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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14.07.20.열린책들)』는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의 작품 열 세편을 수록한 소설선집입니다. 똘스또이가 평생 쓴 중‧단편소설은 50편을(p.430) 웃도는데 본 선집은 그 중에서 10년 단위로 주요한 단편소설을 선별(p.430) 하여 발간하였습니다. 1852년에 발표한 「습격」을 시작으로 1907년에 발표한 「가난한 사람들」을 수록한 본 선집은 시대별로 똘스또이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똘스또이의 작품 세계의 변화 양상을 확인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습격」과 「세바스또뽈 이야기」는 똘스또이가 경험한 전쟁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전쟁의 피폐함이 결국에는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그리고 「세 죽음」과 「홀스또메르」는 죽음에 대한 똘스또이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표제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당장 내일 먹을거리를 걱정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제화공 ‘세묜’이 외투를 마련하러 마을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배당에서 벌거벗은 이방인 ‘미하일라’를 데려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세묜’의 집에서 신발 만드는 일을 하게 된 ‘미하일라’ 덕분에 ‘세묜’의 재산은 불어납니다. 어느 순간 ‘세묜’은 솜씨 좋은 ‘미하일라’가 제화공 일을 그만두겠다고 얘기하는 날이 올까봐 걱정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하일라’가 ‘세묜’의 집을 떠나겠다고 얘기하였을 때 ‘사람은 무엇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땅 욕심에 눈이 먼 ‘빠홈’이 만족을 모르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이며, 「바보 이반」은 부유한 농부의 아들 셋 중 똑똑하고 잘난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악귀의 유혹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반면, 셋째 아들 바보 ‘이반’은 악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지켜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신부 세르게이」는 약혼자가 과거 황제의 정부였다는 사실에 충격으로 돈과 명예, 성공을 향한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수도사가 된 까사쯔끼 공작이 등장합니다. 세르게이 신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물질적인 욕망과 유혹을 버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진정한 삶의 의미는 ‘신부’라는 옷을 벗어던진 후에야 알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죽은 옆집 아낙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두 아이를 데려온 가난한 집에 다섯 아이를 둔 ‘잔나’의 짧은 이야기입니다.
똘스또이의 단편소설은 모두 욕심과 욕망에 대한 경고를 담았으며, 진정한 삶의 의미는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진리를 확인시켜 줍니다. 똘스또이의 문학으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다시금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제목을 접할 기회가 많아 그 내용까지도 익숙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읽지 않은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이상하게 이미 오래전에 읽은 작품처럼 기억이 희미해진 듯 혼동을 느낍니다. 제게 똘스또이의 문학이 그랬습니다. 궁금했던 똘스또이의 문학을 제대로 읽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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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은 잘 안 읽는다. 막상 잘 쓰인 걸 보면 재미있게 읽는데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식을 쌓는 데 더 관심이 많아서 그런가. 그래도 이른바 세계명작이라 불리는 클래식들은 교양을 위해서라도 한 수 접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도는 클래식 중에서 클래식, 끌래식 정도는 되지 않을까. 똘스또이의 작품들은 소싯적 읽어봤을 테지만, 기억에 제대로 남지 않은 것 같으니 다시 읽을 필요가 있었다. 마침 톨스토이 단편을 모은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읽어봤다. 이런 류의 책은 번역과 기획력이 책의 퀄리티를 좌우한다. 할 줄 아는 러시아어라고는 스바시바밖에 없는 내가 번역을 논할 수준은 아니고, 그냥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올드한 고루함 내지는 클래식함이 어느정도 느껴지는 편안한 문어체가 거슬리지는 않는다. 톨스토이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작품 선정에 대해 논할 깜은 아니지만서도, 책 말미의 변을 보면 이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는 있다(책 맨 뒷부분의 해설을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톨스토이의 작품세계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알고 가는 길과 모르고 가는 길에는 차이가 크다. 특히 이 책에는 알아야 읽히는 부분이 많다)
