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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집 -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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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자녀를 키운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비로소 나 자신의 미숙하고 빈 부분이 눈에 띄며,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건 혹은 그저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자녀가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건, 내가 여태 게을리했던 숙제를 비로소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는 건 대개 비슷하지 싶습니다. 주인공은 혼자 딸 하나를 키우는 워킹맘이며 아직 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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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자녀를 키운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비로소 나 자신의 미숙하고 빈 부분이 눈에 띄며,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건 혹은 그저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자녀가 눈치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건, 내가 여태 게을리했던 숙제를 비로소 부랴부랴 서두르게 되는 건 대개 비슷하지 싶습니다.

주인공은 혼자 딸 하나를 키우는 워킹맘이며 아직 여자로서의 삶을 놔 버리기엔 젊은 편입니다. 그러나 큰 책임감을 갖고 딸을 대하려 애 쓰는데 오히려 친정엄마, 즉 아이의 외할머니 되는 분이 다소 철이 없어 보입니다. 아이와 더 친해지기 위해 거짓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아마도 주인공이 이처럼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된 데에는 친정엄마의 저런 서투름도 한몫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남자분은 그저 우연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뿐이지만.

아이가 공부도 못하고 딱히 다른 재주도 없으며 외모도 평범하다면 부모 입장에서 자식 키울 맛이 나지 않을까요? 어지간한 사람 아니고선 누가 과연 이 질문에 선뜻 "예"라고 답을 할까 싶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유전자를 반반씩 받아 나온 애가 안쓰럽게 여겨지고, 가능하면 애 숙제를 내가 대신해 주고 싶어하지, 부적응자라면서 그 자녀를 백안시할 부모라니 선뜻 상상이 안 됩니다. 주인공 역시 전혀 그런 엄마가 아니며, 다만 엉뚱하게도 그 딸이 자존감 부족으로 자학을 간혹 하는 편입니다.

"난 왜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을까?" 안그래도 엄마 혼자 경제활동을 해 나가느라 힘든데, 딸이 이모양이니 얼마나 삶이 벅차겠냐며 걱정인지 속뒤집기인지 모를 말을 합니다. 엄마한테 대시하는 남자도 눈에 띄는데, 이런 혹이 달려 있다면 연애라고 어디 쉽겠냐는 식인데... 소설 속에서 자주 나오는 햄스터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며, 다만 햄스터의 그런 행동은 어미가 자기 혼자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일단 뱃속에 다시 넣은 다음 환경이 유리해질 때 다시 키우기 위한 동기"라고도 하죠. 자연의 섭리는 그리 비정하지만은 않습니다.

나이가 어리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여자한테 대시할 때는 그 매너가 저렇게 거칠거나 일방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자는 딸의 존재를 이미 알지만, 저런 사람이 결혼 후 과연 의붓딸에게 잘할지도 의문이고, 자신부터도 저런 정서불안 성향 반려자의 덕을 과연 볼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일본 출장차 향하는 공항으로 달리는 택시, 그 운전수도 묘하게 무례하며 신경을 긁습니다. 

오래전 출간된 송숙영씨 소설집 <애종(愛終)>에 실린 단편 <고깔>과도 살짝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미디어 관련 회사에 다니는 여성이며 약간은 불안정한 신분인 것도 그렇고, 결말에서 교통사고로 아마 목숨을 잃게 되는 것도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성격이 훨씬 내향적이며, 저 <고깔>의 주인공은 톰보이도 그런 톰보이가 또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고깔>의 주인공은 자녀가 없고 남자를 멀리하는 타입에 가깝습니다. 

