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읽은 시집에 쓰인 단어들, 크레바스, 무간, 실외투증후군, 이방인, 자각몽 같은 것들이 청소년기부터 하나씩 주워모은 '멋진'단어들이었기에 눈길이 머무는 곳들이 자잘히 있었는데-게다가 시인의 이름마저도 근사했다. 이이체'라니-, 그런데 이번 시집은 좀 달랐다. 어린시절 교습소 작은 방 안에 틀어박혀 시간 가기만을 기다렸다 하나씩 칠했던 사과 알맹이들 때문인지, 체르니를 원망하며 왜 하농만으로는 안되는건가요, 부르짖던 그런 꼬맹이였기 때문인지 시 안으로 들어온 음악들은 무심히 넘어가버렸다.
스와니, 금잔디, 디제잉을 하는 염소나 어느 건반을 눌러얄지 항상 복잡하게 만들었던 #까지도 익숙하지만 그래서 금방 넘겨버리게 될, 혹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미지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연작의 시에는 늘 약하기 때문에 변명처럼 짧게 읽고 끝내버린 시집에 이유를 붙여놓는다.
읽으면서 단 두 편의 시에만 작은 표시를 해두었는데, 그 중 하나는 '도서관' 의 첫 연이었다. "왜 이리 혼곤한 잠이 쏟아지는 걸까// 이만한 순장지// 이렇게 가지런한 죽음을 본 적이 없다// 가나다 순으로 누운 이 순장지의 발굴은 밤낮 없이 계속되지만// 별 진척이 없다// 언제쯤 끝날는지 짐작하는 이도 없다" 고 되어 있는데 책이 아마 그렇겠지. 아마가 아니라 정말 그러하지 싶은 마음에 표시를 해두었다. 피아노보다는 책을 더 좋아했던 개인의 취향을 한 번 더 강조한 선정이다. 또 하나는
"달밤
저렇게 외로운 높이에 걸린 등을 본 적 있소? 부재중인 한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라는 짧은 시이다. 시의 묘미 중 하나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파고들어 사람 마음의 어떤 정서를 탁! 하고 치는 그런 느낌이 전달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달밤'이라는 시가 그랬다. 마침이다. 오래 전에 선곡해놓았던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나온다. 조금 춥지만 좋은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