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의 책은 내게는 항상 어려운 책으로만 인식해왔었다. 중학생때 데미안을 읽은 적이 있는데 무슨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드문드문 책 속의 장면들만이 생각이 날 뿐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좀 더 어른이 되니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는 묘한 매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헤세같은 거장의 글이 한꺼번에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번역의 한계가 있을테니 그의 훌륭한 글솜씨나 아름다운 문체를 다 흡수하기는 힘들겠지만 어쨌든 헤세의 글이 가진 고독한 분위기와 그 당시 사회에서 느끼던 공통적인 갈등들을 마치 내가 그 안에서 살다 온 것처럼,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글은 현대소설처럼 직접적이고 빠른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분위기는 고전문학만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인지, 아니면 서양문학만의 분위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세의 섬세한 표현들은 사건이나 주인공의 표정을 마치 옆에서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주며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나 또한 공감할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이 있다. '수레바퀴 밑에서'는그 시대의 요구와 기대치를 감당해내기 위해 자신의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자유에의 갈망과 자연을 향한 그리움을 억누르고 수레바퀴같은 굴레 밑에 깔려 살아가는 어두운 소년의 인생을 푸르스름하고 어두운 색채로 잘 그려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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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1. 사실 이 책이 내 방 책장에 꽂혀있은 지는 꽤 오래됐다.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창 이런저런 책을 읽는 데에 재미를 들이고 있을 때, 어머니가 외출 나갔다가 읽으라며 사오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느낌을 넘어 성의 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 표지 일러스트와 고리타분한 서체 등이 도무지 끌리지 않아 그렇게 몇 년 간을 장식품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했다. 묵묵하게. 사실, 그 기간 동안 입시를 끝낸 후 서울로 상경하면서 내 방을 한 번 정리했고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군 입대를 하면서 한 번 더 정리를 했는데 그중 정리된 수많은 책들 중 이 책이 포함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데에 적잖이 놀랐다. 어느 틈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내 인생에서 멀어졌을 텐데 그렇게 견고하게 남아있었고 마침내 다 읽었다.
2. 대화의 부재.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와 아들. 그 둘은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한 쪽이 요구하면 한 쪽은 그에 순응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결국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서로에게 가장 의지가 되어야 할 존재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늘 비극이 발생하는 법이다. 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도 익히 읽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내의 뒤숭숭한 꿈자리와 삶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 묻어있는 그녀만의 고민을 이해하기는커녕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던 남편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따뜻한 차와 얼마간의 대화 시간만 있었더라도 기벤라트는 숲속에서 앞으로 무얼 하며 살지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워낙 총명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3. 기벤라트를 보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생각났다. 감수성 예민한 시절, 부모님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았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는 교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으며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소녀도 사실 틀린 관계였다. 사춘기 소년에게는 사실 온 세계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다고 여기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무자비한 폭력에 현수는 물리적으로 저항한다.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것들과 죽기 살기로 싸우고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 가르치기는커녕 온갖 고통의 씨앗만 심어주었던 학교가 또다시 자신을 제압하려 들자 눈에 보이는 창문을 모조리 깨버리고는 포효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가 그랬듯 교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러나 현수는 세상에 등지지 않았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 검정고시 학원에 성실히 다니고 있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보인다. 여전히 이소룡도 좋아한다. 나는 현수의 긍정적 결말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수가 사고를 치던 날, 아버지는 피해 학생 부모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 그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크게 혼날 줄 알았던 현수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위로받는다. "이소룡이는 대학 나왔냐?" 아들의 관심사에 다가가고자 하는 그 작은 발걸음. 그 미약하지만 위대한 걸음이 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법이다. 4.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감수성을 애써 감추고서는 학원가의 밤거리를 밝힌다. 그중에는 감추기는커녕 자신에게 그런 소중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소년 소녀들도 더러 있다. 오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표지로 한 공책을 샀다. 나는 23살 청년이 되고 나서야 '서시'를 온전히 '서시'로서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학생들은 내신에 반드시 나오는 대표 지문으로써 '서시'를 읽고 있을까. |
| 한스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속에 생활해왔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의 주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한 그리고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행동이다. 너무도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켰던 그가..사람들의 욕심에 점점 병들어갔다. 그가 생활했던 것들은 당연하다고 자신을 합리화시키지만 신학교에 들어가 헤르만 하일루너를 만나고 부터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괴로워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것들에 대한 괴로움과 슬픔을 느낀다. 그렇게도 발버둥치며 들어가려했던 신학교도 그에겐 아무 의미도 없게된다.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고 병들어 있는 자신이 괴롭기만 하다. 하지만 한스의 아버진 그런 자식이 탐탁치 않다. 그의 고통과 그의 생각을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스는 아버지의 뜻대로 기계공 일을 배우게 되고 병들고 지치고 상처받은 그의 영혼은 회식자리 처음 접해본 알코올에 의해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 한사람이라도 한스에게 자유를 주고 또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면 한스가 그토록 비참한 죽음을 맞이 했을까 싶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우리 나라와 같은 학벌, 입시 경쟁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듯 하다. 한스의 방황은 어쩜 전세계 청소년들의 방황을 너무도 섬세히 표현해낸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한스의 고통에 마음이 아파왔고 그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이 책은 물론 청소년에게도 많은 자유의 메세지를 전달할수 있는 최고의 책이지만 먼저 부모가 읽어보고 정말 깊이 느낄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
| 저는 이 책을 두번 읽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책이 무슨 교훈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해력이 좀 딸려서 그러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문장도 좀 긴거같고 책에 그림하나 없고 그래서 좀 읽기가 불편했습니다. 맨 처음엔 주인공 한스 기베란트가 불쌍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걸 좋아하고 즐기니깐 그리 불쌍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교장선생님, 목사 등 여러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어서 그만큼 부담감도 컸지만 한스는 신학교 입학 시험을 2등으로 들어갔고 자신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 하일르너인가 하는 친구를 사귄 것이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한스에게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된 것 같았습니다. 점점 한스는 타락해갔고, 하일르너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결국 한스도 학교를 떠나서. 집으로 왔습니다. 중간까지는 좀 재밌었던 것 같았는데. 점 점 어둡고, 그런 이야기만 나오니까는 흥미도 떨어지고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스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이 책을 보고 제가 한가지 깨달은것은 올바르고, 도움이 되는 그런 친구를 사겨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