v*****7 2022.09.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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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와 '내가 살았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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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반집 됨'에서 '온집짓기' -내가 살았던 집 (은희경)을 중심으로- 1. 그녀의 '반의 반집 살기' 정현기는 모든 작가는 '집'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모든 작가는 '집'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멋있는 사랑이야기나 모험의 이야기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거나 없어진 고향에 대한 비애를 말하고 있어도 그 바닥에는 '집'이 있다. '집'은 그곳을 채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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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반집 됨'에서 '온집짓기' -내가 살았던 집 (은희경)을 중심으로- 1. 그녀의 '반의 반집 살기' 정현기는 모든 작가는 '집'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 모든 작가는 '집'에 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멋있는 사랑이야기나 모험의 이야기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거나 없어진 고향에 대한 비애를 말하고 있어도 그 바닥에는 '집'이 있다. '집'은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사랑과 친화력으로 따뜻한 마음의 생산됨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이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집'은 변형되고 있다. 완전하지 못한 (물리적, 법적) 가정 (집) 이 과거보다 많아지고 있다. 정현기는 이러한 집을 '반의 반집되기' 라고 불렀다. 이 소설에도 '반의 반집 됨' 이 나온다. 그녀는 미혼모이다. 혼자서 중학생인 딸을 키우며 산다. 온전한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정상적인 그녀의 생활은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더구나 그녀는 5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고 잇다. 그녀는 그를 왜 만나는 것일까? 그녀가 5살 연하의 남자에게서 원하는 것은 사랑이었을까? 그녀가 찾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온전한 집'이었다. 단순히 '아버지 없음'의 '반집' 보다 는 무엇인가 부족한 형태의 (꼭 '아버지 없음'이 아니라도)출발이다. 이것을 나는 현대인의 불완전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한 현대인의 '집짓기'. 그녀가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불륜이라고 부른다. 그 남자의 결혼 전에도 그들은 만났으나 단순한 만남이었다. 가을, 겨울, 봄이라는 세계절은 불완전함을 상징한다 얼마의 공백 후 결혼한 그 남자를 다시 만났으나 결국 여름에는 만나지 못했다. 불완전한 만남과 '반의 반집'에 사는 그녀? 그녀의 운명은 애초부터 불완전한 것인가? 그녀의 운명이 불완전한 것이라면 현대인 모두는 불완전한 것이다. 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고 경쟁해야 하고 자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불만족을 토로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 길을 그녀는 그 남자에게서 채우고자 하였다. 그들의 만남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녀와 그가 만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우스워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 그 남자와의 만남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음을 알았으리라. 남자는 여름에 소식도 없이 다른 여인과 결혼을 했지만, 신뢰했던 형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그녀를 찾는다. 그녀는 칙칙한 관계를 청산하고자 마음을 다진 터라 늦가을 밤늦게 여섯 차례나 전화를 시도하는 남자에게 코드를 뽑아 버린 채 단절해 버린다. 우울해진 남자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취한 채 차를 몰고 가던 중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죽는다. 2. 그녀의 '온집짓기' 그녀는 왜 그 남자를 거절했을까? 단순히 불륜이기에 ? 사회가 그들을 불륜이라고 부른다. 그냥 만남이라고 하자. 그 만남이 사랑이 아니고 불륜이라서 거부했는가? 그래서 교통사고로 그를 죽게 만들었는가? 그녀가 그를 거부한 것은 칙칙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것 이상이었다. 그녀는 '집짓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 '집짓기'에서 그는 단순한 '남자'의 역할을 할 사람은 아니었는가? 그녀가 추구한 것은 형식적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존재하는 집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의 집짓기에는 남편(남자)보다 가족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서로를 위해주고 보다듬어 주며 사는 것이다. 시쳇말로 사랑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 가정이다. 그녀의 선택은 바로 가족에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랑 없는 남자보다는 중학생 딸을 선택한 것이 그녀의 운명이다.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딸이 생리를 시작했다. 그 의미는 ? 여자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서 딸을 인정하며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제 딸은 아무리 "어미라고해도 죽고 사는 문제를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건 불공평한 것 아니예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큰 것이다. 그녀는 "삶이라는 만만찮은 악의의 존재와 중요한 국면에서 대결하고 있다는 것"만을 똑똑히 느끼면서 그의 죽음 지점인 사랑의 '집'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남자와 만나던 공간은 '영혼의 집'이며 잠시나마 사랑을 느꼈던 집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영혼의 집'은 허상의 공간이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인생인데도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생존"이라고 말했던 그의 말을 실행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그녀의 집짓기는 성공했을까? 절반은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가출한 딸애도 자신의 낙태를 반기며 귀가 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그녀는 이제 과거의 집을 지나 현재의 삶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은희경은 그녀의 '집짓기'를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 남자와의 만남을 가졌던 불완전한 '공간(가을, 겨울, 봄)'을 통하여 한없이 흔들리는 현대인의 불안한 욕망과 윤리의식, 그리고 세속적인 현실성 사이에서 올바른 '집짓기'의 한 모습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욕망이 아닌 바른(사회에서 쓰는 용어인)삶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결론짓고 싶다. '다만 인생의 어느 하루뿐일지' 모르는 행복을 딸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참고문헌 : 은희경,「내가 살았던 집」,문학동네 가을호, 2000. 정현기, 「집짓기 공리로 소설 읽기」,『한국 문학의 해석과 평가』,문학과지성사,1994.

