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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IS에 가입한 김모군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또한 테러를 감행하고, 인질을 납치하여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공개처형까지 하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도대체 IS가 무엇이고, 그들은 왜 그러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단지 이슬람주의 극단세력이라고 말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되었다는 양 치부해버리고 만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원리주의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일체의 타협을 배제한다. 딱히 이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유대교나 기독교에서도 원리주의자들이 설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장하는 그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자들의 편견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슬람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매우 단편적이다. 이슬람 하면 우선은 떠 오르는 것이 테러와의 전쟁을 한 이라크였고, 그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전쟁, 그리고 호메이니가 이끌었던 이란 혁명, 최근 들어서는 이집트를 필두로 불기 시작했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그나마도 뉴스나 서구세계에서 전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왜곡인지의 여부는 본인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본 글이지만 이슬람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순결한 종교라고 한다. 나야 종교하고는 무관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느 종교가 좋고, 나쁘고를 말할 수는 없지만 호불호는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볼 때 짧은 지식이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현재 이슬람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란 혹은 내전이나 소요사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들이 어떻게 태동하고 또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지난 70여년간 전쟁으로 점철된 중동지역의 역사를 통하여 그 근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우리에게 알려준다. 대부분의 이슬람국가들은 세속정권과 종교권력 사이의 갈등과 협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만든 사우드 가문과 현대 이슬람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와하브 사이의 동맹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종교세력이 정치세력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것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들의 반식민주의, 반서구화의 범이슬람주의 운동표방은 이슬람 전체의 무슬림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고, 1967년 이스라엘의 선공으로 시작된 6일전쟁의 패배는 세속주의 근대화세력에 실망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결과 이슬람 각국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득세하기 시작하였으며, 세속정권이 독재로 이들과 맞서자 그들은 지하드를 무슬림의 의무로 규정하고 그 세력을 넓혀갔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현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헤지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 등장하고 퍼져나갔으며, 서방은 이들 이슬람주의 세력과 갈등 및 대립의 역사로 들어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집트에서는 세속정권의 수장인 사다트와 이슬람 지하드주의 세력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고, 이란에서는 시아파에 의한 이슬람 혁명이 그리고 아프간에 인접한 파키스탄에서는 인도와 갈등 속에서 강력한 이슬람 정체성을 유지하는 등,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권 전역에서 끓고 있었다. 이러한 기운은 아프가니스탄에도 번져 세속주의 성향의 사회주의 정부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고조된다. 다급해진 아프간 정부는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고, 소련은 아프간 공산혁명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 1979년 크리스마스 날 전격적으로 아프간을 침공한다. 이 침공이 결과적으로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을 마무리하는 도화선이 될 줄은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패배를 맛본 미국은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기 위해 CIA의 공작아래 이슬람 무자헤딘 반군에게 첨단무기의 제공과 테러전술 교육 등 지원을 강화한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끓고 있던 이슬람주의를 폭발시켰다. 각국의 이슬람 청년들은 속속 아프간으로 모여들었고, 전쟁을 지하드가 되었다. 아프간의 무자헤딘들은 순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지만, 아랍 아프간들은 지하드와 순교라는 추상적인 자신들의 대의에 따랐다. 그 결과 그들은 수많은 논쟁과 이합집산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곳은 국제 지하디스트 단체 알 카에다였다고 한다. 1990년의 걸프전쟁은 이슬람 세계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프간에 참전했던 지하디스트들이 미국과 공조한 이슬람 기존정권과 결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프간에서는 이슬람 원형으로 돌아가자는 탈레반이 농촌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아프간을 장악해 가고 있었고, 1996년 마침내 카블을 함락한다. 1991년 사우디에서 추방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정착지를 제공했던 수단은 사우디 등 주변국과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그를 추방했다. 때마침 오마르의 초청을 받은 빈 라덴은 아프간으로 가고, 그곳에 알 카에다의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다. 이 무렵 미국은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전담반을 CIA내에 설치한다. 