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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어둠'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둠은 검은 색에 비유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물건의 형태는 물론 그 거리조차 짐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검은 색. 저에게 어둠이란 그런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밝디 밝은 하얀 어둠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하얀 어둠은 검은 어둠보다도 더 잔혹하고 깊으며 섬뜩한 공포를 동반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고양이를 몇 마리 길러본 적이 있어요. 혈통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주워온 고양이였죠. 그런데 똑같이 귀여워해주어도 주워온 시기에 따라 인간에 대한 고양이의 태도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어릴 적에 주워온 고양이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계속 집안에서 인간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않고, 천진난만하고 장난꾸러기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컸을 때 주워온 고양이는 따르는 것 같아도 경계심을 백 퍼센트 풀고 있진 않아요. 먹이를 주니까 우선은 같이 살고 있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부분이 있어요." "가라사와 유키호 씨에게 그것과 똑같은 분위기가 있다는 건가요?" "자신이 들고양이와 비교되는 걸 안다면, 그야말로 고양이처럼 화를 내겠지요." - 3권 9p
'백야행'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죽음 못지 않은 피해를 당합니다. 그 중심에는 늘 두 명의 사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웬만한 여자 배우보다도 더 아름답고 능력이 있는 유키호와 어둠 속에서 늘 유키호를 바라보는 기리하라가 바로 그들입니다.
표지에는 '이상한 러브 스토리.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라는 문구로 이 두 사람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백야행'을 읽어보면 이 두 사람이 접촉하는 모습을 나타낸 부분은 단 한 문장도 없습니다. 3권의 결말 부분에서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두 사람이 피보다도 진한 인연으로 얽매여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아주 절실하게 말입니다.
내년에 대한 포부를 히로에가 묻자, 도모히코는 이렇게 대답했다. "패밀리 컴퓨터에 지지 않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고 싶어." 똑같은 질문에 대한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라며 히로에는 기리하라의 대답에 웃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 - 2권 148p
기리하라는 어렸을 적에 부친이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하는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 범인은 공소시효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편 유키호의 모친은 기리하라 부친을 살해한 범인 혹은 그 범인과 관련이 있는 자로 여겨지다가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두 사람이 죽게 된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며 만약 그것이 타살이라면 누가 그들을 죽인 걸까요?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 3권 269p
기리하라와 유키호는 학급 친구도 아니었으며 사건 이후에도 서로 만나는 모습은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얀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악의 꽃을 함께 피워냈습니다. '백야행'에는 유난히 등장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그만큼 많은 인물들이 죽음 혹은 죽음 못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사사가키의 말처럼 옛날 그 사건을 일찍 그리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바람에 악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무수한 열매까지 맺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 혹은 의사에 반하는 자들을 완벽하게 제거하고자 하는 유키호와 그런 유키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하여 스스로 어둠을 자처하는 기리하라. 과연 이런 관계를 연인으로 봐도 되는 것인지를 놓고 리뷰를 쓰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표지의 문구처럼 만약 이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기리하라의 맹목적인 사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기리하라는 유키호에 대한 사랑 이외에도 아주 짧게나마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내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일한 친구인 도모히코에게 자신의 가게를 내주면서 여자친구와 행복하게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라든가 유키호를 위해 누군가를 살해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직후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힘들어하는 장면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키호는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인간다운 면모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태양을 대신하는 기리하라'가 있었기에 그녀는 하얀 어둠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리하라를 잃게 되었을 때에도 유키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사가키는 비틀거리며 형사들로부터 떨어졌다. 돌아보니, 유키호가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하얀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 3권 298p
개인적으로 '백야행'은 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는 책 구석에 작게 그려진 남자를 발견하고는 귀신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그도 그럴게, 표정도 없이 정말 섬뜩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보다 더 적절하게 기리하라를 그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살아가는 무섭도록 아름답고 위험한 여자와 그 여자를 위해 기꺼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고 하얀 어둠 속으로 뛰어든 남자. 그 모습을 무척이나 잘 나타낸 표지라고 생각됩니다.