용감한 사람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한다. 플라톤도 등장한다. 플라톤에게 용기란 두려워해야 할 것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아는 것. 초반의 톨스토이는 조금 딱딱한 면이 있다. 후반의 똘스또이는 민화 개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단편을 쓴다.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묘사가 탁월하다. 가을 안개가 진흙탕 길에, 지붕에, 마차에, 마부의 외투에 내려앉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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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부활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톨스토이 문학작품들 중에서,, 1852년 부터 1907년 까지의 근 60년 동안에 쓴 80여편의 글중에 13편의 단편 글들로 모음을 하였다.. 책 말미에 역자의 해설이 특별히 잘 정리가 되어 다시금 글들의 의미와 사상을 음미해볼 수 있었고, 톨스토이 연보를 통해서글의 변모도 살필 수 있어서 톨스토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글들은 대체로 종교적이다..그리고 동화스럽다. 눈에 보이는 악마도 나타나고,, 인간 모습의 천사도 등장한다. 전쟁터의 참담한 모습을 담았다는 [습격][세바스또뽈 이야기] 등도 그렇게 처절한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인간끼리의 묘한 갈등과 심리적인 모습보다는 삶속에서 자연 발생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들을 주로 보여주면서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하며, 주변적 상황이나 배경등을 세밀하게 그려냄이 조금은 특별하다... 생각 들엇다. 책 전체에 등장하는 주제는 사랑...으로 보인다. 기독교적인 종교적 색채가 강한 글들이 보이는데,, 특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잘못을 저지른 천사에게 하느님은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라는 벌을 내린다.. 천사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을 모르는 것이며,, 사람에게는 사랑을 할 마음이 주어졌고,,사랑으로 살아간다...답을 얻고 기뻐한다..는 글과,, '가난한 사람들' 을 통한 사람의 의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 글을 통해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철학적이고 교훈적인 삶의 태도를 엿보게 한다. 톨스토이 자신이 교육자적인 모습이었기에 글의 흐름이 이런 듯하다. 특히 '세죽음'에서는 귀족 부인, 늙은 마부, 나무 의 죽음을 동일하게 죽음으로 다루면서 자연과 인간이 유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데,,,'홀스또메르 말이야기'를 통해서 말을 의인화 하여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것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더욱 느끼게 해준다. . 고전을 대하는 마음은 조금은 조심스럽기도 하다.. 많은 소설과 세상이 많은 변모로 인해서 사실 고전은 조금은 싱겁다... 하는 표현도 어울릴 듯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톨스토이의 글을 새롭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의미있는 일이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이 고마움이다.. 읽을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고전을 다시금 새롭게 대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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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보통 톨스토이라고 말하는데 이 책의 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례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입니다. 풀네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똘스또이의 책을 만나면서 정확한 이름까지 알아갑니다. 솔직히 똘스또이는 가까이 하기에는 거리가 먼 작가였습니다. 책과 그리 가깝지 않던 제가 책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까레니나>를 읽는 것을 보면서 도서관이 아닌 서점으로 갔습니다. 기존에 가볍게 동화책을 읽던 제가 중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따라 그 책들을 구입하고 읽으려 했던 것입니다. 독서의 깊이가 깊지 않았던 아이가 그 책을 읽었으니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에 똘스또이는 어려운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에 한동안 그의 작품들을 읽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읽게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습니다.
똘스또이에 대해서는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만큼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인물입니다.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이자 위대한 사상가인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지금도 읽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고전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또한 학창시절에 읽은 책임에도 종종 찾아서 읽게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부활뿐만 아니라 영화로 제작된 안나 까레니나는 여러번 만나게 됩니다. 영화로 여러번 제작된 안나 까레니나는 원작만큼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못했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똘스또이가 작품속에서 모든 것을 표현했기에 영화로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만큼 뛰어난 필력을 가진 작가이기에 어느 작품을 만나든 실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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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표제작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포함해 습격, 세 죽음, 홀스또메르, 바보 이반 등 13편의 단편을 만날수 있습니다. 예전에 유인촌 배우가 출연한 한 공연을 통해 <홀스또메르>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 공연을 보기전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똘스또이의 작품들은 영화나 공연으로도 만날수 있는 것입니다.
