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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혹은 기녀라고 불리우는 그녀들은 비록 신분계층이라는 피라미드상에 가장 최하위에 위치한 천민계층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일반적인 천민계층과 사뭇 다른 또 하나의 계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권력 창출계층이었던 사대부들과 유일하게 어울릴수 있는 여성계층으로 자리잡으면서 역사의 다른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조선사회는 철저하게 남성위주 특히 양반이라 지칭되는 일부 남성들의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남성으로 태어나더라도 적자가 아닌 이상은 아웃사이더로 살아갈 수 밖에는 없는 사회에서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천민이라는 계층의 신분적 장애를 딛고 많은 기생들이 사대부들을 농락한 예를 조선실록을 보더라도 많이 있었다. 특히 국가적으로 환란을 겪을때마다 남성사대부들도 하지 못한 의를 몸으로 실천한 이들중에 항상 기생이라는 계층의 여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는 이러한 기생들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행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반을 다루는 측면이 아니라 일제감정기에 접어들어 기생들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집어보는 저작이다. 지금의 만능엔터테이너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시 모던걸로 상징되었던 기생들의 사회참여는 근대화라는 시대적 조류와 더불어 우리사회에 일대의 변혁을 가져왔고 그러한 변혁과 영향들은 현대 미디어시대의 원천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측면으로 저자는 접근하고 있다. 또한 현대음악과 미술, 영화 그리고 광고모델등 근대화를 지칭하는 문화사조에서 선구자 역활을 담당하면서 조선의 근대문화의 선봉장이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일제감정기 시대에 기생들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지금의 연예인에 비유되는 특성들에 대해서만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당시 기생학교학교의 경쟁율과 경제적대우등이 일반민중들에 비해서 탁월했다는 점등을 들어 기생이 되고자 하는 인기가 높았다는 점, 근대화의 표상인 모던걸을 상징했다는 점 등에서 그 표면상의 현상만을 다루고 있는 점이 못내 아쉽다. 또한 각종 사진엽서나 광고물에 등장하는 기생들의 화려한 이면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상세한 비판이 생략된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저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결국 일제의 식민지정책중의 일환으로 기생들의 화려한 면이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피해자 역시 기생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강제근대화를 당했을때 받았던 제국주의의 시각을 그대로 조선에 심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홍보물에서 기생들을 배경으로 하는 팜플렛을 제작하면서 식민지정책의 당위성을 은연중에 내포했던 것이다. 지금의 언론의 영향보다야 떨어지는 효과를 가지고 있을 지언정 이러한 정책들은 한동안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사회적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능 엔터테이너와 같은 화려한 측면만을 고찰하는 것은 진정한 기생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에서 다소 그 균형서을 잃을 소지가 있어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측면들이 기생이라는 이미지를 고착화할 수 있는 또다른 시각의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기존의 기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하는 차원에서 만능 연애인의 이미지를 부각시켰지만 다른 면에서 바라볼때는 이러한 연애인이나 모던걸의 이미지가 기생의 또 다른 이미지로 각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생이라는 계층은 엄연히 한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계층이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일반 민중이었다. 단지 봉권적인 권력구조가 만들어낸 희생양으로 묻어둘 수 없는 아픔이었던 것이다.