자칫 기리하라의 지나친 헌신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연애소설로 분류될 수도 있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백야행'은 마지막까지 추리소설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기리하라와 유키호를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없도록 그렸습니다. 정말이지, '누가' 범죄를 일으켰는가 보다 '왜' 그 범죄를 일으켰는가에 더 초점을 두는 작가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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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작품은 히가시노의 초창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단한 이유다. 히가시노만의 반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히가시노가 꾸려나가는 서스펜스는 이렇다.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을 조금 이른 시간에 던져버린다. 하여 독자는, 어라? 그럼 나머지 페이지는 뭘로 메꿔진거야? 그런 호기심이 든달까? 말하자면 독자의 예상치를 넘어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얘기이다. 그게 매력이라는 거지.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독자가 추측하는 그대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조여드는 긴장을 주는 서스펜스물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다양한 사건의 전개에 있다. 중권에서 이미 말했듯, 그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치밀하게 맞물려가는 재미는 없다. 단지,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전개된다는 장점 그 하나이다. 그러므로 읽는데 지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책을 내려놓을수 없을 만큼 박진감이 넘치지도 않는다. 다소 맥이 빠지는 건, 역시 예상했던 결과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하권의 결과적인 모양새는 이제까지 벌어졌던 사건들을 설명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좀 아쉽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역시 긴 장편을 시종 긴장감을 주면서 풀어나가기란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구나 그런 생각. 즉, 히가시노는 최장 600쪽 정도까지는 힘차게 이야기를 끌고나가서, 마찬가지로 힘차게 커튼을 내릴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면, 그 이상은 그런 힘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나 할까? 마치 그 많은 페이지수를 채우기 위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을 거로 보여지는 장면들이 많이 삽입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치밀한 전개라기 보다, 오로지 흥미로운 사건의 나열이랄까, 뭐 그런 거다. 그러다보니 히가시노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하나의 궤를 뚫는 속도감있는 이야기의 장점이 다소 줄었다.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말해 구성의 묘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을 정리한다면, 재미있다. 그러나 서스펜스물 특유의 긴박감은 전혀없다. 그저,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전개된다는 점 하나 때문에 지루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래서 혹, 히가시노의 초창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독자의 호흡을 밀고 당기는 테크닉이란 게 전혀 가미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되겠다. 나쁘지 않아.
끝으로 번역 얘기 마무리 지을까? 배꼽을 잡고 웃었던 문장을 하나 소개하겠다.
<새로 딴 맥주를 사사카기는 땅콩을 안주로 마셨다.>
나는 이 양반이 술 취해서 번역했다고 마구 낄낄대고 웃었지만 실수로 봐주기엔 어렵다. 왜냐하면 저런 문장이 한 두개가 아니거든. 상중하권 모두 가히 어이가 없을 만큼 황당한 문장이 많고 그중 대부분은 교정교열로 잡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 즉, 이 출판사에는 편집부 직원이 없거나 편집자가 초등학생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변역자가 실력이 안 되면 편집자라도 능력이 있어야 할텐데, 이 작품은 오로지 판권 구매와 인쇄소만 제대로 일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최근 표지 디자인이 바뀌었나 보던데, 디자인도 중요한지만 근본적으로 번역을 다시 해야한다고 본다. 이런 번역에도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잘 된 번역이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 말이다. |
