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스는 책보다 영화로 더 유명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한 여인이 불행했던 일생에 관한 내용이다. 작가는 토마스 하디라는 작가로 이 작품이 대표작이 되었다. 테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녀는 매우 순진한 시골 처녀이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 친척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임신을 하게 된 후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뒤로 망가져가는 그녀의 일생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너무 어린 학생들은 이 책을 읽지 못 할 것 같다. 나름대로 어려운 내용이며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다면 비교육적인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은 제대로 이해해준다면 상관없지만) 중,고등학생 외에 성인도 읽어볼만 하겠다. |
| 읽으면 읽을수록 분통이 터져서 화가 나는 소설입니다. 펄벅의 '대지'가 그러했구요. 좀 오래되긴 했지만 '나타샤'란 소설이 그것입니다. 하나같이 너무 착하고 순수하기만 해서 버림받고 당하는 역할. 테스도 그러하지 않을까요. 아버지에 의해 더버빌 가문에 돈을 벌러 가면서부터 그녀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가난이 아마 죄겠지요. 알렉에게 씻을수 없는 상처를 입은채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일을 하러 가는데 에인젤 클레어 라는 남자를 만나죠. 그렇게 끈질기게 구애를 해 놓고도 테스의 과거를 알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테스를 떠나 버립니다. 힘들게 얻었으면 아낄줄도 알아야 하거늘..제가 답답한 점이 바로 이 점입니다. 그리고 살인자가 된 테스가 1주일간 클레어와 같이 지낸 시간. 그녀는 에인젤과의 1주일을 위해 모든걸 버렸습니다. 클레어는 뒤늦게 테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발견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리죠. |
| 토마스 하디는 중학교때 푹 빠졌던 작가이다. 그의 귀향이나 테스는 어느 것 못지 않게 좋아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테스는 좀 오묘한 교훈을 주는 소설이었다. 순진하지 마라. 남편에게 과거를 얘기하지 마라. 나의 이 삐딱한 시선은 그렇다해도 누구나 이걸 읽으면 어리석은 테스와 멍청하고 고집스런 남편을 욕할 것이다. 순진한 시골처녀인 테스는 남작에게 순결을 잃고 마을을떠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와의 사랑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같지만 결혼 첫날밤에 그녀는 버림을 받고 만다. 나중에 남작이 찾아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그녀는 그를 매몰차게 외면할뿐... 여전히 그 무십한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후우-- 처음에 그 남자를 좋아하긴 했는데 한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
| 여자의 비극이 드러나 있는 소설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테스도 그런류 중의 하나이다. 순진한 시골쳐녀가 철저하게 버림받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많은 이들에게 상처 받았지만 그 중 단 한명이라도 테스를 이해해줬다면 테스는 그런 극단적인 길까지 가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부모가 이름뿐인 그 귀족에 대한 미련을 버렸더라면...클레어가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이해해주었더라면...하지만 모두 다 테스를 몰아냈고 그녀는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빠져버린다. 편협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내모는 일은 없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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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를 매일 찾아다니던 때가 있다. 과학경진 준비로 매일매일 질경이와의 스케줄을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교복 입은 모습이 떠오른다. 길가와 산 속, 양지와 음지, 등의 환경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질경이의 삶을 찾고자 매일 같은 실험을 반복하던 일이 생각난다. 추억 속에서 자라고 있는 질경이, 그녀는 정말 질겼다. 인적이 드물고 자라기 수월한 곳에서는 뿌리도 가늘고 짧으며 둥글었지만, 삐걱대는 구두에 밟히고 자라기 힘든 곳에서는 뿌리도 굵고 길며 잎도 성난 사자 갈기처럼 뾰족하여 꿋꿋하게 세상을 맞서 살아갔다. 그래서일까. 테스의 삶을 보며 추억의 끝자락에서 장기간의 열성적이던 질경이 실험이 꿈틀대며 고개를 내밀었다. 정조를 잃었음에도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테스의 모습, 그 속에 질경이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엔젤의 어머니가 그깟 여자아이라고 말하였을 때 엔젤 클레어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흙에서 태어났지요.’라고 말이다. 그렇다. 사람은 모두 흙에서 태어났다. ‘흙에서 태어난 사람’이기에 모두 동등하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냉혹하고, 테스는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 속에 갇혀 산다. 중국 여인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 억압하던 전족처럼 혹은 죄인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 억압하던 족쇄처럼, 사회의 질책은 거미줄이 되어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테스를 점점 옭아매었다. 결국 순결을 지키고자 하던 테스와 한 뼘의 관용도 건네지 않은 사회의 대결은, 나약한 인간이 사회의 거미줄에 꽁꽁 묶여 生의 극단을 알리는 ‘검정 깃발’로 그 막을 내렸다. 테스의 죽음을 비극이라 말할 수도 있으나 그녀는 진정한 휴식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스톤헨지, 고대인들의 태양 숭배를 위하여 제물을 바치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던 테스, 그렇게 그녀는 고대의 숨결을 느끼며 사형대의 이슬방울로 사라져 영원한 휴식을 얻은 셈이다. 이렇게, 고된 삶에서도 순결을 지키려던 테스의 죽음 앞에 가련하다고 말 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감히 테스를 질경이처럼 질겼다고 하련다. 물론, 테스 뒤에 숨겨진 많은 여성들의 가련한 삶이 숨겨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러한 그녀가 세상을 떠나간 사형대 위에 하나의 질경이가 자라났다. 척박하고 삭막한 사형대라도 살아갈 것이라는 억척스러움을 간직하고 꽃을 피웠다. 단순하던 삶이 척박하고 고된 미로를 걷듯 복잡해진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단련시키며 맞서 살아간 그녀의 주검 위에 질경이는 묵묵히 자라고만 있었다. 세찬 바람을 뚫고 나온 백색의 좁쌀보다 작은 질경이 꽃처럼, 세상에 선 그녀는 한 없이 작지만 엔젤에 대한 사랑을 지켜가는 순수한 백색의 꿈을 키워간 질경이였다. 테스에게 사형대에서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녀는 말했을 것이다. ‘세상이 던진 칼날에 베여 쓰러지지 말고, 치료하고 일어서라.’라고 말이다. 질경이처럼 환경에 맞서 꿋꿋이 살아가라는 그녀의 無言은 죽음을 알리는 ‘검정 깃발’에 갇혀 맴돌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