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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선으로 경제를 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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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 사회를 도덕과 명분만 강조한 정체된 사회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 책은 조선의 선비들 역시 국가가 왜 가난해지는지, 백성의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지를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선의 경제 사상은 생각보다 훨씬 생생하고, 지금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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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은 조선 사회를 도덕과 명분만 강조한 정체된 사회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 책은 조선의 선비들 역시 국가가 왜 가난해지는지, 백성의 삶은 왜 나아지지 않는지를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조선의 경제 사상은 생각보다 훨씬 생생하고, 지금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여러 인물 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6장 박제가에 대한 서술이다. 흔히 박제가는 ‘북학파’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되지만, 이 책은 북학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청나라 숭배나 기술 모방이 아니라 당대 조선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문제의식으로 풀어낸다. 즉, 북학은 “북쪽을 배운다”는 구호가 아니라, 왜 조선이 가난해졌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설명 방식이었다.

책 속에서 박제가는 조선의 빈곤을 백성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열심히 움직일 이유가 없는 사회 구조가 문제라고 본다. 물건을 만들어도 유통되지 않고, 소비는 사치로 낙인찍히며, 상업 활동 자체가 천시되는 사회에서 생산과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는 그의 지적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 대목에서 북학은 단순한 외국 사례 소개가 아니라, 조선 내부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박제가가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는 절약만을 미덕으로 삼는 사고를 비판하며, 소비가 있어야 생산이 생기고 기술도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치를 조장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살아 움직이기 위한 조건에 대한 분석에 가깝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의 경제 논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200년 전 선비의 주장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의 박제가 편은 북학을 하나의 사상 구호가 아니라, 조선을 설명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현실 인식의 도구로 이해하게 만든다. 조선의 경제 사상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라 하더라도 이 장은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며, 역사와 경제를 연결해 생각해 보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e*******1 2026.0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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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라 경제를 고민한 7인의 조선 선비들
"[역사] 나라 경제를 고민한 7인의 조선 선비들" 내용보기
이 책에 실린 일곱 명의 선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경제와 돈에 관한 여러 주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옛 사연을 통해, 오래 고민되어 온 경제와 현실의 문제들을 각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사진, 책표지)책의 저자 곽재식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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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일곱 명의 선비들의 이야기 속에서 경제와 돈에 관한 여러 주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가깝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한국의 옛 사연을 통해, 오래 고민되어 온 경제와 현실의 문제들을 각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곽재식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SF 소설가로 여러 신문과 방송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필진과 패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다수의 저서들과 소설들을 출간, 발표했다. 


총 일곱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혁신의 설계자 정도전, 유동성 개혁론자 하륜, 인간 심리로 부를 해석한 철학자 이지함, 노비해방 사상의 선구자 유형원, 경제 규모혁신의 설계자 유수원, 실용주의 추구한 개혁 이런가 박제가, 과학기술의 거인 정약용 등을 통해 그들의 고민을 살펴볼 수 있다. 


정도전


정도전은 고려 말 조정에서 정치가로 활동하다 귀양살이를 거쳐 후학을 양성하다가 조선 창업에 올인했던 실질적인 조선 설계자였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활용해 조선 건국 무렵에 <경제문감經濟文鑑>, <경국전經國典>이란 책을 썼다. 당시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로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책'이란 뜻을 지닌 <경국전>에 경제와 돈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많이 실려 있었다.      


즉, 그는 <경국전>의 ‘경리經理’ 항목에서 고려 말의 겸병兼倂 문제를 다루었다. 겸병이란 남의 땅을 합쳐 가지는 것이다. 즉 세력이 강한 사람이 땅을 겸병해 차지하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다 보니, 땅 부자는 땅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더 많은 땅을 사들여 더욱 부유해지고 부자에게 땅을 조금씩 팔아 치우는 빈자貧者는 더욱 가난해지는 이를테면 고려 말의 '부익부 빈인빈' 현상을 지적했다. 


(사진, 경국전)


또한 경작할 땅이 없어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땅 주인에게 추수한 곡식의 절반을 줘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굉장히 심각한 수준임을 서술했다. 그 외에도 정도전은 땅을 독점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일으키는 두 가지 문제를 추가로 지적했다. 


