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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자면 왈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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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입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문자 그대로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하는 데다 이젠 인기마저 없어진 유토피아를 폐기처분하고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지적인 활동으로서 왈러스타인이 제시하는 개념, 바로 유토피스틱스(utopistics)다.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김기정 교수는 현실주의, 자유주의와 함께 왈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국제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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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입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문자 그대로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하는 데다 이젠 인기마저 없어진 유토피아를 폐기처분하고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지적인 활동으로서 왈러스타인이 제시하는 개념, 바로 유토피스틱스(utopistics)다.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김기정 교수는 현실주의, 자유주의와 함께 왈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을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으로 분류한다. 고시공부라는 지난 경험의 덕택에 왈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이 꽤나 정교한 이론틀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종속이론이나 저발전이론보다 논리적이면서, 브로델 식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거대 이론을 구축하는게 내 취향에도 맞았던 것 같다. <유토피스틱스> 역시도 근대 세계체제론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위기를 해부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과 볼세비키 혁명의 결과로 유일 이념으로서 자유주의의 빛나는 성공,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를 지적한데 이어, 1968년 혁명과 1989년 혁명의 결과로 자유주의의 쇠퇴와 희망의 상실을 말하는 건, 무척이나 낯설고 독특한 분석이긴하지만 명쾌하고 따라서 공감을 일으킨다. 문제는 3장. 말하자면 미래의 사회상에 대해 논한 부분이다. 확실한 건 현재의 위기 상황을 시작으로 앞으로 50년동안 치열한 투쟁의 시대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 뿐이다. 그 50년 후의 사회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가능성만을 고려할 뿐 딱히 낙원의 모습을 그리지도 않으며, 따라서 투쟁의 방법론도 없다. 뭔가 해답을 제시하는 거대이론을 기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는 동안 앤서니 기든스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떠올린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해부하고 나아가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들 저작은 비교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되겠으나 내게는 왈러스타인의 분석이 더욱 공감을 일으킨다. 제멋대로 정의된, 실제로 쓰이지도 않고 와 닿지도 않는 용어와 분석틀로 이념의 위기를 파헤치고는 호기롭게 제시하는 게 고작 제3의 길이라는 구름잡는 소리를 하는 기든스. 딱히 가야할 지향점은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장면한 위기의 본질을 역사적 고찰을 통해 명쾌하게 규명하는 왈러스타인. 택하자면 왈러스타인이다.///
k****9 2001.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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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변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모두 변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내용보기
월러스틴은 이 저작을 통해 그의 이론을 응축해서 풀어내고 있다. 소위 우리가 혁명이라고 불렀던 지난 세기들의 사건들은 엄밀한 의미의 '혁명'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정치가 보다 민주화되고 여성의 권익이 보다 신장되는 등 일각 혁명적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체제의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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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은 이 저작을 통해 그의 이론을 응축해서 풀어내고 있다. 소위 우리가 혁명이라고 불렀던 지난 세기들의 사건들은 엄밀한 의미의 '혁명'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정치가 보다 민주화되고 여성의 권익이 보다 신장되는 등 일각 혁명적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체제의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혁명이라 불리던 사건들이 무의미 하다거나 희생만큼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과거 그런 혁명들이 비록 '혁명'이라 정의할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않지만 그래도 체제의 완고한 틀에 충격을 주고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여금 모종의 변화를 유도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유토피스틱스라는 것은 실현 가능한 대안적 체제론이다. 2025-2050년을 전후하여 현재의 자본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는 이에 대해 자본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에 대항하여 자유주의보다 진일보된 그런 대안을 생산하여 자유주의의 연장을 막고 안전한 체제의 이행을 이루어내자고 이야기한다. 뜬금없이 2025년에 자본주의가 망한다니 무슨 말인가? 상당히 예언적이고 희망적인 그의 이론은 한편으론 그 막연함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탄탄한 근거와 논리는 세계체제론에서 쉽게 등을 돌릴 수 없게 유혹한다.
