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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도 읽지 못한 내가 [차이니즈 나이트]는 단숨에 세 번 읽었다. 참 이상하다. 그책은 동화책도 만화책도, 성인잡지도 아닌데... 참말이었다. 뻥이 아니었다. "나는 아직 그처럼 중국에 관해 학문이 깊고 식견이 넓은 외국인을 만나지 못했다."라는 [인민일보] 왕 모 국제부장의 찬사는 참말이었다.
강단에 서서 생계를 꾸리는 나는 마흔이 넘도록 아직 이처럼 박학하고 독창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재미있는 문체로 쓴 인문서는 본 적이 없다. 그의 글은 참 정확하면서도 명쾌하다. 그러면 그렇지. 미국의 콘텍트 렌즈, 공자의 졸보기, 마르크스의 돋보기를 쓰고 보는 중국, 바로 보일리 없지. 그대신 저자는 우주의 망원경, 꽃씨의 현미경, 체험의 내시경의 예리하고 형형한 눈으로 중국의 속살을 관통한 것같다.
흔히들 말하듯 중국은 [가깝고도 먼나라]인가 20세기 후반기, 중국은 우리에게 [멀고도 먼 나라]다. 근 반세기를 우리는 서쪽을 등지고 동쪽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우리의 시선은 동해를 건너 일본을 쳐다보고, 거기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닿았다. 무궁한 동경과 흠모으로 눈물이 크렁해 질만큼 자유의 여신상 높이보다 드높이 미국을 우러러보았다. 또 다시 대서양을 건너 현대 미국을 낳은 모태로서의 유럽을 한없이 신비롭게 숭앙하였다.
그러나 로마에서 그리스를 경계로 다시 동쪽으로 가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자유와 평화, 선진과 풍요의 광명세계는 전쟁과 무지, 독재와 낙후의 암흑세계로 급전직하하였다. 그 멀고도 먼 여정을 굽이굽이 돌아닿는 중국에 관한 인식은 굴절되고 왜곡되고 단절될 수 밖에. 뒤돌아보면 그냥 보이는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속살까지 훤히 보일 것 같은 중국인데도....
나는 경악한다. 북경원인을. 베이징에서 중국학을 연구한다는 그는 누구일까? 학자인가, 시인인것 같기도 하고, 신문기자같기도 하고, 투사나 애국지사같기도 하고, 아니면 백수건달(실례)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는 보통 단면이나 양면적 인간이 아니라 수백개의 다면체적 존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만능의 천재 같은...그런데도 아이큐가 88이라니 겸손이 좀 짖굿고 좀 귀엽다 (실례). 저자의 구체적 직업과 연락처가 명기되지 않아 아쉽다. 직접 만나면 소주라도 한잔 사올리고 싶은데... 새로운 지식을 이토록 재미있고 참신하게, 또 쉽게 쉽게 전달하는 그의 능력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인상깊은구절] 중국말로 '셩이'는 장사나 영업을 뜻한다. 셩이는 인생의 의의, 즉 왜 사냐. 무엇 때문에 사느냐 따위의 심오한 형이상항적 의미가 아니다. 중국인에게 '삶의 뜻'은 한마디로 장사를 잘해, 잘먹고 잘사는 현실적 이이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상인이나 상업이란 말도 원래 商나라에서 왔다. 무왕이 상의 주왕을 토벌하자 천하는 주가 되었다. 나라 잃은 상나라 사람은 설 땅이 없어져 장돌뱅이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상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백인종.흑인종.황인종. 이제 인종을 피부색으로 분류하는 것은 말 그대로 표피적이다. 중국인은 백인종도 흑인종도 아니다. 중국인은 황인종이기보다는 상인종이다. 그렇다. '중국인은 상인종'. 그렇게 해야 피부색을 꿰뚫고 그들의 본질에 좀더 접근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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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즈 나이트1.2] 중국에 관련한 많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이처럼 재미있고 알찬 책은 만나지 못했다. 그간 미국에도 에드가 스노우나 조너선 스펜스 같은 중국 전문작가들이 있고, 일본에도 진순신 같은 작가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이처럼 깊은 인식을 가진 작가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었었다. 그러나 이책을 단숨에 읽고 난후의 가장 깊은 소감은 이제 우리도 세계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내세울만한 중국 전문가를 가졌다는 환희였다.
작가의 말마따나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중국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아는 천부적 심안을 가진 자는 제일 가까운 이웃에서 오랜 세월동안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온 한국인이어야 할텐데, 이제껏 우리는 부끄럽게도 위의 아날로그 구닥다리 제국주의시대 또는 냉전시대에 나온 미국, 서구 일본인의 눈을 통해서 보아왔다. 북경원인, 그사내의 사유와 시각은 참으로 독창적이고 참으로 과감하다. [차이니즈 나이트 3.4.5......]을 기다린다. [인상깊은구절] 중국은 동성은 있어도 동본은 없다. 자연히 동성동본인 혈족 사이에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더욱 있을 수 없다. 과거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하면서도 결혼할 수 없는 현실을 비관해 목숨을 버렸던 동성동본 금혼을 규정한 우리 나라의 민법 제809조 같은 것은 옛날 중국이나 지금의 중국에나 있을 수 없었고 있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동성동본 찬반여부를 떠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개 그 제도가 공자의 유교사상의 고조로,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한국에서 실시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동성동본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중국에서, 공자는 물론 중국인 누가, 언제, 어디서 동성동본은 결혼하면 안 된다고 했던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옛날 중국에는 인척간의 금혼조항 등 결혼을 제약하는 율령이나 관습법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성동본 금혼이라는 불특정다수인에 대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금지조항이 아니라 기껏해야 부모혈족 12촌 내에 친족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등의 규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청나라가 망하자 함께 폐지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지가 벌써 90년이 다 된다. 덧붙이건대 공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