이미 수단에서 추방될 때, 그리고 오마르가 사우디와 국교재개를 할 때, 빈 라덴의 신병인도를 제의했었지만 사우디와 미국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뒤늦게 그를 제거하려 했지만, 결단력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하는 가운데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다. 9.11테러는 사전에 CIA에서 테러에 대한 신호를 여러 차례 인지했음은 물론,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미 입국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테러 발생직후 납치범들의 신원을 즉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네오콘과 부시는 알 카에다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응징에 더 관심을 쏟는 가운데 아프간 침공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두달만에 탈레반이 항복하면서 끝이 났지만, 탈레반 조직원들이 정규군이 아닌 게릴라로 돌아가자 그들은 무자헤딘이 되어 미군 앞에 나타났다.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놓치자 사실상 전쟁의 의미가 사라졌다. 미국의 생각은 오직 이라크 전쟁만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2003년 3월 마침내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3주만에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그리고 부시의 종전선언과 함께 바그다드에서 시작된 게릴라전은 이라크 내전의 시작이었다. 미군은 자신들의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내란에 휩쓸렸고, 부시는 이라크 침공이 실패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오바마 취임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2011년 5월 마침내 빈 라덴을 사살하지만, 이슬람권의 무슬림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알 카에다의 이라쿠지부로 시작한 이라크이슬람국가는 시리아내전에 개입하면서 알 카에다와 결별하지만, 그들은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자신들을 드러내었다.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북부지역을 장악한 이들은 2014년 6월 이슬람국가 즉, IS를 선포한다. 지리멸렬한 세속주의 정치세력과 친서방 세력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감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라고 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책을 읽다 보면 현대 이슬람주의에서부터 IS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슬람의 역사는 지극히 편향된 시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석유자원의 확보, 구소련에 대한 방어망 구축, 그리고 이스라엘의 생존이라는 세 가지의 기본토대 위에서 수립되고 지속되어왔다. 소련의 몰락 후, 그 자리에 이슬람에 대한 위기가 들어갔을 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에 따라 세계는 미국의 시각으로만 이슬람을 보아왔고, 미국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적과 아군이 바뀌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를 조금은 더 자세하게 알아야 하고,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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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동 문제로 중동에 대해 간략히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몇 권을 읽게 되었다. 몇몇 저서를 읽으며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과 시야의 책을 두루 보는 것이 사안을 이해하고 다각도로 사유하기에 유익하구나 생각됐다.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이란 책을 통해서는 간략히 요약된 중동사를 접할 수 있었고 이슬람이란 어휘의 의미에 대입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는 중동에서의 서구 세력의 영향력에 대한 이슬람 사람들의 저항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식있는 저항으로 드러났다는 감상을 갖게 되었다면. 본서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통해서는 서구의 이슬람 침탈과 전략의 의도를 좀 더 다채롭게 알 수 있었고 그에 대해 저항하며 일어난 이슬람의 저항이 비단 신에게 복종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운동만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인 움직임이기도 했다는 감상을 갖게 되었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가 21개의 장으로 중동의 역사를 나름 상세히 조망하는 기회였다면, 본서는 각 단락별로 중동 각국의 역사를 다루기 보다는, 중동의 정세와 전세를 통해 이슬람 원리주의가 확산하고 기세가 확장되며 일어난 정치적 분쟁과 결탁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라며 무장단체들이 일어서지만, 그들이 이슬람 민중을 다 대변하는 것도 아니며 각국의 정부에 저항하는 이유도 각국 정부가 타락해서가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를 신의 권위를 대변하는 대리인으로 정하고서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측을 신에 대해 대항하는 세력으로 단정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걸 본서를 읽으며 느끼게 됐다.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 같은 경우도 사우디의 원조를 받으며 성장하고 유지하면서 각국의 정권 교체 등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전념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건 사분오열되어 보이는 이들 이슬람의 정권과 무장단체들은 외세에 저항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하에 그들과 결탁하고 서로서로 반목하거나 공조하며 세력 확장에 주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아무리 알라의 뜻이라며 내세우는 원칙이나 명분들도 그들 스스로에 위세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는 이상의 의미는 찾을 수 없었다.
본서는 제목부터가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듯 이슬람 원리주의와 무장세력의 형성과 확산, 영향력 확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상적인 대목은 알카에다의 911테러와 그에 대해 응전한 미국 정부의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부시 정부는 ‘전 세계 테러에 대한 전쟁’이라는 취지로 대응했는데 오바마 정부 때는 ‘알카에다와 그들 테러에 대한 전쟁’으로 포커스를 조율했다고 한다. 그리고 911 테러 훨씬 이전부터도 이슬람 각국에서의 전쟁 수행시에도 확전의 우려를 보고할 때 미 정부인사들의 입장은 세계대전으로 확전된다고 해서 나쁠 건 무어냐는 식의 대응이었다고 한다.