홀스또메르는 늙은 말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만날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에 대처하는 모습이나 죽고 나서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말이라는 동물을 통해 인간세계의 어두운 면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읽고나면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들이 숨기고 싶은 추악한면까지 보여지는 이야기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 더 마음 속에 남는 작품은 바보이반입니다. 친구들이 이 책을 보고 비슷한 면이 있다며 학창시절 바보ㅇㅇ이라 불렀습니다. 모든 모습이 이반과 닮은 것은 아니지만 우직한 면이 닮았다며 친구들이 종종 부르던 별명입니다. 어쩌면 그냥 바보였기에 그렇게 불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의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이기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줄거리는 모두 아는 내용이니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마 줄거리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의미나 작가에 대한 만남이 더 설레는 시간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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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생의 작품 다음이라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마음도 편안해지고 들고 일어서야될 것 같은 기분을 차분히 눌러주었다 전래동화 몇 편을 읽고 난 느낌이 들었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가 옆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그런 * "아, 대단해" 촌장이 소리쳤다. "넓은 땅을 갖게 되었군." 빠홈의 일꾼이 달려와 그를 일으켜 새우려 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는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바쉬끼르인들은 혀을 차며 안타까워했다. 일꾼이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파서 그를 묻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가 차지한 땅은 3아르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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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초까지 수많은 소설을 남겼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이 잘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장편 소설 외에도 젊은 시절에 쓴 [세바스또뽈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등의 단편소설도 많이 남겼다. 본 책은 1852년 톨스토이가 20대에 발표한 [습격]과 [세바스또뽈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79세때 쓴 [가난한 사람들]까지의 13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을 통해 톨스토이가 평생에 걸쳐 경험하고 고민했던, 19세기의 러시아와 그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방황하던 어린 지방귀족인 톨스토이는, 형들을 따라 입대한 러시아 군대에서 크림반도를 두고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간의 전쟁을 겪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삶을 시작한다. 그의 초기 작품은 크림전쟁과 전후의 러시아를 다루고 있다. 다소 조국(러시아)에 편향적이기는 하지만 전쟁과 죽음의 허무에 대해서 건조하면서도 직접적인 묘사가 나타나 있다. 전쟁 후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장편소설들을 써가면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어 중년을 보낸 그는 50대에 들어서면서 유명작가였던 자신의 삶과 생각을 크게 반성하고 기존과 다른 삶을 살기로 천명한다. 젊은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빈민과 농노의 삶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러시아 황실과 유착해있었던 정교회와도 갈등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그의 소설은 짧고 간명해지기 시작한다. 거추장스럽고 호사스러운 묘사와 서술을 줄이고,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향하는 그는 전제체제의 모순과 정교회의 억압에 맞서는 것에 더욱 몰두하게 된다. 그는 정교회와 차르(러시아황제)를 비판하고, 잘못된 사회상과 부조리를 그의 작품에서 고발한다. 결국 정교회에서 파문당하고 그의 측근이 체포되는 등 고난을 받지만, 체제에 저항하는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마하트마 간디 등과 교류한다. 이 단편집의 마지막에 실린 [가난한 사람들]에서 톨스토이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톨스토이는 대책없는 이상가였고, 그의 사적인 삶은 엉망의 난봉꾼이었지만, 동시에 기독교적인 반성과 회심을 기반으로 농노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육사업과 저항에 동참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의 생각과 고민을 19세기 러시아의 모습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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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수많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구성으로 출간되고 있다. 단편 위주의 묶음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어떤 출판사는 짧고 교훈적인 민화를 중심으로, 또 어떤 곳은 명상적인 작품을 앞세워 구성한다. 그중 내가 선택한 열린책들 버전은 단순한 교훈담을 넘어, 전쟁의 무상함과 삶의 허무를 진지하게 탐색한 작품들을 함께 담고 있어 무척 균형 잡힌 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세바스또뽈 이야기」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12월의 세바스또뽈」이었다. 이 작품은 크림전쟁 당시 세바스또뽈 포위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 생생한 묘사는 단순한 전쟁소설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전쟁의 참혹함,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들, 그리고 전쟁 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불확실함… 모두를 세밀하게 포착하면서도,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국민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러시아가 굴복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러시아인들의 애국심 때문이다'라는 믿음. 이 작품이 1855년, 전쟁이 한창일 때 「현대인」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당시 독자들은 아마도 이 글에서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당신 자신의 존재가 관찰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당신이 주위에 쏟는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불확실성이라는 뭔가 불쾌한 감정이 문득 당신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훈장이나 지위나 협박 때문이 아니다. 다른 고양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동기란 바로 가끔씩 발현되는,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부끄러워하지만 누구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 - 애국심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과를 알고 있다. 결국 러시아는 그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복합적인 감정으로 읽히게 한다. 그래서 나머지 2-3부작에서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전쟁이 남긴 허무와 실망,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어떤 시선이 담겼을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한편, 민화 스타일의 이야기 중에서는 「바보 이반」이 기억에 남는다. 아기돼지 삼형제를 연상케 하는 구조 속에서, 어수룩하고 순박한 막내 이반이 결국 악마를 무찌른다는 설정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두 형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듯 보였지만 결국 악마의 계략에 휘둘리고, 끝까지 악마를 엉망으로 만든 건 오히려 머리를 굴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바보 이반이었다. 특히 악마가 당황하고 실패하는 장면들은 웃음을 자아냈고, ‘꼼수 없이 성실히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재치 있게 전달해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단, 이반의 왕국에는 아직도 한 가지 풍습이 지켜지고 있다. 손에 물집이 생긴 자는 식탁에 앉고 그렇지 않은 자는 남이 남긴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왜 굳이 세 질문이나 던질까 싶었다.
