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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후기작들인 ‘셰익스피어의 기억’ 소설집에서는 보르헤스를 읽은 독자들에게 역시 친숙한 여러 가지 개념들이 변주된다. 오래 전 읽었는데 모처럼 다시 읽고 싶어져서 다시 읽어 보았다. 많은 단편 중 몇 작품과 보르헤스의 생전 인터뷰에서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통해 리뷰를 써 본다. 꽤 여러 가지의, 작가가 독자에게 남기려고 하는 수수께끼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수수께끼를 간단한 해답으로 푼다면 문학은 단선적인 얕은 의미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비전공자인 독자로서 보르헤스가 인터뷰에서 한 말대로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으려 하며 이 책 또한 읽었다.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중
첫 단편인 (줄거리라면 나이든 보르헤스 자신이 젊은 보르헤스를 만나는 내용)’타자’와 꿈이라는 개념과 젊은 작가와 현재의 생의 후반부에 있는 나이든 작가인 자신의 교류가 중점인 ‘타자’ 뿐 아니라 ‘1983년 8월 25일’ 등, 거의 모든 소설의 대화에서 인터뷰어들이 생전 보르헤스에게서 느꼈다고 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의 자질을 볼 수 있다. 인물들은 대화하면서 이야기, 혹은 자신들의 답에 이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죽거나 사라질 수는 있지만 말이다.
보르헤스가 ‘바벨의 도서관’ 같은 이전의 단편에서도 전개한 무한이라는 개념이 있다. ‘바벨의 도서관’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할 ‘모래의 책’의 유명한 구절- ‘나는 나뭇잎을 숨기기 위한 가장 적합한 장소는 숲이라는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이 무한 개념과 환상주의의 문맥 안에서, 인간이 실제로 무한을 형상화-혹은 대표하는 특정한 물리적인 사물(이 단편들에서는 ‘책’으로 구현되었다)과 접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보르헤스의 사고는 그렇다. 인간은 무한을 일상의 삶에서 받아들일 수 없고 현실을 파괴할 것이라는. “어쨌거나 그것이 눈으로 그것을 보고, 열 손가락으로 그것을 만져보고 있는 나 또한 그것만큼이나 기괴스럽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 것은 다행이었다. 나는 마침내 그것이 악몽의 물체, 현실을 손상시키고 썩게 만드는 물건이라는 느낌에 이르게 되었다.”
세 페이지의 단편 ‘원반’ 역시 물질세계에서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개념을 제시한다. 양면이 아닌 한 쪽 면만 갖고 있다는 신화 속 원반이라는 존재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왕임을 증명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벌목공은 왕을 살해해 원반을 갖고자 했으나 단지 왕이 죽기 전 손에서 반짝이던 원반의 빛만을 볼 수 있었고 그를 죽인 후 원반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전혀 찾을 수 없다. 여기에서 원반이란 반지의 제왕에서의 절대반지 같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입할 수 있는 개념은 물론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소유할 수 없는 환상의 사물에 가깝고 이론적으로는 기하학이라는 추상적 개념인 것이다. 난 이 짧은 단편이 깊은 의미도 없고 현실과의 접점도 없는 불가해한 악몽에 등장할 소재 같다고 생각했다. 보르헤스는 예를 들어 ‘심리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악몽에 대해 재미있는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는데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는 전혀 설명될 수 없는 악몽의 주제를 소설화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의미인지 핀포인트로 집어낼 수 없지만 평소 인간이 갖고자 하는 환상의 무엇인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가끔 꿈에서 등장할 만한 것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 곱씹어본 수수께끼들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소설집의 머리말에는 보르헤스의 짧은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 가령 “「지친 자의 유토피아」는 내 판단에 이 작품집에서 가장 순박하고 가장 애상적인 작품이다.” 라고 썼다. 나는 이 작품이 어디에서 가장 순박하고 애상적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름다운 북유럽 여성의 이름이자 인물이 제목인 ‘울리카’는 어떤가. 첫 문장 전의 인용으로는 스칸디나비아 신화인 ‘볼숭 사가Volsung Saga’의 구절이 나온다. 보르헤스는 어릴 때부터 이 신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그녀의 이미지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르헤스 자신은 특정 주제(테마)를 일부러 찾으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가 반복적으로 천착한 주제들은 분명하다. "시를 쓰는 것이나 이야기를 쓰는 것은-그건 결국 다 같은 거예요-작가의 의지를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일부러 어떤 주제를 내세우려 한 적이 없어요. 일부러 주제를 찾은 적도 없고요." "최근에 나는 심리학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든 심리 서적들은 꿈의 메커니즘이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꿈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 즉 꿈을 꾼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상하고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어느 책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 그는 문학이론이나 비슷하게 심리이론으로는 깔끔하게 설명될 수 없는, 소설의 언어만이 갖는 현상의 신비로움과 복잡성 속으로 글쓰기가 진행되는 동안 천착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독특한 몰입감이다.