첫째로 당시의 토지 제도가 복잡했기 때문에 땅에 대한 여러 복잡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조선 초 토지 제도는 '수조권을 나눠준다'라고 명시했기에 말하자면 땅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곡식을 추수했을 때 누구에게 얼마씩 분배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경국전>에서 정도전은 땅 하나에 주인이 7~8명이나 되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고관대작高官大爵의 권력자들이 땅을 독점하면 이로써 더 큰 이익을 억으려 부당한 압박을 가하고 나라의 제도를 좌지우지하며 정부와 결탁해서 판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종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코자 정도전은 '땅의 국유화'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다. 


나라가 주인들로부터 땅을 거두어 새 법령에 따라 농사지을 땅을 백성들에게 다시 나눠준다는 발상은 성공했을까? 피 튀기는 혁명은 부메랑을 맞기 쉽다. 정도전이 말년에 남긴 시 한편(제목 '스스로를 비웃다')을 소개한다. 


(사진, 정도전 시)      


하륜


이성계의 조선 창업 최측근이 정도전이었다면 이방원의 최측근은 하륜이었다. 정도전과는 동문수학 친구였기에 조선 창업에도 참여했지만 나중에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 관상에 관심이 많았던 하륜은 고려 말의 '영흥군 사건'(1389년)에 얽혀들었다. 영흥군 왕환은 고려 임금의 팔촌쯤 되는 인물로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신돈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려 무릉도로 추방되어 귀양살이하던 그는 한동안 실종된 인물로 여겨졌다. 

이후 19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본인이 왕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말로는 어쩌다 보니 일본에 건너가게 되었다며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한국말도 잘하지 못하게 되었고 과거의 기억도 많이 잊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그의 외모가 달라져서 다른 사람으로 보였기에 진위 여부가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관상에 특기를 지닌 하륜과 동료들은 '가짜 왕환'이라고 주장했으나 반면 왕환의 부인은 진짜라고 주장함에 따라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이성계가 나서서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성계 인맥에 포함될 수 있었던 셈이다. 

정도전이 불도저 스타일의 개혁가였다면 하륜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꾀돌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방원에 줄을 대기 위해 장인인 민제 대감에게 사위인 방원이 왕이 될 관상을 지녔다고 넌짓이 말하자 이 말이 방원에 귀에 들어가게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후 이방원이 국가 운영을 장악하자 하륜은 고려 때부터 내려오던 최고의사 결정 조직인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대신 '의정부'를 만들었다. 이처럼 정도전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조선 제도들 중엔 하륜의 수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경우가 많았다.      
1401년 '종이로 돈을 만들어 통용하자'는 하륜의 의견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어 지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던 용어는 ‘저화楮貨’로, 중국에서 사용했던 교초와는 조금 다르다. 저화에서 ‘저’는 닥나무를 뜻하는데, 조선에서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쓰던 나무다. 그러므로 저화는 지금 쓰는 ‘지폐’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느낌을 준다.

(사진, 조지서 터/출처 서울경제 2019,12,8)

<조선왕조실록> 1415년 음력 7월 25일의 기록을 보면, 지폐를 만드는 기관은 ‘조지서造紙署’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1번 출구에 가 보면 조지서 터 비석이 있다. 그 근처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돈을 찍어 낸 곳일 가능성이 높다.

이지함

우리들 대부분은 이지함을 대하면 맨 먼저 '토정비결'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를 만든 이는 이지함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이지함의 인생은 불운과 고난, 빈곤과 실패로 가득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는 좋은 집안의 차남으로 출생(1517년)한 충청도 사람이며, 좋은 가문으로 장가갔지만 말이다.
 

이지함은 상업의 장점을 깨달았다. 그것도 먹고살고자 온몸으로 바닥부터 굴러가며 알아냈다. 그는 노 젓는 일부터 시작해 품삯을 벌고자 땀을 흘리는 와중에 밀물과 썰물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게 절박하게 고민한 덕택에 그는 항해와 상업의 달인이 될 수 있었고, 큰 장사로 많은 재물을 벌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의 부모님 묘지가 바닷가에 있어서 여차하면 물에 잠길 것 같아 둑을 쌓아 바닷물을 막으려고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비록 바닷물로부터 부모님의 무덤을 완전히 지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효성에 감동해 하늘이 이지함에게 평생 소중하게 활용할 지식인 밀물과 썰물에 대한 깨달음을 안겨줬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한 조선 선비들

