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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의 주인공은 장엄호텔이다. 사방이 늪으로 둘러싸인 곳에 우뚝 선 이 호텔은 할머니가 세우고 이름 붙였다. ‘자기만의 호텔을 갖는 것, 그건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지하수 지반 위에 세워졌으므로 장엄호텔은 끊임없는 파괴의 위험에 놓인다. 늪은 늪이므로 유수가 없고 그러므로 오늘 고인 물은 내일도 고여 있다. 썩은 물은 쉴 새 없이 파리와 모기를 유인하고 그것들은 늪에다 알과 함께 병을 같이 심는다. 늪지대가 뿜어 올리는 습기는 목재로 지어진 장엄호텔의 구석구석에 공동을 만든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늪은 벌레의 시체들과 우글거리는 병균들, 그리고 죽은 유기체들이 피워 올린 온갖 악취들을 모두 안은 채 한 겨울 잠잠하지만, 얼음이 녹고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면 죽음의 퇴적층엔 또 다른 죽음들이 쌓인다. 죽음의 계절에서야 장엄은 간신히 정체한다. 신생의 활발함은 장엄호텔에겐 죽음이다. 호텔에는 ‘나’와 아다와 아델이 산다. ‘나’는 장엄호텔의 유기적인 부속품으로만 존재한다. 작가에게 부여받은 이름도 없고 사적인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나는 내 행동이 야기하는 결과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행동할 수 없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장엄을 위해, 장엄만을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부식된 파이프를 수리하고, 썩은 목재에 방수도료를 바르고, 손님들을 위한 모든 잡무를 처리한다. 장엄호텔의 내부가 거대하게 얽힌 혈관이라면 그녀는 그 안의 백혈구로서 기능한다. 아다와 아델은 생존과 적응을 위한 활동 이외의 잉여를 누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진짜 인간’이다. 그들은 서로 반목하거나 보듬고, 꿈도 꾸며 사랑도 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예감하며 “죽음, 그건 삶보다 지독하다고” 아델은 말하지만, ‘삶이 지독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지독함이란 실상 삶에 대한 애정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에밀 시오랑의 말마따나, ‘오늘처럼 삶이 싫었던 적은 없다,’라고 외치고 나면 삶은 그럭저럭 살 만하게 변한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임계점을 넘어버린 삶의 지독함은, 그러나, 산 자에게 자진할 것을 요구한다. 아무런 말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장엄호텔의 손님들은 모두 떠난다. 그들은 때로 친절하고 종종 예의바르지만, 결국 환멸만을 안고 돌아간다. 할머니의 무덤이 있었던 정원은 늪으로 변했다. 할머니는 이제 늪의 퇴적물이 되었다. 아다와 아델은 죽었다. 그들을 위해 ‘나’는 철도청의 시공으로 만들어진 둑 아래 그들을 묻지만, 견고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둑은 늪지대의 흡반에 점점 잠식되어간다. 그들도 할머니와 함께, 온갖 벌레들과 악취와 함께 퇴적층의 일부가 될 것이다. 책머리의 제사로 랭보의 다음과 같은 싯구가 쓰였다: “대상들은 떠났다. / 그리고 장엄호텔이 극지의 얼음과 어둠 속에 세워졌다.” 비로소 '대상들'은 모두, 남김없이 떠났다. 인간들과 인간적인 것이 모두 떠나간 자리에 이제 ‘나’와 장엄호텔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예전 같지 않다.’ 장엄호텔도 더 손볼 수도 없을 만치 쇠락했다. 그나마 빛나는 네온간판은 ‘호텔’이라고 쓰인 부분의 전구가 나가서 ‘장엄’만 반짝인다. ‘나’도 호텔도, 결국엔, 늪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자못 장엄할 것이다. |
| 랭보의 시구절로 시작하는 소설은... 어느사이에 시의 상징적이고, 모호한 부분을 현실의 세계에 옮겨 놓았다. 한 여성이 할머니의 유산으로 장엄호텔을 상속받는다. 그러나 호텔의 위엄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호텔은 잦은 하수도 고장과 추위로 사람들이 떠나고, 자신 혼자 남았지만, 그 호텔은 이제 곧 쓰러질 것이다. 프랑스 여성소설이라고 열림원에서 나온 책의 5권인 이 책은 여성작가들의 새로운 시각과 대단함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랭보의 상징적인 시와, 구체적이라는 소설의 장르가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랭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