항상 국가적인 환란이 닥칠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헌신한 이들은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층이 아니라 기생과 같은 최하층이 대다수였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기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생을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특수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시각보다는 기생역시 엄연한 우리의 어머니, 누나와 같은 동일한 인격체로 그리고 남성위주의 신분사회가 낳은 피해자로 봐야함과 동시에 일반민중과 동등한 사회의 조직구성원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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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남자가 아니어도 팔방미인이었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같은 여인이지만 개인적인 어떠한 사정이든 가족을 떠나 생활하며 자의든 타의든 뭇 사내 앞에서 웃음을 흘려야 했던 이들에게 우선 연민을 느꼈다. 천민의 신분이라고는 하나 역사 속에서 나라를 책임지던 관리들보다 더 두터운 애국심으로 자신의 한 몸을 아낌없이 던진 기생도 있었다. 단순한 노류장화로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요 문화로서 그들 이야기를 읽고싶었다. 지금 시절에도 1900년대 초반의 명월관과 같은 요릿집이 있다면 많은 남성들이 한번쯤 가보기를 소망하지 않았을까. 요릿집 명월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우리 민족의 이야기와 조선 통치를 기획하던 밀실정치의 이야기를 읽는데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 우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1894년 갑오경장. 역사가들은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근대화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그 시기 가장 화려하게 빛을 내었던 기생들, 근대화 이후로는 기생이라는 말이 서서히 스러져갔는데 빛과 그림자처럼 화려하면서도 그늘진 인생을 살아간 그 시절 기생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팔방미인이었다는 그들. 사실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역사의 선 안에서 기생의 삶을 단독으로 보여준 책을 만나지 못해 호기심 반 궁금함 반으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들의 웃음 뒤에 가려진 슬픔이 못내 가슴아팠다. 나는 아니기에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이들에서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읽으며 동조하고 공감하는 기분으로 바뀌어갔다. 연예인의 시초가 된 이들은 하이라이트를 받았지만 동시에 그런 주목을 끄는 것을 도구로 또 하나의 독립운동의 일환이 되기도 했다. 기생춤, 기생 소리라는 말로 그들의 재능을 폄하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기 부정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나라 역사 속 대 변혁의 시기, 문화를 앞서 만들고 끌어간 신여성, 기생. 웃음을 파는 화류계의 꽃이었던 그들의 삶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갔으며, 그것이 시대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갔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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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박정자가 말하는 '연극 인생'에 대하어 들어본적이 있다. 그녀는 50년동안의 연극인 생활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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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을 볼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여자다. 그리고 그 여자의 직업은 ‘기생’이라는 것이다. 물론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겠지만, 시대적으로나 이야기의 흐름으로 기생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일도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기생의 모습이나 그 시대의 배경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많다. 하지만, 단지 기생을 중심 소재로 다루는 책은 흔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나 조선 시대에 등장했던 기생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고 그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기생을 연예인이라고도 불리었던 기생의 모습을 담은 책을 만났다. 「조선, 기생을 사로잡다」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기생의 모습과 배경을 말해주고 있었다.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은 일본강점기에 쓰인 이름이었고 일본강점기의 근대화를 지나쳐오면서 그 이름은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에 ‘연예인(演藝人)’으로 불렸고 점차 무용, 음악, 극단, 가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활동을 하게 된다. 기생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이나 좋지 못한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기생의 모습은 예술 분야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전통 공연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에서 보여주는 기생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생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황진이가 생각이 났지만, 책에 등장하는 기생은 정말 많았다. 그리고 활동 분야도 다양했고 기생들의 활동으로 연예인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난 이름으로 그녀들이 활동하는 분야는 점점 성장해갔다. 그 성장으로 연예인으로 그리고 여자로 당당하게 자신의 활동이나 역할을 할 수 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월관 기생부터 공연예술가, 한국 전통 무의, 전통악기, 평양기생학교 등 기생을 양성하기도 했고 가르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연예 매니지먼사로 ‘권번’이라는 기획사도 생겨났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서 근대화를 거치면서 기생의 점차 탈바꿈되어 연예인으로 다양한 활동과 공연 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기생의 연애 이야기도 담고 있어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고 아름다운 사랑, 비극적인 사랑 등 그녀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과거 기생으로 불리던 연예인이 있었기에 새롭고 다양한 문화도 받아들이고 사회적으로 많은 이바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등장하는 기생은 많지만, 결과적으로 기생이 과거 활동한 분야나 그녀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게 해준 책이었기에 기생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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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하면 흔히 드는 생각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여자라서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천한 직업에 속했던 기생은 고려시대부터 있어온것으로 추정이 되고, 조선시대에 번성하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새로운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실 강압적인 근대화로 인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일반 여염집 여자들은 멀리했던 신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표현해낸 여성들이 바로 기생 출신 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사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이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기생이라는 점이었다. 기생하면 접대하는 문화로 인식을 해서 성적인 코드로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책에 나온 기생들의 많은 생활상과 활약상은 성적인 코드 그 이상의 것들이었다.
사진을 찍히고, 대중 앞에 나서는 행위가 여염집 처자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 회피하던 일을 기생들이 맡아서 함으로써 수많은 엽서 사진과 미인도 등의 그림에 기생들의 사진과 그림이 남게 되었다. 실제 사진을 보면서 그 당시의 미의 기준과 복식, 그리고 문화 등에 대해 조금씩 추론할 수도 있었다.