러시아나 미국, 유럽의 정략적 이슬람 각국에 대한 외교와 전략은 솔직히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들의 그것보다 나아 보이는 면이 없었다. 외세의 침탈에 저항할 방법이 테러라는 한 수 밖에 남지 않은 이슬람의 입장이 되려 이해될 지경이다. 이슬람이 극단적인 역사 퇴행적인 태도로 영향력을 개인들에게 미치고 있기에 미국과 서구의 악의적인 정책들이 희석되어 그렇지 이슬람이 받은 침탈을 이슬람 정도의 문화 수준에서 한국이 받았다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합리화뿐인 이슬람의 폭력적 행태는 정당성이 그들에게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슬람과 서구세계의 충돌은 아마도 현재진행 중이고 미래에도 그치지 않을 듯한데 그들의 경전에 가르침을 넘어서는 새로운 서술을 가져올 누군가가 그들에게 나타나 주는 것이 인류적 차원의 유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성은 개들에게나 던져주라’는 그들이기에 이성과 대화와 타협을 통한 화해나 화합은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는 현재까지와 다름없는 제도의 결과만으로는 결코 이제까지와 다른 결론을 가져올 수 없어 보인다.
그래도 중동을 알아가려는 노력은 현재를 알고 겪는 것과 모른 채 감당하는 차이이기에 현격히 다른 삶의 태도와 대응이 아닌가 싶다. 알아야 덜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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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지금 21세기에 되살아난 제로니모와 싸우고 있다. 제로니모는 19세기의 실존인물로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백인들과 싸운 아파치 인디언들의 추장이었다. 그의 용맹과 리더쉽은 신대륙에서 명성을 떨쳤다. 아파치족의 터전을 빼앗기 위해 백인들은 인디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그 와중에 제로니모는 처자식을 모두 잃고 만다. 복수를 다짐하며 전쟁에 임한 그와 아파치족 전사들은 무려 30년동안 백인 침략자들을 괴롭혔다. 캐스린 비글로우의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명은 `제로니모'였다. 빈 라덴을 사살한 직후 네이비 실 대원은 '신과 조국의 이름으로 제로니모를 처단했다'고 무전 송신한다. 911 테러로 5천명의 미국 민간인이 희생됐다. 빈 라덴은 현대에 부활한 아랍 세계의 제로니모였던 것이다. 아파치 인디언 제로니모가 용맹했던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족의 죽음은 삶의 의미를 상실케 했고, 복수는 생의 목표가 되었다. 911은 잔혹한 테러였다. 빈 라덴의 기획에 따라 미국 국적기를 불법으로 탈취해 세계무역센터와 팬타곤을 공격한 이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아랍출신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중동 각국의 중산층 출신으로 부유한 부모의 후원을 받으며 유럽 대학에서 공부하던 유학생이자 유망한 미래가 약속된 지식인이었다. 왜 그들은 극렬한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야만 했을까. IS(이슬람 국가)는 왜 그토록 잔혹한 참수와 학살을 자행하는 걸까. 어느 순간 맥락이 빠진 국제뉴스를 보는 것은 고역이 되고 말았다. 이슬람과 중동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비단 유가 때문만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매일 죽음이 생중계되는 이 세계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양산한다. 인간이 도살장의 가축처럼 처분되고 있다. 매일 증오와 복수의 메세지가 들끓는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한가하게 인간 존엄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리스트 라는 것은 알았지만, 왜 그토록 부유한 자산가이자 엘리트 출신이 테러리스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뉴스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IS의 참수동영상에는 호기심을 갖지만, IS의 기원과 잔혹함의 정체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정의길 한겨레신문 기자가 쓴 <이슬람 전사의 탄생>은 현대 중동 분쟁의 실상을 그 뿌리부터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1948년 전세계에 흩어져 2천년간 배회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촌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중심부 시온이란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가겠단 희망을 품었다. 유대민족주의를 표방한 시오니즘 운동이다. 팔레스타인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었다. BC 6세기에는 유대인들의 땅이었지만 BC 1세기에 이르자 로마에 점령당했다. AD 636년에는 이슬람교를 추종하는 아랍인들이 로마를 격파하고 1천년간 이곳을 지배했다. 12세기에 유럽 십자군이 잠시 점령해 통치한 것을 빼고는 줄곧 아랍인들의 땅이었다. 부유한 유대인들의 로비와 1,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영국,미국 등의 지원으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지만 이것은 현대 중동 분쟁의 발화점이 되고 만다. 팔레스타인은 3대 종교인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가 있는 곳이다. 민족과 종교의 이질성이 뒤섞인 이곳은 전쟁터가 될 숙명이었다. 1500년동안 삶의 터전이자 종교의 중심이 된 땅을 아랍인들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이곳을 점령한 직후, 이스라엘은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주변 아랍국들과 3차에 이르는 중동 대전을 치르고 결국 승리한다. 그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보여준 강압적인 통치와 아랍인들에 대한 탄압과 학살은 그들이 히틀러의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유대인들이란 과거를 잊게 만들만큼 잔혹하고 냉정한 것이었다. 