[인상깊은구절]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여 행복하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달이 속삭였어. 내 달빛의 바늘로 나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작아져 버렸어. 이 세상에는 친구를 단 한 번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기의 소중한 것을 버리는 마음도 있단다. 그러니 너도 어른이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k***1 2001.1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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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죽음,진정한 삶,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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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세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독자입니다. 은희경씨의 소설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됩니다. 며칠전 한국소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구입하여 읽고 그중 대상을 수상한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에 관한 리뷰를 몇 자 적어봅니다. 중학생인 딸을 키우고 있는 미혼모인 그녀는 그의 결혼후에도 그와 계속 만남을 가집니다. 사랑 때문에 만난다
"탄생,죽음,진정한 삶,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 내용보기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세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독자입니다. 은희경씨의 소설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을 얻게 됩니다. 며칠전 한국소설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구입하여 읽고 그중 대상을 수상한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에 관한 리뷰를 몇 자 적어봅니다. 중학생인 딸을 키우고 있는 미혼모인 그녀는 그의 결혼후에도 그와 계속 만남을 가집니다. 사랑 때문에 만난다고 하면 조금은 우스워져버리는 그런 두 사람이지요. 그는 그녀에게 만남을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얼마후 그와 함께 그녀의 안에서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아이는 죽임을 당합니다. 비가 오는 어느날 음주운전을 하다가 그녀는 그가 죽었던 곳에 가게 되고 그곳이 진정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죽은 후에 말입니다. 어찌보면 세상에 너무나 흔한 일인지 모릅니다. 신문에, TV에 자주 나오는 통속적인 내용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은희경이라는 작가의 손을 통해 태어난 글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특히 엄마 햄스터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어버린 것에 대한 중학생딸과 그녀의 대화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군요. "아무리 어미라고 해도 죽고 사는 문제를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읽고 난후 웃을수 있는 재미난 그런 소설은 아니었지만 탄생, 죽음, 진정한 삶,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상깊은구절]
한 아이가 매일 밤 창가에서 달에게 기도를 해. 그리고 아침이면 꽃밭에다 자기가 쓴 편지를 갖다 놓는 거야. 그애는 꽃밭으로 부친 그 편지가 엄마에게 전해질 거라고 믿고 있어. 그런데 하늘나라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엄마한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아. 아이는 달에게 자꾸만 묻지. 달님은 내 친구니까 말해줄수 있지요? 엄마가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닌가요? 잠든 아이의 뺨은 눈물자국으로 얼룩지곤 했어. 어느 날 아침이었어. 아이가 밖으로 나가니 꽃밭 한가운데로부터 분수가 솟아오르듯 노란 나비떼가 수없이 날아오르고 있는 거야. 얼굴을 덮고, 어깨를 덮고, 다리를 덮고, 세상 전체를 덮었어. 아이는 그 노란 나비떼 속으로 뛰어들어가 춤을 추며 기뻐하지. 엄마가 답장을 보냈다 라고 소리치면서. 그날 밤 아이는 아무리 기다려도 달을 볼 수가 없었어. 달은 너무나 작아져서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여 행복하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달이 속삭였어. 내 달빛의 비늘로 나비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작아져버렸어. 이 세상에는 친구를 단 한번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기의 소중한 것을 버리는 마음도 있단다. 그러나 너도 어른이 되면 알수
