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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그늘에 엎드려 [시집-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시의 그늘에 엎드려 [시집-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내용보기
e북으로 읽으려고 애써 찾은 시집이다. 기본적으로 시인에 대한 신뢰가 있으므로 마음에 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읽으면서 보니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10행시들이라는 것. 실린 시들이 최근 15년 정도에 걸쳐 쓰인 작품들인데 모두 10행 정도의 짧은 길이로 되어 있고 기존의 시집에 싣지 못했던 시들이라고 한다. 이런 편집 의도를 모르고 읽었던 나는 신기하다 싶었다. 매 편의 시를
"시의 그늘에 엎드려 [시집-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내용보기

e북으로 읽으려고 애써 찾은 시집이다. 기본적으로 시인에 대한 신뢰가 있으므로 마음에 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읽으면서 보니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10행시들이라는 것. 실린 시들이 최근 15년 정도에 걸쳐 쓰인 작품들인데 모두 10행 정도의 짧은 길이로 되어 있고 기존의 시집에 싣지 못했던 시들이라고 한다. 이런 편집 의도를 모르고 읽었던 나는 신기하다 싶었다. 매 편의 시를 페이지 넘기지 않고 읽을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이제 이 점을 시인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과 같은 e-매체 시대에는 짧은 분량의 글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분량이 짧다고 시의 완결성에 흠이 생기는 건 결코 아니다. 이 점은 작가도 말해 놓았다. 내 마음에도 꽤 든다. 크레마 카르타에서는 내 마음에 드는 구절을 줄로 그을 수 없어 책갈피로 표시해 놓았다가 바로 타이핑을 한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산골이라 핸드폰 화면에 블루투스 자판기를 이용하여.(이 작업 은근히 매력 있다, 마치 내가 대단한 글쓴이라도 되어 본 것처럼)

 

짧은 시들에서 몇 줄씩 내가 들어 앉고 싶은 싯구들을 찾아내고 보니 내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내 마음의 풍경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만들어 낼 수는 없으나 깃들어 함께 끄덕일 수는 있는 오롯한 공간. 

 

백암온천 한화콘도에서 이 시집을 읽고 이 글을 쓰는데 내가 몰랐던 신기한 일치-이 시인이 1946년 울진 출신이라는 점. 나는 지금 작가가 태어난 곳에서 작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니.

 


10
열애의 한때를 떠올리며 텅 빈 골목을 지나간다

13
태풍 뒤끝이 안개 깊이 고여 있다

14
베이는 일은 시의 길,
마음엔 구름 펼칠 빈자리조차 없었으니

16
무심코 넘겨 버린 무심한 현재들, 그 갈피에
그가 접혀 있다 해도
생생한 건 엎질러 놓은 숙맥이다
중심에서 기슭으로 번져 가는 어느 주름에
저 사람은 나를 접었을까?

19
무척 짧으니 외로움아, 믿지 마라, 철 지난
마음 안아 나르려고 사투리까지 벌거벗었으니
너는 어디 가고 섬들만 어둠 속에 비스듬히 잠겼다

23
눈발에 걸려 넘어지는 길목도 내 몫인데

26
바람이 잎맥을 들쑤시자
사연이 휘는지
손등을 뒤집는 저 자리
자디잔 그늘을 토닥거리는 
각양각색 짧은 이별들!

28
달빛이 다스리던 어제의 강물 흘러갔다
오늘은 그믐달만 시리도록 글썽이겠다

30
발치에 닿은 이별이라고 서둘러야 할 까닭은 없다

49
어머니는 무슨 수로 하루 햇살과 맞서려는지
또 어떤 길일이라고 매양 낯선 틈새를 기우시는지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YES마니아 : 로얄 j***6 2016.01.28.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시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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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중심을 견디려 애쓰며 이 시집을 엮는다 근년에서 원년으로 펼쳐놓았으니 거꾸로 읽혀도 좋겠다     시는 내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 조사들이 그또는그녀만의 형식으로 조합되어 새로운 세상을 연다.   노시인의 원년이 근년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산뜻하다 시인의 나이들지 않음의 비결은 무엇일까   소리내어 읽지 않으니 비법을 모르나 싶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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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중심을 견디려 애쓰며 이 시집을 엮는다

근년에서 원년으로 펼쳐놓았으니

거꾸로 읽혀도 좋겠다

 

 

시는

내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 조사들이

그또는그녀만의 형식으로 조합되어 새로운 세상을 연다.

 

노시인의 원년이

근년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산뜻하다

시인의 나이들지 않음의 비결은 무엇일까

 

소리내어 읽지 않으니 비법을 모르나 싶어

소리내 읽어보지만

말은 속절없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고

야속하지만 언제나 답은 내가 구해야 하는 것, 알아야 하는 것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졸음기 그득 햇살로 쟁여졌으니

이곳도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본 풍경 속이다

화단의 자미 늦여름 한낮을 꽃방석 그늘로 펼쳐 놓았네

작은 역사는 제 키 높이로 녹슨 기차 한 량 주저앉히고

허리 아래쪽만 꽉 깨물고 있다, 정오니까

나그네에겐 분별조차 고단하니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몇만 톤 졸음이나 그늘 안쪽에 부려 놓을까?