m*****d 2002.05.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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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
"나도 이제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 내용보기
‘나는 지금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무선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인 투쟁 중이다. 이미 몇 년 동안 자본주의를 뒤집어엎자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가면서 이제 각 기관의 인터넷 서버를 마비시키는 전쟁을 투쟁 중에 있다. 미국의 패권 아래 자본주의 진영은 E-폭탄을 남발하며 자국의 전자 장비까지 위협할 정도로 격렬하게 혁명군을 저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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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느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무선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인 투쟁 중이다. 이미 몇 년 동안 자본주의를 뒤집어엎자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가면서 이제 각 기관의 인터넷 서버를 마비시키는 전쟁을 투쟁 중에 있다. 미국의 패권 아래 자본주의 진영은 E-폭탄을 남발하며 자국의 전자 장비까지 위협할 정도로 격렬하게 혁명군을 저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미래에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형식이나 방법적인 면에서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는 월러스틴과 수많은 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이제 무너지게 되어있다. 나 역시 자본주의이자 자유주의 체제의 나라인 한국에서 살면서 이런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 월러스틴은 유토피스틱스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이런 필연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모색하고자 한다. 유토피스틱스란 실제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활동을 뜻한다. 이는 실제로 여러 번 거친 경험이기도 하다. 6?25를 통해 우리국민은 사회주의, 민주주의 진영을 양쪽에 두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기존의 지배계급은 민주주의로 피지배계급은 사회주의로 흔히 선택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지만 태백산맥의 김범우와 같은 인물은 중립적 입장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고민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른바 ‘혁명기’ 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수집단으로 남느냐 아니면 혁명세력에 가담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필연적으로 선택을 취할 수밖에는 없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50년 안에 일어난다고 가정할 때 지금부터 유토피스틱스를 연구하고 사고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월러스틴은 이 책을 통해서 근대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여러 혁명과 운동 등을 예로 들어가며 독자가 유토피스틱스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주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저자는 책에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 지는 또는 어떤 방법이나 대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적어놓질 않았다.미래에 대한 선택이란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입장 이상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자도 그런 면의 직접적인 서술은 고의로 피한 듯싶다. 과연 나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그때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 과정은 어떠할지 가상으로 한번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자본주의가 무너진다면 과연 어떤 체제가 등장 하게 될까?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로 마치 생물체가 진화하듯 단계적으로 변화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효율성을 목적으로 어떤 특권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고 근대로 접어들면서 어떤 특권 계급의 소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특권 계급이란 흔히 생각하는 귀족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인종간의 계급, 성(性)간의 계급 등 여러 가지 계급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그 계급의 붕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귀족이라는 개념은 없어졌지만 자본주의사회를 거치면서 빈부격차가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어서 사실상 귀족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종,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우리가 요구하게 되는 사회는 평등이라는 면이 더욱 강조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구라는 별은 이미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의 위협을 맡고 있다. 더군다나 이미 미국의 패권주의는 종식이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것은 유럽연합의 성장 중동지방에서 미국의 막강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이젠 미국의 패권주의는 종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세상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게 순리라면 기존의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는 무너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너짐’, ‘붕괴’, ‘종식’이라는 단어가 과연 적합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는 개인으로서 노력을 통해서 자본의 축적을 이룬다는 것인데 이는 정당한 행위이며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의심치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많은 약점을 노출시켰는데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자본을 축적하려면 인건비, 투자 자본은 줄이면서 판매가격을 늘려야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노사 간의 세력이 등장하게 되고 각종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기존의 체제를 ‘붕괴’시켜야만 하는 것일까? 나의 의견으로는 유토피스틱스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확연히 구분된 체제간의 선택이 아니라 기존의 체제를 발전시키는 모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신자본주의 식으로 이름만 바꾸기 위해서 투쟁을 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난 화폐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아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우리가 지금 바라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는 기대를 하기 보다는 어떤 한 초강대국이 전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패권주의의 확산을 막고 전 지구적으로 그 흐름을 같이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의 폐해를 개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쟁을 하더라도 그런 모토로 싸워야만 한다. 우리는 세계대전, 한반도 전쟁을 통해서 체제간의 대립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경험을 했다. 더군다나 그 두체제의 대표국가였던 미국과 소련가운데 소련이 붕괴함으로써 미국의 헤게모니아래 세계가 이끌어져 가는 새로운 국가 간의 계급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겨우 19년의 인생을 살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월러스틴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대비를 모색하는 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기대하기 보다는 기존의 체제의 불합리함에 메스를 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대의 흐름을 읽게 해준 이 책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유토피스틱스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k*****4 2004.0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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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스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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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순간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과 사건들이 거듭해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처럼 나 또한 그런 것들이 무엇을 이뤄 냈는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의 모습이 결과라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진정한 의미는 왠지 퇴색되어진 듯 하다. 이제까지 치러졌던 여러가지 혁명, 그리고 새로운 주의의 추구는 사실, 힘 있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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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 순간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과 사건들이 거듭해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처럼 나 또한 그런 것들이 무엇을 이뤄 냈는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의 모습이 결과라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진정한 의미는 왠지 퇴색되어진 듯 하다. 이제까지 치러졌던 여러가지 혁명, 그리고 새로운 주의의 추구는 사실, 힘 있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것들이 모두 자유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 보면 모두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사실 그렇지만도 않은데.. 역시 겉으로 이념만을 내세울 뿐이지 거기엔 심각한 모순이 존재해 있다 전세계 공통적인 체제라고도 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봐도 여러 나라가 취하고 있기에 자본주의 하나면 어떤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모든 일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너무 단순히 생각했나보다. 모르는 사이에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작은 문제들이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 또한 그대로 놔두면 자본주의도 문제 해결을 시도해 보지 못 한 채 조용히 자취를 감춰 버릴 수도 있다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가만히 있을 수많은 없다. 윌러스틴이 제시한 실질적 합리성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에게 심오한 암시를 주는 듯 하다. 수단으로서가 아닌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 필자의 이념이 나로서도 공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부합성이 있어 내 나름대로의 방법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절실하다는 것.첫 단추를 잘못 끼면 다음 단추도 다른 자리로 끼워져 볼품없이 보이 듯 우리의 모습, 세계의 상황이 단추라 생각을 한다면 첫 단추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한 가지가 잘 이뤄지면 다음에 일어나는 것도 자연스레 이뤄질 건 분명하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생각난다. 물론 로마인들이 세계적인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 시작에서의 다른 점이긴 하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지도자 아래에서 시대에 맞는 개혁을 통해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이것이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단호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가 거의 모든 체제들을 부정적으로 보긴 했지만 해결책으로써 실질적 합리성을 비롯해 긍정적인 해결책을 추구했다는 것은 수긍이 간다. 사람의 일에서도 긍적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마음먹기에 따라 일의 결과가 달라지듯이 이왕이면 긍정적인 결과를 염두하고 강력한 해결책을 강구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m*******1 2004.05.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