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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
"천자문은 동양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필히 읽어야 할 나침반과 같은 글이다."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해 주는 나침반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길을 잃거나 설령 목적지에 도달 하더라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낭비하며 수도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개글 에도 잘 나와 있듯이 천자문은 동양학을 공부하는 이들을 물론 역사와 철학을 이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정 수준 까지는 배우고 익혀야 할 필요성이 있지는 않을까? 바로 강상규님의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가 그러한 나침반의 역할을 수행해 주는 책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 일런지도 모르겠지만 강상규님의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를 읽고 난 이후 무릇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라도 한 듯 마음의 평화로움을 만끽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무려 한달여가 넘는 기간을 공들여 가며 천천히 정독을 했기 때문 이었을까? 단언컨데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음을 밝혀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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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고자 상 (告子 上)」편에는 '배운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라고 한다. 배움을 가장 적절히 대변해주는 말이다.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아 함양해야 함을 역설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배움은 곧 수양의 과정이며, 잃어버린 마음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다. 배움은 곧 남에게 보이기 위함보다는 자신의 수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공자(孔子)도 역설하였다.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주로 사용하는 한자(漢字)밖에 읽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짐짓 놀랐고 기초(基礎)적인 한자 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기도 했었다.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강상규님의 《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를 읽으며 책 속에 표기되어 있는 한자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음을 소리내어 읽어 가며 써 보기까지 하였다. 물론, 하나하나의 뜻을 되새기며 암기 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노력을 기울이며 완독을 하다보니 읽고 쓰기를 완료한 지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속된 한마디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기분 째집니다.
학창시절 지금의 열정으로 조금만 더 정진(精進)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過去)가 아닌 현실(現實) 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용기기 불끈불끈 용솟음치고 있음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을 떼어 놓아야 할런지 고민거리도 줄어들고야 마는 듯 합니다.
배움에 대하여 공자(孔子)가 역설 하였듯 최근 수양을 위하여 뒤늦은 나이에 대학 생활을 시작 하였다. 단지 나 자신만의 수양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새로이 시작 할 수 있었다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그 동안 마음 뿐 이었지 실행을 하지 못했었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뒤 늦은 깨달음이 이리도 심신(心身)을 피곤하게 만들어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일찌감치 포항에라도 다녀 올 것을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다소 얼토당토 들릴 수도 있겠지만 포항이란 동네가 철이 많아서 철이 들려면 포항에 반드시 다녀 와야 한다는 유머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만일 일찌감치 포항에 다녀 왔더라면 지금쯤은 현재의 나의 모습보다는 조금 더 많이 성숙(成熟)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며 괜스레 실없는 미소를 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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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 하였듯 천자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수 없이 많다. 동양의 철학은 물론 역사, 그리고 관련 고사나 인물 등을 통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다. 물론, 천자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얻고자 노력 한다면 얻을 수 있을 수 있겠지만 문자로 정착 되어지기 이전의 내용들은 구전으로 전해진 암묵적인 내용이며 전해지는 과정에서 전달자에 의해 다소 주관적인 생각들이 가미되어 부풀려 질 수 있었음을 간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 한다. 반드시 자신의 수양을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대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순식간에 속독으로 읽고 책장 한 구석에 장식 해 두기엔 너무도 소중한 책 이란 생각이 든다. 눈에 잘 뜨이는 곁에 두고 수시로 들여다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다귀판》-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무리들이 모이는 판 이궐가유(貽厥嘉猷), 면기지식(勉其祗植) (덕을 길러 좋은 꾀를 후손에게 주고, 이를 힘써 받을어 덕을 심으라)
요즘 매일 시끄러운 저 서울의 각다귀판을 벌이는 무리들이 도당을 만들어 민초들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어 당비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선량(善良)들이 벌이는 짓거리는 희대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감발저뀌(이끗을 버리고 눈치 빠르게 달라붙는 이)들이 이제는 민초들의 통장 쌈짓돈을 먹이 삼아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묵자』의 「천지(天志)」에 "나라에 의(義)가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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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
말이 중간에 샌거 같은데 재미 있는 훈장이라고 한 것은 한자속에 있는 한문을 끄집어 내어 놓은 것입니다. 책의 차례를 보면 우리가 흔히들 보는 1. 2. 3...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것이 아니라 군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천자문도 이와 같겠지요 우리가 처음 천자문을 접하면 이와같이 나누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본래의 천자문을 완전히 벗어 나는것은 아닙니다. 한문이 나오고 우리가 흔히들 지하철에서 1천원에 팔거나 다이소에서 팔고 있는 천자문의 해설도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적어 보겠습니다. [하늘은 갈피(이치)가 있고 아득하며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그럼 책을 조금 넘겨서 { 응용 스승사 불화 임금제 / 새조 벼슬관 사람인 임금황}의 해석은.. [ 복희씨는 용으로 벼슬을 얻고 신농씨는 불로 얻었으며, 소호씨는 새 이름으로 얻고 황제는 사람의 문화를 만들었다.] 라는것으로 해석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중국의 설화를 알지 못한다면 알기가 쉽지 않은것이겠지요.. 이런것을 재미난 훈장이 이야기를 풀어 놓은다면 한문이 쉽게 접근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재미난 이야기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한자의 의미 하나 하나를 해석해 놓았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저는 책을 한번 읽어 보고 이제는 하루에 한장 두장을 보면서 한문을 적어 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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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 허! 그것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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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부터 한자를 국영수 같은 기본 교과목으로 한자교육을 편성 실시하여, 고등학교를 마치면 논어나 맹자 같은 기본적인 동양고전을 무리없이 읽게끔 했으면 싶다. 대만 지하철에서 당시를 외우던 꼬마를 보며 곁에 있던 모두가 신기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도 유구한 한자 문화권의 성원인데 이런 특성을 왜 살리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된다.