이밖에도 유형원의 <반계수록>, 유수원의 <우서迂書>, 박제가의 <북학의>, 정약용의 <경세유표> 등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학자들의 고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수원은 스스로의 탐구와 직관으로 중상주의 상업이론을 책에 담고 있다. 특히, 같은 중상주의 실학자인 박제가의 '이사이망以奢而亡 이검이쇠以儉而衰'(사치로써 망하고, 검소로써 쇠약해진다)는 주장은 마치 과거 미국 경제가 '소비는 미덕이다'란 캠페인을 벌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역사 #한국사 #조선시대 #경제이야기 #경제를궁리한조선의선비들 #곽재식 #믹스커피
5****0 2026.01.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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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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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나라 조선에 돈에 관한 이야기는 선비 보다는 상인과 같이 상대적으로 양반보단 계급이 낮은 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선비의 경우라고 하면 학문을 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처럼 여겨지기에 과연 이런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경제를 궁리했던 선비들은 누구이며 어떤 활동을 했을까 싶은 생각에 제목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던 책이 바로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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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나라 조선에 돈에 관한 이야기는 선비 보다는 상인과 같이 상대적으로 양반보단 계급이 낮은 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선비의 경우라고 하면 학문을 탐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처럼 여겨지기에 과연 이런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경제를 궁리했던 선비들은 누구이며 어떤 활동을 했을까 싶은 생각에 제목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던 책이 바로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다.

특히나 이 책의 저자인 곽재식 작가는 굉장히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내는, 다작으로도 유명하신 분이기에 과연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되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 누구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조선이라는 국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국가 살림을 운영하는 측면에서는 보다 넓게 경제적인 부분은 필연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내용이고 이로 인해 각종 규제는 물론 제도 개편이 일어나는 사례만 봐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의 활발하고도 복잡한 경제에 대해 소개하는 이 책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 문제와 관련한 내용부터 개인의 경제적 이야기까지 두루 담아내고 있는데 그속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상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선비 7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는 학문 연구는 물론 책 집필에만 몰두했을 것 같은 이들이 조선 경제, 조선의 시장 질서는 물론 실용적 학문과 맞물려 조선의 과학 기술을 넘어 개혁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관심있게 그 분야를 연구하고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는지를 만나볼 수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할 때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실용학과 관련된 이야기 속 등장했던 인물이 있었고 그중 박제가 역시 이 책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벗어나 조선이라는 나라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방법 속에서 경제는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을 이들은 진즉에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조선의 시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도전을 필두로 유동성 개혁론자로 불리는 하륜은 물론 조선시대 사업 철학자인 이지함,  계급사회 속 노비 해방 사상을 연구한 유형원을 비롯해 우수원과 박제는 물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의 거장인 정약용에 이르는 조선 선비들의 활약과 고뇌를 만나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 '협찬' 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s 2026.0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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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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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유난히 인상 깊게 읽은 경제책 한 권이 있습니다. 배경은 유교 사상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던 조선 시대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시대의 선비들을 청빈을 미덕으로 삼고, 돈이나 이익과는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로 떠올리곤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선비들은 과연 돈을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질문을 깊이 떠올려 본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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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유난히 인상 깊게 읽은 경제책 한 권이 있습니다.


 배경은 유교 사상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던 조선 시대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 시대의 선비들을 청빈을 미덕으로 삼고, 돈이나 이익과는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로 떠올리곤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선비들은 과연 돈을 어떻게 생각했을까’라는 질문을 깊이 떠올려 본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곽재식 교수님의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익숙한 인식을 차분하게 뒤집어 줍니다. 과학자이자 연구자인 저자는 조선을 정체된 과거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을 고민하며 경제 문제와 씨름하던 사회로 바라봅니다. 책 속에서 조선은 단순히 도덕과 이념만을 중시하던 나라가 아니라, 장터의 흐름을 분석하고 화폐 부족을 고민하며 제도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매우 현실적인 경제의 무대였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워 온 인물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성리학 국가를 설계한 사상가이기 이전에, 토지 겸병과 빈부 격차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경제 분석가로 그려집니다. 하륜은 화폐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폐 도입을 주장했고, 이지함은 직접 장사를 하며 노동과 시장의 원리를 몸으로 익힌 인물이었습니다. 유형원과 유수원은 제도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서로 다른 해법을 고민했고, 박제가는 검소함이 오히려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정약용에 이르러서는 조선 사회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려 했던 깊은 사유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조선의 선비들은 돈을 몰랐던 사람들이 아니라, 돈과 사회의 관계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은 오늘 우리가 마주한 양극화, 성장, 국가의 역할 같은 문제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고민으로 이어지는 순간, 역사는 비로소 살아 있는 질문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k*****0 2026.0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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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경제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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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by곽재식  🌱 청빈과 이익 사이, 조선 선비들의 머니     스토리!  조선의 선비들은 현실 경제를 파고든,은근히 진지한 경제 덕후들이었다. 🌱 ~ 사극을 보면 항상 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과 불의와 맞서는 청렴한 주인공! 이들 중, 우리는 당연히 후자가 좋아보인다. 주인공이니까.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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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by곽재식