처음엔 각각의 질문이 별개의 주제를 던지는 듯했지만, 읽어갈수록 이 모든 질문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정교하게 엮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세 질문의 답이 차례대로 이어지며 결국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 인간의 조건은 결핍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유로 전환된다.하느님은 인간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 수 없게 했지만, 그 무지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게끔 설계하셨다는 통찰은 종교를 넘어선 인간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전쟁과 삶, 종교와 인간성에 대한 고찰까지 이끄는 책이었다. 교훈적인 단편만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여러 면모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어, 톨스토이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사락독서챌린지 #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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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열린책들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선택한 이유는 어떤 단편집을 읽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전에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안나 까레니나를 읽으며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어 열린책들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고르는 와중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두 단편을 제외하고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고르지 않고, 어떤 단편들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마지막 작품 해설과 의도를 읽으면서 열린 책들에서 얼마나 단편을 고르고 목차를 정하는 데에 있어 고심을 하고, 독자에게 톨스토이의 세계관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각각의 단편 뿐만이 아니라 책 전체에서 하나의 큰 흐름을 느끼고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는데, 단순한 단편의 나열이 아니라 흐름으로 엮어준 열린책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한 이 책에 실린 톨스토이의 단편들은 톨스토이의 기독교적인 믿음이 강하게 배어 있다. 모든 주제 의식이 톨스토이 본인이 경험한 인생에서 겪은 점을 기독교적인 교훈으로 엮어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데, 단순히 생각하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를 통해 전파하고자 한 것일 뿐일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인간이 가져야할 마음은 무엇이고 또한 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톨스토이 본인의 강한 마음이 한 줄, 한 단어마다 전해져 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우리 또한 그동안 살아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 깊은 사유에 빠질 수도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 책이 정답도 아니고,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뜻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꼭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종교를 떠나 모두의 마음 속에 크기나 무게에 상관없이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리뷰에서는 작품 해설과 의도를 참고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책을 읽어 나가면서 느낀 점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된 단편들을 묶어서 말하려고 한다. 톨스토이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독자의 입장으로 내가 느낀 바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에 과감하게 '나'를 톨스토이의 세계에 던져보려 한다. 습격 & 세바스또뽈 이야기 단편집의 시작에 위치한 두 작품이다. 톨스토이가 실제로 크림 전쟁의 시대를 겪으며 그가 경험한 전쟁의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그가 실제로 전쟁을 가까운 장소에서 경험하며 느낀 점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가 아닌 그 시간 속에서 써내려간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전쟁의 참혹함과 냉담함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습격'에서는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 사상을 대놓고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내며 이야기를 진행하지만 이야기가 끝에 다다를수록 낭만과는 거리가 먼 냉소주의적 성격으로 끝맺음된다. 전쟁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인물이 실제 전쟁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지는지, 이와 달리 전쟁에서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 실제로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쟁이랑 이런 것이고, 전장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시선은 또한 이런 것이다를 말해주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전쟁이란 바로 이런것이라고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세바스또뽈 이야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단편에서는 마치 전장의 한 중간에 우리를 데려와 보여주는 듯한 전개가 이어지는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시점의 사용법이다. 이 책에서 톨스토이는 '당신'이란 표현으로 독자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당신은 알게 된다.' 