말년의 보르헤스는 1부 ‘모래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나는 내 소설집 가운데 최고의 책은 가장 최근에 쓴 『모래의 책El libro de arena』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엔 독자의 진도를 방해하거나 붙드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매우 평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죠. 그렇지만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우주에는 평이한 것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게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이 문장이 이 소설집의 상당 부분을 가장 멋지게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역시 말년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시인 에머슨의 예를 들면서 ‘사상을 가진 지적 시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상 없이 지적이기만 한’ 시인들과 차별화하면서. 보르헤스가 독서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현대의 독자가 이 소설집에 실린 아주 짧은 단편들을 포함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또한 그 사상이 관통하는 지적 유희와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후기 인터뷰집인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를 함께 읽으며 이 소설집을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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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기억』은 보르헤스 전집 5권으로, 20세기 후반 서구 지성의 본령을 결정짓는 보르헤스의 세계주의 문학 중 다섯 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와 『칼잡이들의 이야기』에서 새롭게 시도된 보르헤스적 주제들 중 몇 가지를 보다 심화시킨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르헤스는 이 작품에서 유사 고고인류학적 환상성과 이중성의 문제, 그리고 리얼리즘적 경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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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그만 리얼리즘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르헤스나 중남미의 작가들이 많이 읽혀야 할텐데요,,, 여전히 책좀 읽는다는 사람들한테 얘기해봐도 보르헤스는 인지도가 처참하네요ㅠㅠㅠㅠ 슬픈 현실입니다ㅠㅠㅠ 현실과 환상의 혼재,,,,, 새로운 문학적 현실의 창조,,,, 이쪽에 빠지면 이제 다른 작가글은 다 허접하다 여길텐데 말이지요ㅠㅠㅠ 보르헤스의 글들이 더 더 많은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어요 위상에 비해 저조한 국내 인지도 때문에 항상 슬프지만 그래도 아직 이 전집들이 절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위안삼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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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으로 출판되었던 보르헤스의 전집 가운데서 특이하게도 5번째 책이 가장 먼저 전자책으로 발간이 되었네요. 의심없이 그의 작품집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선택하였습니다.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가 분명 아니다보니 대중적인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Yes24의 독자 리뷰 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읽고 난 독서들을 빠뜨리고 매혹하는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구입하자마자 펼쳐셔 읽게 된 「타자」에서부터 이러한 힘을 눈치챌 수 있었구요. 비슷한 시기에 『알레프』, 『픽션들』 의 개정판이 전자책으로 발간 되었는데 전집 중에서는 5번째 작품집을 먼저 선보인 점도 꽤나 센스가 돋보입니다. 책표지는 아마도 박상순 시인의 작품일 것만 같습니다. 그의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을 통해 저에게 익숙해진, 바로 그의 솜씨일 거라 예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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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제목이 색다르고 흥미가 있어 고른 책인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색다르게 진행되고, 그 속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는 좋은 책입니다. 보르헤르의 첫 책인데 다른 책도 구매해 읽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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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후기작인 『셰익스피어의 기억』은 함께 수록된 『모래의 책』과 같이 하나의 일정한 룰을 지닌다. 그 룰은 일정하면서도 일정하지 않다는 듯, 무한히 확장하는 언어의 순환과 기교를 다양한 소재에서 빌려와 써내려 간다. 일례로 동명단편이자 '타자의 기억'을 소재로 삼은 『셰익스피어의 기억』은 자신의 기억을 점차 잃고 셰익스피어의 기억이 점점 내 머릿속에 채워지는 과정을 짧은 분량의 필치로 그려낸다. 짧은 소설이지만 '내 기억이 정말 내 자신의 기억인지' 같은 물음이나 영속성, 기억 속 무의식, 공유 같은 질문까지 고민하게 된다. 간단한 듯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펼쳐진 미로 같은 매력을 주는 게 보르헤스의 소설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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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저 세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 전집 005를 (황병하 역) 읽어보았습니다. 민음사의 보르헤스 전집을 어렸을때 처음 독서를 좋아하게 되면서 읽었었는데 이렇게 이북으로 다시 읽게되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옛날에는 수많은 주석이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고 읽기 피곤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나름 주석읽는 재미도 있네요. '거울과 가면'과 '모래의 책'이 특히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