사실 지금 봐도 예쁜 여성들도 있었고, 대부분은 동글동글하고 선이 고운 얼굴들이었다. 지금의 마르고 지나치게 서구적인 미인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미인형이었다.
조선 유행가를 최초로 일본 전역에 알린 왕수복이라는 젊은 기생은 우리나라의 가수로 맹활약을 한 여인이었다. 또한 그녀는 문학을 좋아해 문인인 '메밀꽃 필무렵"의 작가 이효석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다. 기생이라는 천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동경해마지않던 이효석을 그리고, 잠시라도 그의 곁에 있는 꿈을 꾸기도 하였지만, 건강이 안 좋았던 효석은 그녀를 놔두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배우들, 그리고 cf모델들 역시 대부분이 기생 출신이었다.우리나라 연예문화 발전에 그들이 크게 기여했음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계속 등장하는 권번 기생이라는 말에 권번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기생 조합 혹은 기생 양성소 같은 역할을 하는 단체를 권번이라고 하였다. 지역별로 평양권번, 대동 권번 식의 권번에 소속되어 있는 기생들이 그 곳에서 수업을 받고, 기생으로써의 역할을 배운 후 실제 활동을 할때에도 어느 정도의 세 같은 것을 권번에 내고 활동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권번 기생이 관기인가 헷갈렸는데, 맨 끝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기생의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저 조선시대 기생하면 황진이,논개 정도만 알고 있던 내게 조선 말기,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기생 스타들의 이야기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그들이 연예인으로서만 활동한게 아니라 신여성의 근간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앞장을 서고, 또 독립운동가로써도 열렬히 활동을 했던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한 근대 여성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어려운 살림에 혹은, 여러 정황상 어쩔수 없이 시작한 기생활동이었어도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은 강명화의 사랑은 100년의 사랑, 천년의 사랑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사랑이야기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남자 장병천을 만나 그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집까지 팔아가며 헌신했건만 백만장자인 장병천의 집에서 생활비까지 끊길정도로 홀대를 당하자, 사랑하는 이의 성공을 위해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그 무덤 앞에서 정신없이 울기만 하던 남자 장병천도 며칠만에 애인인 강명화의 곁으로 떠나고 말았다. 강명화의 사진이 이 책에도 실려 있었는데, 요즘에 봐도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재주가 많고 아름다워 뭇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했으나,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위대한 사랑의 여인 강명화.
책 속에는 많은 기생들의 삶과 사랑이야기가 나왔다. '운수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의 형 현정건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던 현계옥은 남편을 따라 만주까지 건너가 독립운동을 할 정도로 맹렬한 여성이었다. 그녀 역시 기생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고 분명해 사랑과 애국을 동시에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생에 대한 놀라운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다루려니 책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왕실의 가무를 계승한 기생들의 업적은 더이상 폄하되어서는 안될것이고, 근대적 대중문화의 선구자로 앞장 섰던 기생들의 수많은 업적들이 그들의 천한 신분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더이상 무시되어서는 안될 거라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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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를 읽으면서 제일 처음으로 공감하고 처음으로 올다고 생각해본적은 아마 처음인것 같다. 최초의 연예인... 참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어찌보면 기생이야 말로 우리 전통을 그대로 후세들에게 이어준 계승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전통이라는것이 어디서 어떻게 대가 끊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생 하면 천한 신분이고 천한 계급으로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드라마 <황진이>를 본 이후로는 점차 기생이라는 두 글자에 대한 오해와 견해? 편견도 버려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랏일을 좌우하는 모든 일들에 기생이 참여하지 않은 일이 없고 기생이 도움없이 벌여진 거사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읽은 도서에서는 일제강기 연예인이 된 기생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그들의 옷차림은 시대별로 차츰 차츰 변모한다. 기생을 모델로 화장품광고도 찍었다. 오늘날 연예인들과 비교해볼때 정말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최초의 연예인이 기생인 셈이다. 기생문화가 생긴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일제강점기에 발빠른 외국문화를 제일 먼저 접하는 것 또한 기생들이다. 긴 머리태를 잘라버리고 단발로 과감히 나서는 기생들도 보인다. 