와 같은 현재시제와 우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표현들로 우리는 더욱 상황에 몰입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장치들로 톨스토이는 전쟁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싶은게 아닌, 우리 눈으로 보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의 참혹함 또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병동으로 들어서며 부상당한 병사들을 비춰주며 '습격'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쟁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두 작품을 통해서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비록 전쟁이란 것이 옳지 않다고 해도 그 앞에서 목숨을 바쳐 나아갔던 군인들에 대한 존경심은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전장의 군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존경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세 죽음 & 홀스또메르 이 두 작품에서는 '죽음'에 관해서 깊게 파고들며 진정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던져준다. '세 죽음'에서는 서로 다른 세 존재의 대한 죽음의 과정을 병렬로 나열하면서 그 죽음들을 우리에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순서 또한 의도적으로 귀족-평민-나무(비인간)으로 진행하면서 마지막 나무의 죽음을 강조하며 주제의식을 더욱 확실하게 표현하는데, 죽음의 순서와는 반대로 각각의 죽음이 남긴 것은 뒤로 갈수록 더욱 커져 간다. 귀족은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고, 평민인 마부는 장화를 남기며, 나무는 모든 것을 남기고 간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살면서 욕심으로, 혹은 단순히 나 자신을 위해 이룬 것들은 결국 아무 의미없이 사라질 뿐이지만, 세상을 위해 행했던 일들은 그 의미를 남기며 죽음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홀스또메르'에서는 말의 죽음과 그가 사랑했던 인간의 죽음을 대비시키며 보여준다. '세 죽음'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대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며 읽었는데, 두 작품을 함께 연결지어 읽으니 단순히 작품의 메시지를 넘어 작가의 의도를 심도있게 파고들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점박이 거세마인 홀스또메르와 한때는 그의 주인이기도 했던 어느 한 귀족은 전혀 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니, 다른 죽음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전혀 다른 '결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까? 화려한 태생과는 다르게 그 생김새로 인해 남들보다 훨씬 박해받는 삶을 살아온 말은 충분히 그의 인생에 불만을 가지고 욕심을 부렸을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그는 순응하며 주어진 삶을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반해 귀족은 남을 질투하고 불평하기 바쁜 삶을 살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은 세상에 자신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쓰여질 수 있는 결말을 맞이했고, 귀족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더 나아가 남의 죽음의 자리를 밀어내며 이 세상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죽는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그로 인해 나라는 존재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죽음 이후로도 육체에서의 삶을 떠나 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지를 깊게 고민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단편 중의 하나인데, 마지막 문장이 끝나고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얼함을 느꼈다. 내용이 진행되면서 나는 악쇼노프가 어떻게 복수를 할까, 그 통쾌함을 기다리며 읽어나가다가 악쇼노프가 용서를 하고 삶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치 톨스토이가 나에게 거울을 들이민 듯한 환영을 본 것만 같았다. 복수를 기다리며, 진짜 죄인이 단죄받기만을 바라던 나의 모습이 악쇼노프와 대비 되어 비춰졌을 때 나의 흉악한 마음 또한 내 피부 밖으로 돋아날 수 밖에 없었다. 26년의 세월, 이젠 만나지 못하는 가족, 뒤집혀버린 명예와 같은 부분들, 아니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는 삶을 빼앗기고도 그 절망의 원인을 눈 앞에 두고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악쇼노프에 대입하던 나의 감정과 마지막 악쇼노프를 보고 충격을 받은 나의 얼굴은 분명 악귀와 같았을 것이다. 그것이 톨스토이가 노린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분명히 관통당했고, 추악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어쩌면 거울이 아닌 렌즈를 들여다 봤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악쇼노프는 아니더라도 그의 성정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바치고, 분노를 절제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 왔고, 어느정도는 그에 맞게 세월을 보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러난 나의 진심은 용서와 자애는 온데간데 없는 그저 잔악한 복수귀의 모습뿐이었다. 책이 끝나며 거울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악쇼노프를 굴곡이 심한 렌즈를 통해 내 입맛대로 그에게 나를 대입해 내가 바라는 욕심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히 이와 같은 상황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는 악쇼노프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결심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그러고 싶고 그러기 위해 살아가겠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깎여나가며 나는 과연 나의 이 모습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은 가질 수 없다. 다만 내가 받은 충격과 깨달음이 나를 계속 자극해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 함께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까프까스의 포로 & 무도회가 끝난 뒤 이 두 작품을 통해서는 '양면성'을 가장 크게 느끼고 이에 대해 파고드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까프까스의 포로에서는 러시아 군인이 따따르인의 포로로 잡혀가 그곳에서의 삶을 경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어느 한쪽을 옹호하거나 선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 포로로 잡혀가 말이 통하지 않는 따따르 인들과 맞닥뜨리는 부분에서는 마치 따따르인들이 야만족이고 악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자연 속에서 지내며, 또 그들 안에서 지내며 독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세상과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혔을 것이다. 