문제는 중동분규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의 이질적인 종교와 민족에서만 기원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그 내부로 들어가보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분쟁의 성격이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교 내부의 종교적 차이에서 기원한 다툼이다. 이슬람교의 대표적인 두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는 태생부터 극결하게 대립해 왔다. 무슬림을 양 파벌로 나뉘게 한 원인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사후 그의 후계자인 칼리프 선출방법을 놓고 양 세력이 다툰것에 있다. 시아파는 후계자가 무함마드의 혈육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수니파는 핏줄에 상관없이 무슬림의 신앙 공동체인 움마에서 선출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결국 양대 파벌은 내분속에서 반대 파벌 지도자 암살 사건에 관여하고 그 이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다. 오늘날 수니파의 대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의 종주국은 이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수많은 아랍국가들 내부에서도 이 두 파벌간의 반목은 학살과 테러로 이어진다. 그외 아랍국가 내부의 기독교 대 이슬람간의 종교 분쟁이다. IS(이슬람국가)는 아랍의 소수종교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와 참수를 자행하고 있다. 또, 아랍 대 서방 및 이스라엘에 대한 반외세 분쟁이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도운 서방 세력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고, 그들을 추방하는 것은 이슬람교도로서 지하드(성전)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분쟁은 종교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세력과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려는 현실주의 세력간의 싸움이다. 다수 민족 대 소수 민족의 민족 분쟁과 중동 역내 국가 사이의 국가 분쟁도 치열하다. 이란과 이라크는 1980년대 무려 8년간 재래식 장기전을 치뤘다. 마지막, 독재정권 등 권위주의 세력 대 민중들의 민주화 분쟁은 어떤가. 2012년 12월 튀니지의 한 노점상인의 분신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 리비아 등 장기 독재권력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이슬람권의 분쟁이 확산되는 이유를 이슬람권 전역의 저개발 상황이 그 배경이라 지목한다. 이슬람권이 석유자원을 등에 업고도 저개발된 이유는 과거 제국주의 통치 때의 착취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 등 서방 세력의 대외 정책이 그 원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두가지 이유는 이렇다. 첫째, 이슬람권은 건조지대이자 현재 건조화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슬람권의 유일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석유는 강대국의 착취를 끌어들였을 뿐, 대다수 이슬람권 대중은 척박한 환경의 희생양이 됐다. 둘째, 이슬람권은 가장 역동적인 인구 성장을 보인다. 자원과 인구의 불균형으로 젊은층에 실업이 만연하게 되고, 혈기방장한 젊은 인구층을 이슬람 분쟁과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로 끌어들인다는 설이다. "이슬람주의는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원해 인류의 절대적 가치가 된 인간 이성과 그 힘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신봉하는 이성이 빚어낸 사회와 그 현실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이슬람권의 현실은 더욱 그랬다. 그 속에서 절망한 대중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의지로 회귀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258쪽,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 911 테러가 준 공포는 세계인들에게 오랜시간 각인됐다. 고층 건물이 두 대의 항공기와 충돌 후, 허망하게 내려 앉은 모습. 그 안에서 무고한 민간인 수천명이 일순간 운명을 달리한 그 순간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그 이후, 10년 넘는 시간동안 아프칸니스탄의 협곡을 거쳐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이슬람근본주의에 경도된 무장단체 알카에다를 지휘하는 지도자로서 살아왔다. CIA의 오랜 추적끝에 미국은 자국민 5천명을 몰살시킨 이 테러리스트를 결국 응징하고야 만다. 미국은 곧바로 발표된 성명에서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말한 `정의'에 수긍할 수 있었을까?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였다. 그는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양 삼아 정치,종교적 목적을 달성코자 했기 때문에 나쁜 지도자다. 그의 신념의 뿌리인 이슬람은 이같은 학살을 허용하지 않았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해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양 삼아 정권을 갈아치웠다. 만약 어떤 종교나 이념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인을 허용하고 부추긴다면, 그것은 절대로 인간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신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지금 세계인들을 경악시키는 IS와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알카에다, 이슬람 성전을 수행하는 무자헤딘의 만행은 이슬람이라는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증스럽다. 