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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한가운데서 : 포경선 에식스호의 비극. 너새니얼 필브릭 (2000) In the Heart of the Sea: The Tragedy of the Whaleship Essex. Nathaniel Philbrick. (2000) 허먼 멜빌의 『모비 딕』, 그리고 너새니얼 필브릭의 『사악한 책, 모비 딕 Why Read Moby-Dick?』을 읽다보니 『모비 딕』의 모티브가 된 에식스 호의 비극에 대해 너새니얼 필브릭이 쓴 책이 궁금해져서 찾아 읽게 된 책으로 원제는 『In the Heart of the Sea: The Tragedy of the Whaleship Essex』로 허먼 멜빌이 태평양을 '지구의 파도치는 심장'이라고 이야기 한데서 가져온 듯하다. 1821년 칠레 해안에서 포경선 도핀호가 표류 중인 고래잡이 보트를 발견하고 생존자 두 명, 즉 선장이던 조지 폴라드 2세와 선원 찰스 램스델이 사람의 뼈를 부수고 골수를 핥아먹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식스호의 비극은 19세기 포경업의 중심지이던 낸티컷 소속 포경선 에식스호가 태평양 한 가운데서 1820년 11월 20일,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난파된 후 20명의 선원이 3대의 포경 보트에 나눠 타고 93일 동안 굶주림과 갈증 끝에 죽은 동료의 사체를 먹어가면서까지 바다를 헤매다가 93일 만에 장장 7200 킬로미터를 항해한 후 8명만 살아남아 구조된, 타이타닉호의 비극에 버금가는 해양 참사이다.
일등항해사에서 선장이 된 28세 조지 폴라드 2세의 배에는 20명의 낸티컷 출신 퀘이커 교도들과 타지에서 온 백인, 그리고 6명의 흑인이 타고 있었다. 낸티컷에서 남아메리카의 끝 혼 곶 (Cape Horn)을 돌아 태평양에 들어섰으나 폭풍을 만나 한 차례 위기를 넘긴 후 동태평양 어장에서 고래잡이를 시작하지만 11월 20일 거대한 흰 향유고래 (머리에 든 경랍 때문에 sperm whale로 불린다.)의 공격을 받아 에식스호는 침몰하고 그 때부터 목숨을 건 생존에 나선다. “놈의 모습과 태도는 처음에 우리에게 아무런 경계심을 갖게 하지 않았다.” 하고 그는 회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비가 20피트나 됨직한 꼬리가 펌프질하듯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처음엔 약간 좌우로 흔들리며 천천히 움직이던 꼬리의 펌프질이 점점 빨라지면서 거대한 술통처럼 뭉툭한 대가리 주변에 자욱한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놈은 에식스호의 좌현을 겨냥하고 돌진해오고 있었다. ---
서쪽 마르퀴즈 제도가 훨씬 가까웠지만 그 섬에는 식인종이 살고 있다는 뱃사람의 헛된 믿음과 사관들의 주장에 폴라드 선장은 자신의 뜻을 굽히고 배에서 건져낸 건빵 등 식량과 물, 필요한 장비를 챙겨서 11월 22일 훨씬 더 멀고 험한 남아메리카 칠레 해안을 향한 여정을 떠난다. 『모비 딕』에서는 복수에 눈이 먼 선장 에이허브가 선원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면 에식스호에서는 우유부단한 선장으로 인해 선원들은 목숨건 긴 여행을 하게된 것이다. 낸터킷 사람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수십 년간 항해했던 태평양에 관해 그토록 무지했다는 것은, 오늘날 와서 보면 너무나 믿기 어렵다. 18세기 말 이후로 낸터킷 섬에 인근한 뉴욕과 보스턴, 세일럼에서 중국을 오가는 무역선들은 중국의 광둥으로 가는 도중에 마키저스 제도뿐만 아니라 하와이 제도에도 자주 기항했다. 마키저스 토인들의 식인 소문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에 상반되는 많은 현실적인 정보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폴라드 선장과 그의 선원들은 단순히 생계를 꾸려가려고 애쓰다가 85피트 길이의 고래의 도전이라는 대재앙을 만났다. 그들은 조난을 당한 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실책도 저질렀다. 폴라드 선장의 본능적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그는 두 젊은 항해사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결단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하게 타히티 섬으로 항해하는 대신에, 거의 불가능한 멀고도 험난한 항해에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태평양이란 황량한 파도의 사막을 배회했다.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칠레 해안에서 4800 km 떨어진 '황량한 해역'에 위치한 무인도 핸더슨 섬에서 잠시 물과 식량을 발견하고 휴식을 취하지만 자원이 많지 않음을 알고 일주일 후 다시 항해를 시작하고 보트 키잡이 토머스 채펄과 세스 위크스, 윌리엄 라이트는 섬에 남기로 결정한다. 뜨거운 태양과 사나운 폭풍, 지독한 기아와 물 부족,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 등 온갖 역경 속에서 세 척의 배는 뿔뿔이 흩어지고 선원들은 하나 둘 죽어나간다. “물의 부족은 삶의 고통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말이 옳다.”고 체이스는 기술했다. “미칠 듯이 격렬한 갈증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목록 가운데서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다.”
