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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곁에 있는 소를 찾아 떠나는 머나먼 여행 - 오쇼 라즈니쉬, 『십우도』
‘십우도(十牛圖)’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열 개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는 우리가 다스려야 할 마음을 가리킨다. 첫 번째 그림인 ‘심우(尋牛)’에 나타나듯, 이 그림을 그린 곽암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다. 소를 찾는다고 해서 ‘소’를 실재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소는 비유다.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 손으로 가리킨 대상일 뿐이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달은 보지 않고 손을 본다고 하던가. 물속에 비친 달로 하늘에 뜬 달을 헤아릴 수는 없다. 이미지에 속으면 이미지 너머에 있는 실재를 놓친다. “아득히 펼쳐진 이 세상의 초원에서/ 우거진 숲을 헤치고 소를 찾아나섰다.”는 구절에 드러나는 대로, 소를 찾으려면 먼저 우거진 숲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과정일 따름이다. 우거진 숲 너머에 정말로 소가 있는 게 아니다. 십우도의 첫 그림인 ‘심우’에 대한 설명에서 곽암은 “본래 잃지 않았는데 어찌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이야기한다. 소가 비유라는 말은 정확히 여기에 걸려 있다. 우리는 잃은 적이 없는 소를 찾기 위해 마음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지은 오쇼 라즈니쉬는 곽암이 그림을 그리고 게송과 설명을 붙인 ‘십우도’에 독특한 해석을 붙이고 있다. 도교의 팔우도(八牛圖)가 무심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에 그친다면, 십우도는 무심의 경지에 이른 선사(禪師)가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표현한다. 라즈니쉬는 세속에서 시작해 세속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는 십우도에 주목한다. ‘산은 산이요, 강은 강이다. 산은 산이 아니요, 강은 강이 아니다. 그러므로 산은 산이요, 강은 강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를 찾아 구도 여행을 떠난 존재는 산은 어김없이 산이고, 강은 어김없이 강이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무언가를 찾는 과정은 무언가를 잊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소를 찾으려면 소를 잊어야 한다. 소를 찾는다고 소에 집착하면 소는 우거진 숲에 숨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라즈니쉬는 “내적인 원인은 마음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 욕정으로 불타는 마음, 질투심과 경쟁심, 사념으로 가득 찬 마음, 이것이 세상의 씨앗이다.”(13쪽)라고 이야기한다. 소에 집착한다는 건 곧 마음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지켜봄(Watching)은 명상이다. 무엇을 지켜보건 상관없다. 나무를 지켜볼 수도 있고, 강이나 구름을 지켜볼 수도 있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도 있다. 지켜봄이 명상이다.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관찰의 대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자각의 상태, 그것이 명상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상황은 완벽하게 좋다. 아이들은 아름답다. 순수한 에너지가 춤추듯이 사방으로 흘러나간다. 그 에너지의 춤을 즐기며 관찰하라.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아무 이유도 없다. 마음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문제 삼는다. 이제 마음은 ‘과연 이것이 명상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한다. 명상은 깨어 있음(awareness)을 의미한다. 이것을 기억하라. 무엇을 하건 깨어 있는 의식으로 한다면 모든 것이 명상이 된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행위에 어떤 특성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주의 깊게 걷는다면 산책도 명상이 된다. 주의 깊게 앉는다면 그것도 명상이 된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도 명상이다. 주의 깊게 관찰하는 위치를 잃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명상이 된다. 요점은 잠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무엇을 하든 명상이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204쪽)
산야신(제자)이 묻는다. 아쉬람 구석에 앉아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게 명상이 될 수 있느냐고? 라즈니쉬는 지켜보는 게 명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강을 지켜볼 수도 있고 하늘을 지켜볼 수도 있다. 질문을 한 사람처럼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도 있다. 라즈니쉬는 이 지켜봄이 ‘명상’이라고 말한다. 명상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다. 깨어있는 자각의 상태가 중요하다.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뛰어노는 아이들을 자각 상태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깨어있으려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는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라즈니쉬는 “마음은 끊임없이 걱정거리를 만들어 낸다.”(204쪽)라고 강조한다. 질문한 사람이 그렇다. 그는 자기 마음으로 자꾸만 명상의 기준을 묻는다. 이것은 명상이고, 저것은 명상이 아니라는 분별을 일삼는다.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상황에 집중하면 되는데, 그는 자꾸만 이렇게 하는 게 명상인지 의심한다. 의심은 마음의 병이다. 마음에 병이 생기면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거리를 만들어낸다.
십우도에 표현된 ‘도(道)’를 이야기하며 라즈니쉬는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뛰어드는 ‘점프(jump)’에 방점을 찍는다. “점프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점프는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준비를 할 수도 없고 실행할지 그만둘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대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점프는 에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에고에 의해 결정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점프이다.”(306쪽) 에고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을 자꾸만 과거에 얽어맨다. 과거를 단순히 시간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말라. 과거는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의미한다. 도덕과 윤리도 과거에 속한다. 그러므로 점프를 하려면 이러한 과거와 단절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라즈니쉬는 에고에 묶인 마음으로는 점프할 수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에고는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이를 두려움 속으로 내몬다. 두려움과 의심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에고는 이 둘을 통해 강력한 벽을 친다.
라즈니쉬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에고에 묶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에서 놓여나야 자기 자신을 주시할 수 있다. 자신을 주시하려면 그저 지켜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에고에 매인 사람은 끊임없이 분별을 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이렇게 하면 좋은 사람이고, 저렇게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에고에 매인 사람은 늘 말한다. 그는 자신을 들여다보지는 않고 다른 이를 관찰하려고만 든다. 다른 이는 그에게 동지 아니면 적이다. 자기 마음과 맞으면 동지이고, 자기 마음과 맞지 않으면 적이다. 스스로 판단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에고에 집착하면 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도 소용없다. 바로 곁에 소가 있는데도 우리가 소를 찾지 못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소가 바로 곁에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라고 라즈니쉬는 설파한다. 곁에 있는 소를 찾아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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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쉬는 매우 단호하다. 거의 모든 기존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듯 하다. 종교인들로부터 얼마나 저주를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동시대의 다른 인도 영적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누구는 깨달았으나 누구는 아직 멀었다는 식으로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깨달은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될 거라고 생각하면 그의 말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의 말의 옳고 그름은 별개로 하고...
오쇼는 철저하게 '스스로 깨닫기"를 주장한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스스로 깨닫는 길과 자신이 없는 사람은 깨달은 스승에게 믿음으로써 귀의하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 하지만 오쇼는 오로지 스스로 깨닫는 방법만을 주장한다. 그러니 그에게 기존 종교는 쓸데 없는 짓거리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추종하면 기독교인으로 끝나고 이해하면 그리스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십우도라고 해서 십우도를 중심으로 쓴 책인 줄 짐작했더니 내용을 읽어 보니 오쇼 라즈니쉬의 강의에 십우도가 들러리를 선 격이었다. 그거야 어떻든, 책은 한 번 쯤 읽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인상 깊은 구절) - 집중에는 대상이 있지만 명상에는 대상이 없다. 이 선택없는 각성을 통해 마음이 사라진다. 마음은 의식이 협소할 때에만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광활하게 열려있는 상황에서 마음은 생존하지 못한다. 마음은 오로지 선택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 마음은 의식이 협소해진 상태이다. 마음이 좁은 터널을 통해 흘러가는 상태이다. 명상은 넓디넓은 하늘 아래 서 있는 것과 같다. 모든 것에 대해 열려 있는 상태이다.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