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쓴 역사학자 이언 모리는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 즉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되자 다른 여러 저자들처럼 책을 쓰기로 한다. 그런데 그는 다른 저자들과는 달리 먼 과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바로 현재와 같은 지리 구조가 형성된 시점, 기원전 6000년 경,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부터다. 빙하가 녹으면서 영국은 대륙과 떨어졌지만, 또 그렇게 많은 떨어지지는 않은 섬이 되었다(그러고보면 최근의 많은 역사서들이 어느 지역이든 그 시점을 기점, 혹은 변곡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대륙과 섬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 이러한 지리는 많은 것을 결정했다.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되기도 했지만, 영국 제도에 살고 있는 이들이 결정하기도 했다. 영국 소도시 출신으로 미국으로 삶의 근거지를 30년 전에 옮긴 이언 모리스는 바로 바로 그런, 영국의 역사, 운명, 선택에 관한 거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브렉시트의 의미를 되새기고,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이끈 영국 독립당의 대표 나이절 패라지는 국민투표 중 일관되게 브렉시트의 다섯 가지 당위성을, 정체성, 이동성, 번영, 안보, 주권의 관점에서 이야기했다. 이언 모리스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1만 년 동안의 영국과 대륙과의 관계를 파헤치고 있다. 즉, 그는 비판 대상의 언어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전제는, 이언 모리스 스스로 명명한 ‘대처의 법칙(Thatcher’s Law)’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까지 영국의 신자유주의를 이끈 총리 마거릿 대처는 “영국은 유럽의 불가분 일부분이기에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유럽이 바로 영국이 있는 곳이자 항상 있어왔던 곳이다.”라고 했다. 즉, 영국이라는 존재는 유럽(대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언 모리스는 이를 ‘법칙’이라고까지 하면서 대륙과의 관계 속에서 풍파를 겪어온 영국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예외도 있긴 했다(예외 없는 법칙이 없듯이). 가장 큰 예외라면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라고 할 수 잇다. 그 시대 영국은 유럽이 아니라 ‘세계’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의 브렉시트와는 완전히 상황이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물론 이 역시도 정체성, 이동성, 번영, 안보, 주권의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언 모리스가 ‘잉글렉시티’라고 한, 헨리 8세 때의 로마 교황청과의 결별이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교회는 ‘원조 유럽연합’이었고, 헨리 8세는 그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원조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출을 이루어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영국은 유럽을 의식해서 모든 결정을 했다. 영국의 역사를 끊임없이 21세기의 상황과 결정들과 비교 내지는 비유하고 있는데, 각 시대에 영국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3개의 지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첫 번째는 1300년대 초 홀딩엄과 리처드가 그린 해리퍼드 지도이고, 다음은 1902면 해퍼드 매컨더의 지도, 그리고 마지막은 21세기 각국의 부의 규모와 비례한 넓이로 그린 지도다. 즉, 영국의 세계의 변방에서 꼼지락거리면서 변방의식에 쩔어 있을 때,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자신도, 누구도 인정했을 때, 그리고 다시 그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의 변방에서, 유럽의 가난한 사촌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계의 중심으로, 그리고 조금씩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처지에 대한 인식이 이 3개의 지도로 파악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이언 모리스는 많은 지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지리가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717쪽) 이 책을 통해서 영국은 ‘가톨릭주의, 세력 균형, 영예로운 고립, 제국 내 특혜, 대서양 동맹, 유럽 연합’이라는 지난 500년 간의 논쟁이 영국을 이끌어왔다고 하고 있고, 이것은 현재의 영국을 형성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여전히 이 틀에서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논쟁들에 기초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이언 모리스는 2016년에 영국은 브뤼셀(대륙)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가 베이징(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논쟁했어야 한다고 본다. 역사의 수레는 이미 동쪽으로 굴러가고 있었다고 하면서. 그리고 이 질문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아니 더 절실해지고 현실적인 질문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택에의 강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