따따르인들 또한 그들만의 이유가 있고, 같은 자연 안에서 살아가며 그들만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러시아인의 관점으로 끝까지 그들을 이해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고 결국 탈출에 성공하며 글이 마무리 되지만 이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같은 탈출을 공유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따따르인들과 러시아인들이 마주하는 그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양면성과 중립,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를 줄타기하는 듯한 경험이었다.'무도회가 끝난 뒤'는 짧지만 강렬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면서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의 두 모습을 통해 내적 고뇌를 마주하게 된 이반은 결국 그의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 어느 누군가는 이를 읽고 "이게 그럴 정도의 일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정말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그럴 수 있지?"하며 환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쪽도 틀리지 않았다. 누구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이반이 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양면성이 아닌 그 중간이 무엇인지를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얻는 것이 너무나 많은 시간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가난한 사람들 단편집을 읽게 된 계기가 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단편 자체가 가진 의미를 넘어서 이 단편집 전체로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가진 이야기로 독자들을 이끈다. 순서도 책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책을 읽어나가며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출판사에서 의도한 바와 내가 느낀 바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이 책의 산봉우리와 같은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반부에 해당하는 단편들을 읽어오며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의문들을 바로 이 곳에서 확인시켜 주며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편들을 통해 내가 내린 답을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과정을 통해 나를 확장시키는 등대지기이기도 한 단편이었다.물론 단편 자체가 주는 메시지와 힘만 따로 놓고 보더라도 말 그대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명확히 제시해 주는 글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여기에서 돌려말하지도 않고 함축적인 말을 전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랑'이라고 명확히 목소리를 낼 뿐이다. 그만큼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이기 때문에 그는 숨기지 않고 천사라는 존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간 모두가 가져야할 마음이고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단편집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1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단편이다. 하지만 왜 이 단편이 이 책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지는 책을 덮으며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전한 사랑을 책의 말미에서 다시 독자에게 확인시켜주는 듯한 단편이다. 결국 사람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며 그 사랑을 드러내고 전할 수 있을 때에만 삶은 서로 이어지고 우리가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사람의 욕심은 어느 시대에나 변함없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단편이었다. 다만 처음에 제목을 보고 읽기 시작했을 때 예상했던 것과 실제로 이어진 결말은 달라서 오히려 더 깊은 생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기에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제목만 보고 읽기 시작하면서는 제 욕심에 못이겨 결국 가진 재산을 다 잃는 과유불급식 전개를 예상하며 읽어내려갔는데, 결말에서 내 예상과는 다르게 시작점에 마침내 다다르는 순간에는 내가 생각한 흐름과 달라서 적잖이 당황하긴 했지만, 그 이후의 결말을 맞이하고는 오히려 더 납득할 수 있었다. 욕심을 부려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고보다 욕심만 좇고 설령 그것을 취하더라도 그에 대한 부질없음과 허무함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바보 이반 & 알료샤 항아리 민화의 구성을 통해 지루하지 않은 전개와 흥미로운 설정으로 보다 몰입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둘을 묶은 이유는 내가 이 두 단편들을 읽으며 같은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순응'이다. 이반이나 알료샤 두 인물 모두 주어진 인생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그 순응하는 삶이 다른 사람의 마음 또한 움직이며 하나님이 바라는 삶을 살아간다. 이 부분은 알료샤 항아리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짧은 이야기에서 어쩌면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실패라고 볼 수도 있는 그의 인생이지만 그는 마지막에 무엇인가를 보고 웃으며 떠났다. 어쩌면 그가 못 이룬 일들은 우리의 삶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주어진 삶을 묵묵히 따랐던 알료샤의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반의 삶이나 알료샤의 인생을 보며 나는 개인적으로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금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알료샤가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써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도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기에 그가 가지지 못한 부분들을 조명하며 아쉬워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만 그렇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본질을 조금이나마 그 온기를 느꼈다고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이반이 계속해서 말하는 "그러지 뭐"라는 말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살아오면서 항상 고난을 겪거나 결정해야 할 일을 맞닥뜨릴때마다 "어떡하면 좋을까", "대체 왜 그럴까?"