| 똑같은 질문에 대한 기리하라의 대답은, 한낮에 걷고 싶어, 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라며 히로에는 기리하라의 대답에 웃었다. "기리하라 씨, 그렇게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 인생은 백야(白夜) 속을 걷는 것 같으니까" (둘째권 141쪽)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세째권 251쪽)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이 책까지 세권밖에 읽지 않았쟎아, 라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머리를 쥐어짜며 도대체 누가 범일일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예상외의 전혀 엉뚱한 결말이 기대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특히 백야행의 경우 초반이 지나면서부터 인물에 대한 형태가 뚜렷이 잡혀 더이상 추리소설의 공식인 '범인은 누구인가'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정말 재미없는 책이 되는건가? 설마 그럴리가 있겠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책을 읽어나갈수록 점점 더 이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는 왜 그랬는지 '무조건 해피엔딩'의 선입견에 빠져있었기에 도대체 어떠한 결말을 듣게 될지 궁금해 미칠지경이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읽어버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더이상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백야행'이라는 제목에 담긴 슬픔이 너무 짙어져 마음이 아팠다. 덩달아 암울해져버린 내 마음은 꼬박 하루를 넘기고, 이 책을 뒤적거려 보는 지금도 마음밑에 깔려있던 암울함이 올라오는 듯 해 씁쓸해진다. 료지와 유키호는 똑같이 태양이 없는 백야를 걷는 기분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태양을 대신하는 태양같은 존재였다, 라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 되는 것일까. 왜 그들의 삶이 그래야 했는지가 밝혀졌을 때 짐승만도 못한 것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밝고 즐거운 것만 보며 살아도 짧은 어린시절을 암흑으로 만들어버리고, 줄곧 하얀 어둠속을 걸어가게 만들어버린 그자들에게 저주라도 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이. 암울하다고 가라앉아 있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것이 시작일것이다. 인식을 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 그래서 하얀 어둠속을 걸어가야만 하는 누군가가 생겨나지 않기를... 덧붙여. 나는 형사 사사가키의 등장은 그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리 역할정도로만 생각했다.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지만 토막토막 끊어지는 사건들을 이어줄 매개가 필요하며, 그와 연관된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기에.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형사 사사가키의 19년이라는 독백은 단지 사건의 해결을 위한 '그때 실마리를 풀었다면'이 아니라, 료지와 유키호의 삶을 바꿔버린 19년이라는. 유괴와 유아성추행으로 상처입은 모든 영혼이 평화를 찾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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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호의 얼굴은 인형처럼 표정이 없었다. 그 얼굴 그대로 그녀가 대답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르바이트 채용은 점장이 알아서 하니까.” 영화상으로는 여자의 손끝이 죽어가는 남자를 향하려다 외부의 힘에 의해 멈칫하는 장면이 있었다. 원작에는 짧은 흔들림도 없다. 이런 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수없이 연습이라도 한 듯한 무심함에 한 남자의 사랑은 無가 되어버린다. 아니, 오히려 더 빛날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니까.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P.269)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의 기억이 아직도 팔딱이는 오사카로 진출하면서 유키호는 은연중에 속내를 드러낸다. 나를 오늘에 이르게 한 사람에 대하여,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마법 걸린 과거를 자신의 여생을 걸고 풀어줬던 사람에 대하여, 도서관 한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 꿈틀거리는 낯선 감정에 놀라게 한 사람에 대하여 ……. 태양만큼 밝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키호에겐 충분했을 빛줄기가 되어준 료지. 태양이라고 믿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지만 그 실체는 결국 유일한 빛줄기마저 잃게 만들었다. 어쩌면 좋은가. 너무도 이르게 완성된 사랑은 더 이상 빛줄기가 되어주지 못하는데. 이제 한 여자의 하얀 어둠속의 걸음은 끝났다. 칠흑 같은 어둠속의 걸음만 남았다.
백야행 1~3권 세트
---> 여기까지가 소설 <백야행 3> 리뷰, 영화 관람이 책으로 이어진 '나를 죽이는, 아니 나를 사라게 하는 한 사람'의 독 같은 사랑 이야기 백야행을 정리해 봅니다.
지아가 미호로 변태하는 결과가 되었다. 하여
소설 <백야행> 1권
영화 <백야행>을 관람 후 그 먹먹함에 노크를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국내 배경으로 번안한 그들의 독특한 관계를 조금이나마 더 짐작하길 바라면서 책을 들었다. 영화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클 것이다.
역시나 게이고의 소설은 가독성이 높다. 손에 잡히기가 무섭게 마지막 장에 이른다.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단 등장인물의 감춰진 마음의 일부분만이 슬며시 드러날 때의 퍼뜩 스치는 그것이 가독성을 높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대충 얼개를 알고 있으면서도, 조작한 자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영화로 다루지 못한 작은 사건들과 맞닥뜨릴 때면 놀란다. 괴물들에게 짓밟힘을 당한 소녀(유키호)는 자신도 괴물이 되어간다. 자신이 당한 끔찍함을 무기로 만들어 더 악독한 괴물로 거듭난다. 순한 며느리가 고된 시집살이를 인해 혹독한 시어머니로 거듭나는 것처럼.
