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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머금은 한 줌 숨결 같은 미련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백일몽에서 깨어난 적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꿈을 꾼 적 없다 집에 돌아간 적도 없고 파멸에 이른 적도 없이 때로 행복하여 꼿꼿이 선 채 죽어간다 따사로운 햇살이 오래 내리쬐니 이제 온전한 미라들이 생겨날 것이다 - 윤의섭, 「천국의 난민」부분 표제작 「천국의 난민」을 읽다 보면 어떤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온전한 미라'가 되어가는 과정의 순간을 포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행복하여 꼿꼿이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전언 같기도 하다.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일상적이고 상시적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숨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시인의 시들에는 구체적인 장소나 지명들이 등장한다. 칠장사, 수암, 월곶리, 북해, 오이도, 북촌 같은 지명들은 시인이 쓴 시들에 현실성과 현장성을 생생하게 부여한다. 시를 읽는 독자가 시를 읽는 순간 그 시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독자의 입장에서 시인이 묘사하고 서술하는 세계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시들이 가지고 있는 현장성 때문이다. 시인이 특정 장소에서 경험한 것을 사실로 인정한다면, 시인이 느끼고 묘사하는 감정이나 인상 역시 실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시간 개념이나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관념들과 어긋나고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익숙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공존은 독자들을 다소 긴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렇게 열린 시인의 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관념과 개념을 확장시켜준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기말을 경험했던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 감정들이 소환해내는 어떤 기억들이 아련하고 애틋하다. 천국을 소망했으나 그곳에 다다르지도 그곳을 만들지도 못하고 난민으로 떠도는 삶 같은 것, 혹은 그런 것들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어떤 감정이나 감상들. 예를 들면 이런 시. 그걸 잔상 효과라고 하지 아마 생나무를 무덤 가린다고 잘라냈는데 둥지 틀었던 새들이 앉을 자릴 찾아 맴도는 거 머리를 잘리고서도 잠시 퍼덕이는 생선 불에 그슬리던 개는 생각난 듯 일어나더니 묵묵히 걸었지 (중략) 요즘엔 부쩍 우울한 얼굴로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은 거무죽죽한 얼굴을 하고 가게문을 닫고 있는 자신의 얼굴도 보였다 - 윤의섭, 「남아 있는 생애」부분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을 차치하고, 분석이나 해석없이 그 자체로 가슴에 와서 박히는 시들도 있는데, 사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면서 이 시집을 시집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수암 가는 길」인데, 이 시를 읽을 때 마음속에 그려지던 정경은 과거와 내세를 망라한 일만년의 유구한 기억 같아서, 그 기억이 모두 내 것이고, 나는 그 기억의 일부인 것 같아서 뭉클해졌다. 나의 죽음도 이와 같기를. 마당에선 뒹굴던 새의 깃털이 점점 자라 다시 온전한 새가 되어 날아가고 해질녘 떨어진 햇빛은 풀꽃으로 진화한다네 거긴 좀 어떤가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창 밖 세상은 벌써 일만년 후라네 전날 깎아버린 손톱은 열 개의 달이 되고 어딘가에 떨어진 눈썹은 숲이 된다네 그대여 바람을 일으켜 먼지 흩날리게 그대 기억보다 더 생생한 잊혀짐이게 - 윤의섭, 「수암 가는 길」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