그들은 이 세계가 자신들의 종교적 이상이 실현되는 칼리프 국가가 되길 소망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반대의 종교,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제거되어도 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리아인의 인종적 우수성을 믿고 유태인을 가스실에서 살육한 히틀러는 편협한 아리아인의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다. 미국이 대테러전을 빌미로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첨단 무기를 동원해 민간인을 희생시킨 것 역시, 종교와 민족의 이질성과 배타성 때문이다. 이 세계는 지금 종교와 민족으로 반목하고 있다.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 때문에 생명과 인권은 경시되고, 이 세계는 거대한 도축장이며, 동물 농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의는 상대적이다. 하여, 누구도 정의를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삶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고 모든 인간이 공존을 꿈꾸어야 한다. 종교, 민족간 증오의 사슬은 끊어야 마땅하다. 공생을 가르치는 종교는 진정 불가능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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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건의 본질을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이 터키를 경유하여 is국가에 밀입국하여 언론에 크게 보도된바 있어 IS국가의 실체에 큰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흔히 언론에 매일 보도되는 중동분쟁에 관한 뉴스만 가지고는 누가 옳고 그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수 없었다. 우리는 상황을 판단할때 누가 판단하는냐에 따라 정의로운 일이 되기도 하고 악한 일이 되기도 한다. 가령 일제시대때 우리 독립군의 무장투쟁은 우리국민으로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 혹은 투쟁으로 보게 되나 친일파나 일본 국민입장에서는 악랄한 테러리스트에 의한 테러로 분류하게 된다. 나는 저자 정의길 기자가 친미적이거나 친 이스라엘 혹은 친 기독교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기를 바라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은 저자가 매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된다. 2.중동과 북아프리카 분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는 이집트의 이슬람 형제단으로 부터 그 기원을 포착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화약에 불을 붙였으며 미국과 서방이 불쏘시개로 뒤적거려 불을 키웠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여러 민족과 정파,그리고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종파갈등이 내재한 국가를 극히 세속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세속적이라는 것은 이슬람 율법을 따르지 않고 지도자의 독재와 지도자 가족이 국가의 재산을 대부분 소유하는 형태의 비 민주적이며 비 이슬람적인 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세속적인 지도자들의 독재와 실정이 내란의 주요 원인이 된다. 종파의 지도자들과 부족의 지도자들,정파의 지도자들은 내란을 조장하고 분쟁에 개입한다. 빈곤에 내몰린 국민들은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고 피 끓는 젊은 이슬람 청년들은 이슬람 율법에 의지하여 목숨을 걸고 무자헤딘의 길을 걷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오일달러를 앞세운 무자헤딘의 지원과 파키스탄과 소련,미국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부터 분쟁에 개입하고 내란을 조장한다. 3.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우리는 알카에다의 잔학상과 무자비한 테러에 관한 보도만을 접하고 이슬람국가들은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적대적인 이슬람 정책으로인해 무모하고 무자비한 대량학살을 당연한 결과라고 판단하고 만다. 저자 정의길 기자는 기독교 원리주의자와 네오콘들에 의한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치안유지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폭동과 내란이 발생하게 하는 기본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가공할만한 화력으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므로써 전세계의 이슬람 청년들을 격분시켜 그들이 초국적 지하디스트가 되었으며 이들에 의한 테러가 전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다. 초국적 지하디스트들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여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중동분쟁에 끊임없이 인적자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아무리 미국과 서방이 강력하게 대응하더라도 이러한 자발적인 지하디스트들을 완전하게 제압하는것은 불가능하다. 4.앞으로 중동은 어떻게 될것인가? 알카에다는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종파분쟁을 조장하고 쿠르드족등 민족분쟁도 부추기며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으며 어떤 세력도 해결책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도 분쟁이 계속되며 대량학살과 대량의 난민이 발생하게 될것이다. IS국가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통일하더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미국과 서방이 개입하게 될것이며 그러면 IS국가도 1주일 안에 붕괴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처럼 게릴라로써 미국과 서방의 배후를 공격하게 될것이며 끝없는 비극을 양산하게 될것이다. 