292) -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대해 어떤 주제를 주로 다루는지조차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서 모임 과정을 따라가며 접한 도스토옙스키는 평소 관심 있게 보던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인간의 “이율배반성과 의식의 분열”(p24)을 다루는 그의 작품이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분신>은 혹평받으면서도 계속 읽히고 있는 신기한 책이다. 인간의 입체성을 다루기 시작한 그의 두 번째 작품 <분신> 대한 감상평은 읽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후기작들을 보기 전 예열을 위한 좋은 책이지 않을까. 저자는 재독하며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골랴드낀을 그저 환자로만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닌 복잡한 인간의 내면과 비교하며 자아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 ‘나 역시 합리화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나 자신을 정상 범위 내에 유지하려고 애쓸 뿐, 정반대되는 두 입장을 물 흐르듯 오가며 살아가지 않는가!’, ‘나 역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자족하다가도 한순간에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라고 여기지 않는가!’, ‘그렇다면 정도만 다를 뿐 나도 ‘골랴드킴’이라고 불러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p.47) - 저자는 독특한 방식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독서 모임 전 A4용지 반 페이지 분량의 간단한 감상을 적어 오기를 요청한다. 감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모임원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에게 설득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운 독서 활동이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행위는 무엇보다 소중한 큰 자산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좀 더 정리가 되고 명확해지며, 작품뿐만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깊어진다. 또한 감상을 공유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감상을 만나는 순간의 희열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아, 내가 이래서 글을 남기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과 감상을 공유하기 시작했지.’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 도스토옙스키를 읽기로 마음먹은 사람도, 아직 용기는 없지만 언젠가는 읽을 예정인 사람도, 따라가기 벅찰 만큼 쉼 없이 나오는 흥미로운 신간에 치여 고전을 잠시 미뤄둔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한 권씩 따라 읽으며 완독할 때마다 이 책의 모임원들과 감상을 공유하는 기분을 느껴도 좋지만, 고전을 읽기 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으며 먼저 흥미를 돋우기를 바란다. 어려운 고전 읽기가, 그중에서도 진입장벽이 한없이 높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흥미로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 읽어 내려갈수록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작품 읽어보고 싶다. 오! 이 책도, 이 책도… 이건 꼭 봐야 한다는데? 그럼 읽어야지.’ 이 책을 먼저 끝까지 읽는다는 각오를 되새기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중간에 책을 덮었을 것이다. 어느새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손에 쥐고 이 책과 함께 진도를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바틀비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