  🌱 청빈과 이익 사이, 조선 선비들의 머니   
  스토리!
  조선의 선비들은 현실 경제를 파고든,
은근히 진지한 경제 덕후들이었다. 🌱 


~ 사극을 보면 항상 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과 불의와 맞서는 청렴한 주인공!
 이들 중, 우리는 당연히 후자가 좋아보인다. 주인공이니까.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부정부패없이 정직하게 일한다면 가난한 선비보다야 부유한 선비가 당연히 좋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그렇지 못했다.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가진 조선에서는 
 선비, 농민, 수공업자 다음에야 상인이 올 정도로 상업을 경시했고, 선비들도 청빈을 미덕으로 삼았다. 
 조선의 발전이 서양이나 일본에 비해 느렸던 이유도 이런 점을 꼽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의 앞서가는 선비들조차 경제를 등한시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든 미래를 내다보는 천재는 있기 마련이고 그들은 나라가 부유해져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이 책에서는 그런 선각자들 7명을 볼 수 있다.
  조선초기의 정도전과 하륜, 조선중기의 이지함, 조선후기의 유형원, 유수원, 박제가, 정약용이 그들이다. 다들 이름만 들어도 알만큼 대단한 인물들이다

 조선을 설계한 사대부 정도전은 고려에서 보았던 악습들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토지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백성들을 보았고 토지 국유화를 계획했다. 백성들이 맘편히 농사짓고 약탈당하지 않아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믿었다. 비록, 계획만큼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기에도 파격적인 경제 정책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하륜은 이방원의 사람으로, 지금으로 치면 유동성 공급방안을 개발하려 했다.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이 다른 재물로 쉽게 바꿀 수 없으면 무척 불편하다. 이것이 화폐가 생기게 된 이유이다.

 조선 후기로 들어와 실학이 대두되면서 유형원은 노비들을 해방시키려 애썼고 , 우수원은 사농공상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가졌기에 전문 상인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고 믿었다. 특히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대기업 같은 상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서얼이었던 박제가는 양반들에게도 장사를 권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빈곤을 탈피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 모두는 기존에 가졌던 양반의 권위를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임하기를 권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사는 시대가 품고있는 기본적인 생각과 틀을 벗어나 진보한 사고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이들의 사상이 당연해 보이지만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게 박힌 당시의 조선에서는 돈을 생각하고 경제를 논한다는 것은 스스로 양반의 위신을 깍는 일이었다.
 다만, 그들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선구안을 가진 천재이기에 가능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당시에 저들의 주장이 잘 받아 들여져 사회전체적으로 상업과 기술을 장려하고 북돋아 주었다면 조선 말과 일제 강점기의 슬픈 역사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catchbook.kr 
@onobooks 
🔅< 캐치북을 통해 믹스커피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경제를궁리한조선의선비들 #곽재식
#믹스커피 #머니스토리 #경제역사
#경제학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y****2 2026.01.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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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한국사라고 하면 정치사나 전쟁사가 먼저 떠오르기 쉽다.그중에서도 '경제사'는 유독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다르다.'경제사' 대신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니.왠지 사람 이야기, 고민의 기록을 읽는 느낌이 들어 호기심이 생겼다.이 책은 조선시대 인물 몇 명을 중심으로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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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국사라고 하면 정치사나 전쟁사가 먼저 떠오르기 쉽다.

그중에서도 '경제사'는 유독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다르다.

'경제사' 대신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니.

왠지 사람 이야기, 고민의 기록을 읽는 느낌이 들어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은 조선시대 인물 몇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정도전, 하륜, 이지함, 유형원, 유수원, 박제가, 정약용.


이름만 들어도 교과서에서 수없이 외웠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 외웠을 뿐,

이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도전과 하륜은 고려 말, 조선 초 인물이다.

이들은 경제뿐 아니라 행정과 사법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핵심 문제였을 것이다.