밑도 끝도없는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그 국가의 문제는 외부의 개입없이 그 국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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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이슬람에 대한 '몇권'의 책이 있다. 여기서 '몇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을 비롯 선진국에 비해 너무 적다는 것을 조롱하는 것이다. 이슬람이해하기 위해 열권 정도 책을 사서 읽었지만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 오지 않았다. 무엇을 탓하겠는가. 내 머리가 나빠서 일 것이다.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청아 출판사) 배철현 역'꾸란 이팩트(세종서적) 등등. 이 책을 읽고는 지금의 IS까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그런데 왠지 사놓고도 멀치감치 떨어뜨려 놓았던 책. 그 책에 눈길이 갈때마다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애써 외면했던 책. 그게 바로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다. 나는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한다. 홍은택인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을 읽고 생긴 버릇(?)인데...역시 기자가 쉽게 책을 쓰는 편이다.아마도 일반 독자를 이해시키 위해 쓰던 가락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 책. 우선 쉽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재밌다. 부제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에서 보여지듯, 이슬람 그들도 왜 수아파 시니파 하며 싸우는지 명쾌하게 답이 나온다. 9.11 테러가 왜 일어났는지 이 책을 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책한 권으로 이슬람을 이해 할수 없다. 성경책 한권으로 기독교를 이해 할수 없듯이 말이다)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다. 이렇게 독서가 즐거우면 반드시 꿈을 꾸는데...오늘 밤, 이슬람 전사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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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형형인 IS때문에 태어난 소설이다.
이슬람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다뤘다.
문어체라 다소 읽기 어렵고, 인물들 이름 외우기 힘드나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부분.
'이슬람 불사조'가 청소년을 위한 도서라면 '이슬람전사의 탄생'은 대학생을 위한 도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이슬람불사조'를 먼저 읽어도 좋을 듯하다.
IS의 결말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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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되자마자 내 위시리스트의 최우선 순위에 오른 책인데 어쩌다보니 한참 늦게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엑설런트하다. 음, 이 표현만으로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독서를 마친 분들은 이 느낌을 알 것이다.
단편적인 뉴스와 지식만으로는 현재의 중동정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뉴스의 출처가 결국 미국 중심의 서방세계이고, 그 뉴스들은 생산자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각색됐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세인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들이 제거될 때 환호하기까지 했지만, 우리는 실상 중동 분쟁의 역사적, 객관적 실체에 대해 극심하게 무지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책 중에 그 실체를 설명해주는 몇 안되는 소중한 책이다.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저쪽 세계에 무관심했는가? 우리는 뉴스채널의 해외토픽 따위로 세상을 판단해오고 있지는 않았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가? 역시 세상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다.
내 지식창고에 한줄기 빛같은 책이다.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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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 묵직한 책을 읽었다...중동, 아랍, 이슬람에 대해 생각하면 참으로 지식이 없어서 괜찮은 책을 골라 읽을려고 많이 생각 했지만 좌절, 좌절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문외한으로 지나 왔는데...이번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을 읽고나서 왜 IS가 생겨났는지, 아랍, 중동, 이슬람, 무슬림등의 차이가 뭔지...중동 테러의 근원이 뭔지, 특히 이슬람 종교의 순수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이제는 중동역사에 대해 조금은 알가 같다..앞으로 몇권의 책을 골라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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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지고 IS 가 뜨고 있는 요즈음, 이슬람극단주의자들 특히 무력으로 이슬람을 제외한 다른 종교를 공격하는 그들의 뿌리를 파헤쳐 보앗다.
이집트,시리아와 이스라엘과 중동전이후 이슬람 특히, 미국과 영국,이스라엘를 향한 중동의 반감은 커지고 소련의 아프간침공을 기화로 이슬람 무장세력은 무력으로 무고한 인명들을 테러,납치하기 시작한다.