저자 강상규의 말대로, 천자문은 사서삼경과 제자백가 및 문사철을 간동그린 글이다. 천자문의 의미는 동양학의 정수를 키워드로 구성한 서브노트라고 보아도 된다. 저자의 집에는 7천여권의 한학책이 있다고 한다. 저자의 동양학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한학은 그렇게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저자의 학구욕은 배울만하다. 많은 책을 보아도 충효예의지신과 이기론의 심성론범주를 그리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서만은 예외이지만 방대한 역사서는 근본적으로 다독이 불가능하다. 전문적인 지식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사서를 읽는 결실은 매우 적을 수 있다.
저자는 천자문을 빌어 동양학적 샤유의 고갱이를 보여주려고 시도하였지만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한자를 잘 아는 이에게 천자문은 너무 쉽고, 한자에 숙맥인 이에게는 천자문은 넘기 힘든 고비인데 어떻게 하면 기존의 한자고수가 천자문을 새롭게 해석하고 또한 어떻게 하면 초보자가 천자문을 재밌게 익힐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게 보여진다. 물론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신수렬장 등 마치 구구단을 외우듯 천자문을 외워도 된다. 단순히 설문해자를 이용한 사전식 해설이 아니라 문자학적 지식을 곁들어 가며 이를 설명했더라면 좀더 알찬 내용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지식이 중급 정도에 해당하는 이들이 보면 얻는 게 많을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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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그 뿌리와 동양학적 사유」라는 책은 천자문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뒤표지에 적힌 소개글을 읽습니다.
이 책은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1,900년 전 자전인 <설문해자>, 그 외의 중국 고대 자전(字典)들을 토대로 풀이하여 본래의 뜻을 알게 하였다. 또한 각 구절마다 섬세한 해설과 인용문을 들어 각 구절의 출처를 명확히 한 국내 최초의 천자문 완벽 해설서이다.
본래 천자문(千字文)은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죠. 한 구가 네 글자라는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절 한자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자문을 정말 8자, 그러니까 두 구절씩 소제목을 달고 각 구절의 뜻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그 다음 <설문해자>, <소이아>, <석명> 같은 중국의 옛 사전으로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풀이합니다. 마지막은 소제목에 대한 한 장 정도의 글쓴이 글이 따르는데, 논어, 회남자, 서경, 주역, 맹자, 춘추좌씨전, 장자와 사기, 한서, 구당서, 진서 또한 성호사설, 목은집,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수많은 책의 내용이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그림이 담겨 있던 「만화 석봉천자문」을 생각하며, 아이와 함께 읽어보려 했던 제게는 다소 당황스럽습니다. 400쪽이 넘어가는 양이 그러하고, ‘ 한적漢籍만 7천 내지 8천권을 지닌 지금도 언뜻언뜻 비치는 글의 편린片鱗을 더듬다 보면 서로 잇대는 뜻을 끄집어내는 데 놀라기도 하는(416쪽) ’ 글쓴이의 해설이 그러합니다.
몬, 고갱이, 게염, 애잡짤하다, 얼개, 아퀴짓, 대모하다, 그루박다, 가리사니, 언걸하다, 고샅길, 퍼들껑, 극터듬다, 다직하다, 머드러기, 동티, 자발없이, 첫마루, 옹골차다, 졸들다, 오롯이, ... 등 틈틈이 뜻풀이와 함께 등장하는 순우리말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중국글자말과 일본글이 쓰인 글을 야단치시기로 유명했던 돌아가신 「우리글 바로쓰기」에 이오덕 선생님이 그립기도 했답니다. 드물긴 했지만 워낙 오래 써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중국글자말은 따로 우리말이 있더라도 경우에 따라 쓰기도 한다고 하셨잖아요.
‘ 배움은 곧 수양의 과정이며, 잃어버린 마음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다. 배움은 곧 남에게 보이기 위함보다는 자신의 수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공자孔子도 역설하였다(4쪽) ’라는 글을 읽습니다. 정말 배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와 실천이 중요하겠지요. 책을 덮으며 글쓴이의 방대한 훈고학적 지식에 더 열심히 읽고 배워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처지에서 좀 더 쉬운 이야기, 지금에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로 천자문을 친근하게 떠올릴 수 있는 책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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