다음날 북에서 불어오는 순풍이 사라져버리자 그들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아! 우리의 기대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체이스는 탄식했다. 무풍상태가 사흘 더 계속되면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자 그들의 반응은 점점 더 침울해졌다. “날씨의 극단적인 압박, 뜻밖의 돌연한 희망의 무산, 그 결과로 인한 절망적인 낙담은 우리들을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기게 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두렵고 슬프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도록 만들었다.” 에식스호를 떠난 지 23일째인 12월 14일, 그들이 변풍대에 도달하는 시한으로 정한 예정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남으로 가야 할 길을 수백 킬로미터나 남겨두고 무풍상태에 갇힌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살아서 해안에 닿게 될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려면 보유하고 있는 양식이 60일치 이상이 되어야 했다. 에식스호를 떠난 지 52일째 되는 다음날, 아침과 오후에 북서풍이 점점 강해지더니 밤이 되자 완전한 강풍으로 변했다. 선원들은 돛을 모두 내리고 배가 바람에 떠밀려가도록 키만 잡았다. 돛이 없어도 배들은 물마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맹렬히 질주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지는 대신 시속 50노트의 그 바람이 자기들을 목적지로 실어다줄 것이라고 좋아했다. 체이스의 보트가 사라진 지 8일째인 1821년 1월 20일, 폴라드와 헨드릭스 보트의 사람들에게도 식량이 떨어져가고 있었다. 그날 헨드릭스 보트에 타고 있는 흑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슨 토머스가 죽었다. 열 사람이 나눠 먹어야 할 식량이 겨우 450그램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헨드릭스와 그의 부하 선원들은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문제를 내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즉, 토머스의 시체를 수장하는 대신에 먹어야 하느냐, 그래서는 안 되느냐 하는 문제였다. 처음 두 구는 바다에 수장시켰지만 세 번째 시체는 선원들의 식량이 되었고, 그마저 바닥나자 제비뽑기를 해서 선장의 이종사촌 동생인 오웬 코핀이 희생된다. 식량도 바닥이 나고 더 이상 보트의 키조차 움직일 힘이 없어 죽기만을 기다릴 때 일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의 보트와 조지 폴라드 선장의 보트는 지나가던 포경선에 의해 구조되고 이들은 기력을 회복한 후 낸티컷으로 돌아온다. 이들로 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상선에 의해 핸더슨 섬에 있던 3명도 구조된다. 식인종을 피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자신들이 식인종이 된 이 선원들에 대해 낸티컷의 주민들과 언론은 비난하기 보다는 조용히 이를 덮어두고자하지만 오웬 체이스는 이 해양 사고에 대한 책을 남기고 포경선 선원이던 허먼 멜빌은 체이스의 조카로부터 그 책을 빌려 읽은 후 에식스 호의 비극에 영향을 받아 『모비 딕』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의 본거지이자 『모비 딕』의 배경인 낸티컷섬에 정착하여 해양연구소 소장, 낸티컷 역사학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해양관련 서적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는, <주홍 글씨>의 너새니얼 호손과 이름이 같은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은 체이스의 책과 20세기에 발견된 에식스 호 사관실 급사 토머스 니커슨이 남긴 기록, 그리고 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포경선 에식스호의 난파 이야기'를 재구성하였고, 2015년 론 하워드 감독에 의해 《Heart of the sea》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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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선원의 처절함 보다 지난 세기에 벌여졌던 포경산업의 야만성이 먼저 떠올랐다. 대양을 떠돌며 한통의 기름을 얻기위해 행해진 잔혹한 고래사냥은 무지했던 과거의 역사로서 정당화할 수 만은 없다. 에식스호의 선원 중 한명은 장난으로 불을 질러 한 섬을 모두 태워버리고 수많은 동식물을 말살시켰다. 고래와 사람 중에서 진정 두려운 존재는 무엇인가? 당연히 사람이다. 다만 극단적 조건 하에서 생존을 위해 자행한 잔혹한 사건들은 덮어주고 싶다. 리더십에 대한 생각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자세가 항상 최선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이 간다. 일본은 아직까지 최대의 포경국가 중 하나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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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을 읽어 보지 않은 상태이다.)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읽은 책인데 의외로 괜찮은 느낌이다.
왜냐하면 리더쉽이란 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또한 리더의 민주주의적/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상황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조된 선원 중 2명이 책을 썼는데 하나만 전해지다가 후에 또다른 하나가 발굴되어서 저자가 종합적으로 사건을 쓴 것이 이 책이다.)
그런 면에서 세월호 생존자나 해경 등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느낌도 들지만 동시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읽기에는 힘들겠다는 느낌이다.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낸터킷"이라는 섬은 고립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고 "낸터킷" 출신의, 즉 리더라고 할 선원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정보 외에는 믿지 않고 에식스 호는 이윤이 많이 생기도록, 즉 부실하게 관리되어 왔다.
(이 책을 읽고 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요청을 해경 등에 먼저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갈 지경...)
게다가 침몰 과정이 눈에 보일 듯이 잘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 즉 인육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어찌된 영문인지 노예 폐지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퀘이커 교도인 백인 선원들이 살아남고 흑인 선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내용 별이, 약간은 과하다는 느낌이지만, 4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