경제가 곧 정치이고, 제도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롭게 다가온 인물은 이지함이었다.

그의 이름은 익숙했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거의 알지 못했다.

'토정'이라는 호의 의미와 그 배경을 알게 된 것도 흥미로웠다.

백성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인물이라는 점이 오래 남는다.


유형원, 유수원, 박제가,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묶인다.

농상학파 vs 농공학파.

예전에 시험 대비용으로 업적을 비교하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분류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더 집중한다.

당시의 사회 구조와 백성들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딱딱하지 않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에 가깝다.


시대는 달라도,

서민들이 겪는 고단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능하거나 탐욕스러운 관리들,

권력을 쥔 소수로 인해 고통받던 백성들.

읽다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잘 산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의 선비들처럼

사회 전체를 놓고 고민하고,

실제로 집행하려는 노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한국사를 교양의 관점에서,

사람과 고민의 역사로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경제를 통해 조선을 바라보니,

익숙한 역사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YES마니아 : 골드 w***9 2026.01.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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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조선시대 선비들은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의 책으로 그중에 7명의 선비가 나온다. 조선을 세우는데 선봉 역할을 한 정도전은 고려의 관료들이 독점(겸병)을 매우 경계를 하고 경국전을 지어 민생을 살피는 일에 중점을 두며 조선의 땅을 정부의 땅으로 만들어 백성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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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조선시대 선비들은 백성들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찾아볼 수 있는 기회의 책으로 그중에 7명의 선비가 나온다. 조선을 세우는데 선봉 역할을 한 정도전은 고려의 관료들이 독점(겸병)을 매우 경계를 하고 경국전을 지어 민생을 살피는 일에 중점을 두며 조선의 땅을 정부의 땅으로 만들어 백성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태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선비는 가오가 있어야 하고 의롭고 너그러운 마음과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벼슬을 얻는 순간 그런 정신은 사라지고 없다. 조선을 건국한 일등 공신 정도전은 누구인가? 출신이 정통 양반이 아닌 노비의 혈육이 나오며 부패한 고려를 이성계 장군을 도와 무너뜨리고 나라를 세운다. 


일등 공신 답게 이성계를 도우며 사심을 벌려야 하는데,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무총리 자리에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다 죽음을 당하게 된다. 욕심으로 화를 당하였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이 없다. 이방원의 심복인 하륜은 고려의 부패된 도평의시사를 없애고 의정부 즉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만들어 정치 조직을 바꾸어 간다.


1. 조선의 선비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책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조선 선비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뒤집는 책이다. 흔히 조선의 선비라 하면 청렴과 도덕, 명분과 절개를 중시하고 돈과 상업을 멀리한 존재로 떠올린다. 경제 활동에는 소극적이었고, 현실보다는 관념에 치우쳐 있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이 얼마나 단순한 인식이었는지 차분하게 짚어낸다. 


조선의 선비들은 단순한 도덕 교사가 아니라, 나라의 재정과 백성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상가이자 정책 설계자였다는 점을 다양한 기록과 사상을 통해 보여준다. 책은 조선의 경제 사상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에 반응하며 진화해 왔음을 밝히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고민과도 깊은 연결 고리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조선이라는 과거가 더 이상 박제된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2. 백성을 살리는 것이 곧 경제라는 선비들의 관점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조선 선비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오늘날의 시장 논리와는 달랐다는 점에 있다. 그들에게 경제란 부를 축적하는 기술이 아니라, 백성이 굶지 않게 하고 사회를 안정 시키는 수단이었다. 토지 제도 개혁을 고민한 유형원, 농업 생산성 향상을 주장한 이익, 상업과 유통의 중요성을 설파한 박제가 등은 모두 경제 문제를 현실 정치와 연결해 사고했다. 


이들은 단순히 이론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세금 제도가 백성을 괴롭히는지, 왜 토지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지, 왜 유통이 막히면 나라 전체가 병들 수밖에 없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책은 이들의 사상을 오늘날의 경제 용어로 쉽게 풀어내며, 조선 선비들이 결코 경제에 무지하지 않았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오히려 그들은 시장과 국가, 개인의 역할을 균형 있게 고민했던 실천적 사상가에 가까웠다. 이러한 서술은 조선 경제사를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제 의식으로 느끼게 만든다.