소련과 나지불라의 사회주의 정권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생적인 이슬람전사, 무자헤딘이 성장하고, 소련의 저지하려는 미국과 사우디의 제정과 무기, 군수정보 가 파키스탄을 통해 공급되면서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이 와중에 극단 이슬람 주의자,반미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이 등장했다. 빈스 플린의 소설에도 나오는 필리핀에서의 테러 보진카계획도, 알 카에다 2인자, 이집트인 의사 알 와히리의 집안 배경, 외삼촌 쿱트의 영향등 이 잘 소개되 잇다.
극단주의적인 이슬람주의자, 무력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려는 성전, 지하드의 탄생,뿌리, 발전과정등을 알차게 소개하고 잇다.
근데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영국의 디즈레일리수상인가 . 이 인간의 큰 실수가 평화로운 팔레스타인땅에 이스라엘인들을 정착시킨 ,큰 잘못이 앞으로도 수백년간 중동인들을 괴롭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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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교수나 김정운 교수,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움베르토 에코 같은 글쟁이들의 글을 읽을 때면 숨이 막힐듯한 지식의 향연에 주눅이 들 때가 많다. 현란한 글솜씨는 그러한 숨막힘을 더욱 가중시키곤 한다. 그러나 주눅드는 마음을 가듣 안고서라도 그들의 책을 손에 들게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함정이 있다. 엄청난 지식의 향연에 빠져들어 즐겁게 앎의 홍수를 경험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내 것으로 남아있는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나게 책을 읽었는데,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어찌된 일일까? 내가 생각해 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첫째, 그 책들이 쏟아내는 지식들은 사실 수많은 공부와 연구, 고도의 종합과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그렇게 책으로 만들어 내서 지식을 정리할 때 들인 노력과 공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리라. 그 결과물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지식의 꽃봉오리들이기에 읽는 이들에게 향기로운 꿀맛을 선사하지만, 독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은 거기까지일 때가 많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도 그 책들이 보여준 지식들을 얼마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쾌락적 읽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그런 지식의 향연에는 대개 내러티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가 없는 지식은 화려한 수사와 깔끔하고 유려한 문체로 무장을 했더라도 일종의 '백과사전스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관된 의식의 흐름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성, 그리고 잘 짜여진 구조는 내러티브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다. 내러티브는 인과관계를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을 내포한다. 화려한 지식의 한상 차림은 읽는 쾌감은 대단할지 모르지만, 영양가는 높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살아있는 글은 읽는 일이 다소 고되고 답답하더라도 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지식의 축적이 일어난다. 내러티브의 흐름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책을 읽은 후에 훨씬더 영양가 있는 결과를 허락하는 것이 내러티브가 살아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이 책은 우선 무엇보다 풍성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슬람의 역사와 종교,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대단히 돋보인다. 오랜동안 중동문제 전문 기자로 살아온 그의 역량이 잘 녹아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이슬람 문제에 관한 백과사전스러운 책은 아니다. 20세기의 중동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화약고이자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중동 분쟁문제를 그 근본에서부터 파헤치고 있는 저자의 접근방식은 그 자체로 "역사"이면서 내러티브다. 저자는 중동의 분쟁을 세계 3차 대전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는 중동의 분쟁들이 언뜻 보기엔 국지적이고 파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큰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하나의 전쟁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특히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빈 라덴과 탈레반, 이슬람 국가(IS)와 미국 등...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고 숨막히는 첩보전이기도 하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 액션이기도 하다. 익숙한 이름들과 나라들, 첩보기관들이 등장하지만, 낯익은 내용은 거의 없다. 저자의 투철한 기자정신 덕분이리라. 이렇게 디테일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인가 의아한 장면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이 내용들을 공부하고 정리했을지 고개가 숙여지고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다. 두말할 나위없이 전쟁은 너무나 큰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21세기에 들어왔지만 한 해에 1만 건 가까이 발생하는 테러들과 여전히 진행중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분쟁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결코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더구나 우리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휴전국의 국민이다. 거리마다 풍요와 쾌락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우리는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전쟁중인 사람들에게 너무나 무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로운 삶, 안전한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전쟁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게 된다. 보잘 것 없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만 한다고 ...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