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아마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그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중세의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이 어두컴컴한 도서관에서 먼지가 가득 앉아 있는 두꺼운 책을 침을 발라가면서 탐독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아니면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 본 목사님의 서재에 그득히 꽂혀 있는 두꺼운 책들(게다가 표지에 영어로 쓰여진 전집들이 많았을 거다)을 보고선 ‘아, 신학이란 어마어마한 학문이구나. 나같은 미물에겐 당치 않은 학문인가보다’라고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신학은 그러한 학문이 되어서는 안된다. 신학이 아무리 학문적으로 발달한 다 하여도 그것이 우리의 일상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우리의 삶의 변화를 위한 아무런 지침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중세의 박제로 남아버릴 것이다. 이러한 신학과 생활의 간격을 좁히고 일상생활과 신학의 접목점을 찾고자 하여 생겨난 신학을 ‘일상생활의 신학(TEL:The Theology of Everyday Life)’이라고 한다. 이 말은 호주의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라는 사람이 처음 소개한 것으로서, ‘주일’과 ‘교회’ 안에서의 신학을 ‘평일’과 ‘세상’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예를 들어서 “크리스천이 골프를 쳐도 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서 “좀 여유가 있다면 골프를 칠 수도 있는 것이지 굳이 신학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크리스천이 골프를 쳐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치는 것보다는 그래도 “크리스천이 골프를 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하고 한 번쯤 신학적으로 정리를 해 본다면 더 좋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면 그는 골프를 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아직도 골프에 대해서는 일부 부유층만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요즘 한국 교회가 거룩(聖)과 세속(俗)을 완전히 분리하여서 이원론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신앙을 세상에서 나타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는 지경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복음과 상황>이라는 기독교 지성계의 잡지에서는 "대형비리와 한국교회의 책임"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서 한국교회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해악으로 존재해서는 안되며, 본래의 빛과 소금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다가 우리 교회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많은 진단을 내릴 수가 있겠지만, 결국 ‘신앙과 삶의 괴리’의 문제로 집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신학과 일상생활의 괴리’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렇다! 신학이 일상생활에 관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신앙(신학)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그 신앙(신학)이 우리의 삶에서 ‘동일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신학과 삶의 일치’를 위한 이론과 적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 있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특별히 신앙과 직장생활의 관계에 대해서 수년간 연구해 오신 방선기 목사님의 책 <일상생활의 신학>(방선기 지음, 한세)이 바로 그 책이다. 우선 책을 딱 집으면 그 싸이즈의 작음과 두께의 얇음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다만 이론과 적용편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좀 아쉽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운 ‘신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책이라면 2× 2000원 = 4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일상생활의 신학’의 원조인 로버트 뱅크스의 저서인 <일상생활속의 그리스도인>(IVP)과 에드워드 헤이즈의 <네가 선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곳이니라>(한세)도 추천할 만하다. |