3. 청빈과 부의 긴장 속에서 고민한 현실 감각

조선의 선비들이 경제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도덕과 현실 사이의 균형이었다. 유교 사회에서 부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지나친 이익 추구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책은 선비들이 무조건적인 청빈만을 이상으로 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백성이 가난하면 도덕도 설 수 없다는 인식, 나라의 재정이 튼튼해야 제도와 교육도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이 분명히 존재했다. 


상업을 천시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선비들은 상인의 역할과 유통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시선이었다. 책은 이런 논쟁과 갈등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조선 사회 내부에서도 경제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고 공존했음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독자는 조선이 단일한 가치관으로 움직인 사회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던 역동적인 공동체였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4. 오늘의 경제 현실을 비추는 조선 선비의 질문들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 지금의 독자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들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부의 불균형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국가는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조선 시대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책은 조선 선비들의 사상을 단순히 역사적 지식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부동산 문제, 양극화, 복지 논쟁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과거의 해답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경제를 숫자와 지표가 아닌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경제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자 윤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5. 조선 경제사를 통해 얻는 깊고 단단한 통찰

조선의 선비들을 미화하지도, 과도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며, 그 안에서 경제를 궁리했던 흔적을 차분히 따라간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시서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사유 에세이를 읽는 듯한 밀도가 느껴진다. 조선 경제사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오늘날의 경제 문제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다.


빠른 해답이나 투자 전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고 생각의 깊이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경제를 공부한다는 것이 결국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오늘의 삶과 내일의 사회를 함께 궁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철저히 현재를 위한 책이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

