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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개봉 당시 매체에서 거론한 화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해리슨 포드의 주연 담당 가능 연령이 그의 몇 살까지가 한계인가 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나이 든 남성이 어린 상대와 엮어지는 문제가 영화의 설정으로 어디까지 당연하다는 듯 취급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첫번째에 대해서는, 해리슨 포드는 이 바닥에서 손에 꼽을 만한 부자였고, 따라서 그가 돈을 대기만 하는 이상 자기만족과 대외적 체면의식이 주관적 균형을 이루는 그 시점까지 무한히 가능하다는 게 결론 아닌가 싶다. 멜 깁슨도 상업적 성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어려움과 (다른 분야의)사업적 장애까지 감수하면서, 제 종교적 신념의 표백 하나만을 목적으로 제 돈 팍팍 써 가면서 영화를 찍지 않았던가? 운수 트인 사람은 뭔 삽을 퍼도 이익이 굴러 들어오는 법인지 깁슨은 화풀이 한번 찰지게 하고 엄청난 상업적 성공과 다른 차원의 평판까지 거머쥐기도 했으나 이런 일은 사실 예외이고, 돈 있는 사람이야 잉여의 부로 뭘 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 정도 결론이 무난하지 싶다. 두번째 문제는 씨네21에서 판에 박힌 낡은 여성관으로 잘못 제기한 게 아닌가 싶은데, 영화를 막상 보면 트로피 와이프 같은 찜찜한 이슈가 아니다. 단지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돈도 없는 일개 일용직 루저, 이것이 포드가 분한 주인공이다. 그 기획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비평계 일각에서 제기할 법한 비판을 미리 의식, 예상하고 보다 공정한(?) 설정으로 다운그레이드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실제, 앤 헤이시의 묘하게 보이시하나 차분하고, 깊은 우수가 어울리지 않게 표정 한켠에 자리한 페이스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통념에서 벗어난 사랑에 빠지는 젊은 여성의 입장을 잘 정당화해 주는 것만 같다(별 노력도 없이 풍기는 분위기만으로 먹고들어가는 묘하게 불공평한 경우도 세상엔 흔하며, 오히려 읿반적이기까지 하다). 낙원에 고립된 청춘 남녀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아찔한 테마(막판에 해적놈들대거 출현까지 그야말로 판에 박인 패턴)를, 일방이 노년이란 다소간 변형(혹은 별개 두 모티브의 불균등 결합)을 통해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그럭저럭 그려나가고 있으며,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건 공공연한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앤 헤이시가 저 영감하고 키스씬 같은 거 찍을 때 정말 죽을 맛이었겠다라는 동정이었는데, 공연한 거대 담론의 경우에 맞지도 않는 들이댐보다 오히려 이 문제가 더 피부에 와 닿는 화젯거리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헤이시 같은 얼굴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제 나이를 꽤 먹었을 텐데 요즘은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