YES마니아 : 플래티넘 a****q 2000.11.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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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모티브가 주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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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우연히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은희경 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머니에서 없는돈을 끄집어내어 책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을 읽어보았지만.. 내 마음에 와 닿지 못했고 겉돌았다. 내용도 신선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미혼모, 삶을 힘겨워하는 딸, 결혼 후 남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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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우연히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은희경 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머니에서 없는돈을 끄집어내어 책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을 읽어보았지만.. 내 마음에 와 닿지 못했고 겉돌았다. 내용도 신선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미혼모, 삶을 힘겨워하는 딸, 결혼 후 남자와의 만남, 남자의 죽음, 내용에 어딘가 리얼리티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적당한 스토리고 적당한 감흥을 일으킬만한 구절이 있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소설 안에서 딸아이가 키우는 햄스터가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 것을 계기로 딸아이는 엄마와 싸우게 된다. 엄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어. 사는 것도 힘든 일이야” 라고 한다. 딸아이는 냉정한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자신도 햄스터를 버린 어미의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주인공은 무언가 희망을 찾았던 것일까? 집이라는 것 .. 아니면 마지막에 보여준 ‘교통사고 사망지역’에서 찾았던 꿈속에서나 찾아보았던 다정한집.....? 여기에서 딸아이가 가출을 하고 4일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엄마와의 한번의 싸움이 있었지만 .. 몇 번의 사건을 통해 잠잠해졌는데 딸이 가졌던, 삶에 대한 의문과 내면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소설이 끝나버렸다. 주인공은 5살 연하의 방송기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 남자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버린다. 남자의 형의 죽음으로 남자는 혼란 속에서 주인공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빈 집에서 정사를 나눈다. 주인공의 차가워진 젖꼭지가 다시 더워지면 아마 주인공은 또 다른 아이를 임신 했나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른 곳에서 탈출구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의 가정..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아서 이루는 가정이 아니어도 주인공은 자신의 집과 현재에서탈출구를 찾으려고 낙태를 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가 죽은 곳에서 자신도 교통사고를 당할 뻔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소설에서도 역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삶은 얼마나 더 힘들어야 내가 찾던 다정한 그리운 집에 도착 할 수 있는 것일까? 두려운 세상으로 반쯤 몸을 내놓은 나를 돌이켜 본다. 어디선가 들은 말에 의하면 모든 소설은 집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람들은 항상 일상 속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헤매이는 것 같다. 내가 살았던 집 ...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격는 딸의 아픔과, 오래도록 아픔을 격어 온 엄마. 아마 이 둘은 이상 속에서 집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은희경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와 속도감 있는 내면 추구를 통한 자기 응시의 통찰력이 돋보인다고 한다. 이 소설은 윤리의식의 붕괴가 인간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도덕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현실성을 잃지 않는 예지가 번득인다. 삶이라는 것이 허망하지만 그 허망을 견디며 살아나가야 하는 아픔이 한 여인의 옹골차면서도 섬세한 자세 속에 스며 나온다. 그 여인의 삶에 대한 자세를 보면서 나를 돌이켜 본다 . 인생은 허망 하다 하지만 살아가는 이상 그 허망을 견디며 살아 나가야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작가는 딸을 통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어. 사는 것도 힘든 일이야” 라고 하지 않았을까?
b********9 2002.03.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