불멸불멸하면서 평생 떠도느라 빚졌으니

모로 고개 꺽은 저 승객도 이승이란 낯선 대합실

깨어나면 딱딱한 나무 의자쯤으로 여길 것인가

k*****7 2015.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스토리와 풍경을 인질로 삼는 하나의 문구만으로도... 김명인,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모든 스토리와 풍경을 인질로 삼는 하나의 문구만으로도... 김명인,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내용보기
스토리와 풍경이 있는 삶을 꿈꿨다.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산보처럼 흘려보내는 풍경, 그러한 풍경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오래도록 보지 못하였던 그와 그녀, 그와 그녀의 숨겨진 스토리를 어떻게든 발굴하여 누구에게든 알려주기를 희망하였다. 희망이 꺾인다 하여도 개의치 않을 작정이었다. 생화에 집착하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꺾인 희망을 꽂아 놓을 수
"모든 스토리와 풍경을 인질로 삼는 하나의 문구만으로도... 김명인,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내용보기

  스토리와 풍경이 있는 삶을 꿈꿨다.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산보처럼 흘려보내는 풍경, 그러한 풍경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오래도록 보지 못하였던 그와 그녀, 그와 그녀의 숨겨진 스토리를 어떻게든 발굴하여 누구에게든 알려주기를 희망하였다. 희망이 꺾인다 하여도 개의치 않을 작정이었다. 생화에 집착하지 않기로 하였으므로, 꺾인 희망을 꽂아 놓을 수 있는 무채색 화병 하나쯤 오른 쪽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책상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달과 시


  없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고서
  잊고 산 지 몇 달 되었다
  독촉 전호 거듭 받고서야 내게 없는 시
  저 달 속에 심겨 있음을 쳐다본다
  문득 비우고 채우는 이레의 달
  못 지킨 약속에 대한 보복처럼 달은
  반월도 치켜들고 마구잡이로 구름을 베며 나아간다
  베이는 일은 시의 길,
  마음엔 구름 펼칠 빈자리조차 없었으니
  우두커니 눈 시린 달의 시 바라본다


  밤하늘에 커다란 달이 걸리면 조금 무서워했던 것 같다. 커다란 달은 커다란 구멍을 닮았고, 그 구멍은 바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치 죽음 저편의 세계를 닮아 있었다. 건너뜀이나 건너감은 회귀본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저편의 세계는 무기력의 세계여서 어떠한 힘도, 힘을 잃고 만다고나 할까. 밤하늘의 커다란 구멍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비밀 프로젝트이고, 우리는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은 알려고도 하면 안 된다.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졸음기 그득 햇살로 쟁여졌으니
  이곳도 언젠가 한 번쯤은 와 본 풍경 속이다
  화단의 자미 늦여름 한낮을 꽃방석 그늘로 펼쳐 놓았네
  작은 역사는 제 키 높이로 녹슨 기차 한 량 주저앉히고
  허리 아래쪽만 꽉 깨물고 있다, 정오니까
  나그네에겐 분별조차 고단하니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몇만 톤 졸음이나 그늘 안쪽에 부려 놓을까?
  불멸불멸하면서 평생 떠도느라 빚졌으니
  모로 고개 꺾인 저 승객도 이승이란 낯선 대합실
  깨어나면 딱딱한 나무 의자쯤으로 여길 것인가


  나는 이편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이 마치 출입제한구역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만 느껴지고는 한다. 일종의 판옵티콘,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폐쇄된 기차역을 떠올리고는 한다. 출발과 도착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제를 완수하고 난 후, 길고 긴 휴식기에 들어간 격리된 부지만이 가질 수 있는 노곤한 야성을 바라본다. 나는 애초에 거처가 없는 승객이어서, 이곳의 사라진 시선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바쁜 등기


  공터 너머 베다 만 아카시아 숲에서
  뻐꾸기 운다, 바뀐 지번 용케 찾아와
  산동네 구 번지로 우는 뻐꾸기
  간벌을 견뎌 유난한 꽃만도 아닌데
  울음은 가시에 찔려서 화창한 대낮이다
  올해의 독경(讀經), 풍경으로 퍼뜨리며
  몸이 넘는 고비를 일러 준다
  귀 밝은 우체부가 저 울음소리만 듣고서도
  겨우내 묵힌 편지를 배달하리라
  바쁜 등기의 여름이 성큼 와 닿는다


  우체부라는 단어에서 나는 은밀함을 느낀다. 우체부는 로르카를 떠올리거나 전도연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어쩔 수 없는 낭만, 유난히 붉은 전갈을 싣고 신음소리를 내며 달리는 자전거, 바퀴 그리고 체인으로 튜닝된 선험적인 에로틱의 세계에 올라타고는 한다. 나는 가끔 이러한 나를 알아차린다. 그것은 일종의 퀴즈 아카데미, 나를 알아 맞춰보세요, 제한 시간은 출생에서 죽음 너머까지, 무제한이랍니다. 


   산벚


  제 꽃잎 뜯어내 개울에 내던지는
  저 산벚 바라보면


  새 꽃잎 입고 벗으며 한 해를
  삭여 내는 것
  드난살이 같아서 내게는 선연하게 피 흘리는
  윤회가 없어야 한다


  목숨이란 곡절의 가지 끝에 피맺힌
  봄꽃 아니냐!


  나는 ‘제 꽃잎 뜯어내 개울에 내던지는 저 산벚’ 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러한 산벚처럼 살고 싶다 혹은 살아야겠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스어를 모르는 그리스인 혹은 라틴어를 모르는 로마인의 삶과 비슷하지 않을까. 김명인의 시집을 읽으며 건져낸 것이 이 하나의 문구뿐이어도 별 탈 없다. 모든 스토리와 풍경을 인질로 삼고 있는 것과 같은 하나의 문구, 는 언제든 입을 열게 만들어주므로...



김명인 /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 민음사 / 79쪽 / 2015 (2015)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