라고 더 깊이 파고들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삶을 살아왔는데 단 한 번도 되물어보지 않고 그저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나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때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신부 세르게이 톨스토이의 단편들 중에서 많이 알려진 단편 중의 하나이기도 한 신부 세르게이는 사실 '바보 이반'이나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묶으려고도 생각했다. 그만큼 다른 단편들에서 느낀 점들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단편이었고, 그렇기에 오히려 다른 단편들과 묶지 않았다. 신부 세르게이의 삶을 따라가면서 다른 단편들의 조각들을 주워가며 이야기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그 조각을 한 대 모아 하나의 큰 구를 만든 듯 한 어떤 성취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만들어낸 그 구를 굴려가며 내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그만큼 어려운 과제를 나에게 쥐어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왜 큰 깨달음이 아니고, 어떤 명쾌함도 아닌 숙제를 받은 듯 했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나는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듯한 감정에 지배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세르게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왜 바셴까는 사람을 위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신을 위한 삶이었는지, 왜 세르게이는 그 반대였는지 어렴풋이는 이해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그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나의 길이었을 수 있고, 반대로 완전히 수용했다면 나는 그를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세르게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나에게 넘어왔지만 그것을 나만의 형태로 재조합을 할 수 없었다. 그 애매함이 나를 계속 세르게이의 삶에 묶어 놨다. 하지만 세르게이의 삶을 통해 얻은 새로운 질문과 모호함은 다른 단편들을 통해 나에게 맞게 다듬을 수 있었고,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기 보다는 좀 더 사랑하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톨스토이의 단편집은 명확한 답을 주는 동시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내 삶에서 쌓아갈 지는 각자가 앞으로 찾아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기에 지나친 타인에 대한 마음과 사랑이 잘 못 되지는 않았을까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왔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이야기해 준 인물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긍정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삶을 고민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등대를 마주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이 앞으로 나의 항해를 비추는 빛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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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이런 것들이 제일 유명하죠..
바보 이반은 읽어보니.. 그렇게 큰 교훈은 개인적으로 못 얻었네요..
아무튼 좋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우리가 최소한의 것으로도 만족을 하자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소설이 전쟁과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양이 부담스러운 소설들이 많은데 짧게 교훈만 얻고 싶다하시는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게 선물로 줄려고 산거 잠깐만 읽었는데 나중에 시간 좀 나면 읽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은 거의 사랑에 관한 소설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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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읽으며 무릎을 탁 쳤던 책이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옛날 책을 읽읍시다! 프로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느낌표 시리즈로 나왔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번역이 좋기로 유명한 열린책들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나와서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제일 먼저 목록에서 찾아 중간을 펴고 읽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에게 알아야하는 3가지 질문의 답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스포(?)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사람이 살게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랑.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간직했다가 화가날때 어처구니 없는 뉴스를 볼때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었지요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감동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그 말이 맘에 와닿습니다. 오늘도 출근하며 신랑과 아이를 보며.. 또 저를 그렇게 키우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사랑이 가득한 시간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 그 사랑을 가지고 오늘도 힘을 냅니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또 겸손해지기도 하구요.ㅋㅋ
바보이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등... 처음 읽어도, 다시 읽어도, 언제 읽어도 우리의 마음을 때리는 고전..
울적하신가요? 이 책과 함께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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