소녀의 그림자가 되기로 작정했을 유약한 소년(료지)의 창백한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소설 <백야행> 2권
가족로멘스라 하나? 생활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상상. 현재 나를 돌봐주는 부모는 실은 친부모가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잠시 나를 이런 곳에 맡겼을 뿐, 진짜 내 부모는 근사하고 부유할 거야. 곧 나를 찾으러 오겠지? 그래, 조금만 견디면 돼. 참, 바쁘셔서 기사 아저씨가 부모 대신 나를 데리러 올 지도 몰라……. 유키호는 상상을 현실로 이끈 인물이었다. 영화상으로는 일종의 복수로 엄마를 살해하는 동기로 비쳐지지만 원작에는 그보다 더 놀란 만한 동기가 숨어 있다. 죽은 아빠의 사촌 누나는 넉넉하고 게다가 고상한 부인이다. 이 부인의 시선을 얻는다면 고아가 되었을 때 나를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지겨운 환경과 작별한다. 다도와 꽃꽂이를 배우며 무엇보다 양모의 어투와 차분함을 배우며 여성으로서의 품격을 높인다. 1편, 집 열쇠가 없다며 관리인에게 부탁하던 어린 유키호의 가방 속에서 울리던 작은 방울소리. 그 방울이 열쇠에 달린 악세사리였다는 것을 눈치 챘을 때 소름이 돌았는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성장기에 좋은 조건이 되어준 양모의 위독함이 자기 일에 방해가 되자 치밀하게 안락사를 준비시키는 것을 보고 어쩌면 유키호는 자기 이외에 사람을 사랑할 순 없겠구나 싶었다. 심지어 자기의 꼭두각시 삶을 선택한 료지조차도 사랑하는 건 아니겠구나 싶었다. 단지 욕망을 채우는 도구일 뿐. 료지도 유키호도 측은했고 그렇게 만든 상황이 저주스러웠다. 알콩달콩 사랑하다 가슴 찢어지게 헤어질 수도 있었을 평범한 어린 연인은 서로에게 독이 되는 사랑, 아니 어쩌면 세인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색깔의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백야행> 3권
유키호의 얼굴은 인형처럼 표정이 없었다. 그 얼굴 그대로 그녀가 대답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아르바이트 채용은 점장이 알아서 하니까.” 영화상으로는 여자의 손끝이 죽어가는 남자를 향하려다 외부의 힘에 의해 멈칫하는 장면이 있었다. 원작에는 짧은 흔들림도 없다. 이런 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수없이 연습이라도 한 듯한 무심함에 한 남자의 사랑은 無가 되어버린다. 아니, 오히려 더 빛날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니까.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P.269)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의 기억이 아직도 팔딱이는 오사카로 진출하면서 유키호는 은연중에 속내를 드러낸다. 나를 오늘에 이르게 한 사람에 대하여,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마법 걸린 과거를 자신의 여생을 걸고 풀어줬던 사람에 대하여, 도서관 한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 꿈틀거리는 낯선 감정에 놀라게 한 사람에 대하여 ……. 태양만큼 밝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키호에겐 충분했을 빛줄기가 되어준 료지. 태양이라고 믿는 것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지만 그 실체는 결국 유일한 빛줄기마저 잃게 만들었다. 어쩌면 좋은가. 너무도 이르게 완성된 사랑은 더 이상 빛줄기가 되어주지 못하는데. 이제 한 여자의 하얀 어둠속의 걸음은 끝났다. 칠흑 같은 어둠속의 걸음만 남았다.
*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후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시종 흐르던 영화였으나 같은 음악이 이리도 다르게 느껴지다니, 실로 놀라웠다. 빌리의 백조의 호수는 꿈으로 힘껏 점프하는 듯한 채도 높은 음색이었으나 요한의 백조의 호수는 더없이 암울하다. 그 암울함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것을, 사랑, 이라 부르고 싶다. 안타깝게도 원작에는 음악의 흔적이 없다. 원작의 행간에 녹아진 분위기가 음악으로 되살아나는 듯한, 나쁘지 않은 영화 장치다.
* 두 사람의 손길이 머물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펼치고픈 욕구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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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바보같을지도 모르겠지만, 드라마 원작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어서 나는 이 글이 드라마와 아주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게 흘러갈거라 생각했다.
드라마 속에서 그렇게 시효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료지와 유키호는 그 사건의 시효를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서도 내 가슴을 쥐었다 폈다하고 있고, 드라마에서 료지 대신 료지 아이의 손을 잡고 웃던 유키호의 서글펐던 모습이 이곳에는 없고, 아이러니하게 즐거워야할 크리스마스 날에 붉은 옷을 물들이는 붉은 피를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소리없이 유키호에게 말하던 류지 대신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꼿꼿한 유키호가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책이 싫다! 라는 건 아니다.