여자에겐 긴 머리가 생명이었을터인데 웬만한 도전정신이 없다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을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당시 기생의 모습이 발전된 흐름을 재미있게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면서 사진과 함께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연예인의 모습을 공개하여 시선을 고정시킨다. 전통무용이나 음악을 담당했던 기생들이 점차 음악기생, 무용기생, 극단 여배우, 대중가요 가수, 화초기생, 항일 기생 등으로 분화디는 과정을 정확하게 잘 살려냈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알지못했던 기생들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수 있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것이다. 서양댄스가 들어오면서 유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전통무용을 추는 기생요리집이 아닌 카페나 다방, 댄스홀로 몰려갔다는 사실이다. 역시 무용이나 춤이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동작도 변하게 되어 있는것 같다. 하물며 기생들마저 서양댄스를 배웠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기생들이 추는 춤은 모두가 남자들을 유혹하는 춤일 것이라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놀라운 사실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고 예쁜 한복의 발전과정을 선보여준 기생들의 실제 이름이 하나 하나 적혀있고 그들의 활동했던 당시 시대를 잘 묘사해서 정리해놓았다. 이들의 활동했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기생들사이에서도 숨어있는 사랑이야기도 궁금하다. 아마 조만간 그들의 숨어있는 러브스토리도 공개되지 않을까 싶다. 어색하고 불편했던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한방에 무너뜨리고 새롭게 태어난 기생들의 이야기로 독자들 곁으로 훌륭하게 다가온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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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에게 기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 온다면 텔레비젼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높은 지위의 사람들 앞에서 술따르고 노래하고 춤추던 천인이라 말하지 않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여러가지 이유에는 일제 감정기를 그치며 일본은 우리 기생을 창기라는 측면을 왜곡하여 부각시키고 우리 스스로 기생에 대해 천시대하는 문화가 잇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기생이 일제 감정기 우리 문화와 사회 그리고 예술분야에 이르기까지 선구자적인 역할에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제 감정기시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명기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22년 야구 시범경기를 위해 방한한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에게 검무 승무 사고무 등 우리의 춤사위를 선보이고 음악을 들려주는 등 조선의 문화홍보 대사로서의 명월관 기생들 1930년 레코드 음악의 황금기에 '유행가의 여왕'이라 불린 평양 기생 왕수복 여성으로서 최초로 영화배우가 된 이월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상 기생이 된 현계옥등 물산 장려 운동,토산 장려 운동,자선행사,기부등의 사회 운동을 펼침 동래 권번 기생들 광고,그림,사진 모델,파업 노동 운동등 1920-1930년대 기생은 근대 대중 문화를 주도 한 선구자이며 사회 문제에도 자각한 신여성이기도 햇다.
일제 감정기 우리나라의 전통 공연 예술의 계승자는 권번의 기생밖에 없었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무와 소리를 젤 먼저 익혔고 시대에 맞게 서양 악기와 사양춤을 배운 종합 예술인임에 틀림없었다. 기생은 종합 예술인이었지만 봉건 사회의 첨민이었고 평생 사회적 편견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기에 우리 전통 예술의 계승자였지만 게승 주체가 기생이었기에 왜곡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기생을 길러내는 기생 학교를 보면 국내외 적으로 아주 유명한 평양 기생 학교가 있엇다. 그 곳에서 예악의 기술을 닦은 기생들은 출신 지역별로 조합을 이룬 권번으로 들어가게 된다. 권번은 지금으로 말하면 연예매니지먼트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기생을 관리하고 요청에 따라 기생을 보내고 화대를 수금하는 일,그리고 전통 예능을 가르치는 일도 했다. 일제 감정기 시대 기생들은 우리 문화의 계승자이며 연예인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문화의 상당 부분이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기생을 천시 여기기엔 그들이 사회 문화적으로 공헌함이 너무나 크다. 그들의 공로는 제대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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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조선시대의 기생과 궁녀라는 직업은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궁녀에 대해서는 예전에 책으로 읽어 보았고, 기생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시대의 기생의 역할과 시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많은 사진과 그 시대의 신문기사자료, 레코드, 영화 등 근대문화자료를 동원하여 많은 볼거리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기생하면 유녀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수 있으나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대화가 가능했던 여성들이다. 시, 서, 화, 창, 악기연주를 교육받은 전문직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전국 지방에 있었던 관기제도가 폐지되었다. 기생들은 출신지방 별로 모여 조합을 만들었고, 1914년에 일제에 의해 조합이 권번으로 바뀌게 되었다. 