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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은 짧고 강렬하다. 톰과 찰리와 스티븐에게 이제 우리 서로를 증오했으면 해 고맙고 사랑하고 지겨우니까 지금의 우리에게는 누구든 톰이 될 수 있고 찰리가 될 수 있고 스티븐이 될 수 있다. 고맙고 사랑하고 지겨운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책장을 넘긴다. 1부의 제목은 <보라색 톰>이다. 어쩐지 황순원의 <소나기>가 떠오른다. 소녀가 입은 보라색 스웨터는 우울을 상징하고 나아가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사실은 작가가 보라색을 좋아해서였다. 지금은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보라색을 보면 오해, 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눈을 가린 편견, 그릇된 단정들.
1부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무언가가, 그것이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타일들>의 타일은 "가지런하고" "아름답"고 "두 발이 빛나"게 해줄 수도 있지만 "타일 하나가 깨지"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박동소리"와 "발이 타일을 깨고 나가는 소리"와 "아픈 발의 증언"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앨버트>의 앨버트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인지 앨버트 까뮈인지 확신할 수 없고 <스미스 부인>의 스미스 부인은 스미스의 부인인지 웨슨의 부인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오해와 혼돈을 지나 2부의 제목은 <에로틱한 찰리>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이 시집에서 가장 시인 자신에 가까운 시로 보이기도.
혼돈은 계속된다. 찰리 a와 찰리 b 사이에서, 찰리와 빌리 사이에서, 플룻과 플롯 사이에서. 플룻은 가방에 들어갔고 플롯은 숨었으니 과연 이 시의 도입부처럼, "찰리가 에로틱해도 되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다. 찰리와 빌리 사이로 지나간, "세계를 잠시 해체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에로틱하므로 찰리가 에로틱할 수 있는 건지. 이 카오스를 지나 도착하는 마지막 3부의 제목은 <모호한 스티븐>. '모호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어서 알쏭달쏭한 말이나 성질'이다. 사실 단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것이 세상에 있을까? 그러고 보면 우주의 모든 것이 모호한 게 아닐까. 신기하게도 <모호한 스티븐 1>은 <모호한 스티븐 2>보다 뒤에 있다. 독자는 <모호한 스티븐 2>를 먼저 만나고, <모호한 스티븐 1>에서 <모호한 스티븐 2>를 다시 본다.
<모호한 스티븐 1>의 스티븐은 <모호한 스티븐 2>에서 더욱 무기력하고 나약해진다. 접시를 배열하던 아내는 죽고 아직은 그녀를 사랑하고 머릿속에서는 "어떤 총알"이 평생을 날아가고 그 앞에는 "쓰러진 스탠드"와 "두통약들"이 있다. "거리를 날아가는 녹슨 새"도. 이 두 편은 영화 <박하사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조금은 달랐던 과거. 하지만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여전히 스티븐은 모호하므로 스티븐은 모호한 스티븐일 뿐. 마지막에는 다른 오해를 낳을 '보라색 톰'과 에로틱한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에로틱한 찰리'와 여러 가지로 해석되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는 '모호한 스티븐'의 집이 저문다.
오늘이 저문다는 건 내일이 올 거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내일은 톰이 다른 색깔을 갖게 될지, 찰리는 더욱 에로틱해질 수 있을지, 스티븐은 하나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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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씨가 생각보다 평론을 얌전하게 하시는 건지 아니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멋대로 상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내 상상이 현실이라면, 여성민 씨의 시는 퀴어로 분석할 수 있는 시들이 굉장히 넘치는데 그걸 캐치를 못하셨는지 일부러 외면하셨는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예를 들면 유리병이란 시에선 감자를 깎는 언니와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사라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생을 보자. 그녀는 '언니를 괴롭게 한 어떤 사건'을 엿보고 유리병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근데 그 시 바로 다음에 장미 통신이라는 시가 나온다. 등을 앞으로 하고 거꾸로 걸으면서 장미에 대해 알리는 시인데(왠지 진실은 미라인 듯하다) '걱정하지 마 근친은 많고 우리는 지하실처럼 안전해'라는 구절이 나온다. 왠지 자매간의 근친 GL 로맨스가 떠오르지 않는가? 스미스 부인이라는 시에선 스미스가 하는 일은 무조건 따라하는 부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왠지 스미스와 웨슨의 관계가 수상하다. 스미스가 웨슨의 방에서 나온 뒤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사람들의 눈에 수상한데 스미스가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수상하지 않다. 그리고 스미스가 총을 쏘길 좋아하는 상당히 마초적인 성격임을 증명하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보라색 톰이라는 시를 봐서 알겠지만, 매니큐어는 여성이 바르는 전형적인 화장품인데 그걸 싣고 가는 건 군함이다. 가장 마초적이면서도 가장 동성간의 애증(?)이 절절한 게 해군이다. 이 시 전체의 세계를 보건대, 단순한 우연은 아니다. 무튼 스미스 부인은 스미스와 웨슨 둘 다를 죽여버린다. (지금 보니 웨슨은 죽었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시집의 주제인 불분명성과 실패를 의미할 것이다. 스미스 부인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을 좋아했다면 둘 다 죽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동성애, 근친, 친족살인 등 금기를 주제로 하여 쓴 이 시는 그러나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이 시의 후기를 써준 오은 시인이 자신의 사건사고를 가지고 말장난을 치면서 즐기는 걸 전제로 한다면, 여성민은 자신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고독과 어둠을 직접적으로 시 속으로 드러낸다.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 단지 그 비애에 상당히
원시적이고 발랄한 색을 입혔을 뿐이다. 그렇다고 껍데기 포장을 잘 했다는 말도 아니다. 아예 벽돌로 벽을 세우고 건축을 한다. 다만 거기엔
식탁에 수저를 박는 등 말도 안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서대경 시인의 시를 읽은 지 한참 지나 그 시 안에 이런저런 철학이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과 달리(지금 생각하면 특히 니체 쪽이 많았다.), 여성민 시인이 어떤 철학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금방 보여서
아쉬웠다.(구조주의 쪽과... 시와 책 이름을 통째로 언급하게 될 것 같아서 다른 건 생략하겠다. 도넛과 관련되어 있다.) 이미 충분히 난해하고
구조를 타파하는 시를 쓰고 있으니, 다음에는 더 깊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몇몇 시는 두번째로 본다. 신춘문예인가 젊은시인가에서 이 분의 시를 보고 너무나 인상이 깊어서 책까지 사서 봤다. (특히 시애틀.) 다시 봐도 좋은 시들이었는데 의외로 새로 본 보는 시들이 훨씬 좋았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했던간에 난 이 시인에게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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