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서 다루어진 여러 주제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질병은 오로지 인간이 그것에 부여한 역사만을 갖는다고... 질병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이란! 인간이 이름을 붙인 추상적 총체에 지나지 않는다. 한 인간이 겪고 있는 불편함이 원인이 되어 의사들은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증상들과 눈으로 보이는 흔적, 그리고 해부학적 손상 상태와 때로 그 불편함의 원인이나 그 원인이 될 소지의 것들을 한데 모아 지적인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모여진 내용에다 진단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는다. 여기에서부터 증상이나 그 원인에 작용할 치료가 시작된다. 이런 과정은 우주의 신비를 향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단순화하려는 인간 정신의 영원한 욕망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개념과 이 모든 개념과 개념을 체계적으로 쌓아 올리고 서로 관련짓고 하는 행위들은 당대의 인식의 수준과 과학에 대한 이념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는 지극히 혁명적이며 따라서 의학은 본래 역사적인 것이다. 또한 의학의 정체와 맹목성과 불합리를 비난하는 것 역시 부자연스러우며 유치한 일이 될 것이다 의사는 다른 학자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사회 속에서 태어난 의사는 이상과 환상, 변화에 대한 저항, 이 세계의 구조와 생명의 메커니즘에 관해 익히 알려진 모델의 틀을 사회와 공유한다. 따라서 사회와 의사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의사는 사람들이 부여해 준 소위 "권위"란 것을 누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사가 지식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사는 오랜 세월 동안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이에 못지 않게 비웃음과 의심도 많이 받아왔다. 의학은 확실한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의사도 인간인지라 불합리한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과 사회는 행위 속에서 합리성과 유효성을 결합 시켰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결합이 수세기를 거치면서 변질되었다거나 과학과 의학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가 이전 시대보다 오늘날 더 특징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험과 논리의 정확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의학과 오랜 세월동안 신의 계시, 종교적 감정, 순진함, 허풍이 마구 뒤섞인 곳에서 끌어올려진 실제 임상 활동은 늘 대립되어 왔다. 특히 암과 에이즈는 더욱 열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유사"의학의 열광자들은 히포크라테스 시대 때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과학으로서의 의학의 개혁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의학은 다른 분야에서 인간이 이룩한 개혁의 도움을 받아 기존의 수천 가지 질병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길 질병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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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서양의학사적인 내용이다. 물론 철저하다고 해서 그렇게 의학에 빠삭해지지는 않는다. 역사학적으로 바라본 의학의 발전 도상에 대한 내용이랄까. 일단 책 자체가 역사학자가 22명이나 모여서 쓴 책이라서 그런 쪽으로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중간 정도 수준을 지닌 입문서적으로 추천할만하고, 상당히 풍부한 실례와 많은 주석으로 친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기존에 그 병에 대해서 모를 경우 이 책은 매우 이해하기가 힘들고, -물론 페스트, 티푸스, 결핵 등 매우 유명한 병들을 언급하여 병에 걸린 사람의 증세나 상태, 예후관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읽다보면 풍부한 역사학적 지식에 밀려 난독증세까지 몰려버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병들을 언급하여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으며 많은 예제를 통해 표현하고, 병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의학사의 발전과 당시 의사와 의학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기에 이 책은 중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본 서양 의학 서적에 대한 기초적 인문서 중에서는 가장 발군으로 평가되며, 자료집으로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동양 침구술이나 탕약술에 대한 내용은 동양인인 한국인은 어느정도 알고 있으나 사실상 외과술로 대변되는-물론 외과술이 서양 의학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서양의학의 발전 도상을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