l*****3 2026.0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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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곽재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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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가 알던 조선은 유교적 명분과 신분 질서로 굳어진 사회였다. 하지만 그 틈새에는 끊임없이 현실을 직시하고, 백성의 삶을 개선하려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책상머리에서 고전을 외우기만 한 학자가 아니라, 땅과 돈과 사람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바꾸려 했던 실천적 사유자들이었다. 정도전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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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알던 조선은 유교적 명분과 신분 질서로 굳어진 사회였다. 하지만 그 틈새에는 끊임없이 현실을 직시하고, 백성의 삶을 개선하려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책상머리에서 고전을 외우기만 한 학자가 아니라, 땅과 돈과 사람의 흐름을 읽고 그것을 바꾸려 했던 실천적 사유자들이었다. 정도전이 <경국전>에서 토지 겸병 문제를 지적할 때, 그는 단지 도덕적 비난을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부자는 수확물로 다시 땅을 사들여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는 조금씩 땅을 팔아 더욱 궁핍해지는 악순환. 소작농은 수확의 절반을 지주에게 바쳐야 하는 가혹한 현실. 그는 이 구조적 모순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개혁은 감상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륜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경제의 혈액인 화폐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빈혈에 걸린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1401년, 조선은 그의 제안으로 저화라는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닥나무로 만든 종이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비록 유통에는 실패했지만, 홍제역 근처 어딘가에서 한국 최초의 화폐가 인쇄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선 경제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지함의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선비가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할 때, 그는 직접 노를 저으며 품삯을 벌었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관찰한 것도 고상한 자연 관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박한 학습이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지식은 책에서 배운 이론보다 훨씬 강렬했고, 실용적이었다. 상업을 천시하던 시대에 그는 장사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굴러가며 스스로 터득했다. 노비 신분에서 시작해 재산을 축적하고, 결국 아산 현감이라는 관직까지 얻은 그의 궤적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선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경제 활동의 가능성을 백성들에게도 열어주고자 했다.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로서의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유형원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신분 제도 자체가 과연 정당한가? 1670년에 노비 제도 폐지를 주장했다는 것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놀라운 일이다. 당시는 사람의 가치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믿던 시대였다. 그런 사회에서 노비 해방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한 개혁 제안이 아니라 체제 전복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그는 부안에서 홀로 『반계수록』을 집필했다. 맹자의 정전법을 참고하되, 현실에 맞게 변형한 공전제를 설계했다. 땅을 아홉 조각으로 나누고 중앙에서 공동 경작하는 고대 방식이 아니라, 각자에게 일정 면적을 배분하고 수확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는 방식.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실행 가능성을 고민했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801년 6만 명이 넘는 공노비가 해방되는 역사적 순간으로 이어졌다. 유수원은 유형원과 닮았지만 또 달랐다. 그 역시 <우서>에서 중상주의를 주장했지만, 직접 조정에서 일하며 현실의 벽을 체감했다. 유형원이 시골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유수원은 벼슬살이를 하며 정치의 냉혹함을 경험했다. 영조는 붕당 간 싸움을 줄이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경제 개혁 따위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학문적 열정으로 청력까지 잃은 그가 나주 괘서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 것은 비극이었다. 그의 냉소적 어조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박제가의 말은 당대에 급진적이었다. "사치로 망한다고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검소함으로 쇠퇴하고 있다." 조선 사회의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유교적 절약 정신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소비가 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청나라를 직접 보고 왔다. 수레가 굴러다니고, 상업이 활발하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사회. 그것이 곧 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북학의』에서 그는 단순히 청나라를 모방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경제 순환의 원리를 설파했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명료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천주교 관련 사건과 사돈의 흉서 문제로 함경도 유배를 떠나야 했다. 3년 8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개혁적 사상가들의 말로는 대개 비슷했다. 시대는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정약용의 삶을 보면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의 전성기는 정조와 함께 화성을 건설하던 때가 아니라, 오히려 18년간의 유배 기간이었다. 거중기를 발명해 성을 쌓는 것도 훌륭하지만, 홀로 귀양살이를 하며 500권의 책을 저술한 것은 경이롭다. <경세유표>는 입법에 관한 지침서다. 나라를 경영하려면 어떤 제도가 필요한가를 다룬다. <목민심서>는 행정에 관한 것으로, 지방관이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담았다. <흠흠신서>는 사법, 즉 범죄 수사와 판결의 원리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세 권의 책은 현대 국가의 삼권분립 구조를 선취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를 자신의 두뇌 속에 담으려 했던 것 같다. 유배지는 그에게 감옥이 아니라 연구실이었다. 정치적으로 소외되었을 때, 그는 오히려 가장 깊은 사유에 도달했다.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졌을 때 비로소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이 다루는 인물들은 모두 '궁리'의 사람들이었다. 궁리란 단순히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물의 이치를 깊이 파고들어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제를 재화의 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땅의 분배, 화폐의 유통, 노동의 가치, 신분의 구속, 소비의 역할까지 모두 연결된 하나의 체계로 바라봤다. 조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었다. 장터는 지역마다 다른 양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화폐 부족은 만성적 문제였으며, 기술 혁신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경제를 궁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모두 실현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좌절했다. 저화는 유통에 실패했고, 유형원의 공전제는 생전에 채택되지 못했으며, 유수원과 박제가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후대의 학자들이 그것을 읽고,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조선은 조금씩 변화했다. 경제를 궁리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궁리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땅은 어떻게 나눠야 공정할까. 돈은 어떻게 흘러야 경제가 살아날까. 신분은 정말 정당한가. 소비는 사치인가, 아니면 필요악인가. 이런 질문들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p****r 2026.0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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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수업에서 다루었던 수업 내용이 현실화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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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는 도서는 도서의 제목부터 저의 큰 흥미를 이끌어내었습니다.특히 이 도서의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도전의 이야기는 제가 한국사 수업 중 여말선초를 수업할 때에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이었습니다. 목은 이색으로부터 '성리학'을 함께 공부한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이 '역성혁명'과 '토지 개혁'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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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는 도서는 도서의 제목부터 저의 큰 흥미를 이끌어내었습니다.