경성의 한성권번, 종로권번, 평양의 기성권번 등이 유명했다. 특히 한성권번, 기성권번에는 기생학교가 있어 14세 ~ 20세까지의 처녀들이 입학하여 가곡, 예의, 서예 등을 배워 예능과 교양을 겸비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일제강점기 기생들이 요즘 연예인 같은 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되어졌다. 권번은 현재 연예기획사의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기생들이 진출했던 곳은 명월관이라는 경성의 대형요릿집에서 외국관광객을 접대하고 검무, 승무 등 여러 가지 춤을 추는 공연을 하는 분야였다. 한성, 한남, 대정권번의 기생들이 담당한 것으로 보였다. 1922년 미국직업야구단이 경성을 방문했을 때 명월관에서 기생들이 접대한 내용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명월관에서 기생들은 조선문화홍보대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1920년대부터 대중음악을 이끌어 간 기생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인물도 예쁘고 노래도 잘 하는 기생들은 대중스타가 되었다. 10대 가수여왕이 된 평양기생 왕수복이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왕수복 외에 선우일선, 김복희 등이 많은 인기를 얻었고 레코드도 취입하여 1930년대에는 레코드음악의 황금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수 외에도 많은 영화 속의 주인공, 패션, 광고, 사진엽서속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기생들은 요즘 연예인과 다를 바 없었다. 기생수입의 순위도 이 책에서 찾아 볼 수 있으니 요즘 어떤 연예인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 개런티로 몇 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신문에 실리는 요즘이야기와 비슷하다. 기생의 역할이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연예인의 역할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전통무용과 전통악기 연주를 전승한 것이다. 기생들이 없었다면, 기생학교에서 무용과 악기연주를 가르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한국무용이라고 칭하는 것이 전해져 왔을지 궁금하다. 조선문화홍보대사로, 대중문화의 샛별로, 한국전통문화를 공부하며 전승하던 기생들은 그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여성이 되어 유행을 이끌고, 다른 위치의 여성들이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자유연애로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안리 독립운동을 돕기도 하고 사회, 노동운동가로서 투쟁한 기생들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시대의 기생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던 위치에 서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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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조선을 사로잡다.. 제목만으로도 내용이 너무 기대되었는데 책장을 넘겨보면서 사진을 보는 재미가 또 한 몫 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겼다. 흔히 생각했던 기생은 웃음을 팔고 술이나 따라주는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권번기생들의 삶을 통해 근대화 과정의 모습과 기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보여주었다. 독립운동에 선봉으로 나선 항일 기생들~ 1919년 3월 19일 진주기생들의 만세의거, 여성으로 유일하게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현계옥, 사회·노동운동가로서 투쟁한 수많은 기생들, 또 조선 유행가를 최초로 일본 전역에 중계방송으로 알린 왕수복은 조선민요를 일본어로 부르라는 압박에 끝내 예술계와 결별하면서 까지 민족의 넋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한다.
기생은 요즈음의 종합엔터테이너처럼 전통 봉건사회에서 문화예술을 창출하는 중심이었다. 1920~30년대 충돌과 갈등, 변화와 역동의 시기였음이 잘 나타난다. 식민지라는 정치적 한계속 에서도, 개인들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주체를 구성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그것은 특히 오랜 역사 동안 역사의 주변인이며, 종속적 지위에 있어 왔던 여성들에게 더 큰 사회적 변화를 의미했다. 기생은 종합예술인 이었지만 봉건사회의 천민이었던 만큼 평생을 사회적 편견과 비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일제 강점기 때의 기생은 전통 예술의 계승자였다. 하지만 계승의 주체가 기생이었기 때문에 왜곡이 생겨났다. 우리의 전통 춤, 소리가 단지 기생들에 의해 연희에 공연되었다는 것만으로 ‘기생춤’, ‘기생소리’라고 폄하하고 비난하는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자기 부정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는 특히 ‘관기’라고 찍은 사진엽서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사실 권번의 기생을 찍어 놓고 조선의 관기라고 표기하는 것은 의도적이다. 이는 나아가 청순하고 가련한 기생의 수동적이고 애처로운 이미지를 일본에 보호받아야 하는 식민지 조선의 표상으로 본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제 강점기의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 정책도 기억해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아픈 역사인 것 같다.
이 책을 토대로 기생을 통한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라마 한편을 엮어도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책표지글처럼 뭇사람들에게 폄하·비하·천시 당했던 기생이 당당한 예능 엔터네이너로서 여성사와 문화 사회사, 여성 예술사를 새롭게 구축한 선구자로서 공고히 자리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