그저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너무 크게 남았었나.. 책의 결말이 싫은 건 아니지만 드라마의 끝이 더 여운을 남겨준 것 같다.
이렇게 원작 소설과 드라마가 하나씩 하나씩,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면 영화는 과연 어떻게 될는지. 벌써 기대가 된다.
하긴, 유키호가 아이있는 사람과 결혼해서 엄마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유키호와 료지.. 기사에서 읽었는데, 나올 영화에서 손예진씨 역할의 이름이 유미호.? 여튼 그런 비슷한 이름이라서 살풋, 웃기도 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런지..!
궁금하다!!!
아니, 이건 책 리뷰인데.. 영화랑 드라마 얘기만 줄줄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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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3권 마무리 작품이다~ 게이고의 열정이 묻어나고, 그의 천재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복잡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강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이는 그의 능력이 대단한 것 같다. 제법 출간한지도 오래되었고, 드라마로도 이미 제작이 되었었지만, 원작을 접해 보는 것이 훨씬 더 깊은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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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 (p269 유키호의 말) 지금껏 잘 드러나지 않았던 형사 ‘사사가키’의 존재가 다시금 드러나고, 19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다는 료지와 유키호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저 ‘우연의 일치’ 라 생각했던, 서로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사건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유키호와 료지를 넣어 다시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유키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끔찍한 일들을 료지에게 부탁한걸까 하는 것도 많았다. 거절할 수 없는 그녀의 부탁 때문에 료지는 더 황폐해지고,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유키호를 위해,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라는 이유 아래 일어났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관계된 사람들의 불행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한 남자의 불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료지를 잃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을까? 료지를 잃고 어둠에 갇혀 그녀는 살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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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이책의 결말과 조금달리 여주인공이 조금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책의결말은....
정말로 여주인공 독하다;;;;; 자길위해 죽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다니 물로 뒤 돌아 보면 자기가 범인으로 몰릴수도 있지만
이건아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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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에는 태양이 뜨는 때와 지는 때가 있어.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지. 물론 실제 태양처럼 정기적으로 일출과 일몰이 찾아오는 건 아냐. 사람에 따라서는 태양이 가득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또 계속 어두운 밤을 살아가야만하는 사람도 있어.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하면 그때까지 떠있던 태양이 져버리는 것이야. 자신에게 쏟아지던 빛이 사라지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지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3권을 다 읽어갈때쯤 나오는 유키호의 대사.. 1,2권에서 유키호는 책에서 나오는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언급돼지 않는다. 그러나 서서히 유키호라는 여자가 무서워지게 만든다. 나는 그랬다. 착한 천사의 얼굴을 한채로 묘사돼는 유키호의 실제는 자기의 생존을 위해 아니면 자기의 욕심때문에 자기를 지키기위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서운 여자다.
그녀의 주위에서 정말 그림자처럼, 책에 나온 그대로 공생관계의 료. 유키호보다 더 어둠속에서만 지내는 것 같은 그.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진다.
둘은 서로에게 태양같은 존재였지만 결코 환한 낮을 비추는 밝은 존재는 아니었다. 마지막 료.의 죽음을 외면하는 유키호를 보며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 둘은 왜 그래야만 했을까,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처음엔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나쁜 생각을 가진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결국 결과는 어린나이였던 그들의 몫이되어버렸다. 그것을 감추기위한 또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자연스럽게 그래야만 하는것처럼 되어버린것 같다.
누구는 드라마를 보고 암울하다 했다. 나의 느낌은 슬프다. 직접적으로 눈물을 자아내진 않지만 가슴한켠을 아리게하는 책이다.
이 책이 왜 추리소설인가,, 추리소설에서 보이는 박진감 없이 이미 다 아는 결과를 가지고 이렇게 가슴아프게 끝내버리니 책을 덮고난 지금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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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전개가 미로같다. 전체가 3권이며 이야기 전개가 늘어지고 두서가 없는것 같은데 지루하지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역시 다르다. 게이고의 추리의 세계는 놀랍고도 흥미롭다. 독자를 중독시키는 작가다.♡○☆ 봄에 자미원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