특히 이 도서의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도전의 이야기는 제가 한국사 수업 중 여말선초를 수업할 때에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이었습니다. 목은 이색으로부터 '성리학'을 함께 공부한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이 '역성혁명'과 '토지 개혁'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자 그들이 놓인 사회, 경제적 상황을 학생들로 하여금 탐구하게 함으로써 '정몽주'와 '정도전', 더 나아가  '온건개혁파'와 '급진개혁파'를 새롭게 정리하고 평가해 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러한 저의 수업 내용을 문자화된 책으로 확인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이 그들의 선택에 담긴 다양한 배경에의 이해를 바탕으로 여말선초의 혼란과 조선의 건국, 과전법 개혁 등 그 일련의 과정을 의미 있게 바라보고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기에 더 좋았습니다. 매년 학기 초 조선시대사 수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크신 선생님들, 새로운 시각으로 조선시대사와 우리 사회를 마주하고픈 분들에게 적극 권해드리고 싶은 도서입니다.
그다음으로 크게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유형원', '유수원', '박제가',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실학'과 '실학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실학'은 대학 재학 시절에 제가 큰 관심을 가진 분야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저서 원서를 탐독하고 이를 해석하며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실학'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그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졸업 후 학교에 가면 학생들에게 '실학'과 함께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꿈꾸었던 조선과 그 이상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교단에 서서 보니 '실학'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빠듯한 수업 시간, 소략한 교과서의 설명 등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실학과 실학자들의 이해보다는 시험을 위한 준비로서의 암기로 전락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이를 보완하고자 이를 주제로 한 수행평가를 진행함으로써 학생들이 스스로 이들의 저서를 탐독하며 '실학'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의 한 가지의 아쉬움은 '실학'과 '실학자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였는데, 이 도서를 읽으며 이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이 해결되었습니다. '경세치용(중농학파, 토지 개혁)'과 '이용후생(중상학파, 상공업 진흥)', '근기 남인'과 '노론' 등 그들이 처한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적극 반영하며 그들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그들 사상의 핵심 아이디어로 간결하게 정리하며 이해를 요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한국사 수업을 진행하며 활동수업의 일환으로 이 도서를 학생들과 함께 탐독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느낀 '실학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발표를 통해 공유하고 그들이 지향하였던 바가 오늘날에는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 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생활양식(자본주의 등)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양의 경제학자들의 경제학 이론과 조선의 선비들의 정책과 사상을 비교하여 정리함으로써 그 이해를 높인 부분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사 1 수업뿐만 아니라 통합사회 2 경제 단원 수업을 진행하며 참고도서로 활용해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학기 통합사회 2 수업 시간에도 한번 활용하여 자본주의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시간을 또한 가져볼까 합니다.
이 도서의 주인공인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오래 고민되어 온 경제와 현실의 문제들을 각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던 작가의 저술 목적과 그 의도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새 학기를 힘차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d*********0 2026.03.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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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서평]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내용보기
곽재식님은 TV의 다양한 교양프로그램에서 만난 인물이다. 공학박사이고 화학자이자 소설가인 그가 이번에 신간을 냈는데, 책 제목은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는 책이다. 그의 최근 작인 ‘한국 괴물 백과’같은 책도 펴냈지만, TV에서는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인 그가 조선시대 선비들을 다룬 책을 펴냈다니 책 내용이 궁금했다.서문을 읽어보면 저자가 원래 이 주제로 책을
"[서평]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 내용보기
곽재식님은 TV의 다양한 교양프로그램에서 만난 인물이다. 공학박사이고 화학자이자 소설가인 그가 이번에 신간을 냈는데, 책 제목은 ‘경제를 궁리한 조선의 선비들’이라는 책이다. 그의 최근 작인 ‘한국 괴물 백과’같은 책도 펴냈지만, TV에서는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인 그가 조선시대 선비들을 다룬 책을 펴냈다니 책 내용이 궁금했다.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가 원래 이 주제로 책을 쓰려고 하진 않았다. 다른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 취재하고 연구하다보니 경제와 관련된 조선의 인물들의 자료가 많이 쌓이게 되어 이와 같은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 곽재식님은 경제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지도 않고, 조선 경제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다. 그래서 책 내용의 깊이는 조선의 경제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와 관련된 선비들이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궁리를 했는지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알아가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책 속의 조선의 선비 7명 중 널리 알려진 이름이 많다. 정도전, 이지함, 유형원, 박제가, 정약용 등 조선시대 관련 자료나 책,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정치와 학문에만 관심있고, 경제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현재까지도 이어오는 조선의 문화나 관습들이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7명의 선비가 조선의 경제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다. 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각 개인의 위인전에서도 소개되는 내용도 있겠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들도 많았다. 특히 그들이 하고자 했던 경제 정책들은 성공한 것도 있지만, 실패한 것들이 더 많다. 특히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의 건국에 이바지한 정도전은 고려시대때부터 이어진 지방세력들의 토지 소유로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지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태종 이방원과 뜻을 같이한 화륜은 '저화'라고 불리는 지폐를 도입했는데, 지금의 5만원권의 가치로 일반 서민들에게는 널리 유용되지 못했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은 상업에 관심이 높았고, 직접 장사를 하며 항해와 상업의 달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시조로 처음 알게된 박제가는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청나라를 동경했고, 해외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정약용은 그의 3대 저서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를 통해 현대의 입법,행정,사법이 조선시대에는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의 경제를 걱정했던 조선의 7인의 선비를 통해 조선시대의 경제 상황을 잘 알게됐고, 현대의 경제 상황이 조선시대에도 이미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조선시대의 역사 이야기와 함께 나라의 경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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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2026.01.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